2007. 12. 16(주) / 대강절 세 번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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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4:13~18 / 육신의 죽음은 예수 안에서 자는 것! / 예수 안에서 자는 형제 자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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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트라 : [인간은 죽음을 생각하는 유일한 동물이며, 종말에 대하여는 의심하는 동물이다].
- 사람만이 죽음에 대해 생각 / 다른 동물들은 생각 없이 그냥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죽음은 남의 것으로만 생각한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은, 모두 보이는 육신으로 태어나 살다, 육신의 때가 지나면 죽음이라는 육신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길을, 우리는 언젠지는 모르지만 모두 반드시 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소중한 한분을 주님 품안으로 돌려 보내드렸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길을, 우리의 소중한 한 분이 지난 주에 훌쩍 떠나가셨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권사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나 주님 품안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삼가 다시 한 번, 아름다운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가신 권사님의 천국 길을 확신하며, 남아 있는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 가족 인사! 격려!
죽음? -----------------------------------------------------------------------
그 누가 뭐라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죽음이라고 합니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죽음입니다.
정신병환자나 불안과 실망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원인을 살펴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 것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래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죽기를 싫어합니다.
야사 / 세종대왕 때 판중추부사 민대생 - 90세 생일인사하는데 [건강히 100수 하십시오]했더니, 노발대발하면서 [내 나이 이제 90인데 100수 하라면 10년만 더 살란 말이냐?] 쫓아냈답니다. 이 말 들은 사람이 [100수
두 번 하십시오] 했더니 “그렇게 인사를 해야지!” 하며 상다리가 부러지게 잘 차려 주더랍니다.
죽음에 대한 두 번 째 생각은, [죽으면 끝이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거부하는 무신론자로 평생을 살았던 유명한 학자 버트란트 럿셀은 - [지금 창밖에는 어둠이 깔렸는데, 내가 죽으면 그 어둠이 나를 그만 뒤덮겠지. 이제는 밝은 빛도 화려했던 인생도 짧은 한 순간에 다 사라지고 허무하게 다 끝나고 마는구나!] 탄식하며 세상을 떠났답니다.
-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며 허무하게 떠난 것입니다.
유명한 무신론자(하나님이 없다는 사람)였던 [바루네]는, 친구와 배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배가 고장나 죽을 지경에 이르자,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오!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아요” 했답니다.
- 다행히 목숨을 건져 육지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바루네의 무신론(하나님이 없다는 주장)은, 땅에서만
통하고 바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서양속담을 만들어 냈답니다.
그런데, 죽으면 고통도 없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죽음 애찬론자]라고 합니다.
즉, 죽으면 더 이상 괴로운 것이 없이, 평안한 세계로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살기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 곧, 자살을 한번 쯤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에도 자살을 도와주는 [자살 싸이트]라는 것이 여러 개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세상에 태한 이해와 판단력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이런 모임에 빠져들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해결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별의 고통을 주고, 사회에 부담만 주고 떠나게 됩니다.
단지 소중한 자기만 사라져 버릴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사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다가 아무렇게나 내 팽개치고 아무렇게나 가 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그 특성에 잘 어울리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무엇일까요? ---------------
성경은 [사는 것은 다 다르지만, 죽는 것은 다 똑 같다]고 말씀합니다(전3:19).
세상사는 것은 이리 저리 다르게 생각하고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죽음만은 공평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공평한 것(죽음)을 가지고 인생을 판단해야 공평한 판단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살다가 죽어 없어지는 인생이냐?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인생이냐?]
- 이것이 죽음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죽음이냐?]에 따라, 그냥 [덧없이 없어지던지, 새로운 싹을 틔어 내든지!] 하기 때문입니다.
즉,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육신의 죽음 후에도, 내 속에 있는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 다시 싹터 자라기 시작하는 새로운 천국의 인생]으로 살 것이냐? 아니면, [그냥 죽어 구천을 떠돌다 지옥으로 갈] 인생이냐?
그것이, [죽는 순간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을 [함부로 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함부로 죽는 것]입니다.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어떠했느냐? 그 순간 상태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좀 모자라게 살았다 해도, 마지막 죽는 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 (다) 사는 것 보다 죽는 것을 잘 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다리실 때, 그 옆에 있던 강도들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예수님 좌우에는 사형까지 당할 못된 죄를 지은 강도 둘이 십자가에 달려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한 편의 강도는 죽으면서까지 예수님을 욕하고 비웃습니다 [예수! 네가 하나님 아들! 좋아하네! 한번 십자가에서 내려와 살아나 봐!] 그는 결국 죽어 지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의 강도는 말합니다 - [나는 지은 죄가 너무 커 마땅히 사형당하지만, 그러나 예수여! 당신이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 하셨나요? -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천국)에 있을 것이다!] 할렐루야!
이 강도는 평생을 못된 짓을 하다가 사형을 당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함부로 죽지 않고 은혜롭게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혹, 평생을 잘 먹고 잘 살았다 해도, 마지막 순간 까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않아, 결국 죽어
지옥에 가는 사람보다도, 이 강도가 (다)[훨씬 더 났게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일들이 죽음 후에 남아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더 많은 세월을 살면서 더 많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영~원히~
우리 인생도 보세요!
무슨 시험을 치르고 나면 그것으로 끝인가요? 합격하고 나면 그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그 때부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되지요.
(다)육신의 죽음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죽음 이후(심판을 받은 이후)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한 세월과 셀 수없이 많은 천국백성들과 조금도 속된 것이 없는 거룩한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서 생생하게.....
그러기에 성경은, 육신의 죽음을 [잠 잔다, 쉰다]고 표현합니다 ----------------------------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잠잔다] 하시며 [깨우러 가자] 하셨습니다.
서양 공동묘지 초대교회 시대 순교자들의 무덤에는 반드시 [잠들다]는 표현을 쓰게 되었답니다.
[어머니가 예수 안에서 잠들다], [권사님이 예수 안에서 잠들다] - 모두 [예수 안에서 잠들다]라고...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는 육신이 떠나면 죽었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만, 예수 안에서 죽은 사람은 [단지 잠시 동안 잠자는 것]과 같습니다.
서양 가훈 집 / [죽은 사람을 슬퍼하지 말라. 죽음 저편엔 고통이 없고 안식이 있기 때문이다].
- 예수 안에서 [편히 잠든 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잠을 깨어 일어날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천국 생활을 하게 됩니다.
본문 (13~14) 함께!
슬퍼하지 마십시오 - 우리는 다시 만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168-2)무덤 속에 잠자던 자 그 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 승리 얻으리
주의 택한 모든 백성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믿으십시오.
- 육신이 죽으면 영원한 세계가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보잘 것 없는 육신의 삶을 청산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영혼의 삶으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영원한 삶은 죽음 후에 우리에게 틀림없이 열려지는 분명한 세계입니다.
- 마치 씨앗이 죽어짐으로 새 생명이 되어 피어나듯이···
이러므로 우리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렇게나 그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믿음! -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주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
머잖은 장래,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산 자나 죽은 자가 구별이 되지 않고 똑 같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랄 것입니다.
아니, 주 안에서 먼저 세상을 떠나가신 분들이, [아! 참 잘 잤다] 하며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들 같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결코 더 앞서서 움직이지 못 할 것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그 분들이 더 먼저 앞서 일어나실 것입니다.
- 본문 15~17절(함께!)
영어로 [몇 살이냐?]를 [how old are you?]라 하는데, 이 뜻은 [얼마나 늙었느냐? 곧, 얼마나 죽었느냐?]라는 뜻이라 합니다. [얼마나 죽음이 가까이 왔느냐?]
이 사람은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 [얼마나 먼저 가신 분들과 만날 시간이 가까워 졌느냐?]
(18 함께) - 이렇게 위로하고 위로 받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