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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마녀] 구현숙 - 시놉시스
전설의 마녀(가제)
- 세상은 그녀를 마녀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녀를 전설이라 부른다.
↝ 드라마 개요
청주 여자교도소 2층 10번 방에 수감된 네 명의 수형자 이야기입니다.
살인, 주가조작, 사기, 살인 미수 등 죄목도 다양한 네 여자는
저마다 억울하고 아픈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담장, 높은 망루, 두툼한 철문은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시켰고,
회색빛 콘크리트에 갇힌 그녀들은 하루하루 시퍼렇게 멍들어갑니다.
이십 대에서 칠십대까지 세대가 다르고, 성격도, 취미도, 살아온 환경도,
판이하게 달라 처음엔 서로를 경계하고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이지만,
그녀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서로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었고,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비밀이지만, 그런 그녀들에게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제과 제빵 기업 ‘신화제과’와 각기 다른 억울한 사정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다.
결국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를 나온 네 명의 여자들은, 교도소 내 직업훈련원에서 배운 베이커리 기술을 살려 서촌에 여덟 평짜리 ‘못난이빵집’을
창업하고, 재벌기업인 신화제과와 정면으로 맞대결을 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들에게 ‘마녀’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검은 망토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며 주문과 마술을 써서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동화 속 마녀처럼, 죄수복을 입고 교도소 울타리에 갇힌
그녀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만을 가져다주는 불길하고 불운한
여자라고 치부해버렸습니다.
그러나 검은 망토 대신 앞치마와 제빵 모자를 쓰고,
빗자루 대신 제빵도구를 양손에 들고 블랑제로 거듭난 그녀들을
이제 우리는 ‘전설’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편견과 차별로 가득 찬 세상을 엿먹이는 네 여자들의 시원한 한 방!
가슴을 저미는 따뜻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이해와 용서에 대한 사색!!!
지금부터 마법 같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기획 의도
1.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전설의 마녀’는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드라마입니다.
세상의 편견과 오해, 차별 때문에 멍들어 가는 사람들의 슬픈 사연을
동화 속 ‘권선징악의 공식’에 따라서 통쾌하고 통렬한 결말로,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줄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는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동화,
절망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동화,
슬프고 처연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동화입니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힘들고 지치는 하루였나요?
무미건조한 잿빛 일상이었나요?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는’ 최악 최저의 상황에 처한 네 여자들의
파란만장 필살기, 우당탕탕 성공기를 통해서,
흑백 필름처럼 지루하고 단순한 일상에 지쳐있는 시청자 여러분을
총천연색의 눈부신 세계로 안내하겠습니다.
2.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
시아버지인 신화그룹 마회장의 계략으로 교도소에 갇힌 주인공 문수인
(32)과 교도소 내 직업훈련원 강사로 봉사하러 온 신화호텔 쉐프인
싱글 대디 남우석과의 가슴 시리고 애처로운 사랑-
30년째 장기복역 중인 김혜자(70)와 교도소장 출신의 박이문과의
한 편의 시(詩) 같은 눈물 어린 순애보 -
임신한 채 교도소에 수감된 서미오(22)와 신화호텔 망나니 막내아들
마도진과의 애증으로 얼룩진 치명적인 사랑 -
과도한 에스라인의 소유자이며 애교와 색기로 전신 코팅한 손풍금(53)과
종로 제일의 날제비 탁월한의 코믹로맨스-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러브스토리를 통해서 각박한 세상에 저마다의 삶의 무게로 비틀대는 우리 모두에게 작은 위로와 추억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3. 못난이빵집 vs 신화제과의 한 판 승부
경복궁 근처 ‘서촌세탁소’ 옆에 나란히 간판을 내건 여덟 평 남짓한
‘못난이빵집’
화려한 인테리어의 점포와 예쁜 디자인의 빵을 내세운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동네 골목마다 가득한 요즘,
허물어져가는 한옥 한 귀퉁이를 개조해서 만든 ‘못난이빵집’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느낌입니다.
프랑스나 일본으로 제과제빵 유학을 다녀온 화려하고 빵빵한 경력의
블랑제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청주교도소 내 직업훈련원에서
천신만고 끝에 겨우 딴 꼴랑 제과제빵 자격증만이 그녀들이 가진 경력의
전부입니다.
게다가 네 사람 평균 나이 44.2세, 평균 수형기간 9년!
그러나 빵맛은 경력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손맛이고 정성이다!!
공장에서 생산된 빵, 공장에서 이미 만들어진 반죽을 배달 받아 굽는
빵이 아닌, 유기농밀가루에 직접 배양한 천연 효모와 천일염으로 장시간
발효시켜 매일 아침 굽는 빵은, 사람들의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고,
독특한 풍미로 입소문이 나게 됩니다.
게다가 못난이제과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못난이빵’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공존의 히트를 치면서, 그녀들은 일약 스타 블랑제가 됩니다.
죽은 남편의 주식과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서,
살인자 누명을 벗기 위해서,
짓밟힌 사랑을 되찾고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과로사로 죽은 남편을 개 값도 안쳐준 신화제과 임원진들에게 빅엿을
날리기 위해서,
눈에 뵈는 것도, 무서울 것도 없는 언니들이 똘똘 뭉쳤다!
거대한 공룡 같은 ‘신화제과’에 위풍당당하게 맞서는 네 여자의
용기와 도전을 통해,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물 하고자 합니다.
4. 피보다 찐~한 여자들의 우정! 새로운 가족의 탄생!!
여자의 우정은 슬라이스 햄처럼 얇다고 누가 그딴 말을 했나?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끝에서 만난 그녀들은
서로에게 엄마가 되고, 딸이 되고, 언니가 되고, 동생이 되었습니다.
과연 혈연만이 가족일까?
1인 가족 시대, 고독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요즘,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등장인물
마녀들...
1. 문수인(32)
신화제과의 맏며느리, 운명을 딛고 일어서 전설이 된 여인.
집안이면 집안, 학벌이면 학벌, 외모면 외모...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재벌가
며느리의 조건에 부합하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고아에 지방 대학 졸업, 눈에 띄게 빼어난 외모라고 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로, 옆집 여자, 앞집 여자, 이웃집 여자.... 결혼을 앞둔
대한민국 2~30대 여성들에게 재벌가 입성을 꿈꾸게 만들어주는
희망(?)의 아이콘이다.
밝고 씩씩하고 명랑·쾌활하며 솔직하고, 어느 상황에서든 늘 긍정적
이라 하루 중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웃으며 지낸다.
구박에 독한 쓴 소리를 해도 노여움 한 번 타는 법이 없고,
허구한 날 배슬배슬 웃는 모습이 못마땅한 시댁식구들이 ‘조상 중에
웃다가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다면서 제 분을 못 이겨 가로로 세로로
펄펄 뛴다.
장남 ‘도현’이 색싯감이라면서 수인을 집에 처음 데리고 왔을 때,
마회장을 비롯한 식구들 모두 아연실색,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결혼을
반대했고, 결국 시골 교회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
분기탱천한 마회장은 도현과 의절을 선언하고 남남처럼 살았지만,
탈세와 비자금 조성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뇌출혈로 쓰러진다.
천신만고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난 마회장에게 주주들은 투명한 경영
차원에서 경영권 포기를 요구했다. 하는 수 없는 마회장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도현을 신화 그룹의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막내 도준은 대책
없는 양아치라) 집으로 불러 들였다.
눈엣 가시, 물 위에 기름, 강낭콩 자루 속의 한 톨의 완두콩처럼 시댁
식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며, 없는 사람 취급당하며 살아온
수인이지만, 시댁식구들이 밉고 원망스럽지는 않다. 입장 바꿔서 도현과
같은 멋진 아들을 둔 부모가 자신처럼 보잘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고아를 며느리로 맞게 된다면 기가 막힐 거라고 생각된다.
다~~~ 이해한다.
그래서 시댁식구들이 아무리 자신을 깔보고 무시해도,
단 한 번도 서러운 마음을 입으로 옮긴 적이 없다.
또한 ‘주제 파악’에 이골이 났기 때문에 낄 때 끼고, 빠질 때 잘 빠져서,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을 난처하게 만든 적도 없다.
3년 째 불임클리닉에 다니고 있다, 남편을 닮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만
낳는다면, 시댁 식구들도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줄 거라고 믿는다.
치매에 걸린 단심을 친엄마 돌보듯이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따뜻한 심성과 말로 주위 사람들에게 온기를 주고, 대부분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그렇듯 수다와 멜로드라마를 좋아한다.
오지랖 넓고, 식탐 많고, 눈물과 웃음도 많은, 보통의 대한민국 아줌마다.
가끔은 속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무한 밝음과 무한 긍정의 수인은
주위를 반짝반짝 빛나게 했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경영수업을
받던 도현이 프렌차이즈점 시찰을 나왔을 때, 강남점 매니저로 일하던
수인의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된다.
남들이 꿈꾸는 신데렐라가 됐지만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부엌살림에서 연못 청소까지 서넛 되는 도우미들을 놔두고 집안일은
도맡아했고, 봉사활동을 귀찮아하는 차여사를 대신해서 보육원이나
양로원, 호스피스 병원, 교도소로 사흘 걸러 한 번씩, 코피 터지게
자원봉사를 해야만 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사라더니... 자원봉사 하러 갔던 교도소를
죄수의 몸이 돼서 걸어 들어갈 줄이야!!
강원도에 건설 중인 제2공장 현장을 방문하러 간 남편 도현이 헬기 추락
사고로 죽고, 하루아침에 남편을 잡아먹은 팔자 사나운 미망인이 된다.
장례를 마친 후, 수인에게 집을 나갈 것을 은근히 종용하는 시댁식구들
에게, 치매인 시어머니 단심을 봉양하면서 죽은 듯이 지낼테니 마씨
집안의 며느리로 살게 해달라고 애원해보지만, 작은 시어머니인 앵란과
올케 주란에게는 씨알도 안먹힌다. 게다가 남편이 살아있을 때도 수인에게
눈길 한 번 안주고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던 마회장인데 하물며 도현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어쩌면 자신이 시댁을 떠나는 게 며느리로서 시댁 식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수인은 도현의 삼우제만
끝내고 시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수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절에서 도현의 삼우제를 끝낸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회장은 수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도현의 뒤를 이어 회사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을 며느리 취급도 안하던 시아버지가 회사를 맡아달라니... 남편의
죽음만큼이나 믿겨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멀쩡한 아들, 딸 다 놔두고 천지분간 구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한테
회사를 맡으라니 제 정신이냐며, 거품을 물며 펄펄 뛰는 차여사와
말도 안된다며 울며불며 대성통곡하는 주란에게, 죽은 도현의 주식이
상속돼서 이미 며늘아기는 신화제과의 최대 주주라며, 이미 결정된 일이니
더 이상 토 달지 말라며 쐐기를 박는 마회장.
처음에는 고사했지만 남편은 죽었지만 마씨家의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수인은 신화제과의 자회사
‘신화유통’의 대표이사를 수락한다.
집안일만 하던 전업주부가 하루아침에 대표이사라니...!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도망치고 싶은 심정인데,
마회장은 세상이 들썩일 정도로 성대한 취임식을 해주었다.
경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서 죽은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실망시키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수인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열심히 일했다.
마회장은 수인에게 상속세 문제와 도현의 죽음 이후에 술렁이는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분 확보를 위한 실탄이 필요하다며 신화유통의 회사
채를 발행하도록 권유하고, 창고, 농장 등 회사의 부동산과 알짜 자산을 비밀리에 매각한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는 수인은 시아버지의 말에
따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회사채 투자자들과 주주들은 수인을 횡령 배임 으로 고소한다.
검찰 조사를 받는 수인에게 마회장은 회사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수인이 무죄임을 밝힐테니 걱정말라며 안심시키고, 동요하는 시장을
다독이고, 경영난을 겪고 있는 회사의 안정을 위해서는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며 수인의 주식을 넘길 것을 종용한다. 수인 역시 법적 조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운 것을 알기에 순순히 마회장에게 주식을 양도한다.
곧 구치소에서 빼내주겠다던 마회장은 법정에서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수인에게 떠넘기고, 항소의 기회마저 박탈한다.
모든 게 마회장의 시나리오였다는 걸 알게 된 수인은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벗어난 후였다.
2년 실형을 선고 받고 청주여자교도소로 수감된 수인.
수인이 배정된 청주여자교도소 2층 10번 방에는 살인범 혜자, 사기범
풍금, 살인 미수범 미오 등 무시무시한 세 명의 여자가 버티고 있다.
처음 얼마간은 서로 신경전을 벌였지만 결국 고아인 수인에게,
혜자는 엄마, 풍금은 이모, 미오는 동생과 같은 존재가 된다.
수인은 혜자의 권유로 교도소내 직업훈련소에서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게
되고, 강사로 온 쉐프 우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정작 운명의 주인공인 수인과 우석은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두 사람은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을 나눠 갖고 있다.
부모를 잃은 수인은 다섯 살 무렵 인천에 위치한 보육원에 맡겨졌다.
혼자라는 외로움 때문인지 유난히 배가 고프던 그 시절... 한 달에 한 번씩
차에 가득 빵을 싣고 보육원을 찾아오는 고마운 후원자가 있었다. 시내
에서 빵공장을 크게 운영하는 분인데 한 달에 한 번씩 보육원을 방문해서 고아들의 곯은 배를 불뚝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그때 아빠의 등 뒤에 숨어 고아들에게 빵을 나눠주던 꼬마 소년...
오빠 언니들에게 떠밀려서 빈 손만 바라보고 있는 수인에게 크림빵을
몰래 챙겨주던 꼬마 소년...
수인을 동생으로 입양시켜 달라고 아빠한테 떼쓰던 꼬마 소년... 바로
우석이었다.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는 두 사람은 처음엔 만나면 으르렁대며
못잡아 먹어 안달이지만... 조금씩 이해하고, 조금씩 익숙해지며, 서로에게
차츰차츰 젖어들며,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둘만의 행복도 잠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 도현이 살아
돌아오고,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과 비련을 겪기도 한다.
출감 이후, 의지할 곳 없고 갈 곳 없는 청주교도소 10번 방의 세 여자를 보듬어 안고, 빵집을 창업하는 수인은, 온갖 편견과 모함을 딛고 결국
신화제과를 되찾는다.
유독 잔인하고 불공정했던 운명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여인’
에서, 운명과 맞서 싸워 딛고 일어선 ‘철의 여인’이 된 수인 -
세상은 그녀를 전설이라고 부르게 된다.
2. 김혜자 (70)
청주교도소 10번방 방장, 30년 가까이 복역 중이다.
오래된 수감 생활은 그녀를 소금에 절여진 고등어처럼 만들었다.
삶의 윤기나 생명의 훈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쾡하게 들어간 큰 눈, 금방이라도 눈물이 후드득 떨어질 것 듯한 촉촉한 눈망울, 수수께끼 같은 표정...
삶을 도둑맞은 흔적이 얼굴 구석구석, 온 몸 구석구석 묻어난다.
세상에 더할 수 없이 착하고 여리고 선량하고,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며, 단정하고 정갈하다.
말수는 많지 않지만 따뜻하고, 자상해서, 청주여자교도소의 맏언니로서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수형자들을 조용히 도와준다.
1급 모범수다. 처음 교도소에 입감했을 때는 억울한 누명을 풀어야
겠다는 생각에 매일같이 탈옥을 꿈꾸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제는 모든 게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현실을 담담히 받아드린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처형되기 전날, 하룻밤 새 아름다운 금발이 백발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듯이, 교도소에 수감되고 한 달 사이에 입 안의 이가 옥수수알 떨어지듯 우수수 빠져버려 합죽이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틀니를 착용하고 있다.
생의 끈을 놓고 싶은 유혹에 밤마다 시달렸지만, 교도소 안에서는
죽음조차 맘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 데까지는 꼬박 십 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교도소 내에서 새로 시작한 종교생활과 직업훈련소에서 배우는 베이커리 기술이 그녀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미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었던 건,
지금은 퇴임한 교도소 보안 계장 박이문의 도움이 컸다.
남편을 독살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방화를 저질러 외아들까지 죽였다는
죄목으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청주여자교도소로 입감된 혜자는 억울
하고 분해서 밤마다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남편과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 두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교도관들에게
들켰고, 그마저 여의치 않자 열흘이 넘도록 물 한 모금 안 넘기며 목숨을
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그때마다 새로 부임한 교도관 이문이 혜자를 헌신적으로 보살폈고,
회복될 수 있었다.
개미 한 마리 함부로 발로 밟아 죽여본 적이 없는데, 살인이라니!
그것도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했던 남편과 아들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뭔가 잘못됐다고...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믿어달라고 소리치고 발버둥 쳐봤자 미친 여자 취급하기 일쑤였다.
그때 혜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위로해준 이가 그니... 박이문이었다.
하루아침에 삶을 통째로 도둑맞은 허탈감, 사랑하는 남편과의 이별,
그와 동시에 외아들과의 생이별...
영영 치유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처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흉한
흉터를 남기고 서서히 아물어 가는 듯 했다.
몇 년 후 여름, 피붙이라고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3박 4일간 ‘귀휴’를 얻어서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혜자의 옆에 이문이
동행했다. 찾아오는 이 없는 초라한 장례식장에서 밤낮을 함께 했고,
화장한 엄마의 시신을 부산 앞바다에 뿌릴 때도 여전히 이문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곁에 있어줬다.
장례식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하는 혜자는 이문과
함께 청주행 버스에 오른다. 남편도 아들에 친정엄마까지 앞세우고,
이젠 세상에 정말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니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이 황량한 세상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기다려주는 곳이 교도소라니... 우습게도 교도소가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폭염 속을 가르며 달리는 버스 차창 너머로 백일홍 무리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백·일·홍!
문득 남편이 죽기 전날, 자신에게 사람들 손 타지 않는 곳에 숨겨두라며
건넸던 서류봉투가 생각났다. 집에 금고가 없었던 터라 마당에 빨갛게 핀 백일홍 나무 아래 묻어놨던 그 서류!
어쩌면 남편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부산의 한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남편은 삼십년 지기인
마태산의 끈질긴 권유로 교직을 그만두고 대대로 내려온 선산까지 팔며
빵공장(지금의 신화제과의 모태)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고, 다행히 공장
에서 생산한 크림빵은 날개 돋친 듯이 팔리며,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무슨 사정인지 남편이 마회장과 멱살다짐까지하며 다퉜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떠돌았고, 사시사철 한약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몸이
허약해서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던 남편이 몸을 가두지 못할
정도로 취해 들어와 쓰러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유를 묻는 혜자에게 남편은 늘 별일 아니라는 똑같은 대답만 했다.
평소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자매처럼 지내던 태산의 부인 단심에게 혹시
공장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냐고 물을 때마다, 단심은 아녀자가
바깥일 상관하기 시작하면 남자들 이간질시키기 십상이라며 조만간
괜찮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그즈음 남편이 건네준 서류
니까 남편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는 게 확실하다!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하고, 이문이 잠깐 볼일을 보러 간 사이 혜자는
버스에서 몰래 도망 나와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꼭
돌아와야 한다는 교도소장의 당부의 말도, 자신이 여기서 도망치면
보호자로 따라온 이문의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사실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남편이 왜 죽었는지, 죽음의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
날이 어두워 도착한 예전에 살던 인천집.
마당에 심겨져 있던 백일홍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당 한 구석에 세워진
삽을 들고 무조건 땅을 파기 시작하는 혜자를 뒤늦게 발견한 집주인은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혜자가 이문의 감시를 피해서 도망갔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도소는 발칵
뒤집히고, 이문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6개월 감봉 조치가 내려지고,
혜자의 형기는 일 년이 추가됐다.
이문에게 못할 짓을 한 것만 같은 혜자는 죄책감에 괴로운데... 사람 좋은
이문은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감봉이 되든 안 되든 늘 모자란
박봉인건 마찬가진데요 뭐!”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부터 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수형인과 교도관 신분의 차이를
떠나 교도소라는 세상과 격리된 담장 안에서 함께 늙어가는 같은
인간으로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이문이 다른 교도소로 전근을 가도, 정년퇴임을 해도, 둘의 우정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이문이 정년퇴직을 한 뒤로는 편지로 왕래하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편지는,
그 어떤 戀書보다도, 어떤 詩보다도, 더 아름답다!
처절하도록 외롭고 슬픈 여자들이 모여 사는 청주여자교도소 10번방!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신입이 들어오는데 수인이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온 몸을 떠는 모습이 밀렵꾼의 사냥총에 맞은
사슴과도 같다. 3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한
혜자는 수인을 친딸처럼 아끼고 보살피게 된다.
만기 출소 이후, 수인을 도와 이문의 세탁소 옆 한 귀퉁이에 ‘못난이빵집’ 을 오픈하고,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린다.
3. 손풍금(45)
10번방의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자 청주여자교도소의 명물.
벌금형 수형자로 사기전과가 화려하다. 태생이 팔랑귀라서 콩으로 메주를
쑤고 팥으로 간장을 달인다고 해도, 끔뻑 속는다.
게다가 본인이 속은 줄도 모르고 중간에서 투자자를 모으거나, 부동산
매매에 거간꾼을 자청하다 사기 혐의를 뒤집어쓰기를 세 번,
어느덧 쓰리스타가 되었다.
과도한 에스라인에 색기만발 외모, 애교작렬 콧소리, 입만 열었다하면
육두문자와 음담패설이 난무하고, 산전수전 공중전 수중전까지 다 겪은,
세상에 무서울 것도, 거칠 것도 없는, 조중동도 뒤탈이 무서워
건드리지 않는다는, (연식 오래된) 대한민국 아줌마.
천하박색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마를리몬로가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물따귀를 맞고 울고 갈 정도로, 섹시하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다고
자부한다.
언제 어디서든, 썸타는 남정네를 두 서너 명 기본안주로 깔고 가야 마음에
평안을 얻을 정도로, 남자를 무지하게 밝힌다. 돈 많고 명 짧은 사장님을
만나 구겨진 팔자를 다리미로 확 펴는 게 일생일대의 소원인, 신데렐라를
꿈꾸는 철딱서니 없는 중년이다.
뱅스타일의 짧은 단발, 눈 밑에 난 커다란 사마귀가 트레이드마크.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도소가 탈출하고 싶은 지옥 같은 곳이겠지만,
풍금에게 교도소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사교장이고, 몸매
관리를 할 수 있는 헬스센터이며,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실이다. 게다가 규칙적인 식사와 술 담배를 멀리할 수밖에
없으니 피부 관리를 할 수 있는 곳으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
물론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으니 아쉽기는 하지만, 가끔은 과감하게
남자도 끊을 줄 알아야한다.
밥도 남자도 간헐적 단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번에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까!!
가끔 탈옥수들 때문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지는 뉴스를 보고 있자면
한심하다.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목숨 걸고 세상 밖으로 기어 나온단
말인가?
탈옥을 꿈꾸는 동료 수형자들이 있다면 자신 있게 충고해주고 싶다.
아무 생각 말고 그냥 “누려!~~~ 누려어~~~~!!!!
타고난 붙임성과 사교성으로 10번방 여자들 뿐만 아니라 청주여자교도소
대부분의 수형인들과 언니 동생하며 말을 트고 지낸다.
콩밥, 쌀밥, 고기, 해산물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대식가에 잡식가이며,
종교생활도 기독교 불교를 과감하게 넘나든다. 주특기는 반야심경과
찬송가를 번갈아 메들리로 부르기다. 자칭 퓨전 기도송이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말이 좋아 퓨전이지 사실은 뭐든 제 멋대로다.
가라앉은 분위기의 10번방에 웃음을 주고, 분위기를 업시키는 에너자이저.
큰언니인 혜자를 잘 보필하고, 동생인 수인과 미오를 딸처럼 아낀다.
물론 어처구니없는 트러블을 만들어 세 사람을 난처하게도 하지만,
본성은 착하고 누구보다 의리 있는 여자다.
혜자와 수인이 서촌에 ‘못난이빵집 ’을 개업하자 때마침 출소한 풍금은
화장가방 하나 달랑 들고 당당하게 쳐들어와 말뚝을 박고 주저앉는다.
사실 ‘빵’이라면 이가 갈리는 풍금이다. 죽은 남편이 신화제과 영업부
직원이었다. 가맹점 관리를 하던 남편은 영업부진 스트레스와 과로로
스트레스를 받아 돌연사 했건만, 신화제과에서는 남편의 죽음을
갯값만큼도 안쳐줬다.
남편만 살아있더라도 이 모양 이 꼴은 안되었을 텐데... 싶은 풍금은
빵이라면 신물이 나고, 신화제과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를 갈며 온갖 저주와 욕을 퍼붓는다.
빵집 일은 나 몰라라 하고 백마 탄 늙은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연애
사업에 몰두하는 풍금은 서촌 남자들을 단체로 들었다 놨다하며
제 3의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드디어 그녀 앞에 떡하니 벤츠 탄 부동산 재벌 회장님 ‘탁월한’이 나타난다.
구겨진 팔자를 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풍금은 월한에게 입이 떡
벌어지는 과감한 행동까지 감행하면서 올인하는데...
과연 그녀는 전대미문의 쓰리스타 신데렐라가 될까?
4. 서미오(22)
10번방의 막내, 살인미수로 복역 중이다.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지는 않지만 업계에서는 제법 촉망받는 신인
모델이었다.
알콜릭인 아버지와 지독한 류머티즘 환자인 엄마를 대신해 일찌감치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생활력이 강하고, 깡다구도 쎈 또순이다. 하루 빨리 돈을 벌어서
엄마의 병을 고치고, 남의 눈치 안보고 세 식구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를 마련하는 게 꿈이다.
황금 비율의 몸매에 주먹만한 얼굴, 큼직한 이목구비의 인형 같은
외모로 방송국이나 영화계에서 눈독을 들이는 유망주였다.
기획사의 관리를 받으며 한국 최고의 모델을 꿈꾸는 그녀에게
신화제과의 TV - CF 모델 제안이 들어왔다.
광고주의 최종 면접을 보기 위해서 찾아간 마케팅 본부장실에서
신화제과의 막내아들 도진과 첫 대면을 하게 됐다.
처음 본 순간부터 미오에게 매력을 느낀 도진은 미오를 신화제과의 간판
모델로 키워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결혼까지 약속하며 끈질기게
대쉬했다.
처음엔 호의를 거절했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선물 공세와 달콤한 약속에
미오는 마음의 빗장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톱모델이 되는 것보다 재벌가 며느리가 되는 것이, 고생하는
가족들을 돕고, 남루하고 구질구질한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맹세코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돈 없고 빽 없어서 늘 무시당하고 주눅 들어 살던 자신과는 달리,
늘 당당하고 유쾌한 도진에게 매력을 넘어 마력을 느끼게 됐고,
사랑이란 감정에 빠지게 되었다.
미오가 도진의 연인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공공연하게 알려지자,
기획사에서는 남자친구를 정리하라고 닦달했고, 그때마다 도진은
아무 걱정 말라고, 곧 집에 데려가서 부모님께 소개시키고 결혼 승낙을
받아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공허한 말뿐이었다. 모태 마마보이인 도진은 아버지 마회장이
미오와의 관계를 알고 대노하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다, 죽을 때까지 내 가슴에 새겨진
사람은 오직 너뿐이라는 둥 구한말 기생 대사를 읊어댔다.
처음엔 나를 가지고 논거냐고, 책임도 못질 거면서 시작은 왜 했냐고
도진을 몰아붙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유부단하고 미성숙한 도진과는
미래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미련 없이 쿨하게 돌아서려고 했는데... 이미 뱃속에 아기가 들어선
후였다.
뱃속의 아기로 남자 발목을 잡는다는 오해를 사는 게 싫었지만, 아기의
미래를 위해서 용기를 내 도진에게 임신사실을 말하자, 당황한 도진은
엄마인 차여사의 등 뒤에 머리카락도 안보이게 꽁꽁 숨어버렸다.
미오를 창녀 취급하는 차여사는 당장 아기를 지우라고 협박하고, 도진은
휴대폰 번호도 바꾸고 미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녔다.
화가 난 미오는 신화제과 장남의 장례식장에 쳐들어가 마회장과 가족들
앞에서 언론에 모든 걸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하게 된다.
눈 하나 깜짝 않는 마회장과 차여사는 미오를 미친 개 취급을 하며
사람을 불러 밖으로 끌어내고, 고용인들 손에 질질 끌려서 나가는 미오의 뒤를 상복 입은 맏며느리 수인이 따라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힘닿는
데까지 시댁 어른이랑 도련님을 설득해보겠다며 두 손을 잡아주었다.
얼마 후 신화제과의 맏며느리인 수인과 교도소에서 재회할 줄은,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도망 다니며 만나주지 않는 도진과 담판을 짓기
위해 신화제과 마케팅본부장실로 쳐들어갔고, 합의를 하자며 수표를 들이 밀며 깐족대는 도진을 향해, 이성을 잃은 미오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페이퍼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깜짝 놀란 도진은 뒤로 도망치다가 발을
헛디뎌 미오 앞으로 넘어졌고, 그 바람에 미오의 손에 들려있던 페이퍼
나이프는 도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도진은 정신을 잃었고, 미오는 그 자리
에서 경찰에 연행되었다.
살인미수라는 경찰의 말에 하늘에 맹세코 그런 의도는 없었다며, 그냥
화가 나서 겁을 주려던 것뿐인데 도진이 넘어지면서 사고가 난 거라고
해명을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병든 미오의 엄마가 도진에게 합의를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마회장과
차여사는 법의 심판에 따르겠다며 합의를 해주지 않았다.
결국 살인미수죄를 뒤집어쓴 미오는 2년 실형을 받고 청주여자
교도소로 이감된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를 뒤뚱거리며 수감생활을 하게 된 미오는
결국 교도소 안에서 아들을 낳게 되고, 비록 아빠에게는 버림받은
생명이었지만 10번 방의 두 할머니와 이모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출소 후 모델일을 다시 하고 싶어서 기획사를 찾아 다녔지만, 미혼모
모델을 받아주는 기획사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비참한 생활을 하던
중에 수인이 찾아와 같이 지내자고 제안한다.
갓난아기와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미오는 ‘못난이빵집 ’에 합류하게 되고,
서빙과 배달을 전담하는 동시에 못난이빵집의 전속 모델을 자청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옛말만은 아니었다. 미오를 똥덩이 짐덩이
취급하던 도진은 자신을 빼닮은 아들을 보고는 서서히 마음이
돌아서고, 미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며 신화제과와 마도진 당신한테 복수하는 게
내 생의 유일한 목표라며, 분노에 치를 떨던 미오도 재벌가 아들로서
모든 특권을 내려놓고, 집을 나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며 옛날과는
180도 달라진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이는 도진에게 서서히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되는데... 과연 두 사람은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
서촌 사람들...
1. 남우석(35)
‘신화호텔’ 양식부 쉐프, 서촌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문의 사위.
부인과는 6년 전 사별, 싱글파파로 뉴욕에 거주 중이다.
다소 괴팍하고, 자존심과 고집이 엄청 세며, 깐깐하고, 의심이 많고,
병적일 정도로 청결에 집착하고, 차갑고, 쌀쌀 맞으며, 지극히 개인적이다.
남 일에 상관하는 법도 없을뿐더러 만일 누군가 자신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상관하는 건 눈뜨고 못봐주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대로
갚아줘야 직성이 풀린다.
시원한 이목구비와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를 소유한 상남자 스타일의
외모와는 180도 다른, 예민덩어리!
그러나 별이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이 다정한 아빠이며, 친구이며, 애인
이다. 별이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후, 세상 모든 여자들을 돌보듯
하며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지만... 별이한테는 늘 무장해제,
속수무책이다. 별이의 말 한 마디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못말리는 딸바보!!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소탈하고, 정직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절대 외면하지 못하는 의리와 인정이 있다.
지나칠 정도로 자기 방어를 하며 사는 이 남자,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실 우석은 해리성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어린 시절, 일정 기간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 버려서, 자기 정체성과
자기 인식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자신이 부모가 누구인지, 고향이
어딘지, 형제는 없는지, 자신의 진짜 이름이 뭔지...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뻥 뚫린 기억의 처음은, 미이라처럼 온 몸에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의사 말로는 화상을 크게 당하면서
그 충격으로 기억도 잃었다는 것이었다.
치료를 끝내고 춘천의 고아원으로 보내진 우석은 신분을 밝히지 않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명문대에
입학한 우석은 신화그룹의 장학생으로 선발돼서 미국 유학길에
올라, MBA 과정을 밟았다.
물론 처음부터 쉐프가 될 생각은 아니었다.
경영학 전공을 살려 월스트리트에서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와
신화그룹에 입사해서 원대한 꿈을 펼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인의 교통사고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한국에서 유학을 온 별이엄마를 캠퍼스에서 처음 본 순간,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다.
얼마 후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소꿉장난 같은 학생 부부의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풍족한 삶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시간들이었고, 허니문 베이비 를 갖게 돼서 결혼과 동시에 아빠가 되었다.
만삭의 몸이 될 때까지 아내는 공부를 쉬지 않았고, 겨울방학을 하던 날
과친구였던 유학생 주희(신화제과 차녀)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출산
준비를 위해 다운타운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다.
피를 흘리고 정신이 가물가물한 생사의 갈림에서도 아내는 두 손으로
배를 꼭 움켜쥐며 뱃속의 아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몇 시간에 거친
대수술 끝에 결국 아내는 숨을 거두고, 별이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우석에게 전화해서
집에 오는 길에 학교 앞 단골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를 사다달라던 그녀
였는데... 한 생명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를 잃고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세상 밖으로 나온 별이는 기저귀를 갈아 달라, 배가 고프다, 시간 맞춰 울어댔다.
정신없이 바쁘게 쫓기는 일상 탓에 아내의 부재를 실감할 수 있는 건
별이가 잠든 시간 밖에 없었다.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쩜 그게
아내가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MBA 과정을 그만 두고 요리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죽기 전 아내의
부탁이 케이크를 사다달라는 것이었는데... 대못처럼 가슴에 박혀있는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들어주기로 했다.
어린 별이를 의지하면서 평온한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의문의 편지가
한 통 날아온다. 보낸 이의 주소를 밝히지 않은 편지 봉투 안에는
서 너살로 보이는 어린 우석이 누군가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찍은
사진이 들어있는데, 반은 잘린 상태였다. 그리고 사진 뒤에
“나머지 반 쪽을 찾고 싶지 않나요? 내가 보기엔 당신의 손을 잡아준
여인은... 당신 어머니로 보이는데... ” 라고 적혀있다.
그동안 하루하루 사는데 급급해서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을 생각을
못했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의 말대로 사진 속 여인이 엄마라면... 혹시
아직 살아계신 건 아닐까? ... 그런데 도대체 누가 왜 이런 편지를
보낸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우석을 괴롭혔고, 결국 우석은 뉴욕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행을 택한다.
죽은 아내의 아버지인 장인 이문은 우석과 별이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부모가 없는 우석은 이문을 친아버지처럼 의지한다. 가끔은 장인과
사위라는 관계를 벗어나 싱글남으로서의 고민거리를 터놓고 얘기도 하고,
자장면 내기 바둑도 두고, 시장에서 장도 같이 보고... 친부자보다 더
애틋한 정을 나눈다.
직장을 구하고 있는 우석에게 주희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신화호텔의
양식부에서 쉐프를 구하고 있으니 와달라고 프로포즈를 한다.
망설이는 우석에게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달라며
울먹이는 주희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고, 자신 또한 오랜 기간
신화그룹의 장학생으로서 편하게 공부한 보답을 어떤 식으로든 해야
할 것 같아서 신화호텔에 취직한다.
요리사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우석의 생소한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는 주희, 아내가 죽고 그렇게 환하게 웃는 주희의 모습은 처음
이었다. 우석은 역시 한국에 돌아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생활에 적응될 무렵, 이문에게서 교도소 내 직업훈련원이 있는데,
봉사해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왠지 찝찝한 생각에 쉽게 결정을
못하는 우석에게, 장인 이문은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의미 있는 일이라며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끈질긴 장인의 권유에 일주일에 한 번씩 교도소를 방문해 수형자들에게 제과제빵 기술을 가르치기로 한다.
첫 강의에서 수인을 만났다.
수의를 입은 수인을 처음엔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실습을 하면서
가까이 보니 얼마 전, 신화유통의 대표이사가 됐다가 두 달도 안돼서
검찰에 구속됐던 문수인 사장이었다!!
취임식 파티에서 커팅할 축하 케이크를 만들어 연회장에 가져다 놓으면서
눈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런 그녀를 교도소에서 만나다니...!
뜻하지 않은 우연에 우석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장인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봉사활동을 나오긴 했지만, 원래 깔끔한
성격에 결벽증이 병적일 정도인 우석은 죄수들에게 요리를 가르친다는
것이 못내 찝찝하다. 자신에게 배운 요리가 범죄의 수단으로 쓰이면
어쩐단 말인가!
영 탐탁치않은 얼굴에 뭐 씹은 표정으로 수업을 하는 우석에게 수인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러 온 거 아니면 그냥 돌아가라고 바른말을
한다. 물에서 건져준 사람한테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더니... 착한 일
하러 온 사람한테 시비 거는 수인이 못마땅한 우석은 “음식을 만지는
요리사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해야 합니다. 역시 구린 돈을 만진
문수인씨 빵에서는 돈냄새가 진동을 하는군요!” 비꼰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던 우석과 수인.
한편, 자신의 과거를 찾던 우석은 그동안 남몰래 자신을 도와줬던 후원
자가 앵란임을 알게된다. 신화그룹의 장학생이 된 것도 앵란의 도움?
앵란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도와준 걸까? 뭔가 개운치 않은 우석은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데 박차를 가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석과 수인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수인은 드디어
제과제빵 자격증을 획득한다.
“어떻게 빵을 배울 생각을 다 하셨어요?” 묻는 우석에게 수인은
“빵냄새를 맡으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지만 참고 살다
보면, 이 빵냄새처럼 달콤하고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거든요.”
라며 옅게 웃는 수인을 보며, 그녀가 자신과 얼마나 처절하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편이 죽자 회사 돈을 빼돌려서
한 몫을 잡으려 했다는 둥, 아들도 없는 며느릴 대표이사 자리까지 앉힌
시댁 식구들을 배신했다는 둥... 수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
지만, 우석의 눈에 비친 수인은 욕망과 돈에 눈이 먼 여자라기보다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하고 맑디맑은 시골 소녀 같은 여자였다.
반죽을 잘못해서 돌덩이처럼 딱딱한 빵을 만들기도 하고, 딴생각에 빠져
검정 숯이 되도록 빵을 까맣게 태우는 일이 허다했던 수인이 점점 숙련된
제빵사가 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우석은 뿌듯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본인은 아니라고 손을 내젓지만 우석이 보기에 수인은 타고난 제빵사였다.
냄새만으로도 반죽의 정도를 알아내는 것은 물론 우석이 가르쳐주는
레시피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응용해서 180도 다른 빵을 구워내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통해 스승과 제자로 만나 교감을 나누며,
서로를 의지하게 됐고, 오븐 안에서 한껏 부풀어가는 빵반죽처럼
수인을 향한 우석의 사랑도 점점 커져만 갔다.
얼마 후, 수인이 크리스마스 특사로 풀려나자 우석은 교도소 앞으로
마중을 나간다. 흰 눈처럼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에 촛불 한 자루를 켠
우석은 세상 밖으로 나온 첫 날을 축하한다며 촛불을 끄라고 한다.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촛불을 끈 수인은 결국 뜨거운
눈물을 쏟는다.
수인이 이문의 세탁소 옆에 ‘못난이빵집 ’을 개업할 때, 재료선정부터 인테
리어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것들을 도와주고,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못난이빵집’ 빵이 대박
히트를 치면서 승승가도를 달리게 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돈독해진 수인과 우석은 이 감정들이 단순한
우정과 믿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즈음 수인의 전 시누이였던 주희가 우석에게 혼자만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을 하고, 난감한 우석은 조심스럽게 거절한다.
그즈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가 다른 사람이 아닌 혜자였음을 알게
되고, 마회장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회사를 빼앗았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눈물의 상봉을 한 모자에게 주어진 행복은 잠깐이었다.
혜자가 위암 말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우석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누명을 쓰고 30년 동안 교도소에서 썩은 엄마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복수를 다짐하고 공룡과도 같은 ‘신화제과’에 도전장을
내민다.
명석한 두뇌와 치밀한 계획으로 드디어 다윗과 골리앗의 1차 싸움에서
이긴 우석은 수인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미래를 약속하는데... 그즈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수인의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자 또 한 번 깊은
수렁에 빠진다.
과연 수인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30년 만에 천신만고 끝에 만난 어머니와의 이별을 우석은 어떻게
마무리 질 수 있을까?
아버지의 피와 땀이 모아져 탄생한 신화제과의 경영권을 되찾아,
신화家의 진정한 황제가 될 수 있을까?
파란만장한 인생의 씨줄과 날줄은 과연 어떤 문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2. 박이문(72)
전직 청주여자교도소 보안계장,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경복궁 서촌에서
‘서촌세탁소’를 운영 중이다.
교정공무원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강하고, 보람을 느껴 다시 태어나도
같은 길을 갈 것이다. 현재는 청주여자교도소 교화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한눈 안 팔고 교정공무원으로서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일생.
남은 건, 손바닥만한 마당이 딸린 서촌의 아담한 기와집 한 채 뿐이었다. 퇴직 연금이나 받아먹는 뒷방 노인네로 전락하기 싫었던 그는, 세탁소를 오픈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세~~~탁”을 외치는 우렁찬 이문의
목소리에, 서촌의 아침엔 활기가 느껴진다.
40대 초반에 상처한 뒤 재혼하지 않고 외동딸을 키우며 살았는데,
미국으로 유학을 간 딸이 교통사고로 죽자 인생의 쓴맛을 또 한 번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처럼 혼자 몸이 돼서 별이를 키우는 사위 우석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며, 친아들처럼 아끼고 위해준다.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고, 꼬장꼬장하지만 사려 깊다. 평생을 교정업무로
잔뼈가 굵어서인지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노구의 몸을 이끌고 육탄전까지도 불사한다.
반면에 사랑채 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소꿉놀이도 같이 해줄 만큼
자상한 할빠의 모습도 있다. 게다가 특유의 너털웃음과 눈웃음이 일품이라
남몰래 가슴 설레는 할머니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 중 세탁소 맞은 편 전통찻집 ‘청자’의 사장 배마담은 동네 사람들이
다 알정도로 노골적이고 과감한 애정표현을 해서 이문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문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은 단 한 명... 혜자!
혜자와는 30년 동안 마음을 나눈 사이다.
사슴처럼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여, 겁에 질린 얼굴로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혜자를 처음 본 순간, 결코 남편을 죽일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남편을 죽인 여자라면 그토록 아리도록 슬픈 표정이 얼굴에 묻어날 수가
없다.
4년 전, 암을 앓던 부인과 사별한 이문이었기에,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
만이 느낄 수 있는 슬픔의 농도가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뭔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까지 온 게 틀림없었다.
교도관이 수형자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금기사항이었지만,
저절로 마음이 가고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남모르게 멀리서
안타깝게 지켜보기를 얼마... 교도소로 혜자의 외동딸 부고가 날아왔고,
교도소장은 이문과 동행하는 조건으로 사흘간 특별 귀휴를 허락했다.
그녀와의 사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어쩌면 그 사흘간의 추억으로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혜자를 마음속의 연인으로 간직하고 기다릴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몇 달 후면 혜자가 만기출소를 한다, 그땐 당당하게 사랑을 고백하고,
남은 생을 같이 하리라!
평생 밀폐된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살던 그녀를 위해 들로, 산으로, 바다로
같이 다니며 맑은 공기를 실컷 호흡할 수 있게 해주리라!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주리라!!
말년병장이 제대 날짜를 기다리듯 하루하루 혜자가 출소할 날만을
기다리는 이문이다.
혜자와는 일주일에 한 통씩 편지를 주고받는다. 편지 내용은 특별할 거 없다, 그저 일상의 대화이다.
“친목회원들하고 1박2일로 남해에 다녀왔습니다. 경칩이 지나서인지
붉게 핀 동백이 장관이었습니다. 꽃 위로 찌이 찌이~ 울음소릴 내며 날아 다니는 새가 있길래, 옆엣 사람한테 물어보니 동박새라더군요.
머리와 등은 풀빛이 돌고, 몸집은 참새만한데, 기특하게도 꿀을 먹으며 꽃가루를 옮기는 덕분에 이듬해 동백이 다시 꽃을 피게 도와준다네요.
여간 고마운 놈이 아니죠? 저 박이문이도 혜자씨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박새가 되고 싶습니다. 싱거운 소리 그만하고 할 일 없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라구요? 허허허... 그럼 그만 하지요.
그 안은 아직 겨울이지만 봄은 이미 와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
내고 견뎌내시길 소원합니다. 서촌에서 文”
혜자의 동박새를 자청한 문구는 드디어 혜자가 만기출소하자 문간방을
내주고, 수인과 함께 ‘못난이빵집’을 오픈할 수 있게 세탁소 옆
가게까지 내어준다.
그렇게까지 신셀 질 수는 없다고 한사코 거절하는 혜자를 간신히 설득
해서 문간방에 눌러 앉히는 데까지는 대성공인데, 동업을 한다며 수인이 이사를 오고, 얼마 후 출소했는데 갈 곳이 없다며 풍금이 쳐들어오고,
며칠 후 갓난쟁이를 아기를 품에 안고 미오까지 합류한다.
졸지에 혜자의 건넌방은 청주여자교도소 10번방 멤버들의 새로운 보금
자리가 돼버린다.
비록 둘만 지낼 수는 없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혜자를 볼 수 있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이문은 행복하기만 한데...
그러나 달콤한 행복도 잠시, 혜자가 위암 말기 진단과 동시에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얼마 후 이문은 혜자에게 부부의 연을 맺자며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한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편지는 ...... 혜자씨, 당신이었습니다!”
3. 탁월한(48)
신화제과의 안주인 ‘차여사’의 운전기사.
서촌고시원에 거주하며, 서촌세탁소의 VIP 고객이다.
로맨티스트와 사기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하는 요주의 인물.
엄청난 달변의 소유자이고, 탁월한 사교댄스 실력을 자랑하는 연식 오래된
양아치.
소박한 꿈이 있다면, 돈 많고 명 짧은 과부 싸모님을 만나서 팔자 펴는
것이다. 그 꿈을 위해서 오늘도 체력관리, 피부 관리에 최선을 다한다.
미쓰 김, 미쓰 정, 미쓰 리... 동네 카페 새끼마담들의 엉덩이를 팁도 없이
조물딱거리다 뺨따귀를 맞는 건 다반사고, 자신의 나이를 망각한 채
새파랗게 젊은 이 삼십대 여자들에게 껄떡대다가 치한으로 몰려 파출소에
끌려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돈 많고 명 짧은
싸모님을 후리려고 밤거리를 헤매던 중, 먹잇감이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이름은 손풍금, 나이는 40대 중반.
명이 짧을지 길지는 살아봐야 알겠지만, 돈 냄새가 진동을 한다!
재벌가 싸모님까지는 아니지만 부동산에 사채로 돌리는 현금까지...
(본인 말로는 백억이라고 우기지만!) 최소 견적 50억 나왔다.
십 년 전만 해도 50억 정도 사이즈는 우습게 여겼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엔 50억이면 훌륭한 거다.
게다가 이젠 나이도 있고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다.
돈냄새를 맡는 데는 동물적 감각이 있다고 자부하는 월한은, 풍금이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전과자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작전에 돌입한다.
여자 후리는 데는 타고난 감각을 가진 데다 신화제과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호텔, 카페, 레스토랑에서부터 미술관
박물관까지 두루두루 가본 경험이 있어서, 여자들을 감동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자신을 부동산 재벌이라고 속이고 풍금에게 접근하는 월한.
월한을 꼬셔 팔자를 고칠 생각에 들뜬 풍금.
동상이몽을 하는 두 사람.
입이 떡 벌어지는 명품 공세, 옆사람에게 구타를 유발하는 닭살 돋고
노골적인 애정행각,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상대방을 들었다 놨다하는
눈치작전, 뜨거운 질투를 유발하는 맞불작전...
온갖 기술과 작전이 난무하는 월한과 풍금의 로맨스는 전쟁을 방불케할
정도로 살벌하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결국 서로의 정체가 들통 난 두 사람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앙숙이 돼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린다.
“운짱 주제에 재벌 흉내를 내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왔어!”
“사돈 남말 하시네! 전과범 주제에 백억 유산은 무슨... 개구리 짬프하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소리하고 자빠졌어!”
분해서 서로 물고 뜯는 두 사람.
하지만 고운정보다 무서운 것이 미운정이라고 했던가?
견원지간이 따로 없던 두 사람은, 신분의 장벽을 넘어서, 전과범과 운짱의
전대미문 개성 있고 특이한 로맨스를 펼쳐간다.
또한 탁월은 신화제과에 복수의 칼날을 가는 못난이빵집 여자들에게
신화제과의 동정과 비밀 등을 슬쩍슬쩍 흘리며, 마녀들의 재기를 돕는다.
4. 배청자 (60)
서촌세탁소 앞 전통찻집 ‘청자’의 마담.
까놓고 내놓고 이문을 좋아한지 십 년 가까이 된다.
젊었을 때는 사내들 눈물깨나 뽑았을 것 같은 타고난 미인형에,
성격은 활달하고, 아쌀하며, 솔직담백하고, 쿨~하다.
속에 있는 맘을 숨기지 못해서 이문에게 사랑의 화살을 시시때때로
날리지만 이문은 못 본 척 슬쩍 눈을 감아버린다.
처음엔 이문이 밀당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과자 출신의
혜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는 기함한다.
혜자를 비롯한 못난이빵집의 여자들을 동네 여인들의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갈구지만, 후에 이문과 혜자와의 사랑을 쿨~하게 인정,
혜자를 팍팍 밀어준다..
돈놀이를 할 만큼 꽤나 알부자다. 나중에 신화제과에 맞서는 ‘못난이
빵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큰돈을 투척하는
의리를 보여준다.
5. 남별(6)
우석의 딸.
사랑스럽고 천사 같은 아이다.
총명하고,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으며, 선천성 담도 폐쇄증을 앓고 있다.
수인을 친엄마처럼 잘 따른다.
신화제과 사람들...
1. 마태산(70)
신화그룹의 명실상부한 실세.
상어가 피냄새를 맡듯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 타고난 사업가.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경상도 사나이.
가부장적이고, 성격이 급하며, 괴팍하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법보다
권모술수가 앞선다.
조강지처인 복단심이 병들고 아프자 둘째 부인인 차앵란을 집에 들인다.
별채에는 본처, 안채에는 후처를, 한 집에 거느리고 사는 후안무치.
젊은 시절, 부산에서 혜자의 남편인 재섭과 신화그룹의 모태가 된
‘신화제과’를 설립했다.
생크림과 팥으로 만든 저렴한 양산빵을 대량 생산, 판매해서 전국적으로
대박을 쳤다.
말이 좋아 동업이지 사실은 재섭이 대대로 내려오던 선산을 팔아
대부분의 사업자금을 충당했다.
건강이 안 좋아서 늘 약을 입에 달던 재섭은 주로 제품 개발을 하고,
대외적인 활동과 자금 회계 관리는 태산이 도맡아 했다.
태산에게는 또 다른 야망이 있었다. 교육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사사건건
원리원칙만 내세우고, 사업가로서의 포부와 배짱이 없는 재섭과 결별하고,
자신만의 빵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다.
물론 공장장과 기술자들은 이미 포섭해놨고, 재섭 몰래 이윤의 절반
이상을 비자금으로 만들어서 계획대로 일을 추진 중인데, 뒤늦게 이 모든
사실을 안 재섭이 비자금 장부와 원시장부, 거래처 사장들이 자필로
써준 태산의 비리가 적힌 확인서를 증거물로 보이면서 공금횡령
으로 검찰에 고소하겠다며 분기탱천했다.
뭔가 오해가 있다고 설득도 하고, 경영권 포기 각서까지 써서 내밀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봤지만, 고지식한 재섭은 요지부동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황금 노다지판이 한순간에
공중분해 되다니... 게다가 검찰수사를 받으면 교도소행이 뻔한데...
이대로 두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었다!
내 야망을 위해서, 내 가족들을 위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친구의 등에 칼을 꽂아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혀야만 했다!!
검찰 고발을 앞둔 전 날 밤, 평소 몸이 약해서 한약을 먹던 재섭의
약탕기에 독극물을 넣었고, 꿈에도 그 사실을 모르는 혜자는 재섭에게
한약을 짜서 먹였다.
계획대로 재섭은 이튿날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렸고, 태산의 각본대로
혜자는 돈에 눈이 멀어서 남편을 죽인 희대의 악녀가 돼버렸다.
그 후로 30년이 흘렀고...
사람들은 태산의 성공한 삶을 부러워했지만, 그의 야심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아들 도현이 강원도로 출장을 다녀오던 길에 헬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게된다. 맨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얼마 전 경영권을 승계해서
신화그룹의 최대 주주가 된 아들의 주식을 며느리 입에 처넣게 생겼다.
일이 삐끗하면 경영권이 며느리한테 넘어갈 수도 있다.
물론 그 정도로 야심이 있는 아이는 아니지만, 머리 검은 짐승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마회장의 흉계로 결국 수인은 배임죄를 뒤집어쓰고, 범죄자가
되어버린다.
“결국 니 욕심이 널 이렇게 만든 거다. 감히 내 아들을 욕심낸 순간부터...
넌 욕심의 바퀴에 깔려 죽을 운명이 됐던 거야!”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회사 대표로 복귀한 마회장은 다시 신화그룹의
최대주주로 제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2년 후, 교도소에서 풀려난 며느리 수인이 도전장을 내미는데...
2. 복단심(75)
태산의 본처로 신화家의 산증인.
죽은 신화그룹의 장남 도현의 母.
남편은 세상을 호령하는 재벌이지만,자신은 시집올 때 해온 재봉틀
하나가 유일한 재산인 욕심 없는 여인.
배움도 짧고. 글도 짧지만, 심성만은 따뜻하고, 곱다.
병약하다. 젊어서부터 건강이 안 좋아 일 년에 3분의 1은 병원 입원실에서
지내야만 했다.
평생 병마에 시달린 데다 남편인 마회장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라
둘이 나란히 앉아있으면 부부라기보다는 큰누나와 막냇동생쯤으로
보인다.
부처님도 시앗을 보면 돌아앉는다고 했지만, 병약한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터라 후처인 앵란과도 원만하게 지낸다.
마회장과 싸우면 쪼르르 별채로 달려와 마회장을 흉을 보는, 철없고
속없는 후처 앵란을 동생처럼 생각하며 감싸준다.
평생 앓아온 심장병도 문제이지만, 5년 전부터 치매 증상이 와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한 체질은 아니었다.
한 동네에서 친자매처럼 정을 나누며 살던 혜자가 남편을 살인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구속되면서, 없던 병이 생겼다.
단심이 아는 혜자는 절대로 남편을 죽일 몹쓸 여자가 아니다!
그즈음 마회장과 혜자의 남편 재섭이 사업 문제로 하루가 멀다하게
다퉜고, 물증은 없지만 마회장이 혜자의 남편을 죽였을 거라는
심증이 있었다.
혜자 남편이 죽던 날 저녁, 모처럼 콩국수를 해서 나눠 먹으려고 혜자의
집에 들렀는데, 혜자가 마당에 심겨져 있는 백일홍 나무 아래 뭔가를
파묻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는 무심코 넘겼는데...
남편을 죽였다는 혐의를 뒤집어쓴 혜자가 구속된 후에 마회장은 혜자의
집을 발칵 뒤집었다. 변소부터 창고까지... 이 잡듯이 잡는 꼴이 뭔가를
찾는 눈치였다. 직감적으로 며칠 전 백일홍 나무 아래 혜자가 숨긴 물건을
찾는 게 분명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서 한밤에 호미를 들고 가서 백일홍 나무를 파보니
보자기에 꽁꽁 싸맨 서류가 나왔다. 배움이 짧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남편 마회장이 혜자의 남편 몰래 회사 돈을 빼냈다는 증거물과 남편
친필로 된 경영권 포기 각서였다.
그렇다면 혹시 남편이 혜자의 남편을...!
차마 입 밖에 뱉을 수 없었다. 혜자한테는 백번 천 번 죄스럽지만
그렇다고 남편이 살인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비밀서류는 아무도 모르게 늘 자신이 베고 자는 베개 속에 넣고 꿰매
버렸다. 그리고 그 날 밤의 비밀도... 가슴 저 밑바닥에 파묻어버렸다.
너무나 큰 죄를 저질러서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일까?
아니면 가슴 속에 너무나 큰 비밀을 봉인해버린 죄책감 때문일까?
그때부터 가슴앓이가 시작됐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가슴이 옥죄어오기 시작하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좋다는 약을 다 찾아먹고, 용하다는 명의를 다 찾아다녀도 소용없었다.
하늘이 내린 천형이라고, 죄도 없이 감방에서 썩어가는 혜자도 있는데
이 정도에 엄살을 부릴 수는 없다고... 자책하며 살았다.
자신이 낳은 아들 도현이 죽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치매가 심한 상태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출소한 혜자가 그녀의 앞에 나타나자, 충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돌아온 단심은 자신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베개를 혜자에게 건네고, 30년간 닫혀있던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는데...
신화家 비밀의 열쇠를 손에 쥔 여인.
3. 차앵란(50)
태산의 후처, 도진의 母.
화려하고 세련된 외모 속에 감춰진 야망과 계략이 엄청난,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여인.
마회장에게 입 안의 혀처럼 굴면서 비록 지금은 재벌가의 세컨드로
살지만, 30년 전부터 마음 속 깊숙이 비수를 품고, 하루하루 칼날을
갈며 산다.
그 칼날의 끝은 언제나 마회장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여상을 졸업하고 마회장의 회사에 취직해 경리겸 비서 업무를 봤다.
눈에 띄는 미모로 공장 직원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앵란은 공장 안팎의
남자들에게 흠모의 대상이었고, 야간대학에 다니며 빵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학생 종태와 목하 열애 중이었다.
고학생 종태는 공장에서 먹고 자고하며 남루한 삶을 이어나갔고, 그런
종태가 안쓰러운 앵란은 자신의 자취방에서 동거를 하자고 제안했다.
종태가 학교를 마치는 대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합의한 두 사람은 알콩
달콩 신혼생활을 꾸려나갔다.
앵란이 입사할 때부터 마음이 끌린 마회장은 앵란에게 집요하게 애정
공세를 퍼부었고, 그럴 때마다 앵란은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마회장이 앵란의 자취방에 찾아와서
앵란을 겁탈하려고 했고, 야근을 하고 돌아오던 종태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는, 죽여 버리겠다며 마회장에게 덤벼들었다.
그 일로 종태는 공장에서 해고되고, 의처증에 시달리게 된다. 마회장과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앵란을 못살게 굴며 하루하루
폐인이 되어가던 종태는 결국 자취방에서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다.
천장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종태의 시체를 보면서 오열을 토하는 앵란의
뱃속에는 이미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처녀가 임신을 했다, 뱃속의 아기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애비 없는 자식이 돼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이 모든 건 마회장 때문에 시작된 일이고, 결국은 마회장 밖에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회장을 노골적으로 유혹한 앵란은 하룻밤 동침을 하고, 뱃속의 아기를
마회장의 아기로 둔갑시켰다. 그리고는 마회장의 안방을 차지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뱃속의 아기가 살고,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으리라!
언젠가는 죽은 애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신화그룹을 통째로 집어삼켜
아들의 것으로 만드리라! 다짐했다.
그즈음 마회장은 동업자인 혜자의 남편을 죽이고, 혜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집에 불까지 질러서 아들 우석마저 해치려했다.
마회장의 계략을 눈치챈 앵란은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쓰러진 우석을
몰래 빼돌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고, 정신적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우석을 남몰래 후원해주며, 언젠가는 모든 사실을 밝혀 마회장에게
비수를 겨누게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되면 자신의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되니까...
세상에 부러울 거 하나 없이 좋은 것들을 몸에 감고 두르고 화려하게
살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외롭고 고독한 여자다.
병든 본처를 쫓겨내고 안방을 차지한 천하의 몹쓸 년으로 소문난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고 기막히지만, 그럴 수록 이 악물고 마회장에게 입 안의
혀처럼 굴며,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솔직히 30년 가까이 송장처럼 병상에 누워 자리 보존하고 있는 본처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더러운 성질 다 받아주고, 건강 챙겨주고, 한 침대
에서 잠자주고...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지 마누라 역할은 자신이 다
하는데 ... 억울하다!
그러나 단심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내 남편 내놓으라고 드잡이를 한 적도 없고, 평생 십 원 한 푼 빼돌릴
줄도 모르고, 차별 없이 도진을 대해주는 걸 보면 대단하다 싶다.
게다가 남편 마회장이 괴팍한 성질을 부리며 막돼먹을 행동을 할 때도
앞에 나서서 막아주고, 이름 대신 발끝마다 “어이~~” 라고 부르는 마회장
한테, 애들 엄마인데 호칭을 제대로 써야하지 않겠냐며 바른 말을 해주기
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오장육부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위엄 있는
처신으로 마회장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니 자기보다 한 수
위인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여자지만
솔직히 한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존경한다.
본처와 후처를 떠나서 친언니처럼 잘 따르고, 의지한다.
본처 자식들에게서는 사람 대접 조차 못받는다, 특히 첫딸인 주란이 시도
때도 없이 거는 태클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고 귀찮다.
기필코 신화그룹을 아들 도진의 차지가 되게 만들어서, 주란의 콧대를
뭉개주리라 다짐한다.
하늘은 앵란의 편이었다. 큰아들 도현이 헬기사고를 당하자 게임은
훨씬 쉽게 풀렸다. 장자가 죽었으니 당연히 신화그룹은 아들 도진의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 마회장이 밑도 끝도 없이 며느리인 수인을
후계자로 앉히겠다는 것이다.
느닷없는 수인의 부상에 혼란스러운 앵란은 결국 미국에 있는 우석에게
의문의 편지를 보내며 한국으로 불러들이는데...
3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갈은 복수의 칼날은 마회장의 심장에
적중할 수 있을까?
앵란의 바램처럼 신화그룹은 그녀의 아들, 도진의 몫이 되고,
그녀는 신화家의 진정한 주인으로 우뚝 서,
욕망의 싸움터에서 최종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
신화家의 장자이자 후계자였던 도현에게까지 음모의 손을 뻗친
복수의 화신, 욕망의 화신 차앵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건 치열한 전쟁의 끝에서, 과연 그녀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4. 마주희 (29)
신화그룹의 차녀, 본처인 단심의 둘째 딸.
차갑고 이지적인 외모, 냉철한 판단력으로 사업적인 마인드가 확고하며,
도도하면서도 시크하며, 매사에 당당하고, 까칠하다.
컬럼비아대 MBA 출신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스펙을 가진 재벌가의 딸로
완벽주의자이다.
그녀가 오만하게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한 것은 아마도
자신이 후처의 딸이라는 태생적인 콤플렉스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가까이에서 보면 여린 구석도 많고, 인간적인 면도 있다.
엄마인 앵란과는 체질상 맞지 않아 사사건건 충돌하고 말다툼을 하지만,
큰엄마인 단심에게는 끝없는 연민과 부채감을 느낀다.
사업가로서 아버지인 마회장은 존경하지만,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의 마회장은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차갑고 뻣뻣한 주희를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둘뿐이다. 바로 우석과 별이!
자신의 운전미숙으로 아내와 엄마를 잃은 우석과 별이에게는, 한없는
죄책감과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아내를 잃고 갓난아기와 하루 종일 씨름하는 우석을 돕기 위해 틈틈이
별이에게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엄마 노릇을 자청했다.
그런 주희에게 우석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맘 편하게 살라며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설득했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기와 꿋꿋하고 밝게 살아가는
선배 우석을 보면서, 세상에 이런 남자도 있구나! 새삼 느꼈다.
우석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고, 별이를 내 속으로 낳은 친딸처럼 키우고
싶었다.
긴 망설임 끝에 어렵게 고백했는데... 우석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서... 생전 처음 남자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흐느껴 우는 주희의 어깨를 잡아주며 미안하다고.... 하지만 별이 엄마가
가슴 속에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너를 받아줄 자리가 없다고...
우석은 담담하게 말했다.
벌써 5년 전의 이야기다.
전공을 바꿔서 쉐프가 된 우석이 서울에 돌아오고 싶어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신화호텔의 쉐프로 우석을 채용했고, 5년 전 거절당한 프러포즈를
다시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우석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다름 아닌 전 올케인 수인이었다.
고아에 별 볼일 없는 수인을 가족들 모두 무시하고 구박할 때, 유일하게
사람대접해 준 사람이 자신이었는데... 한 남자를 두고 경쟁을 하게
되다니... 세상일이란 알 수가 없다.
우석이 수인에게 맹목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질투심에
불이 붙는데...
5. 마도진 (28)
신화그룹의 차남, 후처인 앵란의 아들.
떡 벌어진 어깨에 주먹만한 얼굴, 우뚝 솟은 콧날에 긴 손가락까지...
모델 뺨치는 비주얼의 소유자.
비현실적인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비현실적이다.
개념, 예의 같은 미덕은 찜 쪄 먹은 지 오래고,
위아래 구별 못하는 싸가지에, 돈이면 다된다는 속물근성과 건방과
허세가 하늘을 찌른다.
고민과 진지함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고, 관심사는 오로지
예쁜 여자다!
엄마인 차여사가 도진을 신화그룹의 후계자로 만들고 싶어서 안달하지만,
망나니로 유명한 도진이 그룹 대표를 맡는다는 것은 0.0001%의 가능성도
없는, 비현실적인 얘기다.
도진 또한 골 아프게 그딴 거 맡은 생각 추호도 없다, 그냥 아버지
돈을 물 쓰듯 쓰며 예쁜 여자들하고 연애나 하면 그만이다.
능글능글 눙치기도 잘하고, 두루두루 붙임성 사교성도 좋아서, 의외로
회사 직원들에게 인기가 좋다.
주희와는 달리 엄마인 차여사와 죽이 척척 잘 맞고 심한 마마보이다.
망나니로 지내는 아들을 차마 볼 수 없던 차여사가 마회장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어서, 신화제과 마케팅 본부장으로 발령을 냈다.
기부입학 해서 겨우 들어간 미국의 삼류 대학에서도 끝내 졸업장을
못 받은 주제에 마케팅 본부장이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지만,
백수 보다는 마케팅 본부장이라는 타이틀이 여자들에게 훨씬 잘 먹힐
것 같아서 콜~했다.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쓰고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내던 중... 미오를
만났다. 한 마디로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었다.
체면 따위 차리지 않고 시간 장소 불문하고 들이댔다. 처음에는 콧방귀도
안 뀌던 미오는 CF 계약을 해주고, 그룹 전속 모델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눈빛이 흔들렸다. 역시 돈의 위력 앞에서는 미인도 별 수 없나보다
싶었다. 이때다 싶어서 고삐를 늦추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온갖
미사어구와 장밋빛 청사진을 보여주며 미오의 마음을 훔치는데 성공했다.
미오는 그동안 만난 여자들하고는 좀 달랐다. 이쁘지만 멍청하지 않았고,
차갑지만 따뜻하며, 돈을 좋아하지만 밝히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결혼까지 생각해봐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뒤늦게 마회장이 알고는 미오와 헤어지지 않으면 회사에서도 자르고,
경제적인 지원을 일절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게다가 차여사는
미오를 도진의 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꽃뱀으로 몰아세우며
분에 못 이겨 펄펄 뛰다가 병원까지 실려 간다.
생각해보면 죽은 형에 이어서 자신까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는 건,
부모 가슴에 대못을 두 번씩이나 박는, 불효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미오에게 결별을 선언했는데...
위로금 몇 푼이면 떨어질 줄 알았던 미오가 뱃속에 아기가 있다며 결혼을
해주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며 책상 위에 놓여있던 페이퍼 나이프를
집어 들고 달려들었다. 옥신각신 끝에 미오는 실수로 그만 도진의 옆구
리를 찌르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도진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살인미수로 검찰에 송치된 미오에게 뱃속의 아기를 지우면 합의를 해주
겠다고 회유했지만 미오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결국 미오는 2년 실형을 받게 되고, 도진은 당황스럽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신의 분신을 뱃속에 가진 여인을 감옥에까지 보내다니... 죄책감에
괴롭지만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는 마마보이 도진은 재벌가
딸들과 맞선보는 자리에 하루가 멀다 하고 끌려 나간다.
2년 후, 선미그룹 외동딸과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즈음-
자신을 꼭 빼닮은 아들을 품에 안고 걸어가는 미오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
당황하는 도진에게 따귀를 올려붙이고 차가운 눈빛으로 “개새끼”라며
욕설을 내뱉고 걸어가는 미오.
심장이 땅으로 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죽어있던 온 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며칠 후, 모태 마마보이였던 도진은 결혼식을 펑크 내고 ‘못난이빵집 ’에서
빵반죽을 하는 미오를 찾아와 다시 시작하자고 무릎을 꿇는데...
6. 마주란 (31)
신화그룹의 장녀, 본처인 단심의 첫째 딸.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사치스러우며, 우월의식이 대단하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고 생각하는 속물근성으로 가득차 있으며,
유행의 첨단을 걷는다.
자체 필터링이 안돼서 하고 싶은 말은 앞뒤 안 가리고 내뱉는 다혈질이고,
늘 안 되는 머리를 굴려보지만 허점이 난무한다.
사사건건 앵란과 부딪히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물고 뜯으며 싸운다.
남편을 신화그룹의 총수로 세우고 싶어서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져보지만,
번번이 불발로 끝나고 만다.
나름 장점도 많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내숭이 없고, 애교가 만땅이다.
또한 부부금슬도 좋아서 남편인 원재와는 쿵짝이 잘 맞는다.
7. 박원재 (34)
신화그룹 맏사위, 신화그룹 법무팀 고문변호사.
워낙 바람 잘 날 없는 신화家인지라 이런저런 집안일을 뒷처리해주다
주란과 눈이 맞아 재벌가 사위가 됐다.
수다스럽고, 깝죽거리며, 뒤만 돌아서면 남의 험담부터 하고,
잘못한 건 남 탓이고 잘 한 건 모두 내 탓으로 돌리는 스타일에
쇼맨십의 지존.
남의 시선을 엄청 의식하고, 장인인 마회장에게 칭찬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서 엄청 무리를 한다.
게다가 집에서는 장모인 차여사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온갖 유치한
아부와 감언이설이 난무한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신이 어쩌면 신화그룹의 총수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늘 긴장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