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6.14 1.가족 낭패스럽고 난처한 일 닥쳐서 지난주부터 내내 고생했다.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힘썼고, 여럿이 도와준 덕에 이제 정리가 되어간다. 뒷마무리만 조금 더 하면 문제 해결이다. 겸사겸사 형네 가게에서 모이기로 하고 저녁 때 갔다. 노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차 많이 막힌다. 평소에 한 시간이면 족한 거리를 두 시간 반 넘어서 도착했다.
형제들, 조카들 여럿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가게는 그런 대로 잘 되나 보다. 벌써 너댓 번 오는 손님이 몇 생겼다고 한다. 아무리 아는 이가 인사치레로 오더라도 한 번 먹어보고 맛없으면 다시 안 오게 되는 게 식당인데 다시 온다는 건 음식에 매력이 있다는 증거다. 음식도 한결 정리가 되고 가게 분위기도 차분해졌다. 우리꽃 그림 액자를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어서 미처 못 했다. 액자 맡겨서 그림 몇 점 걸면 정리가 끝나지 싶다.
가게 이야기며 음식 메뉴 이야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점심에는 여름이라 콩국수, 열무국수를, 저녁 술안주 겸한 메뉴로 훈제오리고기, 오리탕을 더 넣을 거란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부드럽게 격려하고, 염려하고, 어루만지는 말들을 나눴다. 여수 사는 친구가 어제 내게 보낸 자반고등어 한 상자를 가져가 나눠주었고, 갓 담근 김치도 나눠주기에 가져왔다. 청국장, 나물, 열무김치도 가져왔다.
또 며칠 반찬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또 며칠 마음도 한결 푸근해질 테다.
2.무정한 소리 그제 토요일 저녁 소리 동호회 모임이 있었다. 지지난 해 겨울 소리 배운 지 일 년 겨우 넘었을 때 그 동호회에서 판소리경연대회를 열었는데 내가 거기 나가서 일반부 장원을 했었다. 그런데 대회 나온 이들은 나 빼고 다 그 동호회 회원들이었다. 나만 굴러온 돌인 셈인데 대뜸 나타나서는 장원을 따서 가져간 거다. 그런데 하필 내가 그 때 교통사고 나서 끙끙 앓고 있을 때라, 상만 타고는 뒤풀이 참석도 못 하고 쌩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뒷말이 좀 있었단다. 대회에 맞추어 오래 준비한 이들이 한 둘 아닌데, 어느 놈이 나타나 장원 거머쥐더니 코빼기도 안비치고 달아났다고.
엊그제도 사실 나 거기 나가서 놀 상황 아닌데, 그 동호회 생긴 이래로 몇 년 되었는데 첫 정모를 가지는 거라고 해서, 또 안 나가면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소리 들을 것 같아서 억지춘향으로 나갔다. 거기서 돌아가며 소리를 내놓게 되었다. 나더러 소리 좀 하라는데 목이 좋지 않다고 은근히 뺐다. 나중에 사회자가 호명하는데, 뺄 수 없어 -이럴 때 빼면 진짜 없어 보인다. 죽을 쒀도 나서는 게 좋아 보이더라- 나섰다. 며칠 경황없어 소리공부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 불렀다. 역시 표 난다. 발성 안 좋고, 음정 불안하게 오르락내리락 조율 안 되고, 가끔 목이 뒤집힌다. 그래도 하다 말 수는 없는 일. 끝을 맺었다.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무정한 소리. 소리로는 거짓말을 못 한다. 둘러댈 수도, 감출 수도 없다. 결국 늘 일발장전 상태로 준비해둬야 한다. 오늘은 소리 다지러 산으로 가거나 학원에 가야겠다.
2009.6.15 오늘 모처럼 학원 가 소리연습 했다. 학원에서 마음 맞는 아줌마 꼬드겨 함께 나가서 둘이 했다. 다른 이랑 연습하면 말 많이 나누고 어수선하기도 한데 그 아줌마는 내 보기에 소리도 가장 잘할 뿐더러 연습할 때도 열심이고 연습하는 법도 체계가 있어서 내가 보고 배울 점이 많다. 역시 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싶다. 그 아줌마랑 가을에 함께 소리발표회를 갖기로 이야기 중이다.
모처럼 오래 연습했다. 11시에 도착해서 오후 4시까지 했다. 목이 차츰 쉬어 소리가 뜨지 않고 착 가라앉아 안정감 있게 나온다. 역시 판소리는 목이 쉬어야 맛이 난다. 운동화 끈 단단히 조인 육상선수 같이, 줄 팽팽하게 조인 현악기 악사 같이, 성대가 단단히 조여진다. 목이 쉬니 소리에서 긴장이 감돈다. 쉰 목이 되니 울어도 깊게 울고 웃어도 경박하지 않고 하청을 내도 더 단단하게 나온다. 겉으로 드러난 속에 뭐가 깊이 자리하게 된다.
모처럼 오래 연습했더니 허리가 끊어지려고 하고 어깨도 욱신거리고 몸이 더욱 파김치다. 집에 돌아오니 몸이 늘어진다. 목만 바짝 서있다.
2009.6.16 며칠 사이로 서각 주문이 둘 들어왔다. 제법 큰 대작으로만.
잊고 있던 출판사에서도 재판 찍었다고 연락 왔다. 인세 들어오겠다. 미술학교 그만둔 걸 하늘이 어찌 알았을까. 누군가 고자질한 게 틀림없다. 느티는 굶겨죽일 인물이 아니라고, 더 살리고 볼 일이라고 결재했나보다. 먹고 살아, 나중에 훌륭한 인물 되라고.
서각 하나는 민화친구가 소개한 것이고 또 하나는 모르는 이다. 두 개 하면 미술학교 한 달 수업하는 수입보다 낫겠다. 소리 수업 녹음한 거 따라 부르면서 서각작업 망치질이나 며칠 바짝 두들겨야겠다.
2009.6.19 수요일부터 차 트렁크와 뒷자리 가득 나무를 싣고 움직인다. 언덕 오를 때는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고 급경사 돌 때는 차가 도로에 착 붙는다. 수요일은 학교 데려다주고 서울로, 목요일도 서울로, 오늘은 진접 들렀다가 설악 작업실에 들러 나무 끌어 내려놓고 양평 스님 댁에 간다. 오늘도 바쁠 거다. 스님 아는 분이 서너 달 전에 서각을 부탁했는데 이제야 다 끝내 가져다드리는 거다. 딱 어떤 걸 해달라는 말없이 그냥 십자가나 그런 걸 집에 걸어두고 싶다 하시기에 작업하다가 예수 얼굴을 각 했다. 또 스님이 한복 두루마기 한 벌 더 하라고 염색을 해주신다고 한다. 오늘 들러 두루마기 천 받아오기로 했다.
진접은 불화 배우러 간다. 지난 해 배우다가 그만둔 불화를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작년에 배울 때 선생님이 하도 불성실하고 체계가 없어서 도저히 못 견디고 제 풀에 지쳐 그만두었는데 다른 분께 새로 배우기로 했다. 작년 수업도 남들은 별 불만 없고 잘 견디는데 나는 선생님의 예고 없이 잦은 수업 불참이나 선생님이 준 교본을 기껏 따라 그려놓으면 잘못된 본이라고 자기부정을 해버리거나 중구난방으로 가르치는 수업방식이나 그런 데서 끔찍하게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어 그만두고 보니 뒷일 보다 만 것처럼 내내 불편했는데 다른 데서 수업이 있기에 마저 더 배워보려고 한다.
어제는 학원에 가서 종일 소리했다. 월요일에 종일 소리하고 와서 목이 붓고 기침이 잦고 많이 쉬어 혼자 연습하다 보면 소리가 잦아들고 고음에서 살짝 뒤집어지기도 하기에 이러다가 목 영영 버리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어제 소리 한 시간쯤 하다 보니 목이 오히려 풀어지다가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소리가 단단해지고 짱짱해지는 게 느껴진다.
소영이 없으니 집안일이 엉망이다. 수련회나 수학여행 가느라고 건희 없이 소영이만 있을 때는 끼니 거르는 일이 없는데 이상하게 건희만 있을 때는 끼니 거르는 일이 생긴다. 나도 모르게 소영이에게는 긴장하고 건희에게는 게을러지나 보다. 어제는 저녁도 못 먹이고 잤다. 새벽에 일찌거니 일어나 새 밥 짓고 고기 구워 아침을 먹였다. 다른 일은 몰라도 끼니 거르게 하는 일은 하지 말 일이다.
가훈 -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된다 참죽나무 양각 가로 90Cm 세로 25Cm 두께 2.8Cm
첫댓글느티님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서각은 어렸을적 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스승님을 만날 기회가 없었지 싶습니다.생업을 접은 후나 가능할런지 모르겠습니다.하고싶은 것은 산더미고 그러다보니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지 싶습니다.올 핸 한가지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올 해도 느티님의 좋은 작품들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늘 건강하세요.^^
첫댓글 느티님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서각은 어렸을적 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스승님을 만날 기회가 없었지 싶습니다.생업을 접은 후나 가능할런지 모르겠습니다.하고싶은 것은 산더미고 그러다보니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지 싶습니다.올 핸 한가지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올 해도 느티님의 좋은 작품들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늘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나무꾼님도 새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어릴 때부터 배우기를 원하셨으면 어서 배우시길 바랍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판소리 배우기를 바라다가 나이 들어 배우니까 참 좋습니다. ^^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된다"....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글귀 입니다.
그리고 아주 긍정적인 글귀인것 같구요~
근데 세상을 살다보믄 절대로 맘 먹은대로 다~되는 법이 없는데~...
그래요~ 긍정적인 맘가짐이 좋은결과를 유도 할수도 있겠지예~
느티님~ 늘~좋은글과 작품 너무너무 고맙고예~
올해도 우짜든동 늘~건강하셔서 하시는일 뜻대로 이루소서~
논어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마음 먹은 대로 다 되기야 하겠습니까만, 진실하게 간절히 바라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야 한결 가까이 다가가지 싶습니다.
행촌님도 새해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길 바랍니다. 나무 작업도 많이 하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