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전부다 존경하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물론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 사람들은 바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내가 외국 위인들 중에서는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터키의 국부(國父)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이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 건국의 아버지이자 터키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내가 이 인물을 존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1차 세계 대전 전까지 세상에서 왕정을 지지하는 왕당파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였다. 그러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이런 왕당파들을 전부다 공화정을 지지하는 공화파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G28안에 들어가는 현대의 강대국 터키 공화국의 뼈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882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영토였던 그리스 그란베리아에서 태어났다. 아타튀르크는 그때 당시 성(姓)이란게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는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뒷이름과 아버지의 앞이름을 따서 무스타파 케말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또한 그의 지인들이나 가족들한테는 애칭인 무크나 파샤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기도 하였다. 무스타파 케말의 집안은 귀족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국방장관 급의 관직인 그리스-투르크-오스만 국방관리부 제1장관을 대대로 하고 있어서 집이 엄청난 부자였다. 그러나 무스타파 케말은 집안이 그렇게 부자였으면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좋아할 법도 한데 무스타파 케말은 오히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모든 제도와 정치 사상에 대해서 안 좋다고 생각했고 무스타파 케말 자신은 엄청나게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또 그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서 무스타파 케말은 외국에 나가서 직업을 구하려고 하였지만 집안의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앙카라 국립중앙 고등사관학교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학교를 다니면서도 집안의 분위기를 따라야 했는데 무스타파 케말은 항공군, 즉 공군으로 지원을 하려고 하였지만 집안은 출세나 진급이 더 쉬운 육군으로 지원하라고 하였다 결국은 무스타파 케말은 집안의 뜻을 따랐다. 그래서 대부분 그 분야를 안 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그 분야를 못 하는데 무스타파 케말은 확실히 머리가 좋고 전략을 잘 세워서 그런지 언제나 전교 1등을 도맡았다. 그래서 원래 사고나하교를 졸어하면 소위를 해야 하는데 무스타파 케말은 특별대우까지 받으면서 중위로 군생활을 시작하였다.
무스타파 케말은 군생활을 하면서 작고 큰 분쟁이나 폭동을 진압하러 다니면서 모든 전투를 승리로 채우고 큰 공을 세워서 겨우 2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중령이라는 높은 계급을 달았다. 그렇게 무스타파 케말이 군생활을 잘해나고 있을 때 식민지 문제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한 연합군과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연합을 한 추축군이 식민지 문제 때문에 전쟁이 이렇났는데 이 전쟁이 1차세계대전이다. 이때 무스타파 케말은 후방 지원 사령부 사령관으로 임명이 되어서 그리스 북부 전선으로 가게 돼었다, 그러나 그리스 전선에서는 추축군이 엄청난 참패만 계속 돼고 있었다. 그래서 중앙 사령부에서는 무스타파 케말을 준장으로 진급시키고 최전방 전선에 사령관으로 임명을 하여서 다시 그리스 전선은 추축군의 우세로 돌아갔다. 무스타파 케말이 사령관이 되는 곳마다 좋은 성과를 거두자 추축군은 최전방 전선에 무스타파 케말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수적 열세에 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무스타파 케말은 잘 버텨주면서 추축군이 후퇴할 시간을 많이 벌어주었다. 그래서 무스타파 케말의 부대는 가장 마지막에 후퇴를 하였다. 그 공으로 무스타파 케말은 중장이라는 높은 계급까지 올랐다. 그리고 약 7만명의 병력이 있는 사단을 끌고 연합군이 상륙작전을 할 곳으로 예상이 되는 갈리폴리 해변으로 갔다. 그리고 장확히 1주일 뒤에 상륙작전이 일어나서 그 큰 전투에서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군대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때 당시에 무스타파 케말의 나이는 겨우 31살이었다. 무스타파 케말은 엄청난 전성기 였지만 추축군은 전쟁에서 패해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연합군의 의해 나눠졌다. 무스타파 케말은 당연히 자치정부를 가지고 있는 식민지 형태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연합군은 터키의 땅을 영국과 미국한테 나누어주고 직접 다스리게 하면서 하나의 땅의 향태로 만들었다. 그러자 무스타파 케말은 화가 나서 독립군을 만들어서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결국
터키는 독립에 성공하였다.
무스타파 케말은 터키를 공화정으로 만들고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서 제 1대대통령이 되었다. 무스타파 케말은 대통령이 되자 마자 서구식의 입법-행정-사법부를 도입항고 그때 당시 없었던 성(姓) 제도를 사용하고 전 국민들을 위한 건강보험 제도 같이 국가의 기본틀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국가의 경제도 서구식으로 이끌어가서 현대 터키의 기본틀을 만들고 13년의 긴 대통령 재임 기간을 스스로 사임하고 시골로 내려 가서 책을 쓰면서 살았다고 한다. 또 성(姓) 제도 도입할 때 그의 성을 만들었는데 바로 아타튀르크라는 성을 사용했는데 그 뜻이 바로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 근대의 역사의 대부분을 함께하였고 터키 사람들 한테는 영원히 최고의 국부다. 또 만약에 아타튀르크가 없었으면 터키는 현대의 강대국 터키를 만들수 없었을 것이고 인도네시아처럼 관광 산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모든 터키인의 은인인 사람인 것 같다.
첫댓글 도임이가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케말 파샤에 대하여 아주 자세히 잘 썻구나.
한 나라가 건국하기위하여는 이러한 훌륭한 사람이 태어나서 그역할을 충실해야 하는 것 같구나.
2차대전에서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여 전성기를 누리며 또 터키의 통일과 건국을 도운 은인이지 /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으로 더 훌륭한 건국의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이 있단다.
관심을 갖고 우리 나라의 위인도 읽고 배워 도임이도 훌륭한 역할을 다해주기 바란다.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는 도임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떨 가?
노력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