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경계를 아뢰는 차자〔陳戒箚〕
·················································· 한포재 이건명 선생
삼가 아룁니다. 신이 삼가 들으니 어제 승지가 입시(入侍)하였을 때 말씀이 매우 준엄하고 음성과 어기(語氣)가 갑자기 화평함을 잃으셨다고 하니 저하께서 무슨 일로 격노하여 이처럼 중도에 벗어난 행동을 하신 것입니까.
인군(人君)이 아랫사람을 부리는 도리는 힘써 관대함을 숭상하고 말하는 사이에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여러 신하에게 잘못이 있으면 분명한 말로 드러내어 지적하더라도 각각의 대상에 맞추어 응대할 뿐 자기의 의견을 개입시켜서는 안 되는데, 어찌 경솔하게 성난 기색을 보여 대성인(大聖人)의 포용하는 도량(度量)을 해치는 데 이르신 것입니까.
저하께서 만기(萬機 임금의 정무)를 대리(代理)하심에 초기에는 청명(淸明)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눈을 씻고 귀를 기울이며 덕화(德化)가 완성되는 것을 보리라 생각하였으니, 지금 이러한 행동은 아마도 신하들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선유(先儒)의 말에 “칠정(七情) 중에 오직 노여움이 제어하기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성상(聖上)께서는 하늘이 내린 성군(聖君)의 자질로도 항상 거칠고 포악함을 경계하셨고 사륜(絲綸 임금의 윤음(綸音))에 여러 번 드러내시어 뉘우치는 뜻을 깊이 말씀하셨으니, 이는 중외(中外)의 신민이 모두 흠모하고 칭송하는 바 일 뿐만이 아닙니다. 삼가 생각건대 저하에게 대리하게 하며 부탁할 때에도 반드시 옛 성왕(聖王)의 위미(危微)의 교훈을 간곡히 고하고 경계하셨을 것입니다.
저하께서 혹시 한가한 겨를에 함양(涵養)하는 공부에서 성찰하고 잡고 놓는 기미에서 경계하고 삼가신다면, 신의 한두 마디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구름이 사라지고 안개가 걷히듯 대번에 환히 깨달으실 것이니 태평 만대의 기업이 실로 여기에 기초할 것입니다. 신이 보필하는 직임에 있어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을 가눌 수 없기에 간략한 몇 마디 말로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삼가 이명(离明 세자)께서 유념하여 살펴 받아들여 주십시오.
[주-1] 경계를 아뢰는 차자 :
《승정원일기》 숙종 45년 6월 25일 기사에 이건명이 왕세자가 화를 내는 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보인다.
[주-2] 칠정(七情) …… 어렵다 :
정호(程顥)가 장재(張載)에게 말하기를 “사람의 정 가운데 나타나기 쉬우면서 어려운 것은 오직 노여움이 심하니, 다만 노여울 때에 그 노여움을 빨리 잊고 이치의 옳고 그름을 살필 수 있다면 또한 외물의 유혹을 미워할 것이 없음을 알 수 있고 도에 대한 생각 또한 반을 넘은 것이다.[人之情, 易發而難制者, 惟怒爲甚, 第能於怒時, 遽忘其怒, 而觀理之是非, 亦可見外誘之不足惡, 而於道亦思過半矣.]”라고 하였다. 《心經附註 卷1》
[주-3] 옛 성왕(聖王)의 …… 교훈 :
순(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제위를 선양할 때 고한 말로,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인심(人心)은 위태하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中)을 굳게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다.
[주-4] 잡고 …… 삼가신다면 :
마음이 보존되고 없어지는 기미에서 삼가서 마음을 보존하는 공부를 잠시도 잃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서, 드나듦이 때가 없어 그 향하는 곳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을 이른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하시니라.”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注)에 “맹자가 이 말을 인용하여 마음은 신명불측하여 얻고 잃기는 쉬우나 보존하기는 어려우니 잠시라도 기르는 공부를 잃어서는 안 됨을 밝힌 것이다.” 하였다.
<출처 : 한포재집(寒圃齋集) 제7권 / 소차(疏箚)>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서종태 채현경 이주형 전형윤 강지혜 (공역) | 2016
陳戒箚
伏以臣伏聞昨日承旨入侍時。辭語極其嚴峻。聲氣遽失和平。未知邸下因何激惱。而致有此過中之擧耶。夫人君御下之道。務尙寬裕。辭令之間。尤宜審愼。諸臣有失則雖名言顯斥。物各付物。而不宜以己意與焉。何至輕示忿怒之色。以傷大聖人包容之量耶。邸下代理萬機。始初淸明。環域之內。莫不拭目傾耳。思見德化之成。則今日此擧。恐非羣下之 a177_452b所望也。先儒有言七情之中。惟怒難制。是以我聖上以天縱之聖。亦嘗以粗暴爲戒。屢發於絲綸。深陳悔悟之意。此不但中外臣民之所共欽頌。伏想 邸下授受付托之際。必丁寧告戒於古聖王危微之訓矣。邸下倘於淸燕之暇。省察乎涵養之功。戒謹乎操舍之幾。則不待臣一二談而翻然豁然。如雲消而霧開。太平萬世之業。實基於此矣。臣待罪輔弼之職。不任憂愛之忱。草草數語。冒死以陳。伏乞离明留神察納焉。
<출처 : 한포재집(寒圃齋集) 제7권 / 소차(疏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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