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0526 (월)
- 세종대왕과 뉴턴, 주기율표, 마지막 독설 그리고 판자촌
: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된 것들 (12)
- 문화, 여행 (53)
이 주제로 글을 시작한지 벌써 열두 번째인데, 사실 여러 가지 고유명사 중에서
사람이름에서 온 것들은 내용은 그대로 고유명사이지만 일상에서 아주 흔히 쓰이기
때문에 보통명사가 된 것처럼 쓰이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먼저 잠시 살펴보고 본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
1.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천문, 지리, 기계, 스포츠 등에서의 사례
(1) 세종대왕, 최무선, 김정호, 김연아, 양학선, 여홍철 등등의
이름들은 무엇을 뜻할까요?
- “세종”의 이름은 남극기지 이름에도 쓰이고 해군 함정에도 붙어있는 등
무척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는데, “세종”, “관륵”, “최무선”, “이천”, “장영실”,
“이순지”, “허준”, “홍대용”, “김정호” 등등은
최근에 발견된 우주의 소행성에 그 이름이 붙어 있고,
- 잘 아시다시피 “김연아 : 유나스핀(Yuna-spin)",
”양학선 : Yang-1, Yang-2“, ”여홍철 : Yeo-1, Yeo-2“ 등등의 명칭은
그들이 개발한 독특한 기술로 그들의 이름을 붙여 쓰이고 있습니다.
-------------------------------------------------------------
(2) 각종 공식, 법칙 등에서의 사례
- 아르키메데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파스칼, 데카르트, 가우스, 뉴턴, 렌트겐,
케플러, 보일, 패러데이, 스티븐 호킹, 갈릴레이, 라부아지에, 멘델레예프, 베세머,
파스퇴르, 플레밍, 파브르, 머피, 티티우스-보데, 아인슈타인 등등
- 그리고 지난번 “아인학당”에 올렸던 “온도”에 대한 이야기에서의
켈빈, 셀시우스, 화렌하이트 등의 이름들
- 위의 이름들은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보셨지요?
- 각각 자기 고유의 이름이 붙은 공식이나 법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
(3)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 우리가 화학시간에 배웠던 <주기율표(週期律表) = The periodic table of the
elements>는 각각의 원소를 원자량의 증가 순서에 따라,
원소의 주기성을 이용하여 배열한 표를 말하는데,
- 이러한 형태의 주기율표는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Dmitrii Ivanovich
Mendeleev, 1834~1907)가 1869년에 처음으로 창안하였기 때문에
“멘델레예프 주기율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주기율표에서는 현재 118개 원소가 나름의 법칙에 의하여 나열되어 있는데,
이중 114개는 공식적으로 이름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4개는 아직 임시명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꽤 여러 개의 원소기호, 특히 주기율표상의 원자번호
95번 이후에는 관련된 사람이나 특정 고유명사의 이름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사례) - 앞의 번호는 주기율표상의 원자번호
63-Eu = 유로퓸 (europium) : 많은 과학자를 배출한 유럽대륙을 의미
84-Po = 폴로늄(polonium) : 폴로늄을 발견한 마리 퀴리의 모국인 폴란드를 뜻함
87-Fr = 프랑슘(francium) : 프랑스 여류과학자가 이 원소를 발견
95-Am = 아메리슘(americium) : 유럽과 폴란드와 프랑스 이름도 붙었는데,
미국은 왜 빠졌냐고 붙임
96-Cm = 큐리움(curium) : 퀴리 부부를 기념
97-Bk = 버클륨(berkelium) : 현대물리학과 화학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UC Berkeley 공대를 기념
* UC = University of California
98-Cf = 캘리포늄(californium) : 현대물리학과 화학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UC Berkeley 공대가 있는 캘리포니아를
기념
99-Es = 아인슈타이늄(einsteinium) : 아인슈타인을 기념
100-Fm = 페르뮴(fermium) : 이 원소는 원자폭탄 폭발 시 발견되었는데,
원자폭탄 제조에 큰 공을 세운 페르미를 기념
101-Md = 멘델레븀(mendelevium) : 주기율표를 창안한 멘델레예프를 기념
102-No = 노벨륨(nobelium) : 노벨을 기념
103-Lr = 로렌슘(lawrencium) : 미국 물리학자 로렌스를 기념
< 주기율표 >
(4) 동부제철의 용접경량 H-형강
- 지금 한창 매각설이 있는 동부제철 인천공장에서는 아직도
“용접경량 H-형강”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 이 설비는 캐나다의 “B&K"라는 회사에서 제작되어
1975년 초에 설치되었습니다.
- 그런데 “B&K"는 ”Betty & Katherine"이라고 하여
제조회사 사장의 두 딸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 여자이름이 기계설비에 붙어서인지 초기에는 자주 말썽을 부려서
혹시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
2. Parthian shot = parting shot = 떠나면서 내뱉는 독설이나 협박
- 고대의 “파르티아(Parthia)”의 기마 군대에는
말을 타고서 활을 쏘는 궁수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 “파르티아(Parthia)”라는 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안식국(安息國)”이라고 불리던
나라인데, 기원전 238년부터 기원후 226년까지 오늘날 이란 지역의 북동쪽에
위치해있던 나라입니다.
- 이 나라의 전성기 때에는 이란의 전 지역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뒤덮었을 뿐
아니라, 아울러 오늘날의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이라크, 그루지야(조지아),
터키 동부, 시리아 동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의 페르시아 만 해안 지역, 바레인,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연방까지 세력권에 넣었다고 합니다.
- 이 나라의 기마병들은 말을 타고 적진을 향해 돌진해,
적들을 유인해 내는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적들을 유인해 오는데 그치지 않고,
도망치는 척하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쫓아오는 적을 향해 활을 쏘곤 했습니다.
- 파르티아 인들이 주로 활용하던 이 전술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보병을 상대로 이 전략을 사용했을 때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 이 전술이 가장 빛을 발한 전투가 기원전 53년에 벌어진
카레 전투(Battle of Carrhae)였다고 합니다.
- 이 전투는 당시 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한 로마군과 파르티아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였는데, 로마의 크라수스 장군이 이끄는 4만 명의 로마 군단과
파르티아의 수레나스 장군이 이끄는 만 명의 붙었던 이 전투는
객관적으로는 로마의 대승이 예상되었습니다.
- 그렇지만 활을 든 기병들의 히트-앤드-런 전략으로 4만의 로마군단은
전멸되었는데, 로마로서는 한니발 장군과의 대전 이후 최대의 패배였다고 합니다.
- 카레 전투에서 역사적인 대승을 거둔 파르티아군의 전략은 하나의 용어로
자리 잡았는데, 이것이 바로 “Parthian shot = Parthian shaft”입니다.
- 즉, 도망치는 척 하다가 실제로는 돌아서서 적을 향해 화살을 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마지막으로 쏘는 화살” 또는 “떠나면서 내뱉는 독설이나 협박”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 요즘에는 “Parthian shot”보다는 "parting shot"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고 하는데, 이는 마지막으로 자리를 뜨면서 내뱉는 모욕적인 말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 음식점 등에서 푸대접 받고는 중얼중얼 욕을 하면서 문을 쾅 닫고 나가는 것도
이에 해당되겠습니다.
=============================================================
3. 후버빌 (Hoverville) = 판자촌, 빈민촌, 달동네
*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4년이나 5년의 한 번의 임기를 제~대 대통령이라
부르지만, 미국은 몇 번의 임기와는 관계없이 사람 위주로 제~대라고 부릅니다.
(1) 후버빌 (Hooverville)
- 미국의 언론에서는, 가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악의 대통령을 선발해
발표하고는 하는데, 최악의 대통령을 거론할 때 늘 입에 오르는 인물 중의
하나에 제31대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
재임 1929~1933년)가 있습니다.
- 1920년대 후반 들어 미국은 거의 모든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는데, 후버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미국 경제가 순식간에 무너져
1940년대까지 지속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에 빠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그런데 후버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1929년부터, 미국 경제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습니다.
- 즉, 경제가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후버 대통령은 곧 괜찮아질
것이라 낙관하며 경제에 대한 개혁과 혁신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 그러나 미국 경제는 대공황에 빠져들었고, 국민들은 비록 도덕적으로는
깨끗했지만 특별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무능한 대통령을 비난하게 됩니다.
- 후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실패로, 국민들은 차츰 일자리를 잃어
살던 집을 버리고 빈민가를 찾아 들게 되었습니다.
- 따라서 미국 전역에서 실업자와 그 가족들로 빈민촌이 형성되었는데,
이를 후버 대통령의 이름을 따 “후버빌(Hooverville)”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곳은 종이박스나 판자 등으로 겨우 비나 추위를 견딜 정도의
판자촌이었습니다.
- 후버빌 거주자들은 구걸이나 쓰레기를 뒤져 연명하는,
대공황의 참담함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 그나마 빈민촌에서도 살지 못하고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들은 마치 우리나라
노숙자들처럼 담요 대신 신문지를 이불 삼아 지내는 일도 허다해졌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이불을 대신할 신문지를 “후버 담요(Hoover blanket)”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 그리고 후버대통령의 모교인 스탠포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Hooverville이
“초라한 기숙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는 이 대학 출신인 후버 대통령을
기념하는 기념관은 멋진 데 비해, 자신들이 거주하는 기숙사는 초라함을 비
꼬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
(2) 후버대통령
- 그러나 후버대통령은 경제정책 하나로 두고두고 무능하다는 평을 받고는 있지만,
그 사람의 일생은 그리 흠잡을 데 없이 무척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 그는 엔지니어, 행정가, 인도주의자로서 재직한 오랜 공직생활로부터 얻은
화려한 경력을 등에 업고 대통령 집무를 시작했습니다.
- 1874년 아이오와의 한 마을에서 퀘이커 교도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후버 대통령은 오리건에서 성장했습니다.
- 그는 1891년 개교한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했으며 광산공학 엔지니어로 학교를
졸업하고는 스탠포드 동기였던 루 헨리(Lou Henry)와 결혼했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최고의 엔지니어로서 한 민간 기업을 위해 일했습니다.
- 1900년 후버 부부는 톈진에서 의화단사건(義和團事件)에 휘말리게 됩니다.
의화단은 거의 한 달 내내 그들이 거주하고 있던 마을을 목표로
맹공을 퍼부었는데, 공격이 계속되는 동안 그의 아내는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았고 후버는 바리케이드를 치는 작업을 지휘했으며,
중국인 아이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을 뻔 한 일도 있었습니다.
- 그 후에 후버가 런던에서 머무는 동안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을
일주일 남겨두었을 때 독일이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런던주재 미국총영사는 발이 묶인 미국인 여행자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후버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 제1차세계대전
- 그로부터 6주 안에 후버가 조직한 위원회는 12만 명의 미국인을 귀국시켰으며,
다음으로 후버는 이보다 더 어려운 과제로 눈을 돌려 독일군의 침공을 받은
벨기에에 식량을 공급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 마침내 미국이 참전한 후 당시의 윌슨 대통령(제28대)은 후버를 식량청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해외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소비량을 줄이는데 성공했고
미국 본토 내에서의 식량배급 사태를 막는 동시에 연합국 국민들이
굶주리지 않게 조치하였습니다.
-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후버는 최고경제회의 회원과 미국구호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전후 굶주림에 시달리던 수백만 명의 중유럽 주민들을 위한 식량원조 사업을
총괄했습니다.
- 그는 1921년 기근에 허덕이던 소비에트연방의 러시아에도 원조의 손길을
뻗쳤습니다. 식량 원조를 통해 볼셰비즘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후버는 “2천만 명이 굶주리고 있다. 그들의 정치이념이 무엇이든 간에
밥은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 제29대 하딩 행정부와 제30대 쿨리지 행정부에서 상무장관직을 훌륭하게 수행한
후버는 1928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오늘날 미국은 역사상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룩하지 못했던
빈곤의 최종정복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섰다.”고 말했습니다.
- 그가 당선되면 번영은 보장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몇 달 뒤에 주식시장이
폭락했고 미국은 경기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 주식시장 붕괴 직후 그는 대국민 성명을 통해 균형예산을 유지하면서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공공사업 지출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1931년 후버 대통령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재건금융공사 설립,
모기지 유질처분 압력을 받고 있는 농가에 대한 추가지원, 금융개혁,
주정부 단위의 실업이자 식료품배급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대출, 공공사업의 확대,
정부조직의 초긴축 운영을 골자로 하는 대책 안을 의회에 제출했지만
대공황의 유럽 발 후폭풍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 모기지(mortgage) 유질처분(流質處分)
- 모기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거나 상환 시한을 넘길 경우 해당 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모기지 채권자인 은행 등이 가져가는 절차를 말합니다.
- 이와 동시에 그는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국민들을 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이러한 사업은 해당 지역의 자발적인 책임감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그의 대책 안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후버가 믿었던 의회 내의 반대세력들은 아무 근거 없이 후버를 무감각하고
냉혹한 대통령으로 매도했습니다.
- 후버는 경제위기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1932년 대선에서 크게 패배했습니다.
- 1930년대에 그는 정부정책이 국가통제주의로 흐르는 경향을 경고하면서
뉴딜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 1947년 트루먼 대통령(제33대)은 후버를 정부부처 재정비를 위해 발족한
특별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하였고 거기에서 그는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 그는 1953년에도 아이젠하워 대통령(제34대)의 부름을 받아 유사한 성격의
위원회를 이끌었습니다.
- 두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정부조직의 군살이 크게 제거되었고, 여러 해에 걸쳐
그는 다수의 기고문과 저서를 저술했으며, 1964년 10월 20일 뉴욕시에서
향년 90세로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도 저술활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
(3) 후버댐 (Hoover Dam)
- 미국 남서부 콜로라도 강(江) 유역의 종합개발에 의해서 건설된 높이 221m.
기저부 너비 200m, 저수량 320억m3의 아치형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1936년에 완성되었으며 “볼더댐(Boulder Dam)”이라 불리다
제31대 대통령 후버를 기념해서 “후버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 이 댐은 애리조나와 네바다 양 주(州)에 걸쳐 있으며, 콜로라도 강 중류의
그랜드 캐니언 하류의 암석사막지대에 있는데, 최대출력 135만kW의 발전,
임피리얼 계곡 방면으로의 관개(灌漑), 콜로라도 강 하류의 홍수 방지를 위해
건설된 것으로 테네시 강(江) 유역 개발과 함께 뉴딜(New Deal) 정책의
일환으로 조성된 다목적 댐입니다.
- 이는 또 아치형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당시에는 세계 제일의 규모를 자랑했을
뿐만 아니라 건설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촉진했는데, 처음에는 “볼더 댐”이라고
했으며, 부근에 댐 종사자 등이 거주하는 “볼더 시티”가 건설되기도 했습니다.
- 후버 댐 건설은 20세기 공학이 이루어 낸 가장 뛰어난 성과 중의 하나이며,
또 댐이 건설된 때는 다름 아닌 대공황 시기였기에 이는 더욱더 놀랄 만한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 이 댐의 저수지인 미드 호(Lake Mead)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카리바 호(Lake Kariba), 이집트의 나셀 호(Lake Nasser)에 이은 세계적인
인공호로 부근 일대는 “미드호국립레크리에이션지역(Lake Mead National
Recreation Atrea)"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락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와도 가깝습니다.
- 그런데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등 미국 7개 주에 물을 공급하는
‘젖줄’인 콜로라도 강(총연장 2,330km)은 최근 500년만의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내어 일부 지역에서는 가정집 정원에 물을 주는 스프링클러 작동을
금지하기도 했다는데 걱정입니다.
< 후버댐과 미드호 >
============================================================
이상으로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된 것들 (12)>를 마치는데,
이 주제는 아마도 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코스모스에서 페러데이의 자기장의 발견으로 전기를 운동 에너지로 제어할 수 있게 되어 근대화의 기본이 되었다는 평가를 보고 특별히 생각하고 있었는제 그 이름을 보니 반갑습니다. 이외에도 처음으로 듣는 얘기들이 많은데 또 한번 식견을 높였네요. 학장님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각종 수학이나 물리, 화학의 법칙들을 보면 옛날 학교생활이 아스라히 떠오릅니다. 공대를 나온 사람이면서도 웬만한 수학공식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초등학교 실력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부끄럽습니다. 어쩌다 아이들이 집합, 인수분해, 근의 공식, 각종 도형의 면적이나 부피 등을 계산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순열이나 조합, 미적분 등등은 아리송하기만 하고 민망스럽기 까지 합니다.
@김인환 학당 인기가 최곱니다. 더불어 카페 인지도도 업.. 좀전 문자 받으셨죠? 목포 대학생이 학장님글 내려 받고자 수락을 요청하더군요.ㅎㅎ
@주중관 어제 통화 하셨어요? 그 대학생과는?
@주중관 어제 두 번이나 전화했습니다만, 통화가 되지 않아서 그 이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이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모르겠는데 회원가입은 하셨는지요? 지난번 각명님의 경우처럼 필요하신 사연을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인사올립니다. 저는 장 욱이라고 합니다. 50살에 뜻한바 있어 목포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 입학하고 이제 논문제출만 남은 만학도입니다. 학장님과는 비교가 안되는 초학자(Beginner)입니다. 전공은 수목학이구요 논문제목은 가로수의 합리적 선정방안에 관한 연구입니다. 지도교수는 조영환교수로 64세이시구요. 저하고는 띠동갑이랍니다. 어찌나 꼼꼼하신지 자기글이 아니면 각주에 논문인용란에 원저자 및 인용된 책을 밝히라고 하십니다. 해서 고민끝에 모든 내용을 공개하기로 결심햇지요, 뭐 당연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도시화율이 세계어느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높은 수준을 자랑하지요.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몸이 약한지라 도싱에서 가장 중요한 경관요소중 하나인 가로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지 가로수 선정과정에서 식재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순투성인게 많습니다. 뭐 이런걸 연구하고 있답니다. 논문통과후엔 충남대 이진숙교수 밑에서 공공디자인중 조명을 열심히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 전에 먼저 학장님이 쌓아놓으신 글과 사진들을 캡쳐해도 되는지 여쭈어보고 논문에 원저자의 허락을 득하였음을 밝히고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제 전화번호는요 010-8234-5659구요 이름은 장욱이라고 합니다. 감사드리고요, 아인학당보는 재미로 들락날락거렸는데. 아 이런! 카페준회원에 머물러 있는지도 몰랐네요.
장욱 님, 반갑습니다. 거창하신 소개에 당황스럽습니다.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 아인학당의 글은 저희 카페 회원들의 한정된 사람들을 위하여 쓴 글로, 식물의 경우 제가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저의 평소 관찰기록도 물론 포함됩니다만 다른 학자님들의 글도 인용하였으니 제가 원저자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함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또 저는 식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전공한 것도 아니니까요. 어쨋든 제 글이 도움이 되시면 고맙습니다.
@김인환 학장님 감사합니다. 장욱님이 몇번 전화도 주시고 했었는데, 어째튼 학장님의 글이 누구의 논문에 도움이 된다니 저도 기쁩니다. 장욱님도 저의 학당에 대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김인환 학장님 감사합니다. 장욱님이 몇번 전화도 주시고 했었는데, 어째튼 학장님의 글이 누구의 논문에 도움이 된다니 저도 기쁩니다. 장욱님도 저의 학당에 대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일반사회를 배울 때는 루스벨트 치적을 설명하면서 그 전임 후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으로서 단편적 내용만을 알았는데 오늘 정식으로 후버 대통령의 일대를 설며애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잘못 알려진 역사가 많은 것은 당장 제가 살아오면서 직접 겪었던 일마저 왜곡되고 삐뚤어지게 전해지는 경우가 무척 많은 것에 깜짝 깜짝 놀랍니다. 그런데 더욱 기이한 것은 그렇게 왜곡하는 분들은 정작 그러한 사건의 바깥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