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자 도 (楸 子 島)
김 영 호
여명이 밝아오는 항구는 사방이 고요의 적막 속에 빠져 있다. 이따금 들려오는 파도 소리만이 나의 마음을 한없는 사색의 나래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지금 나는 세파에 시달려온 몸과 마음을 바람에 흘려보내고 푸른 바다 물결과 대화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 솟아난 갯바위 밑으로 이름 모를 고기들이 이른 새벽부터 깨어서 조잘대며 놀자고 속삭인다.
이따금 들려오는 새들의 지적임이 나를 자연의 나락 속으로 한없이 끌려가게 하는데 흙 갈매기 한 쌍이 갯바위에서 사랑을 나누다 나를 보고 수줍은 듯 쳐다본다.
섬 주위를 거닐고 있는데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눈에 뜨인다. 방어 삼치가 주로 잡혔고 어떤 분은 농어도 잡으셨다.
갯바위를 지나 무인도인 섬에 오르니 여러 사람이 모여 삼치회를 들고 계셨다. 회 한 점을 초고추장의 찍어 소주 한잔을 곁들여 먹으니 입에 살살 녹는다.
또 한 점을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다. 이 맛 때문에 강태공들이 끊임없이 추자도를 찾고 낚시 하는 모양 같다.
낚시를 하는 재미가 무엇이에요? 하고 여쭈어 보니 고기를 낚는 재미도 있고 나를 잊고 푸른 물결소리와 바람에 동화되어 “세상을 낚는 재미로 낚시 한다”. 는 나이 지긋하신 어른의 말씀이 나의 귓전을 스친다.
얼마나 촉박하고 말 많은 이 세상을 빗대여 하는 말인가. 낚시 하는 동안은 모든 잡념과 한을 자연과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는 강태공들이 철학자처럼 너무 부러워 보였다.
추자도의 올레길을 걷다보니 최영 장군을 모신 사당이 보였다.
고려 공민왕 때 “목호”의 반란을 진압하러 제주도를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나 이곳에 머물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어선과 그물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어 어민들의 생활이 풍부하게 해 주셨다는 최영 장군.
온화하고 인자하신 모습을 보며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시며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장군의 말이 조용히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위인의 사당치고는 장소가 너무 협소하여 보였다.
인근에 추자 초등학교도 있고 이곳을 즐겨 찾는 관광객이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홍보하고 본보기를 보이려면 최영 장군의 사당을 크게 늘리고 유품도 더 모아서 거국적인 사당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올레 길을 걷는 동안에 새파란 바다와 어우러져 보이는 크고 작은 섬들의 모습이 나의 마음을 포근하고 정겹게 해주고 있다.
눈앞에 작은 돌섬이 보였다. 철 계단과 난간을 이용하여 섬 정상으로 올라 같다.
많은 추자나무들로 둘러싸인 섬에는 산새들의 둥지도 보였다.
시퍼런 바닷물결 위에 갈매기들이 여기저기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흰 민들레 꽃과 무궁화가 곱게 피어있다.
푸른 바다의 환호성과 산새들의 정겨운 속삭임을 뒤로하고 봉골래 산 정상에 오르니 추자 군도의 수많은 섬이 대자연의 화선지처럼 어우러져 장관이다. 제주도의 다도해이며 섬들의 천국인 추자도.
새파란 하늘 아래 출렁이는 물결위로 보이는 건 바다와 산이 빚어낸 형형색색의 섬들의 위용과 비경뿐 이였다.
선상 낚시와 “나바론의 절벽”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인근 바다로 나갔다.
선상에서 바라본 나바론의 절벽은 그야말로 장관 이였다. 굽이굽이 소용돌이치는 절벽 아래로 파도에 휘말리는 푸른 물결들이 시새움하며 절벽에 부딪치고 하얀 거품을 뱉어 내며 장난을 치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에는 만고풍상을 견디며 살아온 소나무들이 위용을 부리고 있다.
문득 6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명화 “나바론의 요새” 가 머리에 떠오른다.
당대를 풍미했던 명배우 “그레고리 펙”과, “데이비드 니본” “ 안쏘니 퀸” 의 특공대가 독일군이 점령한 나바론 요새의 대포를 폭파하기 위해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르며 벌리는 스릴과 애정 넘치는 장면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망망대해 떠 있는 추자도의 나바론의 절벽이 흘러간 명화의 명장면을 연상게 하며 나를 감회에 젓게 하고 있다.
수령섬 인근에 이르니 물속으로 방어와 삼치가 떼를 지어 지나간다. 선상에서 손을 넣어 잡으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다. 여기저기서 선상 낚시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보였다.
선장님과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낚싯밥을 던지고 조금 있으니 경철이의 낚싯대가 흔들린다.
낚싯대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기니 방어 한 마리가 바둥 거리며 딸려 나온다.
여기저기서 방어와 삼치 농어가 잡히면서 횟감은 순식간에 십여 마리로 늘어났다.
소식이 없던 나의 낚싯대에도 찌릿 찌릿한 감이 오고 있다. 천천히 낚싯대를 당기는 데 너무 힘이 들었다.
선장님이 잠시 노아 주라고 해서 노아주기를 여러 번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낚싯 대를 잡아당기니 팔뚝만한 방어 한 마리가 퍼드덕거리며 달려 나온다.
나는 너무 기뻐 야! “나도 큰 것 한 건 했다.” 고 소리쳤다. 광천이는 눈먼 고기가 잡힌 것 같다고 했다.
광천아! 눈먼 고기가 이렇게 크냐! 임마! 너는 왜 못 잡아. 너! 약 오르지. 하니
그래! 영호야! 잘했다. 하! 하! 하! 하고 웃었다.
잡은 고기를 선상에서 회를 쳐서 쌀 막걸리 한잔을 마시니 회가 입에서 살살 녹으며 너무 맛이 있다.
그래! 이 맛이야 얼씨구 좋다! 우리 선상 건배 한번 하자. 하고 대성이가 말한다. 낚시꾼이 추자도를 찾는 이유를 이제 진정으로 알 것 같았다. 배를 타고 조금 더 가니 프랭이 섬이 보였다.
프랭이 섬은 추자군도에서 감 섬 돔과 돌돔을 잡기 위해 낚시꾼이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선망의 섬이며 약속의 땅이다.
닭발 고랑의 낚시터와 동굴이 눈앞에 보인다. 동쪽의 닭발고랑 동굴 앞에서 감섬 돔이 낚싯대에 끌어 올려지고 함성을 올리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감섬 돔 낚시를 다음기회로 미루고 신대산 전망대가 있는 하 추자도로 향했다.
신대산 전망대에 오르니 다무래이섬, 직구도 ,염섬, 수령섬, 추포도, 횡간도, 흑검도,우두도, 수덕도(사자섬), 청도(프랭이섬),등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수덕도는 사나운 사자가 누워서 모도인 추자섬을 지키기위해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사자섬 주위에는 병풍도 중앙섬 꼬리섬 제주여섬이 5개섬으로 둘러싸여 위용을 과시 하고 있다.
섬 꼭대기에 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새파란 바다로 먹이를 찾아 쏜쌀같이 날아가고 있는데 두둥실 흘러가는 흰 구름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한동안 바다의 마음을 뺏기다 잠시 주위를 살펴보니 낮은 관목들로 우거진 오솔길 여기저기에서 속삭이는 새들의 재롱과 뭉게구름들의 시새움이 몸과 마음을 하늘 높이 날아갈 듯 상쾌하게 해준다.
어제 비가 내려 보지 못한 “직구도의 낙조”를 보기 위해 다시 상 추자도의 다무래미섬이 있는 올레 길로 향했다.
쟁반같이 둥근 해는 이제 점점 바다 쪽을 향해 기울어 가고 있다.
시퍼런 바다위에 내려앉은 붉은 쟁반이 바닷속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며 직구도 주위에 하늘은 온통 붉은 강을 이루고 있다.
어머니의 품속에 살포시 안겨서 젓을 먹는 어린아이처럼 직구 도를 감싸고 있는 저녁노을 무리들이 연출하는 대자연의 조화를 보며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새파란 창공 위로 흰 구름이 하나둘 흘러가고 이들을 시새움 하듯 따라가는 저녁노을 떼들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너무 아름답다.
제부도의 저녁노을이 작은 동산과 어우러져 어린아이처럼 아기자기하다면 추자도의 저녁노을은 만고풍상 다 겪은 어머니의 품속같이 아늑하고 우아하며 포근해 보였다.
제주도와 완도의 중간에 위치한 추자도.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추자 군도는 제주의 다도해라고 불릴 만큼 주위에 섬들이 많다.
추자도를 다녀온 사람은 새파란 바다 위에 여기저기 두둥실 떠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의 섬들과 파도에 씻겨서 출렁이는 절벽들의 웅장함, 여기저기 피어있는 들꽃과 흙 갈매기와 산새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구름도 아쉬운듯 잠시 쉬어가는 푸른 바다 위에서 선상 낚시로 잡온 횟감을 소주와 곁들여 먹노라면 누구나 풍류객이 되어 시 한 수가 흥얼흥얼 읊어지며 여흥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등대 산의 음이온 때문에 생선 비린내가 나지 않고 바다와 사람이 동화되어 살아가는 인정과 꿈이 깃든 섬.
풍류와 사랑이 샘솟고 자연과 대화하며 세파의 찌든 마음을 잠시 접어놓고 인생을 쉬어 가는 추자군도. 그래서 사람들은 섬을 그리워하고 추자 섬을 또 찾는 것 같다.
첫댓글 지인들과 추자도를 2박 3일 여행 하며 쓴 글입니다. 추자도는 가볼만한 섬 이더군요..^^
웅비님의 추자도 기행 수필을 읽고 나니 추자도에 가 고 싶은 마음 이네요..^^ 몇번 가보셧나요. 나바론에 절벽도 가보고 싶고 바다에 떠 있는 섬 주위 올레길을 걷고 싶어요..^^
추자도의 비경은 현장에 가면 실감합니다. 추자도에 두번째 가보지만 갈때 마다 느낌이 다르군요..^^
항상 웃고 계신 모습, 전 반장님이셨군요. 보이지 않게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로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총무님 반갑군요..^^ 항상 수필반을 위해 수고가 많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