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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2월 13일 금요일
[(홍)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루치아 성녀는 로마 박해 시대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5세기의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순교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은 성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딸의 신변을 염려한 어머니의 주선으로 귀족 청년과 약혼하였다. 그러나 성녀는 동정을 결심하고 있었기에 한사코 혼인하기를 거절하였다. 이에 격분한 약혼자의 고발로 갇히게 되고 결국 300년 무렵에 순교하였다. 루치아(Lucia)라는 이름은 ‘빛’ 또는 ‘광명’을 뜻하는 라틴 말에서 유래하였다.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계명을 지켜 얻을 수 있는 생명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신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촉구하였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요한의 말도 예수님의 말씀도 듣지 않는다(복음).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코린 10,17―11,2)와 복음(마태 25,1-13)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 때문에 자신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신앙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바뀌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느님께 원망을 늘어놓습니다. 실천하기 어렵거나 힘든 말씀은 외면하고 위로와 감동을 주는 말씀만 들으려고 합니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마태 11,18-19). 변화가 없는 신앙인은 하느님의 계획과 그분의 말씀 앞에서 늘 못마땅해하기만 합니다. 참된 믿음은 하느님 말씀 때문에 나 자신이 변화하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인색하던 사람이 이웃에게 자선을 실천하고, 바쁘다며 기도할 시간조차 없다던 사람이 기도를 합니다. 상처받고 끊임없이 험담만 하던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고해소로 향합니다.
주일 미사 말고는 결코 성당에 갈 생각을 하지 않던 사람이 평일 미사에 날마다 참례합니다. 모두 하느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그 사람 안에서 일으키는 일들입니다. 변화가 없고 하느님의 말씀이 열매 맺지 못 하는 신앙생활, 끊임없이 누군가를 비난만 할 뿐 정작 본인은 꿈쩍도 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 믿음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결실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춤추지 않고, ……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11,17).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거룩하고 흠 없으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신명나게 해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를 적극적으로 환대하고 공감해주고, 호응해 주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분위기는 정말이지 사람 살맛나게 하고 기를 한껏 살려줍니다.
어딘가 강의를 갔는데, 다들 소 닭 보듯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는 분위기, 마치 민방위 교육장 같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강사로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이땅에 육화강생하신 예수님께서도 그런 냉랭한 대우를 참 많이 받으셨습니다. 특히 당대 나름 잘 나간다고 자부하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노골적으로 노골적으로 그분을 거부하고 무시했습니다.
아무리 목청을 높여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끝끝내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을 길을 향해 걸어가는 유다인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서글프셨을까, 하는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대가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6-17)
또다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특별한 사건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극진히, 각별히 사랑하시는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냥 거기 계셔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우리 인간을 향한 극진한 사랑과 연민의 정 때문에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 세상으로 하향하셨습니다. 육화강생하신 것입니다.
이 대림 시기는 하향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우리 인간 측의 호응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그분을 기쁜 마음으로 환대하고 우리 내면 깊숙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에 앞서 필요한 노력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머무시기에 합당한 거처가 되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제대로 된 판공성사를 통해 내면을 잘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흥청대는 술잔치나 말 잔치, 불평불만, 과도한 욕심, 미워하는 감정 다 한번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작은 교회인 우리 각자가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으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 은혜로운 시기 교회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자 새로운 교회의 모델인 성모님을 바라보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죽음 교육에서 ‘버킷 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목표를 목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 용어는 “죽는다”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했습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개인적으로 소중한 일을 기록하고 실천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버킷 리스트라는 개념의 근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는 단순한 욕망의 목록이 아니라, 개인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성찰하는 도구로 볼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를 통해 스스로 열망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면, 나중에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줄어듭니다. 신앙적 관점에서, 버킷 리스트는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실천하고 싶은 덕목이나 영적 목표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여행, 배움, 관계, 봉사, 영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리스트를 작성하도록 권유함으로써 더 풍성한 삶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도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 2007)는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두 노인이 병원에서 만나 서로의 버킷 리스트를 공유하며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함께 스카이다이빙, 세계 여행 등 다양한 버킷 리스트 항목을 실천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고,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은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 월터가 자신만의 상상 속 모험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세계를 여행하며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1985)는 한 여성의 아프리카에서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녀가 꿈꾸었던 삶의 모험과 성취를 담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버킷 리스트 이야기는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과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버킷 리스트의 철학적 측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우 이즈 굿(Now Is Good, 2012)은 암에 걸린 소녀가 죽음을 앞두고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녀의 여정을 통해 사랑과 가족,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대림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면서 버킷 리스트를 만들면 어떨까요? 동방박사들은 황금, 유향, 몰약을 준비해서 먼 길을 떠났습니다.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동방박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별을 보며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 경배드렸습니다. 한나와 시메온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 예수님께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당에서도 성탄을 기다리며 몇 가지 버킷 리스트를 마련했습니다. 하나는 ‘고린토 전서’를 필사하는 겁니다. 지난 사순시기에는 로마서를 필사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대림 특강’입니다. 올해는 오클라호마 박락군 신부님이 ‘구약과 신약에서 드러나는 성탄의 의미’를 강의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버킷 리스트는 거창한 것일 수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는 큰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버킷 리스트는 일상의 삶에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류에게 큰 영감을 주는 고전을 읽는 것도, 가슴을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것도, 대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버킷 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신앙인이 지녀야 할 버킷 리스트를 이렇게 말합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킨다면, 우리는 이미 버킷 리스트를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부정적인 사고를 자주하는 사람들은 이러면 이래서 싫고 저러면 저래서 싫다고 하며 그러한 이유로 인해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곤 합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사고를 자주하는 사람은 아무리 안좋은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아무리 나쁜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좋은 면을 보려하고 또한 그 사람의 회개를 위해 기도합니다.
신앙인들은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고, 하느님의 이끄심을 따르려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녀 루치아(Lucy)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 +314년
같은이름 : 루시아, 루씨아, 루키아
성녀 루치아(Lucia)는 시칠리아(Sicilia)의 시라쿠사(Siracusa)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양친은 귀족이었으며 매우 부유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앙을 배워 익히며 자랐지만 불행히도 아기 때에 부친을 잃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그녀는 스스로 하느님께 동정을 서원했는데, 이 사실을 비밀로 간직하던 그녀는 어머니의 결혼 강요를 늘 받았다. 딸의 설득에 감복한 그녀의 어머니 에우티키아(Eutychia)는 카타니아(Catania)로 가서, 자신이 고생하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성녀 아가타(Agatha)의 무덤에서 기도하였다. 이때 루치아도 따라갔는데,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이 있었다.
한편 그녀의 청혼자는 이를 매우 분개하여 그녀를 집정관에게 고발하였다. 이때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으므로 즉각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재판관은 그녀에게 매음굴로 보내는 판결을 내렸으나, 하느님의 권능에 힘입어 그녀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녀를 요지부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태워 죽이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입속으로 칼을 넣어 죽였다고 한다. 그녀는 가장 빛나는 동정 순교자로 공경을 받으며, 중세 시대부터 눈병을 앓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준다는 설이 있다.
성녀 오틸리아 ( Othilia )
신분 : 수녀원장
활동지역 : 니더뮌스터(Niedermunster)
활동연도 : 660-720년
같은이름 : 아딜리아, 오딜리아, 오띨리아
오틸리아(Othilia, 660-720년) 성녀는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에서 공작이었던 아버지 아티크와 메로빙거 왕가 출신인 어머니 베레스윈드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다. 아버지는 잔인한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맹인으로 태어난 딸을 죽이려 했으나 어머니가 유모의 도움을 받아 숨길 수 있었다.
유모가 그녀를 맡긴 곳을 발마에 있는 수도원이었다.
오틸리아 성녀는 673년경에 세례를 받았는데, 레겐스부르크의 성 에르하르도 주교가 그녀의 눈을 만지자 눈이 열려 시력을 찾는 기적이 일어났다.
눈을 뜬 오틸리아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어머니의 집안인 메로빙거 왕조와 싸움을 벌이던 아버지는 딸을 오히려 생 오딜 산에 감금하였다.
680년경에 메로빙거 왕조를 없애려는 음모가 어느 정도 성공하고 권력을 차지하자 아버지는 오틸리아를 풀어주고 베네딕도회 호엔부르크 수도원의 원장이 되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몇 년 뒤 그녀는 자신이 설립한 니더뮌스터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오틸리아는 당시 여성들이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공식적으로 금한 교회에 맞서 개혁적인 교육활동을 전개하였고, 반목하고 있던 이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오틸리아 성녀의 상본은 두 눈과 책을 들고 있는 그림으로 묘사된다.
성녀는 알자스의 수호성인,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나 맹인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유도코 (Judoc)
활동년도 : +668년경
신분 : 신부, 은수자
지역 :
같은이름 : 요세, 유도꼬, 유도꾸스, 유도쿠스, 유독, 조도꼬, 조도꾸스, 조도코, 조도쿠스
현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인 아르모리카(Armorica)의 국왕 유타엘의 아들로 태어난 성 유도쿠스(Judocus, 또는 유도코)는 636년경에 세속의 헛된 영광을 버리고 퐁티외(Ponthieu)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가 칸체 강 입구인 루니아쿰(Runiacum)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의 유해는 땅에 묻지 않았는데, 머리카락과 수염 등이 계속 자라났다고 한다. 그는 조도쿠스(Jodocus) 또는 요세(Josse)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