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이사야서 1장 2~4절을 보겠습니다.
2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3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4 슬프다! 죄 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님을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
7~9절도 보겠습니다.
7 너희의 땅이 황폐해지고, 너희의 성읍들이 송두리째 불에 탔으며, 너희의 농토에서 난 것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이방 사람들이 약탈해 갔다. 이방 사람들이 너희의 땅을 박살냈을 때처럼 황폐해지고 말았구나.
8 도성 시온이 외롭게 남아 있는 것이 포도원의 초막과 같으며, 참외밭의 원두막과 같고, 포위된 성읍과 같구나.
9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얼마라도 살아남게 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마치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처럼 될 뻔하였다.
이스라엘이 무언가 큰 잘못을 해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본문은 서기전 701년에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셋 3세가 유다를 침공해서 예루살렘만 남겨두고 40여개의 요새를 파괴한 사건을 말하는 것 같다고 성서학자들은 말합니다. 서기전 701년이면 이사야가 예언활동을 거의 끝마쳤을 때인데, 그때의 사건이 이사야서의 맨 앞에 실려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 본문을 읽으면서 기록된 순서와 시대적인 순서가 당연히 일치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이 기록은 이사야가 활동하던 말기의 기록인데 제자들이 나중에 이사야의 예언을 모아 책으로 엮어내면서 맨 앞에 위치시킨 것입니다. 요즘 작가들이 책을 낼 때도 머리말을 맨 나중에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사야서 1장도 이사야서의 머리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이토록 가혹한 형벌을 내리신 걸까요? 11~17절을 보겠습니다.
11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12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13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14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16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17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억눌린 자, 고아, 과부의 인권이 억압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 하시는 하나님, 마음과 삶이 담기지 않은 형식적인 제사를 거부하시는 하나님을 이사야는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8~20절 말씀도 보겠습니다.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19 너희가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
20 그러나 너희가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이 너희를 삼킬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징계가 아니라 복이니, 돌이켜 올바른 삶을 살라는 것이 이사야가 전하는 예언 활동의 목적이라는 것을 1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이사야서 1장은 오늘날 교회에서 수없이 많이 인용됩니다. 특히,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는 말씀은, 신앙생활 좀 했다는 분이라면 들어보지 못한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주제로 하는 설교에서 자주 인용되는 본문이니까요.
그런데 이 본문은 앞 뒤 문장과 분리해서 읽으면 안 되는 내용입니다. 억눌린 자, 고아, 과부의 인권이 억압당하는 현실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단지 형식적으로 예배만 열심히 드리면서 함부로 선포하면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억눌린 이웃의 인권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그저 예배 열심히 드리고, 기도 열심히 하고, 헌금 많이 내면, 그것으로 신앙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설교하는 목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웃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득권에 저항하는 교회들을 오히려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교회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한국 교회 이대로 좋은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현실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