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립습니다.^-^*.
↓사진설명 [정선임계 용산 2리 골지천 서쪽 기슭에 있는 우렁산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용산1리 골지천 북쪽 일명 용소위의 뼝때(절벽)바위지표면에 하천이 형성된후 수천년동안 물의 흐름으로 하천바닥이 깊이 파여져서웅덩이가 만들어지고 그곳에 하천물이 모여서 수심이 깊은 소를만들었습니다.
↓1.이곳은 강원 정선 임계 용산1리 골지천변용소 위쪽(용산1리 마을 서쪽방향)으로산기슭 하단부분 가파른 경사면에 수평으로 소로의 좁은길이있는데,좌측편 골짜기(오목동/조개골, 고양리)에 사는사람들이 임계면 장날이면 그갈로 오고 갔으며,밤중에는 임계장터에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이 소로길로 걸어가다가 여러명의산골 골짜기 사람들이 가파른 경사면에 굴러서 아래 하천으로 떨어져서 죽고,그 혼령들이 그곳에 있다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입니다.그리하여 날씨가 굳고 보슬비가 내리는 어둑어둑한 밤이 되면 이곳에는 어김없이 당시 동네 사람들의 말로 도깨비불이라고 하는 여러개의 불빛들이 나타나 상하좌우로움직이는 것을 여러차례 목격했던 기억이 있답니다. 그래서 유년시절 잘려진 소나무가지끝에 소나무 수액(송진)이 흘러나와서 응고된솔가지(광솔가지)를 모아놓았다가 거기에 불을 붙힌 햇불을 들고 골지천 강(도깨비불이 나타나는 곳)에 물고기도 잡을겸 공포심을 참고 여러차례 가보았으나사람들이 말하는 도깨비나 다른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2.이곳은 강원 정선 임계 용산1리 골지천변 용소 위쪽(용산1리 마을 서쪽방향)으로 산기슭 하단부분 가파른 경사면에 수평으로 소로의 좁은길이 있는데,좌측편 골짜기(오목동/조개골, 고양리)에 사는사람들이 임계면 장날이면 오고 갔으며, 밤중에는 임계장터에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이 소로길로 걸어가다가 여러명의 산골 골짜기사람들이 가파른 경사면에 굴러서 아래 하천으로 떨어져서 죽었고 그 혼령들이그곳에 있다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입니다.그리하여 날씨가 굳고 보슬비가 내리는 어둑어둑한 밤이 되면 이곳에는 어김없이당시 동네 사람들의 말로 도깨비불이라고 하는 여러개의 불빛들이 나타나 상하좌우로움직이는 것을 여러차례 목격했던 기억이 있답니다.그래서 유년시절 잘려진 소나무가지끝에 소나무 수액(송진)이 흘러나와서 햇볕에응고된솔가지(광솔가지)를 모아놓았다가 거기에 불을 붙힌 햇불을 들고 골지천 강(도깨비불이 나타나는 장소)에 물고기도 잡을겸 공포심을 참고 여러차례 가보았으나사람들이 말하는 도깨비나 다른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ㅁ>
↓이곳은 정선 임계 고양리 하일동 연애골(문래산1.081m 북쪽기슭 골짜기)고수마리골(고양산1.151m 남쪽기슭 골짜기)입구 어귀 산골짜기기슭에 있는 독가촌으로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으로 1955년 본인이 태여난집입니다.(1980년대초에 지붕에 잡초들이 무성했었는데,초가집이 스레트 지붕으로 개량되고,집앞 골짜기 지류가 흐르는 하천변 소로길이 넓혀지면서 전기가 공급되었고 2002년까지 한 젊은 남자가 주변 밭에 고냉지 채소를 재배하면서 살았으나 2003년 어떤 질병으로세상을 떠나고 현재는 아무도 없는 빈집입니다.) ↓이곳은 강원 정선 임계 용산 1리 마을 앞쪽 벌판의 논으로 멀리 보이는 뽀족한 산은골지천 서쪽기슭에 위치한 험준한 우렁산으로 우측 골짜기가 낙천리 (오목골/조개골)약2km를 산길로 들어가면서 문래산 북쪽능선상에있는 고개(재)를 넘으면 정선군 임계면에서 최고 오자 산촌마을인 고양리 (하승두골)에 이른답니다.
↓사진 뒤쪽 가운데 숲이 보이는 언덕에 정선군 임계면 용산1리 월탄 초등학교가 있던 곳으로 현재도 옛날 국민학교 건물과 운동장이 있답니다.본인은 이곳에서 국민학교(초등학교)를 1968년에 졸업하였습니다.
↓이 마을이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용산 1리 마을입니다. [우측 골짜기가 골안으로그곳으로 들어가서 뒷쪽에 보이는 능선을 넘어서 북쪽방향으로 골짜기 좌측으로따라서 내려가면 임계 새벼리 마을로 이어지고,동쪽으로는 백두대간/태백산맥주봉인 중봉산(1.284m)와 고적대(1.354m)주 능선으로 국도 42번 백봉령으로 연결되는 고산산악지역입니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용산1리 전형적인 산골마을(일명: 월탄/달탄)
↑↓이 강변은 본인의 부모님들과 형제들이 농업에 종사하고 살고 있으며,유년시절본인이 살던 고향집 바로앞 하천변으로 「갈거리」란 명칭으로 부르던 곳으로하천뒤쪽 잣나무 산 하단 부분에 국도 35번 도로가 확장포창되기전 흙먼지 날리고울퉁불퉁하던 신작로가 수평으로 지나던 흔적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내가 태여났던 산골마을고향집터 밭드렁의 갈대[ 여기 갈대 뒷편으로 보이는 비탈진 밭은 유년시절(1964년/9살 )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리고, 낮시간 태양빛에 표면이 녹았다가 고산산악지역 차가운 기온으로 눈 표면이 살짝 얼어서 그 위를 걸어가도 눈에 빠지지 않기에 아침일찍 비료포대를 깔고 썰매를 타던 추억이 있습니다.그째는 이 산골에선 비료포대도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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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리는 전 지역 토양이 석회암 지역으로 우기시에만 계곡에 물이 흐른다.
↓↑사진 뒷편에 보이는 산 (해발 900m/문래산 북쪽능선)험준한 고개를 넘으면임계면 낙천리(오곡동/오목골과 조개골)로, 이골짜기(약2km)를 통과하면 골지천만나고 하천을 건너면 내가 국민학교시절 살던 임계 용산1리이며, 골지천 서쪽에위치한 우렁산 가파른 뼝때(절벽)중간샛길을 지나가면 임계 낙천리(설래)입니다.내가 8~9살(1963~1964년)때 부모님들과 함께 이험준한 산길로 임계 5일장을새벽에 집에서출발하여 갔다가 어두운 저녁에 돌아오곤 했답니다. [그 시절 어린나이에 이 험준한 산골길이 너무도 무서웠지요*^-^*.(늦은 가을날 날씨가 흐리고,스잔한 분위기에 재를 넘을 때 마른 가량잎에 산바람이스치는, 어둑~한 시간에 재(고개) 정상 고목나무밑둥에오색의 헝겁조각들이 새끼줄에 묶여서 바람결에 펄럭이고, 그 산 고개를 지키는 신령이 있다는 성황당앞을 지날때면뭔가 무서운 것이나 혼령이 기다릴것 같은 예감에 소름이 오싹~ 흐흐흐~~~ ....)지난추억]
↓강원 정선 임계 용산리 우렁산 계곡(1991년 오목골의 가을 단풍 )
↓이 사진은 현재(2005년 10월 05일) 이 곳 산촌마을을 지키는나의 외가집 외사촌 형이 사는 [정선 임계 고양리(하승두골) ]집마당앞의 밭에서 어린시절 넘나들던 험준한재 문래산(1.082m)북쪽 능선을 바라보고,아련한 기억저편을 회상하면서 촬영했음.
↓앞을 비라보아도, 뒤를 바라보아도, 옆을 바라보아도 온통 높은 산만 눈에 보이는그곳은 고개를 들어야만 하늘을볼 수 있는 산골마을이죠 고 향 詩/문혜숙타국 땅을 거닐다가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이를 만나면고향은 내 마음에 살아물같이 구름같이 흐르고 있다고 말하네길가에 돋아난 풀들과이름 모를 새 소리 들을 때어릴 적 기억이 눈앞을 가리고잊었던 사람들도 눈믈 속에 담겨오네꽃은 지고 다시 피는 세월친구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는지나그네 된 이 심정에그리움은 햇살 가득 밀려오네이제 낮선 고향에 찾아가면미루나무 흔드는 바람 소리도 듣고도라지 꽃 만개한 밭길을 거닐며세상의 무거운 짐 내려놓고 오겠네2004년 10월 20일 -태백산 야생화/배 장식- (옮김).裵長植印
고 향 詩/문혜숙타국 땅을 거닐다가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이를 만나면고향은 내 마음에 살아물같이 구름같이 흐르고 있다고 말하네길가에 돋아난 풀들과이름 모를 새 소리 들을 때어릴 적 기억이 눈앞을 가리고잊었던 사람들도 눈믈 속에 담겨오네꽃은 지고 다시 피는 세월친구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는지나그네 된 이 심정에그리움은 햇살 가득 밀려오네이제 낮선 고향에 찾아가면미루나무 흔드는 바람 소리도 듣고도라지 꽃 만개한 밭길을 거닐며세상의 무거운 짐 내려놓고 오겠네2004년 10월 20일 -태백산 야생화/배 장식- (옮김).裵長植印
출처: 임계중 18회 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배장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