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초밥
영태는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수덕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입학식 날. 선생님과 친구들의 자기소개가 끝난 후 짝꿍 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영태는 번호순서대로 해서 현섭이와 짝꿍이 된다. 형제가 없어 하루하루 외롭게 지내던 영태는 현섭이도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둘은 점점 친해져 매일 학교 운동장에서 공놀이도 하고 철봉놀이도 하고 군것질도 하며 형제애 이상의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1학년이 끝나갈 때 쯤 현섭이는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가족 모두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된다. 그렇게 영태와 현섭이는 즐거운 추억을 뒤로한 채 헤어지게 된다. 옛날에는 인터넷이나 전화가 많이 발전하지 않아 서로 어떠한 연락도 하지 못하고 30여년의 시간이 흐른다.
30년 후. 회사 생활에 지쳐있던 영태는 그럴 때마다 옛 추억을 떠올린다. 그 중 제일 큰 그리움의 대상은 중1때 늘 붙어서 놀던 현섭이. 영태는 현섭이를 찾을 수 있다는 큰 기대 없이 호주에 사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현섭이와의 추억의 글과 함께 현섭이를 찾는 글을 올리게 된다. 며칠 후 핸드폰으로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현섭이로부터 연락이 온다. 영태는 반가움과 신기함에 온 가족에게 현섭이와 통화 된 얘기를 말하고, 가족 모두 영태가 얼마나 연락을 기다린 줄 알기에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현섭이는 호주에서 미국으로 다시 이민을 가서 살고 있으며, 한인 목사가 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 연락을 해줬다고 한다. 부인과 2남을 두고 있는데 자식들은 공부를 잘해서 둘 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의대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자기는 회전초밥 사업을 하는데, 미국에 체인점이 수십 개씩 있으며, 전용기를 통해 매장을 둘러보느라 바쁘다고 한다. 영태는 오랜 기다려온 친구의 연락. 또 이런 옛 친구의 타지에서의 성공이 마냥 기쁘다.
현섭이도 영태를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늘 한국시간 새벽 5~6시에 전화를 건다. 영태는 잠결에 전화가 와도 늘 즐겁게 전화를 받았고, 나중에는 전화가 오는데 못 받을까봐 전화기를 옆에 꼭 놓고 잠에 든다. 그 둘은 매일매일 일상 적인 얘기를 하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이렇게 연락을 하며 지낸지 어연 6개월. 영태는 현섭이와 연락이 닿았다는 기쁨과 현섭이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사업차 한국에 왔다는 현섭이의 연락을 받고, 영태는 드디어 현섭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떨리기 까지 한다. 며칠 후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는 현섭이의 연락과 함께 이번에는 내일 당장 일본으로 가야돼서 못 만날 것 같고, 내일 일본에서 새로운 회전초밥기계를 사야 되는 데 사정이 생겼다며 3천만 원을 빌려줄 수 있냐고 한다. 영태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황하게 되고 일단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고 영태는 많은 생각과 함께 6개월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사기가 아니기를 바라는 영태가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지만 그동안 자신이 옛 이야기를 꺼내면 얼버무렸던 것, 시간이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난다는 등의 핑계를 되며 옛 기억과 추억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현섭이가 가짜 현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영태는 냉철하고 사람 파악이 빠른 자신이 옛 친구를 만났다는 기쁨과 진짜 옛 친구이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그동안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몇 시간 후, 3천만 원이 안 되면 5백만 원이라도 빌려달라고 하며 서울 명동 신흥은행 쯤에 자기 직원에게 주라는 전화를 받고 그 동안 연락을 주고받았던 게 가짜 현섭이라는 것,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거짓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영태는 욕하려는 것을 꾹 참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돈이 없으니 빌려줄 수 없다는 말만 하고 끊는다.
그 후 며칠, 몇 개월, 몇 년 동안 추억의 현섭이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고... 그렇게 6개월에 걸친 사기극은 대장정에 막을 내리게 된다. 영태는 이 사기를 통해 인간의 순수함과 추억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는 인간의 추악함과 물질 만능주의에 치를 떨게 되고 현섭이 찾는 일을 그만 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