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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다산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쓴 편지. 가족의 소중한 사랑, 어린이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공부의 자세와 생활속의 예절을 따뜻하면서도 매섭게,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전달한다.
1부에서는 독서와 공부에 대한 편지글을, 2부에서는 생활인의 태도에 관련된 윤리와 실천, 실용의 가르침을 적은 편지글로 묶었다. 3부 부록에는 다산이 활동했던 영,정조시대의 정치적 상황, 실학, 다산에 대한 정보와 역사적 지식을 수록했다.
다산의 편지를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각 편지마다 해설을 달아두었다.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어린이 스스로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메시지로 정리되었다. 전통 한지를 닮은 편지지 바탕에 수묵화로 된 삽화, 옛 글씨체 등이 어린이들에게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만들어준다.
목차 - 여는 글
제1부 - 독서와 공부의 장 1. 확고한 뜻을 세우고 책을 읽거라 2. 중요한 내용은 기록해 두거라 3. 아버지의 말을 새겨듣거라 4. 공부에는 때가 있는 것이다 5. 공부의 근본이 확실해야 한단다 6. 독서할 때에는 뜻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단다 7. 공부는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단다 8. 정성을 다해 공부에 힘쓰거라 9.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공부의 근본이다 10.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떳떳한 길이다
제2부 - 생활과 실천의 장 11. 눈 앞의 이익을 좇기보다는 옳은 길을 가자꾸나 12. 사람이란 목숨보다 의리를 따라가 야흔 것이다 13. 뛰어난 재주보다 단정한 몸가짐과 마음가집이 중요하단다 14. 집안을 안정시키는 네 가지 근본을 알고 힘쓰거라 15. 어버이의 뜻을 받드는 것이 가장 큰 것이다 16. 삼가고 조심해서 행동하거라 17. 웃어른을 공경하여야 한단다 18. 남의 은혜만을 구하지 말거라 19.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되거라 20. 생각과 행실을 올바르게 하여라 21. 친척들 간에 화목하게 지내거라 22. 사람을 대할 때에는 정성을 다하여라 23. 국화를 심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24. 채소밭을 가꿀 때에는 25. 닭을 기를 때에는 26.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편지
제3부 - 다산 정약용 선생님에게 역사 배우기 1. 다산 선생님은 어떤 시대에 살았을까? 2. 실학이란? 3. 다산 선생님의 생애와 업적 4. 다산 선생님의 일화
저자 : 정약용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호는 다산(茶山)이다. 1789년 문과에 급제하여 부승지 등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지리·과학 등에도 밝아 진보적인 신학풍을 총괄 정리하여 집대성한 실학파의 대표자가 되었다. 일곱 살 때에 '산'이라는 시를 지은 것이 남아있는데, 열 살 이전의 어린 시절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이라는 책을 내었다. 어릴 적에 천연두에 걸렸으나, 왕족 출신의 명의 이헌길의 진료로 살았다. 정약용은 훗날 이헌길의 <마진기방>을 바탕으로 한층 발전된 홍역 치료서 <마과회통>을 집필하고, 이것은 현대 의학이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조선의 생명들을 구한다. 또한 정약용은 이헌길의 생애를 다룬 <몽수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당시 금지한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좌천되어 귀양을 갔으나, 귀양살이를 하는 18년 동안에도 <목민심서>를 비롯한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그후 1818년(순조 18) 음력 5월에 귀양이 풀려 승지(承旨)에 올랐으나 음력 8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설에는 신유박해 때 배교(背敎)한 것을 뉘우치고 고향에 돌아가 신앙생활을 했다고도 한다. 혼인 60주년 회혼일 아침인 1836년 음력 2월 22일에 마현리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다산이 남긴 마지막 시는 〈회혼시〉였다. 정약용이 죽기 전 자녀들에게 신신당부로 이른 말은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에서 버티라"는 것이었다. 40년 동안을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주요 저서에는 이른바 '1표 2서'라 불리는 <경세유표>, <목민심서7gt;, <흠흠신서> 등이 있다.
편자 : 한문희 홍익대학교 사범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사업부장. 문화관광부 '새천년한글날특별전' 전시기획위원, 한국글꼴개발원 책임연구원, 한국디지털박물관연구원 사무국장을 지냈다. 현재 지식콘텐츠 전문기업 (주)누리미디어 상무이사로소 일하며, 홍익대학교 디자인영상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버지의 편지 - 다산 정약용, 편지로 가르친 아버지의 사랑>이 있다.
그림 : 홍금희 전남 진도 출생.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 전공. <통통 통영감> 등의 그림을 그렸다.
다산 정약용은 9남매를 두었으나 6남매는 어린 나이에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남겨진 두 아들과 딸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문이 나라에 죄를 지어 삼촌은 사형에 처해졌고 아버지는 머나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던
삼 남매는 어떻게 살아가야 했을까요? 가족과 떨어져 먼 곳에서 죄인으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 또한 생계를 꾸려 가기가 막막하였고 심지어 갈아입을 옷이 없어 한 벌 옷으로 넉 달을 버텨야만 했습니다. 몰락한 양반가문에서 학문을 포기하려는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피를 쏟듯 편지를 보내 '학문을 통해 자신과 몰락한 가문을 부흥시킬 것'을 당부합니다. 심지어 "학문을 하지 않고 예의가 없다면 금수와 다를 것이 있겠느냐?" 며 자식들을 압박합니다. 자식들과 떨어져 18년간이나 홀로 유배생활을 하지만, 아버지는 편지로 자녀들을 계속 격려하고 때론 나무라기도 합니다. 생계조차 어려운 형편에 걸어서 석 달이 걸려야 편지가 전달되는 상황에서 편지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애끓는 자식사랑은 고난 속에서도 두 아들이 비록 벼슬을 하지는 못했지만, 의술과 시문 그리고 농학에 능하게 해 '농가월령가'와 같은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실용학문에 있어 큰 업적을 남기게 합니다. 아버지의 헌신의 열매는 그 때가 즉시에 바로 맺어지지 않더라도 꼭 결실을 이루게 되는 것을 다산부자는 우리들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대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18년 간 보낸 편지를 간추린 서간문집. 사상, 정치, 경제, 지리, 의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였으며, 유배지에서 자식을 그리워하고 걱정했던 저자의 마음은 지금 우리 부모와 선생들이 바라는 마음과 차이가 없다. 이 책의 1부에서는 학문의 태도와 관련된 독서와 공부에 대해, 2부에서는 생활인의 태도에 관련된 인간 윤리, 실천, 실용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 3 부에서는 저자가 살았던 시대, 저자가 생애를 걸었던 실학, 그리고 저자의 생애와 업적, 일화에 대해 관련 사진들과 그림 자료들을 수록하여 서술하였다. 또한 책 곳곳에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첨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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