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45일간의 여행을 마칠 날이다. 체크아웃 후에 짐을 호텔에 맡겨놓고 귀양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처라고 하는 첸링공원으로 향했다. 2번 버스를 타니 공원 근처까지 데려다 준다. 입장료는 5위안, 어제에 이어 부담없는 액수다. 내부 케이블카가 상행 20위안, 하행 10위안.
(길가에서 물고기를 즉석 거래하는 현장)
공원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관광객뿐 아니라 근처에서 놀러온 주민들도 많은 것 같다. 얼핏 시내에 있는 허빈(하빈)공원 비슷한 분위기. 거기처럼 여기도 물로 길바닥에 붓글씨를 쓰는 사람도 있고 여럿이 어울려 태극권이나 댄스를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특히 팽이를
돌리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길가에는 계림의 칠성공원에서 본 것보다 훨씬 많은 원숭이들이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과자를 얻어
먹느라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앙코르와트에서 원숭이에게 놀란 경험이 있는 옆지기가 사진을 몇 장 찍은 걸 보니 원숭이 트라우마가 옅어지고 있나 보다.
시안사변의 영웅(중국 공산당 입장에선 당연히 영웅이겠지. 제2차 국공합작을 실현시켜 결과적으로 공산당이 대륙을 지배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으니) 장쉐량(장학량,张学良)과 양후청(양호성,杨虎城)이 연금되어 있었다는 치린둥(기린동,麒麟洞)을 둘러보며 근대사를 잠시 회고해 보고 ~~
위 쪽에 있는 동물원으로 갔는데, 평소 동물원을 시답잖게 여기던 옆지기를 푹 빠지게 한 영웅이 있었으니,
덩치와 생김새로 존재감을 과시했을 뿐 아니라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팬서비스까지 확실해 해 준 백호가 그 주인공이었다.
(동물원 앞 매직아트)
산 밑으로 길게 뚫어 놓은 보행자용 터널을 지나가니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애타게 기다리던 노점도! 아, 배고파. 얼른 자리에 앉아 감자튀김과 미두부를 사 먹으며 고픈 배를 달랬다. 그런데 다 먹고나서 호수 쪽으로 몇 걸음 옮기니 저기선 안 보이던 제대로 된 식당들이 보인다. 일단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입구 쪽으로 걸어 나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갔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도시 풍경은 특별히 매력적이진 않다. 그냥 뭐, 볼 만한 정도. 조금 내려온 곳에 있는 커다란 절이 영험이 많은 기도 도량이라나 어쩐다나, 사람이 많고 향 피우는 연기도 대단하다. 산을 올라오면서 등산객들이 뭐하러 큰 폭죽을 들고 다니나 내심 궁금했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폭죽이 아니고 부처님에게 바치는 향이었다. 참, 대단한 정성이다.
공원을 나와서 아무 버스나 타고 시내 중심가 쪽에서 내렸다. 대형 쇼핑센터가 어디 있나 찾아보다가 들어간 곳이 까르푸였는데 거기서 300위안을 주고 인덕션을 하나 구입했다. 4년 전에는 중국 향신료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던 옆지기가 이번에는 중국 음식에 푹 빠져서 맛있다 맛있다 하더니 집에 가서 훠궈를 해먹겠다며 중국 양념에다 인덕션까지 산 것이다. (사실 이 때까지 인덕션이란 이름도 몰랐다. 한국에서도 보기는 했지만 이번에 중국을 다니다 보니 식당마다 다 이걸 쓰고 있었다. 옆지기는 이게 너무나 편리해 보인다며 하나 사 가고 싶다고 진작부터 별렀다.) 그런데 박스가 너무 커서 열어 보니 냄비 두 개가 추가로 들어 있길래 냄비는 마트에서 일하는 아줌마를 줘 버렸다. 인덕션 외에 양념과 치약 등 잡동사니를 200위안 어치 쇼핑하고,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로 와서 미리 찍어 두었던 마트에 들어가 까르푸에서 못 산 베트남산 1회용 커피를 찾아 봤으나 역시 못 사고(달랏 시장에서 찾아냈던 그 커피를 화이화의 대형 마트에서 발견하고 많이 기뻤었는데 그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이화에서 많이 사둘 걸.) 말린 대추 따위 잡동사니를 조금 샀다. 마트옆에 있는 깔끔한 콰이찬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가서 배낭을 찾아 공항으로, 아니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에서 216번 버스가 공항으로 간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 물어물어 216번이 서는 정류장을 찾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류장 팻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삐끼 하나가 다가와 공항가는 버스 끊어졌으니 자기 차를 타라고 한다. 무슨 개수작인가 무시하려는데, 팻말을 자세히 보라면서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킨다. 아, 막차가 8시라고 써 있다. 지금 시각은 8시 반. 막차 끊어진 게 맞네. 어쩔까 머리를 굴리는데 곁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중국 아가씨 둘이 우리보다 먼저 반응을 한다. 우쥬 쉐어러 택시 위드 어스? 216번이 없더라도 올 때 타고 왔던 공항 리무진을 여기 어딘가에서 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얘기를 아가씨들에게도 했다) 아가씨들은 시간이 급한 모양이다. 10시 출발하는 상하이행 비행기를 타야 한단다. 마침 바로 옆에 택시 승차대가 있고 서너명이 서 있다. 얼른 뒤에 줄을 섰더니 택시들이 바로바로 와서 금방 탈 수 있었다. 택시 안에서 얘기를 나눠 보니 귀양에서 일하다가 명절을 맞아 상하이 인근의 고향집으로 가는 직장여성들이란다. 모처럼 영어가 유창한 중국인을 만났다. 만나자 이별이지만. 공항까지 택시 요금은 27위안 정도가 나왔다. 기사에게 30위안을 주고 아가씨들에게는 그냥 가라고 했지만 그들은 옆지기 손에 억지로 15위안을 쥐어주고 갔다. 15위안이면 시내버스비 4위안보다는 비싸지만 리무진 20위안보다는 오히려 싸게 먹혔구먼? (이 여행일기 어딘가에 정식 택시를 두 번 탔다고 썼는데 지금 생각하니 세 번이었다. ㅋㅋㅋ. 점점 짠돌이가 되어 가는 배낭여행객?)
1월 21일
0시 20분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가 조금 늦게 0시 40분에 출발했고 새벽 5시 반이 좀 넘은 시각에 인천에 도착했다. 45일 간의 중국 귀주 여행 끝.
<그 이후>
귀국하고서 며칠 후에 11자 젠더플러그를 사다가 인덕션을 작동시켜 보니 전기는 통하는데 가열이 되지 않는다. 가져 오다가 망가트린 건가, 애초 불량품을 산 건가? 어느 경우든 어차피 애프터서비스를 못 받을테니 버려야 하나? 실망이 컸는데, 그러다가 어찌어찌 검색을 하다가 인덕션용 냄비가 일반 냄비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석에 붙는 재질로 만든 냄비만 인덕션의 자석 센서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짐이 된다고 대범하게 아주마를 줘버린 인덕션용 '특수' 냄비를 다시 사야 하게 되기는 했지만, 멀리 중국에서 사 온 물건을 버리지 않게 되어 천만 다행이다. 그걸 알아내서 고맙다고 옆지기에게 칭찬까지 들었다.
중국 요리에 매료된 옆지기는 서울에 볼일 보러 간 김에 동대문 중국 식품점에서 중국 향신료를 한 보따리 사 왔고, 얼마 후에는 홍천에 커다랗게 들어선 주방용품 매장에 가서 '특수' 냄비도 구입하였다. 이제 훠궈 먹을 일만 남았군! ㅋㅋㅋ 오늘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고기, 오리고기, 두부, 감자 등등이 들어간 맛있는 훠궈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