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방에 있는 자료를 이곳에도 옮겨서 싣습니다.^^
마원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 문경 지방으로 숨어든 충청도 교우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으로 병인박해 당시 경상도 북부 지역 사목을 담당하고 있던 칼레 신부를 모시며 신앙생활을 했던 복자 박상근(마티아)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신부님을 모신 일화가 남아 있다.
문경 지방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 지방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고향과 가산을 버리고 찾아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양남 북부의 험준한 산악 지대는 눈을 피해 은신하기에 적합했다. 문경, 한실, 여우목, 건학, 부럭 등 이러한 곳들은 신앙의 선조들이 화전을 이루어 교우촌을 형성하고 살았던 유서 깊은 장소들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이곳에 숨어 살던 교우들 가운데 40여 명이 붙잡혀 상주, 대구 등지로 압송되어 갖은 고문과 혹형을 당한 끝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30세의 젊은 나이로 장렬하게 순교한 복자 박상근(1837~1866, 마티아)은 문경 토박이로 아전이었다고 전해지며 그는 아마도 신유박해 이후 이 지방으로 숨어든 충청도의 신자들과 접촉을 하게 되면서 지방인으로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입교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칼레(Calais, 1833~1884, 아돌프)신부의 전교 기록에 보면 문경에서 가까운 백화산 중허리에 자리 잡은 한실에 신자 집이 서너 집씩 무리 지어 산재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의 신자들의 영향으로 그의 집안이 천주교를 믿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칼레 신부는 그의 출중한 신앙심과 죽음을 무릅쓰고 신부를 자신의 집에 은신시킨 용기에 대해 치하하고 있다. 결국 병인년 12월에 체포된 그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문경 현감의 간곡한 배교 권유를 단호하게 물리치고 교수형을 받고 치명하였다.
박상근 마티아의 묘가 발굴된 것은 1985년 9월의 일이다. 마원리 박씨 문중 산에 대대로 내려오는 묘가 있었는데 여러 정황과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이 묘가 <치명일기>에서 말하던 순교자 박 마티아의 묘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안동교구는 마원에 순교 성지를 조성하기로 결의하고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다각적인 성지 개발 계획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한편 순교자의 뜻을 기리기 위한 현양 대회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124위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 중의 한 분으로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다가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때 복자품에 올랐다.
* 칼레 신부에 대하여
경북의 사도 칼레(1833~1884, 아돌프)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1860년 7월 5일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4월 7일 조선
에 입국한 후 경기도 손골에서 1년간 조선말을 공부한 다음 1862년 미리내로 파견되어 경기 남부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였다. 1863년
4월 조안노(1832~1863, 베드로) 신부가 병사하자 그를 대신하여 10월에 공주로 임지로 옮겼고 다시 경기도 서부 지역을 맡게 되었
다. 그후 1866년까지 약 3년 동안 경상도의 서부 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벌였다.
* 박상근과 칼레 신부의 일화
칼레 신부가 병인박해로 한국을 탈출, 중국으로 피신하였고, 이듬해부터 여러 번 한국 입국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병이 악화되어 프랑스로 귀국하여 1869년 4월 시토회 수도자가 되어 모백(Maubec) 수도원에서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일생을 마쳤는데, 그 당시 전교하면서 쓴 선교 체험기 중에서 순교자(현재는 복자) 박상근 마티아와의 우정을 기록한 글이 있다.
"한실 윗산까지 가려면 이제 20리 정도 남은 것 같소. 나 혼자서도 거기까지 갈 수 있을 것이오. 마티아는 너무 지쳤으니 이 근처 마을로 내려가 먹을 것을 얻도록 하시오."
"아니, 신부님! 어떻게 신부님도 잘 모르시는 이 산속에 신부님만 혼자 가시도록 둘 수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한실도 포졸들의 습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다면 신부님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신부님이 가시는 곳이면 저도 가겠습니다. 신부님이 이 깊은 산속에서 돌아가신다면 저도 같이 죽겠습니다." 라고 마티아는 대답하였다.
이처럼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게 되자,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른 마티아를 더 이상 고생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칼레 신부는 본 마음과는 달리 준엄한 명령조로 마티아에게 말했다. "마티아, 나는 당신에게 명령합니다. 당신이 가져온 마른 과일의 반은 당신이 가져가고, 나머지 반은 내게 넘겨주시오. 그리고 내 말에 복종하시오." 이 말을 듣자 마티아는 통곡하면서 칼레 신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칼레 신부도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서로 굳은 악수를 나눈 뒤 두 사람은 서로 헤어졌다. 칼레 신부는 산길을 계속 갔지만 마티아는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칼레 신부를 울며 바라보고 있었다.
(글 출처 : 오영환, 박정자 저, '순교의 맥을 찾아서' 506페이지 참조)
묵상
목숨바쳐 사제를 끝까지 지키고자 헀던 박상근(마티아), 그리고 박 마티아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오히려 박 마티아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하여 애쓰셨던 칼레 신부님의 감동적인 일화를 묵상하면서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 10,11)는 말씀을 떠올립니다.
언제나 신자들을 사랑하고 아껴주셨던 칼레 신부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우리 사제들도 신자들을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