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平常心)이 시(詩)다 ―고성만 시집 『파씨 있어요?』 해설(抄)
동명 스님
세상은 소통 부재
오늘의 우리 세상은 의사소통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을 하는 경우가 많고, 남의 말을 자기 생각대로 듣는 경우가 많다. ‘상담시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숲의 기분을 느껴보세요」, 「어쩌다 이렇게」, 「참말로 징하고만」은 소통부재 시대의 현실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매금씨 눈물이 나와야 당신은 누구세요 오늘 날씨가 험하구나 쓰다 버린 건전지 같아요
바람 지나간 자국마다 콕콕 쑤시는 걸 저기압이 지나가면 기압골이 다가와요
꽃들은 허무하게 피고 지는 것이 아니란다 시간과 거래를 하시는 건가요? 얘야, 화내지 마라 내가 다 가져가마 쯧쯧, 저녁은 저절로 붉어져요 —「참말로 징하고만 – 상담시간 3」 부분
진지한 질문에 대해 엉뚱하거나 알쏭달쏭한 대답으로 맞서는 것은 주로 선문답에 등장하는데, 시인은 ‘상담시간’이란 연작시에서 이 대화법을 사용하고 있다. “매금씨 눈물이 나와야”라고 말하니, 상대가 “당신은 누구세요?”라고 묻고, “오늘 날씨가 험하구나” 하는 말에 “쓰다 버린 건전지 같아요”라는 대사가 이어진다. “얘야, 화내지 마라 내가 다 가져가마”라고 말하자, “쯧쯧, 저녁은 저절로 붉어져요”라며 알쏭달쏭하게 대꾸한다. 선문답에서는 대답 속에서 단일한 의문이 싹트는데, ‘상담시간’ 연작 속에서는 단일한 화두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화두가 많아짐으로써 사실상 단일한 화두가 없어지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의 대화가 이런 방식이 아닐까? 지나치게 다양한 화두 때문에 하나의 화두도 없어지는 것? 그러나 시인은 이 연작시에서 수많은 질문 속에서 갈 길을 모색하는 자기 자신과 엉뚱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아주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고발인 듯하지만, 시인은 뚜렷한 메시지는 만들지 않고, 다만 의미를 헤아리고 짐작해보는 것만으로도 시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한다. 세상은 어쩌면 이렇게 모순으로 둘러싸인 채 흘러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서울의 시청 앞 광장에서 친구들과 약속하고, 조금은 절망적인 대화를 나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사랑하는 청년이 총을 들고 입대하는 것을 한 처녀가 안타까이 바라보고 있지만, 서울의 카페에서는 처녀와 총각들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상상해보면, 한국전쟁 때도 그러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유럽의 어느 거리에서는 웃음꽃이 만발했으리라. 그러나 시인의 감성은 우크라이나의 마리우폴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며, “가만히 눈 감고 너 부를 때/ 가슴 아래쪽 명치께 찌르르르/ 툭 떨어지려는 눈물”(「마리우폴」)을 시로 노래한다. 결국 시인은 직접적인 발언을 삼갔던 태도를 버리고 세상의 부조리를 토로하기도 한다. “아는가/ 입에 침방울 튕기며 윤리에 대해/ 진리에 대해 떠들어대는 사람일수록/ 문란한 성적 상상 즐긴다는 사실”(「그루밍」)을 고발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고발은 이번 시집의 콘셉트가 아니다.
거의 매일 붉고 푸른 고무 다라이 앞에 놓고 앉은 사내의 얼굴에 잠의 씨앗이 덕지덕지 합니다 아주 오래 기다렸으므로 이미 성불을 하였거나 도를 통하였을 법한데 소나기 내리는 것도 알지 못하고 가로등에 기댄 채 단잠 빠졌던 사내는 투덜투덜 비닐을 씌웁니다 비록 원산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콩과 식물은 넌출넌출 기어오르고 수수는 초록 줄기 밀어 올리고 “파씨 있어요?” 납작 눌린 아랫도리 황급히 털고 일어서려는데 “없으면 관두세요” 그냥 가버리는 젊은 여자가 마냥 섭섭하여 파씨스트, 파씨스트, 중얼거려 보는 오후 브래지어 팬티 늘어놓은 김 씨와 소주 안주 내기 장기 한판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으로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씨앗 파는 남자」 전문
시장 한쪽 길가에서 한 사내가 고무 다라이에 여러 종류의 씨앗을 진열해놓고 팔고 있다. 씨앗을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손님이 별로 없으니, 무료한 사내는 잠이나 잘 수밖에 없어, 늘 잠의 씨앗을 덕지덕지 얼굴에 뿌려놓고 있다. 그날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졸린 눈을 뜨고 겨우 비닐로 덮고 있는데, 마침 손님이 와서 물어본다. “파씨 있어요?” 비닐을 마저 덮고 일어서려는데, 성질 급한 손님은 벌써 “없으면 관두세요” 하고 가버린다. 결국 사내는 비가 와서 오늘은 파장하고 속옷장수 김 씨와 장기 한 판 하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고 만다. 고성만의 이번 시집의 시들은 대체로 이렇게 상황을 전개하고, 메시지는 독자가 직접 생각해보게 한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전언(傳言)’을 선호한다. 그는 어쩌면 시는 화두(話頭)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의문이 화두처럼 강렬한 것은 아니어서 시인의 의도가 애초에 화두였다고 확신하기는 힘들며, 간화선(看話禪)의 화두가 하나의 의문으로 집중되는 데 비해 이 시집의 시들이 던지는 화두는 여러 가지로 흩어지기 일쑤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갈래머리 아이의 옆자리에 앉고 싶었고 좀 더 커서는 빨강 털모자의 소녀를 짝사랑하였으나 이도 저도 실패한 후 어여쁜 딸을 낳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포기하고 살금살금 다가와 환히 볼 붉히는 아침 햇살이 탐났으나 죄가 될까 봐 죄로 갈까 봐 차마 훔치지 못하여서 막상 저지를 수 없어서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할수록 자꾸 멀어지는 달의 눈썹
—「갖고 싶은, 가질 수 없는」 전문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는 막연한 바람, 막연한 욕망 같은 것이 있었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이루어지기 힘든, 이루어지지 않아도 인생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그런 바람이었다. 이 시는 바로 그런 바람을 노래한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예쁜 갈래머리 아이의 옆자리에 앉고 싶었으나, 선생님은 다른 자리를 지정해주셨다. 좀더 커서는 빨강 털모자의 소녀를 짝사랑하였으나 고백하지도 못한 채 끝났다. 혼인한 후에는 예쁜 딸을 낳고 싶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어서 시인의 첫 아이는 아들이었다. 모두 포기한 후에 아침 햇살이 참 좋아서 햇살을 훔치고 싶었으나 “죄가 될까봐/ 죄로 갈까봐” 훔치지 못하였다. 결국 그것은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할수록/ 자꾸 멀어지는 달의 눈썹” 같은 것들이었다.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은 아주 잠시만 머무르는 ‘아침 햇살’이나 자꾸만 멀어지는 ‘달의 눈썹’과 같은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찾아간 친구네 집은 텅 빈 채 “우수수 부서지는 댓잎”(「옛집 마당은 하얗고」)만 남아 있다. 갈라파고스로 간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에게 시의 화자는 강아지 이야기를 한다. 이 땅의 사람들은 강아지를 너무도 사랑하여 “머지않아 강아지 전용 요양원도 생길 거래요”(「갈라파고스로 간 사람」)와 같은 이야기다. 갈라파고스로 간 사람도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할수록 멀어지는 ‘달의 눈썹’과 같은 사람일 것으로 짐작되는데, 시인은 오히려 “나, 멀리 있어도 항상 당신과 함께이니까요”(같은 시)라며 정반대로 말한다. 시인과 독자의 의사소통은 논리적인 대화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확산되는 이미지의 교환, 의문이 확산되는 화두의 교환으로 이루어진다.
평상심(平常心)이 시(詩)다
내가 요즘 꿈꾸는 것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평상시의 마음이 곧 도가 되게 하는 경지다.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마조록』은 평상심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道)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말라, 무엇을 물듦이라 하는가. 생사심으로 작위와 지향이 있게 되면 모두가 물듦이다. 그 도를 당장 알려고 하는가. 평상심(平常心)이 도이다. 무엇을 평상심이라고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으며, 취사(取捨)가 없고, 단상(斷常)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는 것이다.”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으며, 취사가 없고, 단상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는 것이 곧 평상심이다. 따라서 평상심은 쉽지만 어렵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물들기 이전의 마음이 평상심인데, 아무것도 조작하지 않으면 될 듯한데, 우리의 마음은 조작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서 조작하지 않는 평상심이 더 어려운 것이다.
얼굴에 매화가 피었다는 여자에게서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젊어서는 남자를 주무르고 늙어서는 음식을, 조금 더 늙어서는 말랑말랑해진 기다림을 주무른다는 그 여자의 남편은 외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먹은 것도 없이 자주 체하던 나는 죽은피를 빼기 위해 그 여자의 집에 들렀다 아직 이별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알지 못하던 시절 산동네 맨 꼭대기 그 집 앞에는 환한 별밭 뒤 언덕에는 새털구름 떼 손끝이 흘리는 냇물 분홍으로 내리는 눈
―「향기는 이별을 꿈꾼다」 부분
여자의 특기는 잘 주무르는 것이어서, 그녀는 젊어서는 남자들을 잘 주물러서 먹고살았고, 늙어서는 음식을 잘 주물러서 먹고 살았으며, 조금 더 늙어서는 말랑말랑해진 기다림을 주무르면서 살고 있는데, 여자의 남편은 외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화자는 먹은 것도 없이 자주 체하여서 잘 주무르거나 죽은 피를 빼서 체증을 낫게 했던 그녀를 찾아간다. “아직 이별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모두 이미지로만 엮여진다. 그녀는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서 달동네에서 살고 있어서, 그 덕분에 오히려 그 집 앞은 환한 별밭이었다. 언덕에는 새털구름 떼가 한창이었는데, “손끝이 흘리는 냇물”이나 “분홍으로 내리는 눈”은 이미지로만 다가온다. 식구가 적어서인지 풀이 자라기 시작한 마당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 “남편 없이 낳은 딸의 얼굴에 매화 꽃잎이 번졌다”라는 문장은 무슨 뜻일까? 매화처럼 하얗고 화사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슬픈 의미 같기도 하다. 시인의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여기까지이다. 조주 선사가 스승인 남전 선사에게 물었다. “도(道)가 무엇입니까?” 남전 선사는 당신의 스승인 마조 선사의 언어로 대답한다.
“평상심(平常心)이 도니라!” 나는 고성만 시인의 새 시집을 읽고 ‘가상의 고성만 시인’에게 물었다. “시란 무엇입니까?” “평상심이 곧 시입니다.” 이 결론은 비약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나는 고성만 시인의 이번 시집은 평상심시시(平常心是詩)를 시도한 시라고 감히 말한다. 여기서 평상심이란 시를 위해 조작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마음 자체이다. 이 태도로 시작에 임한다면, 시를 쓰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조작되지 않는 시심(詩心)을 받아 적는 것 자체가 시이기 때문에, 시심이 읽어주는 시를 그대로 받아적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시가 자동으로 생산되는 것은 아닌 것은 우리의 마음이 이미 조작에 길들여져 있어서, 조작된 마음을 덜어내는 것이 필요한 작업일 수 있다. 문제는 조작된 마음을 덜어내는 것 또한 조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해소하는 방법이 곧 ‘시를 사는 것’이다.
동명(차창룡 시인)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