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부터 / 배예빈
운동화 앞코에 단풍잎 한 장 떨어진다
시간의 지층을 떠돌던 공룡의 발자국이다
중생대로부터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단단하게 굳은 과거를 끌어안은 땅
그 위에 뿌린 내린 단풍나무는
퇴적된 기억을 양분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모든 풍경이 노을으로 잠기듯
적갈색의 시간으로 차오른 잎사귀,
돋아난 갈퀴로 잔해를 발굴하고
놀이터는 발자국으로 붉게 물든다
삐거덕거리며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시소가 흔들린다
벗겨진 페인트질처럼 흔적으로만 남을 뿐,
종종걸음으로 짧은 나날을 건넌
아이들의 손아귀에는 녹슨 쇠 냄새가 배어 있다
바닥으로 가라앉은 나뭇잎처럼
갈라진 땅에 발을 딛던 공룡의 앞발처럼
커다란 운석이 떨어지고
불과 흙과 먼지로 뒤엉키는 하늘,
공룡이 뻐근한 고개를 들어올리며 바라본
삶과 죽음의 낙차는 이토록 가파른 것
이곳을 지난 적 있는 이들의 발자국을 되감듯
땅은 감은 눈꺼풀처럼 조용하다
시간에 대해서는
오로지 음각과 양각으로만 말할 수 있다는 듯이
나는 오래전 멸종한 공룡처럼 발을 뻗는다
가을을 지나가고 있다
<가람이병기 시문학상 대학부문>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