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의 영남의병 중심......
▶ 2016년 8월 7일, TBC 8시뉴스에 방영한 기사 및 동영상 자료 임.
: 본 청장년구향회 회원이신 구본욱 교수가 팔공산이 의병활동 중심이였다는 내용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하는 자료이니 청장년구향회 회원들의 많은 시청 부탁드리며, 해당 문내에
많은 홍보 부탁 드립니다.
(아래 동영상은 TBC에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무단 복재 삼가 해 주시기 바랍니다.)
< TBC 8시뉴스에 방영된 팔공산 의병활동 관련 동영상 >
< 뉴스 기사 내용 >
이 시간에 임진왜란 당시 대구의 모습 전해드렸는데요. 당시 팔공산이 영남 의병활동의 중심지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전국의 의병장이 모인 회맹이 두차례나 팔공산에서 있었고 유성룡과 사명대사가 함께 한 기록도 있습니다.
정병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임란 발발 직후 관군은 동화사에 진을 치고 의병들은 활동의 근거지인 의병소를 부인사에 두었다는 다양한 기록들이 발굴됐습니다.
또 임란 발발 4년 뒤인 1596년 3월 3일 도체찰사 유성룡의 지시로 전국 70곳의 의병장 등 485명이 공산성에서 모인 1차 공산회맹에 대한 기록들도 최근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구본욱/대구가톨릭대 교수]
영남지역의 의병장들을 모을 수 있는 회맹이었으나 결국은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의 의병장들까지 모여 전국적인 회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팔공산에는 사명당이 바로 전 해 겨울부터 공산성 수축을 위해 와 있었고 사명당이 유성룡에게 지은 시 등의 기록들로 보아 이들이 모두 회맹 때 팔공산에 있었음을 알 수 습니다.
2차 팔공산회맹도 6개월 뒤 열렸는데 이 때는 의병장들만의 모임으로 16개 지역에서 105명의 의병장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정해은/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1차 회맹에서는 관에서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2차회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의병장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회맹을 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이러한 팔공산 회맹은 조선과 명이 왜의 요청으로 강화사절단 파견을 논의하던 시기였지만 왜가 다시 침략할 것을 염려해 이뤄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같은 기록들은 팔공산 회맹에 참여한 의병장들이 이후 울산 서생포전투, 정유재란 때 화왕성 회맹 참여로 이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어 팔공산이 임란 당시 의병과 관군,승병이 모두 집결한 군사중심지였음을 보여줍니다.
tbc 정병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