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프 와
민 주 주 의 |
| 서기 2000년은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제일 많이 UN에 모여 새 천년의 평화와 공존을 공약하고 평화롭게 살려는 인류의 염원을 세계만방에 보여주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어느 금요일 오후에 긴장된 한 무리의 동양사람들이 백인 보디가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신축한 2층 골프매장으로 올라왔다. 새로 들어온 Neil이 마침 바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돕기 시작했다. 한 10여분이 지났을까. 책상 위에는 한 더미의 우드와 아이언 셋들이 질서 없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런 세일은 아무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이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돕던 손님을 대하면서 그 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그때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나의 시선을 쫓으며 나중에는 손짓을 하며 그쪽으로 와주기를 간청했다. 나는 손님을 재촉해서 세일을 마치고 그쪽으로 가보았다.
그들 무리 중에 제일 검고 단단하게 말라보이고 키가 170cm 되어 보이는 사람에게 안내되었지만 고개 하번 까닥하지 않는 자세로 나를 쳐다봤다. 그의 한쪽 눈이 더 커 보였고 그 눈은 전혀 깜박하지 않았다. 나는 그 분을 안 보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눈만 쳐다보며 골프채를 골라주기 시작했다. 그는 전혀 영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옆에 있는 보좌관에게 통역을 시켜가면서 하는 일이었지만 그 사람은 참을성과 관대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리가 갖고 있었던 아담스의 우드채를 거의 원했고 아이언은 주로 일제를 찾고 있었다.
캘리웨이나 테일러 메이드 같은 메이저 브랜드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면 샘플로 전시한 골프채를 손수 들어내어 책상 위에 쌓아 놓곤 하는데 수행원 중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집어다 놓은 골프채를 4개의 백에다 쑤셔 넣다시피 하고 계산을 해보니 8천여달러가 넘었다. 그는 캄보디아의 ‘훈센’수상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훈센 수상은 전날처럼 갑자기 같은 수행원을 대동하고 다시 찾아왔다. 전날의 태도와는 달리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골프채를 다시 고르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전날에 보여주었던 전문성, 즉 각 회사의 제품을 그 특징과 어떤 스윙에 적합한가를 저울에 올려놓고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애쓴 것을 매우 가상하게 여겼던 것 같다. 많은 질문을 해가면서 골라놓은 골프채는 또다시 어제와 같은 액수였다.
거래가 거의 끝날 무렵 나에게 다정함을 보여주었던 그에게 사인을 해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더니 선뜻 내 명함 뒤에 해주었다. 그 골프채들이 지금 누구의 손에 들어가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의 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애쓰는 아주 가까운 그의 측근들에게 가 있을 법하다.
그 나라는 남자만 골프를 치는지 여자 것은 한 자루도 사지를 않았다. “골프가 가는 곳은 민주주의도 따라간다”는 잭 니콜라스의 명언을 생각하며 그 나라에도 민주주의가 활짝 피워지기를 기원해 본다. 권력과 돈 아무리 남용해도 풀리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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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 미주 지역 신문 「연ㆍ재ㆍ기ㆍ고」 一 |
감 출
수
없 는
부 끄 러 움 |
| 어느 해인가 몇 년전 초여름은 무던히도 찌는 더위가 몇 일이나 계속되었다. 부동산 세일즈맨인 토마스가 나이든 부부를 나에게 소개 시켜준 것이 이때 쯤이었을 게다. 남편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루스는 환갑이 넘어 보이는데도 그 나이의 유대인 부인들이 하는 얼굴 땡기기 등 몸 관리를 꽤나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늦게 시작한 듯한 골프에 넘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남들이 다 갖고 있는 신형 칼라웨이 드라이버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녀가 네트에 열심히 공을 치면서 무언가 불평을 하자 토마스와 남편은 나를 불러 놓고 이 골프샵에서 제일 좋고 비싼 드리이버를 보여주기를 간청했다.
그때 동양인에게 인기가 있던 $2,500짜리 혼마 Five Star 드라이버를 갖고 와서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녀는 신기한 듯이 이것을 들여다 보고 나서 남편의 권유에 못이기는 듯이 이 비싼 혼마 드라이버를 손에 들고 고무티에 볼을 올려놓은 다음 스윙할 자세를 취했다.
토마스는 내가 바쁘게 세일즈를 하는 동안 루스의 남편은 맨하탄에 몇 개의 상업용 부동산을 갖고 있는 큰 부자라고 귀띔해 주었다. 맨하탄에서 일하는 동안 수많은 유대인 갑부를 보아왔는데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부자일까 하고 의심을 갖게 하는 보통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부의 효과를 과시할 수 없는 것은 자기보다 더 많은 부(富)를 축적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들 사회에서는 매우 어리석은 짓에 속한다고 들었다. 이 사람들도 골프만을 위해서 사는 것처럼 야단을 떠는 것은 우리 주위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새로 모델이 나올 때마다 혹은 남이 먼저 갖기 전에 제일 먼저 소유하고 싶어 하는 샘플이라도 원가의 몇 배를 주고라도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늘 나를 바쁘게 해주었다.
뉴욕시는 1920년대서부터 세계에서 가장 번잡하고 유명한 도시로 변모하게 한 것은 한 사람의 천재적인 비전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다면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로버트 모세라는 분은 1920년 초반부터 1950년 중반까지 뉴욕 파크 수퍼인텐던트로 있으면서 East River Drive를 빼놓고 디간, 반윅스, 세리단, 부르크너, 프로스펙트, 화이트스톤, 쓰로쓰넥, 크로스, 부롱스, 부르클린, 나서, 스테이튼, 롱아일랜드 등의 모든 익스프레스 웨이, 할렘 리버 드라이브, 웨스트 사이드 하이웨이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링컨 센터, UN본부, 파과디아 공항, 존스 비치 등 뉴욕의 주요 공사를 짓는데 핵심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무모한 배짱과 권력, 아집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뉴욕은 아주 다른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로버트 모세와 프랑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민주당의 보금자리가 된 뉴욕과 뉴욕주의 정치 역할, 하나의 천대받던 아이리쉬 사람들이 1920년초에 처음으로 Al Smith란 미국의 주역으로 변하는 모습, 또 뉴욕시와 그 근방 위성도시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독자에게Robert A. Caro 가 쓴 The Power Broker 를 꼭 사서 보도록 권하고 싶다.
뉴욕시는 하루에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하늘과 물과 다리 터널을 이용해서 드록 나간다고 한다. 내가 일하던 골프샵은 세계 각 지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마치 골프의 메카를 찾아 들 듯이 방문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1층과 2층으로 증축한 후에 매장만 15,000Sq 넘으니까 맨하탄에서는 이보다 큰 것은 없다.
국가원수들 뿐만아니라 매스컴을 타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질 않았다. 6년만의 세월속에 특히 기억 남는 일들을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서 천둥과 번개, 그리고 소낙비가 질펀한 이 한밤을 북쪽에 머리를 두고 생각 잠겨 쓴다.
루스는 스탠스를 이리저리 옮기고 히프를 좌우로 몇 번씩 움직이기는 하지만 스윙하기를 꺼렸다. 화장을 한 이마위로 땀방울이 식어 나왔다. 모두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의 변화에 적잖은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윙하려는 자세를 풀어버리고 허리를 펴더니 그 비싼 혼마 드라이버를 내손에 넘겨주며 하는 말이 “나는 이 비싼 드리아버를 쓸 수 없어. 만에 하나라도 내가 공을 잘 맞추지 못하면 나는 그 부끄러움을 하늘에다 감출 수 없을거야. 용서해줘 하워드.”
나는 갑자기 하나의 화살이 내 머리속을 뚫고 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 “부끄러움을 하늘에 감출 수 없을거야”. 그후 나는 가끔 입으로 뇌어보는 말이 되었다.
이 분들이 $2,500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 액수일 수도 있다. 하늘에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은 소탈하고 자유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가 보다.
골프채를 삽자루 쥐듯이 잡으면서 4~5,000달러를 쉽게 쓰면서 “이왕 장만하는데 좋은 것(제일 좋은 것)으로 사야지요” 하는 사람도 많은 세상에 시원한 산소 같은 루스를 가끔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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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 미주 지역 신문 「연ㆍ재ㆍ기ㆍ고」 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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