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전동차 시승기
(70평생에 처음 지공족이 되다)
행암리 출발 아침 8시 6분,
병천서 새로난 21호 국도를 달렸다.
취암산 터널 직전의 주유소를 처음 들렸다.
<가득>에 10만원.
요새는 기름값도 보통이 아니다.
더군다나 문병 다닌답시고
매일 같이 안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한번 다녀오면 기름값만 3만원이 든다.
게다가 왕복 고속도로비가 1만원
주차료에 나 점심 먹는돈에…
계약은 했지만 방송 날자가 잡히지 않아 초조해 하는
김지수의 얼굴도 떠 올랐다.
<그래 어떻게든 아껴보자>
원성동 88비들기 아파트 못미쳐서
대로변에 차를 세웠다. 공짜라서 거기다가 차를 세운다.
(가게도 있고 하니 네비게이션을 떼어가진 못하겠지)
시간은 8시 40분
거기서부터 천안역까지 걸었다.
우리집에서 500미터 떨어진 낙수암까지가 10분인데
천안역까지 딱 20분이 걸렸다.
(1키로구나 올때도 걸으면 2키로…)
지공족(지하철공짜족)이 되어 전철표를 끊고보니
마악 출발하려는 차가 보였다.
허겁지겁 다려갔더니 층계 한단을 두고 출발해 버렸다.
추워서 다시 대합실로 들어와 집찰구 창밑에서
이상의 일기를 메모했다.
주차장에 세워 놓고 라이트를 끄지 않는다던지
요즘 깜박거리는 빈도가 너무 잦아서
아예 노트를 들고 다니며 메모를 하기로 했다.
(치매 예방을 겸해서)
그런데 따르릉
받아보니 어떤 고마운 아주머니의 제보였다
주차해놓은 차에 라이트를 끄지 않았댄다.
엠병 그래서 노트를 들고 다니는건데….
그동안 병원에서도 두차례
그리고 예술인 아파트에서도 한차례
똑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택시를 타고 가서 라이트를 끄고와?
왕복 6시간 …
저녁에 세워놓고 아침까지 간적도 있는지라
에라 그냥 가자 했다.
21분
차를 탔다 노약자석
시간이 문제이지 편안히 안산까지 갈수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구보니 눈에 뜨이는게 모두 노인이었다.
(아하 병든 노인은 병원에 건강한 노인은 지하철에..)
새삼 굉장한 진리라도 터득한거 같았다.
MP3을 귀에 꽂았다.
<노인네라도 그런걸 꽂고 다니는거 멋있잖아요?>
김지수가 하던 말이 생각 나서 속으로 피식 했다.
달리는 전동차라서 그런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찬넬에선가
<우리는 농아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농아는 아무런 불편없이
핸드폰으로 말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타인과 소통할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는거죠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장애자라고 안그러듯이
이 농아도 장애자가 아닙니다>
상황을 내 나름대로 재구성해봤다.
농아가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어허? 왜 필요 하지? 아하 문자를 전송하는구나)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음식점에 가면 먹고싶은 음식을 문자로 찍어서
종업원에게 보여주고
택시를 타면 역시 문자로 찍어서
기사한테 보여주고…말을 못해도 그 나름으로
불편없이(?)의사를 소통할수 있다는것이다.
나는 조만간 그런 핸드폰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외국어를 몰라도 우리말만 입력해서 변환시키면
바로 그나라 언어가 되는…
장애자나 비장애인들이 똑같이 쓸수 있는 언어 소통기…
단 화면이 커서 글자도 크게 보여야
옆사람도 볼수 있겠지
말이 필요 없는 사회…
(참 조용하겠구나)
분명히 완행인줄 알고 탔는데 급행이란다
그럼 금정역에 서나?
수원을 지나는지 안 지나는지도 모르겠고
만만한게 둘째라 전화를 걸었다.
급행은 금정에 안선댄다. 이건 전철 당국이 잘못하는거 같다.
안산선은 금정에서 갈리니까
급행도 거기선 서야 하는게 아닌가?
어쨌던 병점에서 내렸다.
언젠가 둘째한테 병점까지 오는 전철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다.
몇분 기다리지 않아서
천안발 청량리행 완행이 왔다.
10시 15분
금정역은 수원과 군포를 지나서 였다.
내리니 반대차선에 전동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안산갈려면 저걸 탑니까?>
어느 할머니에게 물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대답 했다.
<아뇨 저기루 올라가서요 저쪽으로 다시 내려 오셔야 돼요>
(아하 잘됐군 소변도 마려운데)
요즘은 2시간 마다 꼭 소변을 봐야 한다.
그게 챙피해서 조카벌 되는 윤승섭 교장에게 얘기 했더니
<그건 정상이야 난 한시간에 한번은 가야혀>
그 윤교장이 며칠전 혈압 때문에 목욕탕에서 사망 했다.
5미터리는 글자와 함께 화장실 표지가 있었다
그러나 올라와보니 개찰구를 통과 해야만 했다.
(에라 참구 가자)
병원에 들렸더니 2층 재활의학과에 갔단다.
이제 폐는 좋아 졌지만
그동안 누어있다보니
아렛도리에 힘이없어 물리치료를 받아야 된단다
아직도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하지만 그게 어딘가?
두달전 중환자실에 입원 했을땐 지옥이더니
이젠 좀 살 것 같다.
<나 가야돼 차에 불 켜놓고 왔어>
<아이구 정신이 없어서..>
집사람은 그게 꼭 자기 탓인것처럼 미안해 했다.
(아냐 나이 때문이야 70이면 많이 살았지)
다시 고잔역으로 오다보니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걸어 가는 할머니가 눈에 띄였다.
요샌 왜 저런 노인네들만 눈에 뜨이지?
그러면서도 그나마도 부러웠다.
집사람이 저렇게라도 걸을수 있을까?
그 할머니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고잔역앞엔 또 다른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어머니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현수막.
비보이 땜에 집을 나가?
허어 그것참….
아무튼 <김점순>이가 빨리 돌아와서
다음번에 내가 올땐 저 현수막이 없었으면 한다.
직산 다 와서 창밖을 내다 보다가
<아> 하면서 카메라를 들이 댔다.
<대동타일>회사가 거기 있었다.
병천 <대동필름>의 문경섭 사장 아버지가 한다는 공장이다.
집을 증축할 때 문사장이
거실과 주방에 깔도록 기증한 타일이 바로 저기서 나온것이다.
(아이고 문사장이랑 밥한끼 먹어야 겠는데…)
천안역에 도착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택시를 타고 가?
아냐 어차피 그 옆에있는 카센타 신세를 져야지
천안 역앞 지하도에 들어서니 배가 고팠다.
그러구보니 아침도 안먹고…
에라 급할수록 돌아가랬지
김밥 한줄을 시켰다.
다 먹을려다가 세개를 남겼다.
(소식 해야지 소식)
값은 1000원...세상에 그렇게 싼 아점(아침 점심)은
처음 먹어 봤다.
가기서 지하도를 빠져나와 차 있는데까지
유유히(?) 걸었다.
결국 오늘 하루 2키로를 채웠구나
차는 멀쩡했다
<괴롭혀>가 오늘은 얌전하게 <겔로퍼>가 되어 있었다.
두 눈에 불을 켠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