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土 일간에 인성이 왕하여 박식하며, 월 상관에 申, 巳 형살이 되어 그 기상이 범상치 않았다.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사주이다. 사람의 운명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던 서당의 훈장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길을 가다가 일본 헌병 장교가 우리 백성을 때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김구 선생은 나라 잃은 울분이 북받쳐 그 일본 장교를 때려 죽여 버렸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일본인 장교를 죽여 버렸으니까 살기 위해선 산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절에 숨어서 사주 와 주역을 익혔는데, 자기 자신의 팔자를 보니 평생 빌어먹을 상이었더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스스로 살 가치가 없다고는 목을 매러 뒷산으로 올라갔다. 소나무에 목을 걸고 받침대로 있던 돌멩이를 차 버리려고 하는 순간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는 글귀가 하나 있었다. 바로 관상이 불여심상(不如心狀)이 그것 이었다. 이말은 관상이나 사주팔자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상보다는 못하다는 얘기이다. 거기서 김구 선생은 깨달음을 얻었다. 비록 평생을 빌어먹을 팔자를 타고 났지만 이 시간부터 마음을 고쳐 잡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을 해야 되겠다는 작심으로 상해로 갔던 것이다. 그곳으로 가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끄는 임시 정부를 찾아가 '내가 문지기를 해도 좋으니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을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김구 선생은 많은 애국 운동을 하셨다. 해방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돈은 벌어 보질 못했다.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기에는 국내의 애국지사들이 보내 준 돈 모두를 독립운동의 자금으로만 썼었고 그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평생을 빌어먹은 것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백범 김구 선생은 한국 현대사에 손꼽히는 애국자 중의 하나이다. 그건 자기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에 돈은 벌지 못했지만 운명을 바꾼 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평생 남의 집에 빌어먹은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