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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진 생각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그밖의 다른 것들은 단지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불어 가는 바람이 쓰는 일기에 불과할 뿐이다.
* 자신의 집에서도 여행자처럼 살라. 산책길에 주운 마른 나뭇잎이 바로 우리가 여행에서 찾고자 했던 그 무엇이 아닌가.
여행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던가. 자신이 속한 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이상적인 나라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 나는 숲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의 중요한 이유로 숲을 떠났다. 내 앞에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삶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그래서 숲에서의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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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정해진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해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숲 속에 살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안돼
내 오두막 문간에서 호수까지
내 발자국으로 인해 길이 났다.
이 세상의 큰길은 얼마나 닳고 먼지투성이며, 전통과 타협의 바퀴 자국은 또 얼마나 깊이 패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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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어 있었기에 마를 수도 있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가 얼기설기 만든 집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느끼게 해준
폭풍우를 만난 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 나는 선실에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인생의 돛대 앞에서, 갑판 위에 있기를 원했다. 이제 갑판 아래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 배우지 못한 자의 지식은 마치 울창한 숲과 같다. 생명력은 넘치지만 이끼와 버섯 따위에 뒤덮여 쓰임새가 없이 버려져 있다. 반면에 과학자의 지식은 널리 쓰이도록 마당에 내다 놓은 목재와 같다. 잘하면 이곳저곳에 쓸모가 있을 수도 있으나 쉽게 썩어 버리는 단점이 있다.
* 주저하지 말고 시도해 보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시도하십시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의혹은 품고 있지 마십시오. 아무도 해줄 수 없는 일을 스스로에게 해주십시오. 그 밖의 다른 일은 모두 잊어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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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성실하고 믿음이 가는 몇 않되는 영혼의 편이다. 자연이 그런 영혼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인가와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에서 홀로 사는 이를 보러 간다. 뜰에는 그의 양식이 될 딸기와 토마도가 자라고,
산기슭에서는 햇빛이 즐거이 몸을 기대고 있다.
그럴때마다 신들의 공평무사한 자비를 직접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 이 길로 갈 것인가, 저 길로 갈 것인가는 무시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저마다 걷다보면 좋은 길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부주의해서, 또는 어리석은 나머지 좋지못한 길을 선택하고 만다 분명 세상에는 우리가 한 번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꼭 걸어 보았으면 하고 바라는 오솔길처럼
이상적인 내면 세계의 어떤 길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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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도덕적이 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자신을 속이게 될 것입니다.
도덕적인 것 이상의 목표를 가지십시오.
그저 좋은 사람이 되지는 마십시오.
무언가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십시오.
모든 우화에는 교훈이 들어 있지만,
순진한 이들은 이야기 자체만 즐길뿐 입니다.
*
당신과 빛사이를 그 무엇도 가로막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을 형제로써만 존중하십시오.
천상의 도시를 방문할 때는 누구의 소개 편지도 필요없습니다.
문을 두드리며 곧장 신을 만나기를 청하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당신 곁에 동행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 세상에 홀로임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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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진정, 자신의 허리띠를 잡고
스스로를 들어올릴 수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를 넓혀서- 사실 이것이 더 나은 길입니다.
본성에는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이 없으니까요.
내면에 있는 허리띠를 끊어 버릴 수는 있습니다.
이렇듯 일이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하나의 수단이지만,
더 높은 차원의 의미로 보면 정신적인 수행에 다름 아닙니다.
만일 분명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높은 목적지로 향하는 수단이라면,
어떤 일이든 하찮거나 지겨울 이유가 무엇일까요?
차라리 그것은 우리가 딛고 올라갈 사다리,
우리의 존재가 탈바꿈될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中에서"-
▲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책표지 ⓒ 2005 리브로
여기 아주 웃기고 또 괴짜 같은 사람이 있다. 마른 나뭇잎과 대화 할 수 있고 또 그것들에 대해 강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 그러나 그것을 누가 들어 줄 수 있겠냐고 말하면서도 금세 나뭇잎 친구들에게 무례한 말을 했다고 미안해하는 사람. 설탕 같은 것은 상점에서 사다 쓸 수 있는데도 사탕나무 숲을 다니면서 나무 둥치에 칼집을 내서 수액을 모으고, 그것을 끓여서 굳이 설탕을 만들어 먹는 사람.
또 누군가 병아리들이 화단을 파헤쳐 놓는다고 불평하면 병아리들이 못 들어오도록 울타리를 치는 게 아니라 화단과 병아리들을 보살피기 위해 헝겊으로 작은 신발을 만들어 병아리 발에 씌워주는 사람. 콩밭을 일구려는데 두더지가 덫에 걸려 있을 경우 그 두더지를 놓아주며 원래 주인은 두더지였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사람.
웃기고 괴짜 같은 사람이지만 달리 보면 자연주의자 같고 또 염세주의자 같은 사람이다. 세상과 좀체 어울리지 못할 것 같고 오직 자연과만 그리고 산새와만 어울리는 사람 같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조화도 또 영향력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면 어떻겠는가. 생뚱맞은 그를 달리 보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는 그렇게 살 때만 해도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살았던 삶과 그가 쓴 책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영국으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던 마하트마 간디도, 시내버스 안에서 흑인차별을 보고서 승차 거부 운동을 펼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이끌었던 넬슨 만델라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비폭력 시위를 벌였던 사람들과 1970년대 이후 핵무기에 반대한 시위자들도 그리고 미국에서 자연보호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도 모두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른바 그들은 이름만 대도 금세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적잖은 영향력을 펼쳤던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자연주의자 같고 세상을 등진 염세주의자 같지만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유명한 사상가들과 혁명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그는 누구인가. 그는 다름 아닌 헨리 데이빗 소로우다.
그는 오래 전에 <월든>과 <시민의 불복종> 등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또 다른 편지글을 써 놓은 게 있다고 알려졌다. 신학자인 해리슨 블레이크와 주고받은 편지가 그것인데 그 편지들을 한데 묶어서 최근에 책으로 엮은 게 나왔다. 바로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류시화 옮김·오래된 미래·2005)가 그것이다.
소로우에게 자연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었고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한 종도 아니었다. 자연 속에서 태양의 빛과 열의 혜택은 모두에게 같듯이 사람과 동물은 대지 위에서 평등했다.(92쪽)
우리는 평생 동안 몸에 맞지도 않는, 숙명적인 코트 아래 눌려 숨이 막힐 듯 살아갑니다. 코트를 우리의 직업이나 지위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들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모습으로 대하는 일은 얼마나 드문 일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겉치장에 의존하고 또 그것을 묵인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105쪽)
어떤 사물이 우리의 시야로부터 가려져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시선이 지나가는 방향에서 어긋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눈과 마음을 그 사물에다 온전히 쏟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얼마나 멀리 그리고 넓게, 또는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오래 들여다봐야 할지를 모른다.(130쪽)
이 책에는 소로우가 2년 2개월 동안 살았던 월든 숲 생활을 정리하고 콩코드 시내로 내려와 6개월 뒤인 1848년 봄부터 13년 동안이나 블레이크와 주고받은 편지가 들어 있다. 처음 편지를 주고받을 때만 해도 소로우가 31살이었고 블레이크는 32살이었는데 그때로부터 소로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50통에 달하는 편지를 서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블레이크가 쓴 편지 한 통과 소로우가 답장으로 쓴 스물일곱 통에 달하는 편지 내용만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이 편지 속에는 자연주의자이자 방랑자, 강연자이자 토지 측량사, 사회비평가이자 실용주의 철학자, 괴짜 예술가이자 다정한 친구, 그리고 진리를 걷는 구도자 등 소로우가 지닌 모든 면들을 엿보는 데 충분하다.
더욱이 이 책은 소로우가 각각 써놓은 편지들 다음에 옮긴이가 덧붙여 놓은 해설도 담겨 있다. 거기에는 소로우가 답장으로 써 놓은 글에 잘 어울리는 시라든지 수필 내용이 각각 담겨 있다. 그것들을 따라 읽어나가면 소로우를 읽기가 한결 쉽다. 또 그 읽어나가는 맛도 무지 쏠쏠하다.
그 편지 가운데는 소로우가 인디언 세계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느낌이 참 신선하고 신성했다고 밝힌다. 한번은 소로우가 메인 주로 여행을 갔는데 8킬로미터나 되는 늪지를 걸어가야만 했다. 그런데도 소로우는 지치지 않았는데 그건 인디언 지성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험한 여행길을 다녀와서는 자신이 여태껏 품어 왔던 경계선들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밝힌다. 이른바 인디언 종족을 향해 금을 긋고 살아왔던 작고 얕은 시야들이 이제 눈을 뜨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 세계가 더 크고 더 진실 되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디언이 살고 있는 새로운 세상으로 떠난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버린 땅에서 시작합니다. 인간의 새로운 재능을 알아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우리를 감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의 존재를 확장시킵니다. 인디언은 훨씬 더 신성합니다. 인디언은 숲 속에서의 삶을 멋지게 발견해 내며, 백인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을 지켜보는 동안 나의 포용력과 믿음이 커지는 걸 느낍니다. 예전에는 야만적으로 보이던 부분들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162쪽)
<오마이뉴스-권성현 기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
(Henry Davis Thoreau, 1817~1862)
나의 재산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이기 때문이다.
Simple, Simple, Simple!
단순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세 가지로 줄이라!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하루 세끼 먹는 대신 하루 한 끼만 먹으라.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은 끝내 배우지 않을 것인가? 자기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좀 더 고귀한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 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지금까지 발견 못했던 천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여행하다 지칠 때면 우리는 짐을 내려놓고 길가에서 쉽니다. 그러니 삶의 무게에 지칠 때면, 스스로 지고 온 거짓의 짐을 내려놓고, 일찍이 느껴 보지 못한 상쾌함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법칙에 따르도록 하십시오. 그것에 저항하면서 자신을 지치게 하지 마십시오. 육체를 쉴 때 우리는 육체를 지탱해 온 힘을 멈춥니다. 그리고 대지의 무릎 위에 편안히 눕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신을 쉬게 할 때에도 우리는 위대한 정신 위에 누워야 합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s Thoreau, 1817~1862)
서양의 노자老子로 불리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교직생활과 잡지 기고 등을 하다 1845년에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기 시작하여, 1847년 9월까지 그곳에서 홀로 지냈다. 이 2년간의 사색과 성찰을 기록한 책『월든Walden』에는 자연과의 교감과 문명의 어리석음 등 진정한 자유인, 자연인으로 살고자 한 소로우의 통찰력이 가득 담겨 있다. 같은 시기에 소로우는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 납부를 거부하여 감옥에 수감된 사건을 계기로, 국가가 불의한 일을 시민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국가의 강요를 시민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는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시민의 불복종)』을 발표하였다. 생전에는 사람들의 냉대와 무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소로우의 사상은 톨스토이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등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까지도 시민운동, 환경운동의 토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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