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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호텔의 수영장, 입수전에 서로 번갈라 한장씩 기념으로
찍었는데 석우가 내 사진은 셔터를 흔들려 석우님 모습을 대신 삽입
주인 허락도 없이 탑재하여 초상권 침해 항의가 걱정되네>
1월 29일 시엠 립
아침 6시 30분 목욕 가운을 걸치고 옆방 석우방으로 갔다
영화에서 서양배우가 까운을 걸치고 있는 모습은 참 멋있더니
작은 키에 까운을 걸치니 마치 옛날 촌노인 흰두루마기 입는 것
처럼 까운자락이 발등에 치렁치렁하니 폼이 영아니었다.
모델이 좋으면 폼나게 한번 재 본건데, 스몰 사이즈는 없나?
그러나 엘리베이트를 타고 1층 로비를 거쳐 수영장엘 가야하니
멋을 따질 여지가 없는 일이다.
준비운동을 국민체조로 한동작을 셋둘 넷둘까지 하고 뜀뛰기는
줄없는 줄넘기로 200번을 하고 입수를 하였다. 프랑스인 노부부가
수영을 하면서 준비운동 국민체조가 신기했던지 유심히 처다본다.
아무튼 평영과 배영을 혼합하여 최대한 짧은 시간에 운동량을
늘리려고 쉬지 않고 왕복을 하고 나오니 온몸이 가뿐하게 풀렸다.
이렇게 좋은 수영을 이틀이나 못했으니 아깝다.
오늘은 톤레샵 호수로 간다
아침을 먹고 짐을 챙기는데 하드백의 작크가 고장을 이르켜
애를 먹었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실갱이를 하는 것을 본
광춘이가 달려 들었으나 허사였다. 할 수없이 가방에 달려있는
맬빵으로 내용물을 대각선으로 얽어매 고정을 하고
뚜껑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양쪽 자크를 당겨 응급조치를 해 놓았다.
그 와중에 전화벨이 울려 받으니 정애가 가방이 안열린다고 와보란다.
내 가방도 못고치는 주제에 남의 가방 고치러 뛰어갔다.
비빌번호가 틀려 영 열리지 않으니 이런 낭패가 없었다.
로비에서 정애 가방은 솜씨좋은 프론트 아저씨가 비밀번호를
알아내 해결하고 내 가방은 라영휘가 호텔에서 선물로 준 자기의
여름용 머플러로 가운데를 질끈 동여매 주어 임시 방편 해결을
하였으나 도둑이 많다는데 걱정이 되어 현지 한국인 가이드에게
포장끈을 구해 달라고 하니 "웬 쇼핑을 자크가 미어 터지도록 했습니까?
여기는 포장끈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나란데......." 하면서 난색이다.
여행도 자주 해봐야지 이런 황당한 일이 없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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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레샵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평야의 논농사 우기에는 이곳이 모두
호수로 변해 가라 앉은 침전물이 모두 거름이 된다고 한다>
엊저녁 호텔로비 코너가게에서 건전지 2세트를 샀는데 6달러를
달라고 해서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디지털 카메가라 성능이
정상이 되었다. 싼게 비지떡이라고 진즉 좋은 것을 살걸
톤레샵 호수는 크메르인들의 일상생활의 단면을 볼수 있는 곳이다.
캄보디아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길이가 160km 폭이 36km로
우기 때는 호수의 크기가 건기인 지금의 3배크기로 넓어지는
동남아 최대의 담수호로서 담수어족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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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로 가는 길가에 있는 가옥들>
위 사진이 이곳 사람들이 사는 집이다.
우리나라 원두막 모양을 하고 있다.
아마 추위가 없고, 태풍이 없어
이런 집으로도 생존이 가능한가 보다
우기 때는 네기등을 들고 이사를 한다고 한다
생존이 급박해 환경문제는 생각할 겨를도 없어
주변은 온통 쓰레기 천지이고
그러나 어떤 집 앞에는 꽃밭도 있다.
우기 때는 곧 이사를 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도 꽃씨를 뿌리는 주인의 여유로움이
문명인을 자처하는 우리 눈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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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입구 가난한 수상가옥 귀통이에서 설거지를 하는 여인>
승마를 하듯 요동치며 달리던 버스가 멈추고
우리는 버스에 내려 나루터까지 걸었다.
웬 고약한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담수어 생선으로 젓갈 삭이는 냄새라니 더욱 속이 뒤집힌다.
뱃전의 물은 시궁창이 되어있고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수상가옥의 아낙은 그물에 설거지를 한다.
크리스탈처럼 맑은 물에 옥빛을 띤 호수를 상상했다면 큰나큰 오산이다
대절한 배에 올랐는데 비좁은 틈새를 빠지느라 삿대질하는 아낙이
애를 쓴다. 우리 배(위사진)가까이 수상가옥에 서너살 꼬맹이가
물끄러미 처다보고 있어 주머니에 있는 과자를 내밀었더니
얻어 먹기에 이골이 났는지 사양도 않고 미소를 지으며 낼름 받아간다.
일행중 누군가가 과자를 더 주었다.
언제나 우아한 혜성이가 비위가 제일 약한지
이 냄새를 못 견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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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배의 선장과 삿대군이 모자 지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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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반듯한 수상가옥을 대개가 관공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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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초등학교 배를 저어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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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촌 : 선상 카페의 모습, 선상파출소, 선상조선소, 선상가게 등 일상에
필요한 편의시설들이 모두 선상에 있다>
우리는 어떤 선상까페에 들려 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 음료수를 시키고 라영휘가 새우찜을 안주로 샀다
조금전 냄새와 바로 아래 흙탕물을에서 잡았을 새우라
좀 꺼림직했지만 맥주에 가지고 온 소주를 타서 한잔씩하면서
홍수가 도도한 수평선 아스라한 톱레샵 호수를 구경했다.
호수 가운데의 물도 우리나라에 홍수가 났을 때의 흙탕물처럼
흙물인데 중금속이 섞이지 않는 물이라 위생에는 괜찮다나
수평선 노을에 물든 일몰은 장관이란데 보지못함이 안타깝다.
중국계 상인들, 보트피플이라는 베트남계 빈민들, 호수가에서 그물로
고기를 잡는 어부들, 배에 물건을 싣고 팔러다니는 아낙들, 노를 저어
학교가는 학생들, 이 수상촌은 캄보디아인의 생생한
삶을 잘 엿볼수 있는 좋은 생활문화적인 공간이다.
아래층 기념품가게, 양식장 수족관 등을 구경하고
우리 배에 올라 호수를 빠져 나왔다.
비위 약한 혜성이는 아예 수건으로 방독면처럼 중무장을 하고
우리 일행은 고달픈 인종의 삶이의 냄새가 묻어나는
나루터에 배를 대고 언제 다시 볼 줄 모르는
톤레샵 호수에 한족각의 추억만을 띄워 둔 체
아쉬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라 시엠립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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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시엠립에서의 쇼핑>
톤레샵 호수에서 40여분을 달려서 시엠립에 돌아왔다.
호텔은 첵크아웃 되어 점심을 먹은 후 쇼핑을 했다.
이곳은 보석이 많이 난다고 한다. 진주, 루비 사파이어 등의
보석과 암 예방에 좋다는 뽕나무 상황버섯
천연고무 백%인 라텍스베개 등이 특산품이다.
보석 알맹이는 싸지만 한국에 가서 세팅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잘 생각해서 구입하라고 여자분들이 귀뜸을 해준다.
비용 추가 때문에 쾌청한 여행 분위기가 잠시 먹그름이 드리웠다.
처음 계약 때 현지가이드 봉사료 포함 여부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
여행 설명회 유인물에 불포함이란 말이 있었다고 하나 기억으로는
예약을 파기 할때 날짜에 따라 50%감하고 하는 것 밖에 없었는데
봉사료가 웬만해야지 현지한국가이드, 당사국여자가이드
운전수, 조수등 모두 4명인데 장소가 바뀔 때마다 새 사람들이니
3차례에 걸쳐 봉사료를 지급햐야 하고 우리나라에서
15명이 못된다는 이유로 우리 비용으로 따라간 가이드에게까지도
봉사료를 주여야 한단다 그 와중에 비회원들은 우리나라 가이드
여행 비용은 낼수 없다고 하니 인내심에 한계가 느껴진다.
이런 문제는 떠나기전 언급이 되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같은 돈을 쓰면서도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니까 속임을 당하고
봉쓰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씁쓸하였다. 여행 설명회 때 제일 중요한
준비물 목록도 없이 와서 덜렁대더라니, 앞으로 여행사 선정을 할때는
연줄에따라 할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잘 비교를 해보고 정할 일이다.
7만원씩 여행지에서 주머니를 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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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호수 : 앙코르톰 서쪽에 있는 인공 호수다>
모두 한 보따리씩 쇼핑을 했는데
나는 가방 사정도 있고 해서 한가지도 못사고 시원한 곳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밖에는 30도가 넘는 가마솥 더위라
주인한테는 염치 없는 일이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후에는 '서쪽호수'를 향했다.
이 호수는 앙코르톰에 생활용수를 대기 위서 앙코르톰
서쪽과 동쪽에 인공으로 만든 호수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동쪽호수는 물이 없다고 한다.
호수의 크기는 가로 7km 세로 2.5km 깊이 10m이고 파낸
흙으로 둘레를 막고 나무를 심어 호수 둘레엔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배를 차선하여 가운데에 인공섬으로 가기 위해
승선을 했다. 호수가에는 하동들이 목욕을 하면서 구걸을 한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우리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움직이어 구걸을 하기 위해
"사모님 예뻐요"
"사장님 멋있어요"
"머리 조심 하세요"
"오 필승코리아, 대~한 민국" 등을 지껄인다.
무슨 뜻이지나 알고 지껄이는지.............
6.25 전쟁 때 더러운 누더기를 걸치고 미군들이 지나가면
"쵸코렛 기브 미, 기브 미 츄잉껌"하고 손을 내밀었던
우리 아이들도 그런 소리를 하면 먹을 것을 주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배웠을 것이다.
호수는 여기도 물이 맑지가 않다.
황토의 입자가 매우 가벼워 물이 고여있어도 바닥에
가라 앉지 않는 모양이다.
섬을 둘러 보고 캄보디아의 마지막 여행지인 왓트마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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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트마이 절 : 폴폿트가 학살한 유골 탑에서, 사찍고 나서기만 하면 달려
들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지, 할 수없이 적선도 하고>
약소 민족 크메르의 비극
우리에겐 킬링필드로 알려진 크메르루즈의 대학살로
희생된 유골이 프놈펜에 대량 수거되어 있지만 이곳 왓트마이 절에도
수거된 일부의 유골을 모아 두었다
크메르루즈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파리에서 교육을 받은 폴 포트(Pol Pot)와 키우 삼판 (Khieu SamPhan)에
의해 주도된 크메르 루즈군은 막강한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론놀 측에
게릴라전으로 대항하여 효율적으로 내전을 수행해 나갔으며 베트남에서 수
세에 밀린 미국도 더 이상 론놀의 힘이 되어주기가 힘들었다. 그리하여
1975년 4월 크메르 루즈군은 프놈펜에 입성하게 되었다.
크메르 루즈 (Khmer Rouge)는 급진적 공산주의로, 철두철미하게 사회개조
작업을 서둘렀다. 그들은 민주 캄보디아를 표방하고 모택동식 협동농장 형
태로의 전환을 위해서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하고 화폐제도를 폐지해 버
렸다. 이는 앙코르 시대에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제방공사나 토목공사에
참여시켰던 역사와 비교되어 흥미로운 일면이 있기도 하다. 도시 사람들은
모두 농촌으로 내몰려 협동농장에서 극심한 노동을 하였으며 이에 복종하
지 않는 사람은 즉시 처형되었다.
바로 앞 정권인 론놀 정권하의 관리들과 이에 협력한 사
람들, 학자, 학생, 교사, 외국어를 아는 사람, 안경 쓴 사람, 손바닥이 말랑말
랑하며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즉결 처형하여 순간 캄보디아는 공포의 도가
니로 변해 버렸다. 당시 약 700만 명의 인구 중 백만 이상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특히 거의 모든 사원들이 파괴되고 8만 여명의 승려들이 처형되었으
며 약500여명의 승려들만이 살아 남았다고 한다. 또한 베트남에 관련된 사
람들도 모두 죽였다고한다. 그리하여 지금 캄보디아인들에게 가족사항을
묻는 것은 일종의 실례가 되는 형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나라
도 6.25 전후에 이런 상황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새삼 역사의 흐름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이 겉잡을 수 없는 학살의 양상은 거센 반발을 사게 되
었다. 공산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 (Heng Samin)이 대표적 저항세력
이었다. 그 와중에 베트남에 대해 적대적인 크메르루즈는 과거에 캄보디아
영토였던 메콩델타를 회복하기위해 국경을 넘었는데 기회를 노리고 있던
베트남은 이를 기화로 1978년에 캄보디아를 공격하여 크메르 루주군은 프
놈펜에서 쫒겨났다.
우울한 기분으로 캄보디아의 여행을 마감하게되었다.
다시 시엠립으로 돌아와 평양랭면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기대를 너무 했나?
면은 퍼져있고 국물맛은 별로였다.
노래방 기기에 맞추어 예쁘게 단장한 평양아가씨들의 가무를 보며
캄보디아에서 만찬을 하였다.
양학철님 팀은 여기서 재미있는 여흥도 즐겼다는 데
순환이가 우리팀을 위해서 한 곡만 더 해 주면 우리도 답가를 하나
하고 싶다고 하니까 9시가 넘어야 할 수있다며 거절을 한다.
가이드 말로는 캄보디아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못산다고
캄보디아인을 주제에 무시한다나 어쩐다나?
이제 캄보디아를 떠나려고 시엠립 공항으로 향한다
올고 왔다가 울고 가는 격이다.
처음 공항에 내려 허술한 공항하며 어두컴컴한 거리를 보며
이 후진국에 무얼 보러 왔나? 후회를 했는데...........
왠지 정이 들어서
조금이라도 더 머루르고 싶은 곳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세기를 후퇴한 체험을 해본 기분이다.
도회지 사람이 아직은 떼묻지 않는 고향의 순박한 정을
아쉬워하며 떠나는 기분이다.
도둑 때문에 공항에서 포장끈 묶는 기계로
가방의 가운데를 묶는 모습도 우습다기보다 정겹다
내 가방의 자끄가 벌어져서 나를 위해 묶어 주는 것 아닐까?
우리는 다시 베트남 하노이로 간다.
굳 바이~ 캄보디아,
캄보디아여 안녕~
캄보디아여 무궁한 발전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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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대우호텔의 내부: 여기서 호노이 입성 축하 소주파티를 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저녁 8시 10분에 이륙 1시간 30분을 날라
9시 50분에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 공항에 착륙하였다.
하노이는 4계절이 있다는데 지금이 겨울이란다.
1월 29일 밤 10시 하노이의 기온은 우리가 체감하기로는
우리나라 10월 중순의 쾌적한 가을의 기후였다.
마중 나온 현지 우리나라 가이드와 여자가이드 운전수 등을
만나 관광버스에 짐을 싣고 하노이 대우호텔을 향했다.
거리는 비가 내렸지는지 도로가 젖어 있고 비교적 깨끗이 정돈되어
캄보디아 보다는 또 1세기 앞선 문명의 세계에 접어든 기분이다.
얼마전 아세안 정상회의 때 우리나라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하여 각국 정상들이 묵었던 호텔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들었던 호텔 중에 제일 깨끗하고 규모나 모든 시설이
훌륭했다. 호텔다운 호텔이다.
짐을 정리하고 사워를 했다.
광춘이가 또 호텔에서 제공하는 과일과
고추장, 멸치, 깻잎장아찌, 마늘까지 꺼내고
내가 가져온 팩소주 4개를 몽땅 털어서 탁자에 놓고
다른 방 라영휘, 순환이, 석우까지 불러서
하노이 입성 축하 소주파티를 벌였다.
손목에 찬 시계가 3시를 가리키니
이곳 시간으로 새벽 1시가 넘었겠지
소등을 하였다.
우리는 내일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체험한다.
첫댓글 계속되는 재미있는 글 감사 드립니다. 드디어 하노이에 오셨군요.....하노이며 하롱베이 그리고 주변에 대한 투어를 함께 떠나보고 싶습니다. 기대 하겠습니다~^^*
dave님 계속 관심을 가지시고 리필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