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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신앙교육을 어떻게 하십니까?
성경본문 : 잠언 22: 4-6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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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기 목사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잘 되기를 원합니다. 남의 자녀보다 앞서가야 직성이 풀리고 더욱 돋보여야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찾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러해야 되겠지요. 그래서 학교 교육을 시키고 과외에서 또 2~3과목 정도 받게 하고 이거 모두가 다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교육과정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그 외에도 또 다른 환경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가령 학교에 가서는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인터넷의 역기능 때문에 자녀들의 정서가 점점 메말라가고 있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수시키려면 우리는 상당한 기간 동안 자녀들을 뒷받침하고 정열을 투자한 극성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식만의 머리 학교와 기술만의 손 학교는 많으나 사람 자체를 가르치는 심장학교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니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일부 부모들은 자녀들을 일등을 목표로 하는 경마용 말과 같이 기릅니다. 아이들의 행복과 꿈은 뒷전에 둔 2차 적인 것이 되어 버렸는데 이렇게 되고 보면 우리의 자녀들에게서 미래가 대단히 암담해 보이거나 절망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속 그대로 있어야만 합니까? 아닙니다. 가정에서 신앙교육으로 인격을 다시 출발시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상실된 신앙 교육을 회복시킬 자녀들의 올바른 성경교육은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1.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십시오.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마땅히 행할 길이 무엇입니까?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생활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임신을 하면 바로 태아 교육을 시작하는데 그래서 성경을 날마다 암송하고 낭독하여 그 말씀이 그 아이에게 전달되도록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게 합니다.
유대인들의 격언 중에 “어머니의 젖과 함께 율법을 따랐다” 는 말이 있습니다. 18세가 되면 율법에 대한 시험을 보는데 율법의 중요한 것은 아주 암송하고 통달을 해 버리도록 가르치는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참 교육인 것입니다.
딤후 0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어려서부터란 말이 06절의 아이에게 가르치라는 말과 같은 단어의 뜻인데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성경이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취학 아동부터 교육이 시작되지만 취학 전에 어떻게 가정에서 성경의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 형성이 달라집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중심을 가르치는 것이 성경의 원리요 신앙 교육의 출발점이요 신앙 교육의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기독교 교육은 성경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심령 속에 새기는 것이지 세상 학문을 집어넣으려고 힘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 파묻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신앙 교육이며 우리 교단의 교육이념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철저한 성경 교육을 받고 그 교육에 충실했던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경을 어떻게 공부합니까?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통해 공부하고, 성경을 통해서 공부하며, 교사들의 성경 공부와, 각종 공부를 통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꼭 성경을 읽도록 하십시오. 그들이 성장하여 고등교육을 받을 때 강요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며 또 성장하면 부모님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와 항상 함께 살 수 없으나 어릴 때부터 가르친 성경의 말씀은 언제나 자녀들을 지켜주고, 함께 동행해 주고, 함께 대화해 주고, 함께 위로해 주고, 함께 의논해 줍니다.
어느 주일 아침 신실한 기독교인이 교회 가던 중 후미진 골목에서 빈둥거리는 네 소년을 보고 주일학교로 데려다가 그들을 중심으로 반을 만들어 가르쳤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1932년 어느날 그 선생님의 생일에 그가 최초로 가르쳤던 네 소년으로부터 축하 편지를 받았습니다.
①한 편지는 중국 선교사로부터 왔고
②또 하나는 미 연방 준비 은행 총재로부터 왔고
③다른 하나는 후버 대통령의 개인비서로부터 온 것이었으며
④마지막 네 번째 편지는 후버 대통령 자신이 쓴 편지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것이 보약이고 양약이며 그 아이를 늘 지켜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이 성경을 붙들도록 해야 하며 그래야만 그 아이가 하나님 앞에서 성공적인 기업이 되고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2. 부모님은 자녀들이 잘못할 때 바로잡아 줄 책임이 있습니다.
엘리는 제사장으로서 자녀들이 악한 길로 나가는 것을 책망하고 바로잡아 줄 책임이 있었음에도 예사로이 넘기다 화를 당하였습니다.
삼상 02: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삼상 03:13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자녀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고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모님의 도리를 다 하셔야 하겠습니다.
좋은 옷을 사 주고, 용돈을 넉넉히 주고, 과중한 공부를 시키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잘 되도록 믿음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참된 교육이며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녀들에게 성수주일 하는 것부터 가르치고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는 다윗왕을 반역하고 왕국을 탈취하려 했던 패역무도한 자식이었는데(왕상 01장) 그 이유가 왕상 01장 06절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왕상 01:06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채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꾸지람이나 채찍을 모르고 자랐기에 마지막엔 패륜적인 행동을 하였는데 진작부터 엄히 징계하고 복종케 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정 때문에 엄하게 다스리지 못한 것이 나중에는 씻을 수 없는 저주의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면 이는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이는 바로 나의 책임이요 교회 안에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에 특히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녀들을 더 잘 다스려야 할 의무가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딤전 03:0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니.”
아무리 신령하고 열심이 있어 충성 된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자녀를 믿음으로 훈련시킬 줄 모르거나 행하지 아니한다면 이 또한 부모님의 가치를 다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들이 잘못 된 길로 나간다면 엄히 책망해서라도 잘못은 고쳐주어야 하고 나쁜 습관 역시 바로 잡아주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결국은 고통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암소는 송아지가 난폭하게 젖을 빨면 뒷발로 걷어차며 어미 곰은 새끼들이 싸울 때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말을 길들이는 조련사도 채찍으로 훌륭한 말을 만듭니다.
3.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성경은 어떻게 행하라고 명합니까?
모든 부모 특히 가정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자녀들 앞에 서 있는 존재이며 성경에는 종종 하나님과 아버지를 비교해서 말씀합니다(시 103:13; 마 07:11; 눅 11:02).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징계함과 같이 부모님들도 필요할 때는 자식을 징계해야지 잘못해도 계속 수수방관만 한다면 이는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잠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히 12:0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0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08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오늘날 책임감이 없는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무슨 행동을 하든 너무 너그러이 여기고 그냥 내버려두기 때문에 불량 청소년들이 되어 거리와 교도소를 꽉 메우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통제나 굳건한 도덕성이 없이 자랐기 때문 아닐까요?
어쩌면 한 마디로 책임감이 없는 부모님들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것이지요.
엡 06:0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양(Nurture)이란 말은 징계 혹은 채찍으로 때린다(Chastening)는 뜻입니다. 부모님의 위치에서 자녀를 꾸짖고 채찍질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성경은 강력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채찍질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바르고 의롭게 양육하는데 꼭 필요하기에 모든 부모님들이 의를 강조하고 악을 벌주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도록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체벌(體罰)은 바른 성격 형성에 필수적입니다. 현대 교육학에서는 체벌을 금하는 자유방임주의인데 비해 성경은 체벌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잠 20:30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 하나니 매는 사람의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여기서 상하게 때린다는 것은 즉 멍들게(BLUE WOUND) 때린다는 말인데 때로는 자녀들이 죄에 습관이 들지 않도록 채찍질하고 눈물로 기도하여야 하며 이것이 자녀들이 바른 길로 나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잠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장영수씨가 연재한 한국일보 칼럼에 보면 4가지 형태의 부모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밀모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팍팍 밀어주는 부모.
②뛰모 : 자녀와 함께 예습하고, 과외 공부, 학교에 뛰어 다니는 부모.
③지모 : 공부하는 자녀 옆에서 뜨개질하며 지켜주는 부모.
④주모 : 자녀가 공부하든 말든 주무시는 부모.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솔로몬은 21세에 왕이 되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한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 앞에서 말년의 인생을 돌아볼 때 내린 결론을 글로서 남겼는데 그것이 잠언과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모든 인생들에게 남긴 글이고 잠언은 특별히 자녀들에게 남긴 글인데 01장부터 매장마다 내 아들아 훈계를 받아라, 훈계가 없으면 안 된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등입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의 자식에 대한 유언이며 이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바른 교육의 요구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먹게 하고 부모가 한 번 말하면 순종하는 자녀로 길러야 되지 않겠습니까? 훈계로 잘 길러서 큰 기업이 되게 하십시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면 타락하게 되며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 교육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유대인 교육에 있어서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①율법 교육 즉 말씀을 통한 성경 교육과
②훈계와 채찍교육(세계에서 매를 제일 많이 때리는 부모가 유대인)
③회당 교육입니다.
이 세 가지 교육을 철저히 지켜 행하므로 오랜 세월 국가가 없는 민족으로 지내면서도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위대한 국민이 된 것은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철저한 회당 교육과 사랑의 매를 가지고 그들을 결박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교육은 일차적으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에는 실패하며 하나님의 교육은 일차적으로는 갈등을 느끼고 실패하는 것 같지만 다음에는 마침내 반드시 승리하게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원조교제를 하던 어떤 여중학생들이 경찰서에서 조서를 받는 중 왜 그런 짓을 하였느냐고 묻자 그들의 대답이 메이커 옷이 입고 싶어서요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경찰관이 너희들 도대체 이 다음에 무엇이 되려고 그러느냐고 말하자 그 아이들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이것도 하나의 아르바이트인데요 라고 말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교육의 가치를 성적 순위에 두고 똑똑한 아이 키우는 일에만 몰두한 어른들의 그릇된 가치관 때문에 어린 자녀들이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잃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공부만 잘하면 되는 줄 알고,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줄 아는 그릇된 인식이 아이들의 뇌리 속에 깊이 박혀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학교에서 여러분 자녀들의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문제가 있습니다 라고 말할 때에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선생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 아이는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절대로 아닙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입을 확 째 버려야지 라고 반응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 시대에는 교육의 가장 기초가 되어지는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은지가 이미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이 무너진 교육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부모님들이 지겠다는 각오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신앙교육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