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의 견책과 여호사밧의 개혁
[대하 19장]
[내용개요]
본장에서는 여호사밧이 정비한 사법 개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연합해서 싸운 아람과의 전쟁은 북이스라엘에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아합 왕이 전사했고, 길르앗라못과 트랜스 요르단 북구 지역을 아람의 수중에 넘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남유다 또한 이 전쟁으로 인해 큰 후유증을 겪게 되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이 본장에서 사법 제도를 정비하는 등 선정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모압 연합군의 침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여호사밧의 후손들 사이에서 살육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책망과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는 유다 왕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본장에는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한 사실에 대한 예후의 책망과(1-3절) 여호사밧의 민간 순행이 기록되어 있다(4절). 또한 성읍 재판관 임명과(5-7절) 예루살렘 재판관의 임명에 대해서 기록되었다(8-11절).
[강 해]
아합 왕과 동맹을 맺고 그를 도와 길르앗라못 전투에 참가했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돌아온 직후 곧바로 2차 종교 개혁에 착수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동맹을 맺은 실책을 크게 만회하였습니다. 본장에는 역대기 기자가 여호사밧의 종교 개혁과 관련하여 그를 히스기야, 요시야와 더불어 3대 현군으로 부각시키고자 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 . 예후에게 책망받은 여호사밧
1) 여호사밧의 귀국
여호사밧은 아합과 함께 길르앗라못 전투에 참가하여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여호사밧이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아합 왕이 길르앗라못 전투에서 전사한 것과는 달리 여호사밧은 평안히 예루살렘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여호파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길르앗라못 전투에 대한 미가야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참 선지자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a. 여호사밧의 귀국(대하19:1)
b. 주께서 안전히 거하게 하심(시4:8)
2) 선견자 예후
선견자 예후는 유다 왕 아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투옥되었던 선견자 하나니의 아들입니다(참조, 대하16:7-10). 예후 선지자는 하나니가 활동하던 시기부터 북왕국 바아사의 잘못을 책망하는 등의 선지자로서 활동을 했습니다(참조, 왕상16:1-7). 예후는 아버지 하나니의 뒤를 이어 젊었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는데, 그는 남왕국과 북왕국에서 모두 예언 활동을 하였습니다.
a. 선지자의 옛적 명칭(삼상9:9).
b. 하나니의 아들 예후(왕상16:1)
3) 여호사밧을 책망하는 예후
하나니의 아들 예후 선지자는 여호사밧이 길르앗라못 전투에서 돌아오자 여호사밧을 맞으러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후는 여호사밧에게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도왔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합과 연합한 죄로 인해 여호사밧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예후는 비록 여호사밧이 아합을 돕는 실수를 저질렀으나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 즉 아세라 목상들을 유다 땅에서 제하였음을 칭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망과 함께 칭찬으로 위로를 주심은 여호사밧으로 낙망치 않게 하시려는 깊은 의도가 내포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책망은 그 영혼을 사랑하시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a. 경계해야 할 불의와의 연합(고후6:14)
b. 범과한 자들을 향하신 진노(대하19:10)
2. 선정에 다시 힘쓰는 여호사밧
1) 여호사밧의 민간 순행
예후 선지자의 책망을 들은 여호사밧 왕은 백성들이 사는 곳을 순회하면서 저희를 여호와 하나님에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미 여호사밧의 통치 3년에 시행했던 개혁 작업을 통해 우상들은 제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합과 연혼하고 동맹 관계를 맺는 동안 다시 유다에는 우상 숭배가 번져 나갔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사밧은 유다 전역을 순회하면서 백성들이 우상에 미혹되지 않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힘썼던 것입니다.
a.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함(대하17:6)
b. 하나님만 구하는 태도(대하30:19)
2) 유다 전역에 재판소를 설치함
여호사밧은 전에 이미 유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하는 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가르친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은 큰 효과를 거두었었습니다. 이제 여호사밧은 그들 가운데 재판관들을 두어 율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를 살필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유다 전역에 재판소를 설치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재판소 설치를 통해 율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를 살피게 하여 행악자들에게 두려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종교적인 진리를 분별하여 주는 재판 제도가 약화되어 있습니다. 교육의 연장이라는 선한 목적과 동기에서 상담, 권면, 근신 등을 통해 성경적인 신앙을 확립시켜 줌이 필요합니다.
a. 하나님이 주시는 각 성에(신16:18)
b. 여호와를 위한 재판(대하19:6)
3) 여호와를 위한 재판을 명함
유다 전역에 재판소를 설치한 여호사밧은 재판관을 세워 백성들의 송사를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각 성에 세운 재판관들에게 사람을 위함이 아닌 여호와를 위해 재판할 것을 명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인생의 모든 재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심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판결은 공의롭고 정당하며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의로운 심판입니다. 재판관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재판에 임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가르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당시 재판의 기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 까지도 많은 법률의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위한 재판을 명한 여호사밧은 또한 재판관에게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셔서 너희의 재판하는 일을 지켜보시고 잘못을 행하면 책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a. 재판은 하나님께 속함(신1:17)
b. 굽게 해서는 안 됨(신16:19)
3. 고등 재판소 설치
1) 예루살렘에 설립된 법정
온 유다의 각 성읍에 재판관을 세우고 여호와를 위한 재판을 명한 유다 왕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고등 재판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세워진 고등 재판소에서는 여호와께 속한 일 즉 종교적인 일과 민사적인 일을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이 세워져 있었으므로 다른 지역보다 특히 종교적인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a. 큰 왕의 성(시48:2)
b. 외경심은 지혜의 근본(잠9:10)
2) 재판관들에게 여호사밧이 명한 것
예루랄렘에 고등 재판소를 설치한 여호사밧은 그 곳에 레위인과 제사장과 이스라엘 족장 가운데 사람을 세워 재판 업무를 담당하게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고 충의와 성심으로 이 일을 행하라고 명했습니다. 즉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법정에 있게 된 두 명의 재판장은 대제사장 아마랴와 유다 지파에 속한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였습니다.
a. 악한 자를 돕지 말 것(대하19:2)
b. 힘써 행해야 할 추의 직무(대상28:10)
결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선지자 예후로부터 책망을 들은 여호사밧은 이내 2차 종교 개혁에 착수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는 여호사밧의 태도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본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개혁에 착수한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개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단어해설]
1절. 평안히. 원어 <!lev;:솰롬>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참된 신적 평화를 뜻.
2절. 예후. 선지자 하나니의 아들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 백성에게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게 한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가리킴.
3절. 아세라. 고대 가나안에서 성행한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과 함께 숭배되었으며 제사의식이 매우 음란하여 하나님이 금지시킨 신임.
4절. 브엘세바. 남왕국 유다의 최남단 성읍. 순행하며. 민정을 살피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은 여호사밧의 행동을 나타냄.
7절. 삼가. 재판관들은 하나님 편에 서서 고아와 과부 등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재판해야 함. 편벽됨. '얼굴을 한쪽으로만 들다'를 뜻. 즉 공정성 없이 심판을 하는 행위를 나타냄.
9절. 충의와 성심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또는 '전심으로'와 동일한 뜻. 공정한 재판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한결같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마음이다.
10절. 피를 흘림이나. 고살과 모살에 관한 형사 소송을 가리킴.
11절. 레위 사람들. 두 명의 최고 재판관 밑에서 수종드는 관리들. 즉 서기관들.
[신학주제]
이스라엘의 사법 제도.
본장에서 예후의 책망과 격려를 들은 여호사밧은 사법 제도의 개혁을 단행했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사법 제도에 대해 살펴보면, 이스라엘에 있어서 법률 체계가 처음으로 제정된 것은 모세 때에 그의 장인 이드로에 의해서이다. 당시 재판의 일을 모세 혼자서 행했기 때문에 많은 재판을 다 효율적으로 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을 보다 능률적이고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이드로의 충고를 받아들임으로써 사법 제도를 제정하게 된 것이다. 재판관의 자격으로는 율법에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판관은 학식 있는 레위 지파 중에서 뽑는 것이 관례였다. 처음에 재판관은 인사나 종교 문제 모두를 관할하였으나 여호사밧 때는 그 임무가 보다 세분되어 인사 문제와 종교 문제를 분할해서 관할했다. 그리고 이것이 발전되어 율법의 연구와 해석이 이들에 의해서 추진되었는데, 신약 시대에 와서는 사실상 법률 문제의 전반적인 체계가 그들의 손안에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사법 제도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간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호사밧도 재판 제도 자체보다는 재판관의 마음 자세에 대하여 많은 강조점을 두었던 것이다. 참으로 이러한 사항들이 올바로 시행될 때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영적교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 본문 1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왕이 평안히 예루살렘 자기 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사밧에 대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덕택이다. 그가 아합과 동맹을 맺어 전투에 참여한 것 모두가 사실은 여호와의 뜻과 상관없는 자기의 뜻대로 행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사람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합과 저짓 선지자의 예언을 따랐다. 그 결과 동맹자 아합은 그 전쟁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 모든 실수와 범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보호하심을 받아 평안히 자기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출입을 영영히 지키시는 여호와의 사랑의 결과 인 것이다. 성도들은 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그 유혹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늘 사모해야 된다. 성도들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