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8-14
아마샤의 성공과 실패 / 김중석 목사
빌리보서3:12-16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사람마다 성공과 실패가 있다.
성공은 달고 실패는 쓴 것이지만,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를 가능한 줄여야 하고 성공은 가능한 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는데는 법칙이 있다.
세상이 말하는 법칙이 아니라 만고불변의 진리인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성공과 실패의 법칙을 배워 아무쪼록 실패는 줄이고 성공은 늘리는 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한다.
왕하14장과 역대하25장에는 유다왕 아마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아마샤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것은
첫째: 주의 말씀을 들으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14:3 이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했다. 실례로서 6절에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말 것이요 아비를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우리나라는 과거에 반역죄는 3族을 멸한다고 했다. 아마샤는 자기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그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이었던 것이다.
7절에 에돔을 정벌하는 성공이 나온다.
이는 어떤 연고였는가?
대하25:5이하에 보면 아마샤가 에돔을 정벌하려고 군대 30만을 모으고 부족하게 느껴서 은 일백 달란트를 주고 이스라엘 용병 10만을 샀다.
그때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이유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아마샤가 “내가 일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꼬” 하니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것입니다”했다.
그때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청종했다. 그래서 에돔 정벌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주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것이 성공의 비결임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장사를 할 때 어떤 사람은 그저 빨리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겉을 번드르르하게 하고 재료는 적게하고 심지어는 엉터리재료까지 쓰고 ‘값을 비싸고 받아야 잘 팔린다’는 이상한 이유로 값을 높이 책정한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떻게든 손님들에게 좋게 하려고 애를 쓴다. 양도 잘주고 재료도 연구해서 좋은 것으로 쓰고 써비스도 어떻하면 잘해드릴까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하니 이는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낫다‘는 말씀을 적용한 것이 된다.
처음에는 번드르르가 잘 될지 모르나 지나고 보면 결국은 정성껏이 성공한다. 모든 사업은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우리는 [얻는 경영]이 아니라 [주는 경영]으로 나아가면 실패않고 성공한다.
찬송: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닦고 집을 지음같아
비가 오고 물나며 바람 부딪치되
무너지지 않음은 반석위 섬일세
잘짖고 잘짖세 우리집 잘짖세
만세반석 위에다 우리집 잘짖세
어제 축구경기가 있었다.
3대0으로 완승한 차범근감독은 어제도 여전히 “먼저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하고 나왔다. 그 말이 그리 쉬운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의 신앙을 엿보게 하는 대목으로서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있다.
차감독의 진실된 신앙이 그의 힘이다.
그는 팀선수들에게 술과 담배를 절제할 것을 주문한다고 듣는다.
어제 어떤 신문에 초등학생들에게 까지 술담배가 퍼지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생 20%는 술담배를 상습으로 하고 있고, 대학생의 95%가 술을 마신다했다. 이는 100년전 금주금연운동을 기독교가 펼칠때보다 훨씬 악화된 상태다.
이제 우리 기독교인과 기독학생들은 있는 곳에서 술과 담배와의 전쟁을 전개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교수 20명이 드디어 들고 나섰다.
어른 흉내로 폭탄주도 마시고 의식을 잃은 경험도 30%나 되고 아침에 강의를 빼먹은 경험도 상당수, 졸업을 하고도 학창생활?하면 술먹고 객기 부리던 것밖에 기억에 안 남는다고 하니-- 이것이 보통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대통령이 아예 술을 마약으로 담배를 유해품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했다.
중학교때 담배를 피우면 뇌에 얼마나 손상을 주는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술담배가 스트레스 해소책으로 합리화하고 술담배에 피하다 보면 영락없이 죄악의 문화에 덧이 걸리고 만다.
술과담배를 향하여 전쟁을 선포하고 학생은 학생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추방운동을 벌여야 한다.
담배는 직장과 거리에서 많이 추방되는 것 같은데 테레비 광고에서 연속극에서 자꾸 나와서 청소년을 유혹하고 있다.
자판기가 문제이다.
술은 세계적 소비국으로 만방에 소문이 나서 한국을 술파는데 아주 매력적인 판매처로 되있다고 한다.
자기들이 안먹는 술과 담배를 한국에다 쓸어넣어 저 에스키모인들 파괴하듯이 우리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성경은 술취하지 말라고 했다.
양식되지 않을 것을 먹지 말라고 했다.
술과 담배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말씀을 들어야 성공한다.
어느 직장에서는 흡연란이 있어서 담배피우는 사람은 아예 안뽑을 작정이라고한다. 의지박약이라는 것이다.
둘째: 주의 말씀을 온전히 좆지 않은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14:3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신앙의 불건전화가 초래되었다.신앙의 미신화라든지, 기독신앙의 異敎화는 믿음 같아도 온전치 못한 믿음으로 실패의 원인이 된다.
대하25:12 “유다 자손이 또 일만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 몸이 부숴지게 하였더라”---이는 잔인한 일로 주의 말씀에 지나는 것이다. 더 큰 불순종은
대하25:14 “아마샤가 에돔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순종하며 전쟁하던 그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까?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하고, 조금만 편해져도 딴청을 하고 조금만 성공해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 지는 것을 본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말씀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으로서 진노를 촉발하는 것인데 아마샤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대하25:15 한 선지자를 보내사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하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했다.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決定하신 줄 아노라”했다. 이 결정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 바로 아마샤의 이스라엘 선전포고이다.아마샤의 도전을 이스라엘의 요아스가 자제하라고 충고했으나 듣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대하25:20).아마샤가 에돔 신에게 구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마샤를 대적의 손에 붙이려 하심이었다.
아마샤가 에돔을 침으로 인하여 교만하고 자긍했다(대하25:19).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결과는 어떠했던가? 요아스가 전쟁에 승리하면서 예루살렘까지 들어와서 성전과 궁정의 모든 좋은 것을 탈취해가고 성벽도 일부를 허물고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갔다. 아마샤도 그 전쟁에서 사로
잡히고. 아마샤가 죽지는 않고 그 후에도 15년을 더 생존하기는 하였으나 실패자로서 산 것이었다.
사람이 교만하여 주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락없이 실패자가 된다. 마침내 아마샤는 모반한 무리에게 쫒겨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사람들이 사람을 라기스로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게하고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유다 성읍에 열조와 함께 장사하였다(대하25:27-28).
대하25:2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
이것이 그의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는 말씀아닌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주일예배 조차 안나오고(산당제사) 찬양예배 새벽기도회는 아예 나올 맘조차 없고, 교회의 풍속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풍속을 따라서 술과 담배를 하고--온전한 마음이 아닌 것 같다. 할거 다하고 교만할 것 다하면 도대체 무엇으로 구별된단 말인가!
구별되지 않으면 성도가 아니다.
경고해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오늘 말씀이 가르치는가? 주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음이 실패의 원인이다. 주를 섬기되 온전한 마음으로 섬기지 않고 대충 이것도하고 저것도 하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빌3:12-16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좆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행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좆아가노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줄타기를 생각해 본다. 긴장해 있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발은 겉으로 짚으면 큰일난다. 세상에서의 천국길 가는 것은 마치 이와같지 않을까? 이 긴장상태가 없으면 안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안식이 있어서 갈수 있고 주님 성령님 동행하시니 갈수 있다. 불가능하다 생각말고 다만 끊임없이 조심하면서 끝까지 도전하고 전진하자. 반드시 성공- 땅위에서의 성공 뿐 아니라 영원한 성공을- 안겨주실 것이다.
<주일예배 설교> . 사랑교회 열왕기하(5)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