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1(화)_삿1.1-10_예루살렘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주의 은혜가 풍성한 아침입니다. 비를 내려 주셔서 온 땅을 시원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이 아침 주의 보혈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 하늘에서 내린 주의 양식을 허락하셔서 나로 먹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오늘부터 사사기 말씀을 함께 묵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 지 30여 년이 흘렀고, 그 사이 출애굽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는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애굽에서 광야로 백성을 이끌었던 모세도,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인도했던 여호수아도 세상을 떠난 상황입니다. 이처럼 가나안 정복이 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확실한 후계자 없이 사사시대가 막을 올립니다.
사사기는 죄를 짓고, 고통받다가 죄를 회개하여 구원받고, 평화를 누리다 다시 죄를 짓는 사이클이 계속 무한반복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눈에 보이는 지도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하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시지 않을 때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살펴보고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여호수아가 죽기 전 열두 지파에게 가나안 땅이 배정되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죽은 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 간의 연합을 통해 가나안 정복 과업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여호와를 향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가나안 족속을 향해 누구를 먼저 보낼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눈에 보이는 영적 지도자는 사라졌지만 이스라엘의 참 목자이신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올라가라'는 것은 '싸우러 가라'는 승리의 출전 명령입니다. 유다가 선봉에 서는 이유는 야곱의 예언(창 49:8-12)을 통해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탁월한 지위를 얻도록 축복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가장 먼저 출전하라는 명령과 함께, 과거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확실한 승리의 약속을 함께 부여하십니다. (만나주석).
그러나 유다는 시므온 지파에게 함께 싸우러 올라가자고 제안합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단독 지목하셨지만, 유다는 다른 지파들을 배제한 채 자신의 친형제인 시므온과의 개별적인 연합만을 도모한 것입니다. 시므온 지파는 과거 야곱에게서 흩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축복 명단에서도 독립된 기업을 얻지 못하고 유다의 기업 중 일부를 분배받았던 약한 지파였습니다(수 19:1-9).
열악한 처지에 있던 시므온을 형제인 유다가 챙기는 모습은 겉보기에 훌륭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미약한 형제를 지나치지 않고 협력하여 세워주려는 선한 의도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에 인간적인 판단과 생각을 덧붙인 행동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지파 간의 분열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유다가 순종하여 전장에 나서자, 주께서는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십니다. 여기서 '넘겨주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탄'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과 주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유다와 시므온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능력으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전쟁에 함께 하셨기에 유다와 시므온은 베섹에서 무려 만 명을 죽입니다. 그리고, ‘베섹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아도니 베섹’을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라버립니다.
그를 즉시 죽이지 않고 산 채로 이토록 참혹한 고통을 준 이유는, 과거 그가 70명이나 되는 왕들을 잡아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고 자신의 상 아래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를 줍게 만드는 굴욕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이토록 잔혹하고 표독스럽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아도니 베섹은 자신이 동일한 처지에 놓이게 되자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인정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행한대로 갚으시는 공의로운 심판자이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다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아 끌고 왔습니다. 이 역시 사사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인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불순종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후 유다 자손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읍을 점령하고 칼날로 친 뒤 불살랐습니다. 과거 여호수아도 예루살렘을 공격했으나 강력한 철병거로 무장한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고, 오늘 본문의 유다 지파 역시 예루살렘을 온전히 정복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정복되어 이스라엘의 수도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훗날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입니다(삼하 5:9).
예루살렘 점령이 쉽지 않습니다. ‘평화의 터전’이라는 뜻 그대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샬롬이 머물러야할 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세력에 의해 그 성이 지배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신부 된 우리 그리스도인을 예표합니다. 예루살렘이 왕인 다윗에 의해 비로소 통치되었듯,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치 아래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신부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통치하였듯이, 예수께서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실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샬롬이 머물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생각과 소견에 옳은 대로가 아닌 하나님께 묻고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샬롬!
나의묵상.
‘엄지손가락은 엄지손가락으로 엄지발가락은 엄지발가락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마지막 날 우리 모두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 주님은 무엇을 기준으로 심판하실까요? 우리의 몸으로 행한 것을 기준으로 심판하신다(고후5:10).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갈6:7). 우리의 이 몸으로 행한대로 주께서 갚아주시는 것이다.(계22:12) 그러므로 오늘 나와 우리 더함교회 공동체가 우리의 이 몸을 성령의 불로 태워 살아있는 제물로 주께 드리기 원한다. 세상이 준 모든 감정과 지성과 이성과 지식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 앞에 이 옛사람을 제물로 드리기 원한다.
묵상기도.
주님,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나와 지금 세상의 모든 사람이 또한 그 길을 갈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육체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아날 것을 믿습니다. 주님, 나의 손으로도 나의 눈으로도, 어떤 것도 죄를 짓는 도구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때때로 회개하게 하시며 주께서 주신 믿음으로 담대히 성소에 들어가 주의 양식을 먹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