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진잔소 도쿄 정원(ホテル椿山荘 東京)
진잔소 정원(椿山荘庭園)은 총리대신이자 원수(元帥)을 역임했던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1838-1922)가 메이지 연간에 조성했던 저택 진잔소(椿山荘)에 딸린 정원으로, 메지로다이(目白台) -세키구치다이(関口台)의 고저차가 있는 구릉지를 살려 조성한 지천회유식정원(池泉回遊式庭園)이다. 현재 호텔 진잔소 도쿄(ホテル椿山荘東京)는 도쿄도 분쿄구(文京区) 세키구치(関口)에 있는 후지타 관광(藤田観光) 운영 플래그쉽 호텔으로, 포시즌 호텔 진잔소 도쿄(フォーシーズンズホテル椿山荘東京)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다가, 2013년부터 호텔 진잔소 도쿄(ホテル椿山荘東京)로 개명하였다.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1838- 1922)는 야마구치현(山口県), 하기(萩) 출신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와 함께 메이지 정부의 최고 지도자로 내무경(内務卿), 추밀원의장(枢密院議長), 총리대신(総理大臣)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야마가타(山縣)은 일본의 군벌(軍閥)의 시조, 혹은 수완이 뛰어났던 정치가였지만, 그 이전에 당시 문화계를 리드하던 문화인이기도 했다. 와카(和歌)를 즐겨 지었고, 특히 정원에는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남아있는 야마가타(山縣)의 명원(名園)으로는, 교토(京都) 무린안(無隣庵), 오다와라(小田原) 코키안(古稀庵), 그리고 도쿄(東京) 메지로(目白)에 있는 현재 호텔 진잔소 도쿄(ホテル椿山荘東京)가 있어서, 이들을 야마가타 삼명원(山縣三名園)이라 부른다. 아마도 야마가타(山縣)는 진잔소(椿山荘)에 메이지일왕(明治天皇)을 비롯한 당시의 정재계의 중진을 초빙하여, 국정을 좌우할 중요한 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야마가타(山縣)의 정원들은, 출신지였던 하기(萩)의 지형을 재현한 것으로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는데, 이는 고향을 떠올리며 정원을 조성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이다. 실제 하기(萩)의 아부카와(阿武川) 분류지점에는, '하기(萩)의 풍경이 야마가타(山縣)의 풍경의 근원이다.'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기도 하다.
에도(江戸) 시대 초기, 막부의 명으로 간다죠스이(神田上水)에서 식수를 대오던 마츠오 바쇼(松尾芭蕉,1644-1694)가 1677년부터, 후카가와(深川) 바쇼안(芭蕉庵)으로 이사할 때까지 4년간 근처 세키구치 료인안(関口竜隠庵), 훗날 세키구치 바쇼안(関口芭蕉庵)에서 살았었다. 1857년 화가였던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1797-1858)가 그린 '에도메이쇼햐쿠케이(江戸名所百景) - 세키구치죠스이바타바쇼안츠바키야마(せき口上水端はせを庵椿やま)에서는 당시 이 일대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무렵 이 근처에 가즈사 쿠루리번(上総久留里藩) 쿠로다 히젠노카미(黒田豊前守)의 시모야시키(下屋敷)가 있었던 것도 확인된다.
1878년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사재를 털어 츠바키야마(つばきやま)를 매입하여 정원과 저택을 지어 진잔소(椿山荘)로 명명했다. 정원의 전반적인 설계, 세부 의장 등은 야마가타가 지휘했지만, 시공은, 당시 도쿄의 조경을 대표하고 있었던 이와모토 소우고로(岩本勝五郎, 1837-1921)를 기용했다. 메지로다이(目白台)의 능선과 경사를 이용한 잔디밭과 연못과 시내를 특징으로 하는 정원은, 당시 문화계의 주목을 받았고, 당시 조성된 가장 훌륭한 정원의 하나로 평가되었다.
조원사가(造園史家) 스즈키 마코토(鈴木誠), 아와노 타카시(粟野隆) 등이 저술한 논문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정원관과 진잔소(山縣有朋の庭園観と椿山荘)'에 따르면, 이전에는 인접한 세키구치 바쇼우안(関口芭蕉庵)에서 솟아나오는 샘으로부터 물을 끌어왔다고 하며, 당시의 세키구치 바쇼우안(関口芭蕉庵)은 메이시 연간의 유명 정치가였던 다나카 미츠아키(田中光顕, 1843-1939) 백작의 저택 쇼우엔(蕉雨園)의 일부였다고 하며, 다나카 미츠아키(田中光顕, 1843-1939)의 별장 '고케이소(古谿荘)' 정원에서 야마가타(山縣)의 '무린안(無隣庵)'의 영향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이 둘 간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다이쇼(大正) 연간에 야마가타(山縣)와 동향 출신이었던 죠슈(長州) 출신의 후지타재벌(藤田財閥) 2세 후지타 헤이타로(藤田平太郎, 1869-1940)로 넘어갔는데, 이 시기 히로시마 현(広島県) 치쿠린지(竹林寺)로부터 이축된 국가 유형문화재 삼층목탑(三重塔)이 언덕 위에 우뚝 서있고, 그 외 다실(茶室) 잔게츠(残月)도 국가 유형문화재이다. 간다가와(神田川) 쪽 출구로 나오면 세키구치 바쇼안(関口芭蕉庵), 히고 구마모토 번주(肥後熊本藩主) 호소카와 가문(細川家)의 히고 호소카와 정원(肥後細川庭園),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구내의 오오쿠마 정원(大隈庭園), 그리고, 간센엔 공원(甘泉園公園) 등과 같이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어, 이 일대에는 쟁쟁한 일본정원이 다수 밀집해 있다.
1918년에는, 당시 간사이(関西) 재계의 실력자였던 후지타구미(藤田組) 2세 후지타 헤이타로(藤田平太郎) 남작이, 명원을 보존하고 싶다고 하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뜻을 이었지만, 이후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야마가타(山縣) 기념관, 저택, 숲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1948년 진잔소(椿山荘)는 후지타 광업(藤田鉱業, 구 후지타구미(旧藤田組))에서 후지타흥업(藤田興業)의 소유가 되고, 후지타흥업(藤田興業)의 창업자인 오가와 에이이치(小川栄一, 1900-1978)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도쿄에 초록의 오아시스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만여 그루의 수목을 심어가면서 명원(名園) 진잔소(椿山荘)의 복원에 착수하여, 1952년, 가든 레스토랑으로 진잔소(椿山荘)를 열었고, 결혼식장 혹은 연회장으로 이용되다가, 1952년 후지타 흥업(藤田興業, 1955년 관광부문 분사)에서 진잔소(椿山荘)에 연회장을 개업했고,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내에 숙박시설의 필요성을 고려하여 1978년 부지 재개발에 착수하여 1983년 연회동이 완성된 후에도 호텔 건설관련 설계검토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도쿄 주요 호텔을 시찰하던 포시즌즈 호텔 이저도어 샤프(Isadore Sharp, 1931-) 회장이 일본 흥업은행(日本興業銀行, 현재의 미즈호은행(みずほ銀行))의 이케우라 키사부로(池浦喜三郎, 1916-1998) 회장과 진잔소(椿山荘)에서 식사하다가 진잔소의 일본정원이 마음에 들어, 흥업은행과 후지타관광(藤田観光) 간의 주거래은행인 인연으로 인해 교섭이 급물살을 타면서 양사는 1988년 사업제휴협정이 체결되었는데, 포시즌스의 기술원조, 집기 및 비품 조달, 운영, 마케팅, 종업원 교육, 그리고 지배인 급의 인력을 파견해 운영에 관한 책임을 지고, 후지타 관광은 그외 스탭과 자금을 지원하는형태로, 20년간 협업을 지속하기로 합의하여, 1992년 포시즌즈 호텔 진잔소 도쿄(フォーシーズンズホテル椿山荘東京)로 개업하여 지상 13층 지하 2층, 600명 이 투숙할 수 있는 283개의 객실을 구비한 호텔동은 진잔소(椿山荘)의 정원이 잘 내려다 보이도록 설계되었으며, 1999년에는 여러 호텔 랭킹에서 일본 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2년 계약이 종료되면서 명칭을 호텔 진잔소 도쿄(ホテル椿山荘東京)로 변경하였는데, 영국의 '2014 MICE REPORT' 일본 베스트 호텔로 선정, 미슐랭 가이드 도쿄 2015에서도 최고등급인 5등급 레드 파빌리온의 평가를 받았다. 구내에는 특급호텔에 걸맞게, 가이세키 요리 전문점 '료테이 긴스이(料亭 錦水)',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 테아트로(Il Teatro)', 이시야키(石焼) 전문점 '모쿠슌도(木春堂)', 일식 전문점 '미유키(みゆき)', 장어 전문점 '나라 키쿠스이루 우나키쿠(奈良菊水楼 うな菊)', 중국요리 전문점 '도쿄운카이(東京雲海)', 캐쥬얼 다이닝 '더 비스트로(The Bistro)', 로비&라운지 '르 쟈르딘(Le Jardin)', 메인 바 '르 마키(Le Marquis)', 카페 '포레스타(Foresta)' 등이 입점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