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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수필의 어제와 오늘
- 수필 동인과 동인지를 중심으로 -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I. 로그인
부산 사람이 쓴 수필은 부산수필이다. 따라서 출신지에 관계없이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수필가들을 부산 수필 동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현대부산수필의 시발점은 1950년대부터 부산의 어떤 다른 수필가보다 먼저 수필을 써왔고, 60년대에 와서는 일본에서 귀국해서 한국에서 수필가로 활동했기 때문에 김소운으로부터 잡는 게 타당하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부산수필 동인은 5,6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립되는 바를 제대로 목도할 수 있다. 부산 출신 수필가인 김소운의 활약과 1963년 <수필>, 1965년 <윤좌> 동인지의 출현이 부산수필을 현대수필의 출발선에 위치시켰다고 하겠다. 현대에 와서 수필 전문지가 출현한 것이 1970년대라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부산수필 동인지의 출현은 한국수필문학사의 관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동인지 <수필>과 <윤좌>가 주축을 이루는 60년대는 김소운의 전국적인 지명도와 함께 부산수필이 가장 크게 주목을 받기도 했다.
60년대 <수필>과 <윤좌>를 기점으로 시작한 부산수필가의 숫자는 2015년 현재 한국수필문학사 사상 어느 때보다 압도적이다. 수필가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계속 양적 평창을 가져왔다. 일단 현대라는 한 시대의 구획에 속한 부산수필가들의 문학적 성과를 동인회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어떤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II. 클릭
1. 1960년대 부산수필의 태동
1.1. 부산 태생 본격수필가의 등장
도창회는 <한국현대수필의 사적 고찰>(2)에서 김진섭, 이양하, 김소운, 윤오영, 한흑구, 피천득 이상 여섯 사람을 본격수필가로 인정하면서 김소운(1907-1982)의 문학적 성과를 간략하게 논하고 있다. 그 중에 부산 출신의 김소운 수필가가 이름을 함께 한 데서 우리는 부산수필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1951년 일본 <중앙공론>에 발표한 수필 ‘목근통신’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수필이다. 김소운의 호는 삼오당(三誤堂)이고, 본명은 교중(敎重)이다. 부산에서 출생하였고, 사립 옥성(玉成)학교를 중퇴하고, 13세 때 도일하여 34년간 체재하였다. 일본 시인 기다하라 하쿠슈에 사사하여 20세 전후부터 일본시단에서 활약하였다. 한편 그는 《조선민요집》(1929), 《조선시집》(1943) 등의 책을 내어, 많은 한국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일제 치하에서 한국에서도 살았고, 일본에서도 살아보았던 그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고, 이런 인식이 민족주의로, 애국심으로 변환되어 작품 속으로 투영된다. 이미 일제 치하의 참혹한 상황을 불러온 일본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작가정신을 빛냈는가 하면, 친미 보수 우익의 이성만 정권도 비판하였다. 이런 사실로 볼 때, 그는 말과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진정한 지성인이요, 현실인식에 투철한 수필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소운의 친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필문단은 아직까지 김소운의 친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1.2. 한국 최초의 동인지 <Essay>와 <수필>, <윤좌> 동인들
부산수필사에서 가장 특기할만한 사항은 부산에서 발간된 수필 동인지 <Essay>가 한국 수필동인지의 효시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산수필사에 있어 빛나는 업적이며, 우리 수필가에게는 자긍심을 주어도 좋을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수필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삼십 년이 지나서 서울이 아닌 부산 지방에서 수필운동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미래문학으로서 부산수필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시사점이라 하겠다. <Essay>의 발간은 수필 내연의 심화는 물론 수필 외연의 확대 그리고 수필의 인식 제고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수필문학 운동이 동인지 중심으로 출발해서 문예지 등단으로 이어지고, 이후 수필가협회 등에 가입하여 전개되는 것으로 볼 때, 부산수필은 동인지 탄생의 메카로서 그 기능과 역할을 다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선 1960년 부산 수필가들을 대략하면 정신득, 김병규, 김일두, 장성만, 허천, 박문하, 오도환, 이남원으로부터 맥락을 갖는다. 이들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라고 할 수 있는 수필 동인지 <Essay> 창간 동인으로 꾸준히 좋은 수필을 발표해 온 수필가들이다. 특히 정신득, 허천 등은 제도권 안에서 각기 다른 양태로 수필문단의 터전을 가꾸오며, 예리한 수필들을 많이 써냈다. 허천은 언론인으로서 <예술시대>, <현장> 등의 잡지를 내면서 꾸준히 수필을 발표해왔고, 교원들을 수필문단으로 끌어들이는 데 크게 힘썼다. 교단수필 동인회를 만드는 데 주춧돌을 놓기도 했다. 박문하는 수준 높은 수필을 써서 전국적으로 문명을 날렸다. 1968년 이 동인들의 합동 수필집인 단행본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란 책을 낼 때는 동인들이 늘어 구본룡, 구철회, 김정한, 박정관, 이남원, 김현옥, 박기하, 이종석, 정창선, 최윤수, 차동석 등 동인이 17명이나 되는 필진을 확보하게 된다. 구철회, 김현옥, 박기하 등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하여 70년대 이후 90년대를 이어 2000년대에 와서도 수필문예지에 심심찮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편 1965년 <윤좌>라는 수필 동인지가 나온다. 수필동인지라기보다는 문사들의 망중한을 즐기려는 초장르적 성격이 더 짙다. 편집 내용 또한 다양하다. 정색을 갖춘 수필을 비롯하여 여행기, 소설, 군담, 시, 영화평, 유명문사들의 편지 등으로 읽을거리를 제공한 점이 여느 동인지와 다르다. <윤좌>에 자리를 함께 한 창간 동인으로 청마 유치환을 비롯하여 김석환, 김정한, 김종출, 김하득, 박지홍, 이영도, 이주홍, 최해군, 허천 등이 참여하고 있다. 비록 사회적 명망이 있는 문인들로 구성되어 수필 장르의 외연을 확대하였다. 청마 유치환, 요산 김정한, 향파 이주홍의 경우 <윤좌>를 통해서 부산 수필에 좋은 문학적 업적을 남긴 건 사실이다. 이들의 수필이 <한국수필문학대전집>에 19편이나 실린 것만 보더라도 <윤좌> 동인이 단순한 ‘돌림노래’만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 그런 놀이를 통해서 문학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축척하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윤좌>의 수필에 대한 성과는 재평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1970년대의 부산수필의 도약
1977년도 부산수필가협회가 창립되면서, 수필중흥을 꾀하고, 1977년에 회지 <부산수필>을 발행하면서 부산수필의 도약을 선언한다. 1993년도까지 <부산수필>을 10호까지 펴내었던 부산수필가협회는 1993년 허천의 타계로 정재훈이 새 회장에 선임되었으나 예전에 비해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이지 않는다.
60년대 태동한 수필 동인인 <수필>과 <윤좌> 중심의 문단 활동은 70년대에도 몇 사람에 의해 찬연히 꽃핀다. 의사 수필가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날린 박문하는 토속적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수필집 <배꼽 없는 여인>과 <약손> 등의 수준 높은 수필집을 펴냈으며, 부산문인협회 회장을 맡는 등 문학 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동아대 법대 교수였던 김병규는 철학적 수필을 즐겨 쓰는 수필가로 역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졌다. 사물을 본질을 꿰뚫어 보는 사유와 사색적인 에세이집 <인생산책>, <목탄으로 그린 인생론>, <바람이 부는 길목에서>, <어둠의 유혹> 등을 발간하였다. 언론인으로 수필을 썼던 허천은 출판 시업에 헌신하면서 수필 동인회에서 독립하여 1977년 부산수필가협회를 창립하여 회장을 맡았으며, 낯설게 보기와 탁월한 인식이 돋보이는 수필 ‘잡초론’을 남겼다. 대표 수필집으로는 <교화촌 삽화>, <바람부는 거리>, <동서남북> 등이 있다. 유병근이 50년대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70년대에 와서 본격수필을 쓰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허명놀이>, <춤과 피리>, <덫을 찾아서> <술래의 꿈>, <싸리꽃 풍경>, <꽃이 멀다> 등의 수필집을 펴냈다. 이들이 70년대 활성한 활동을 펼쳤던 수필가로서 문학의 서정성과 철학성을 추구하였으며, 박문하는 해학성을, 유병근은 문학성을, 김병규는 초기에는 서정성 혹은 서경성을 보이다가 후기로 가면서 철학성을, 허천은 지적 치열성을, 문학에 접목하고자 시도했다. 197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인 수필문학의 활성화가 이뤄진 것은 이들 지명도 높은 수필가들의 수준 높은 수필의 창작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3. 1980년대의 부산수필의 중흥
동인지 <수필>이 부산수필 문단의 명맥을 지켜오는 가운데 1980년 초 동백문학회 수필분과가 <동백수필문학회>란 새 이름으로 독립되어 나오면서 80년대 부산수필은 질적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출신인 오승희를 회장으로 7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동백수필문학회는 부산수필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0년 동인지 <동백수필>의 연 4회 발간뿐만 아니라 연간사업으로 동백수필문학선집, 동백에세이선집을 문고판으로 발간하는 등 한마디로 ‘수필문학 중흥의 의지’를 여러 문학 사업을 통해 표방하고 있다. 잔잔한 호수처럼, 흔들림 없이 평온하지만, 속 깊은 사람마냥 안으로는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창작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내실한 모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평가를 받게 되기까지는 안기순, 송연희, 강규인 동인들의 문학성 있는 작품 활동과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수필 전문지가 없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동백수필문학회에서 수필작품의 발표무대를 자가 조달하려는 노력은 이후 1990년대 초 부산에서 최초로 수필 전문지 <수필시대>를 선보인 허천에 의해 어느 정도 구체적인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1980년대 와서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종합문예지뿐만 아니라 수필 전문지가 생겨나고, 지역 수필문학 동인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경대 교수진으로 구성된 수필 동인회 <수필선>, 부산 시내 각급 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교목> 동인회는 89년도에 창립되어 수필 중흥에 기여한다. 이 시기에는 지성과 비평을 갖춘 문학, 감성과 논리성을 겸비한 문학, 인생적인 경지를 끌어올리는 문학, 자유롭고 다양성을 지닌 문학, 미래적이고 가능성이 많은 문학으로 생각이 바뀌어졌다. 그리하여 수필문학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 시발로 1985년 수필 동인 목필회가 창립되고 동인지 <목필>이 나온다. 기성 수필가들로 구성된 ‘목필’은 목련 같은 순백한 수필 정신으로 직립하자는 취지가 깔려있다. 김병규, 조희선, 황정환, 이근숙, 권재성, 한영자, 이원우, 정명수, 유병근 등의 필진은 출범 당시 목필의 위상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목필회는 1989년 동인지를 4집까지 발간하고, 2000년 제16호를 발간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중간에 회원의 교체가 있었고, 이후 황정환을 구심점으로 부산수필의 품격을 높여주었던 <목필> 동인회가 재탄생하지만 얼마 못가서 문을 닫는다. <목필>의 중단은 부산수필로 봐서 크나큰 손실이라 하겠다.
황정환은 1982년 수필집 <파도의 속삭임>을 시작으로 여러 권의 수필집을 상재, 가장 왕성한 수필 활동을 보여주었다. 당시 부산수필문단에는 문인갑, 성낙구, 채낙현, 한영자 등의 수필가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82년 <한국수필> 여름호 장광자가, 83년 <한국수필> 봄호 이원우, 86년 <부산 MBC 신인상> 강천형, 87년 <문학정신> 3월호 구자분, 88년 <동양문학> 권대근, <시와 의식> 박희선, 89년 <시와 의식> 송두성, <동양문학> 강규인, <월간문학> 배석권이 등단하기 이전부터, 이들은 부산 수필을 살찌우고 있었다.
4. 1990년대 부산수필의 융성
1990년대 부산수필문학사의 시점에서 의미 있는 하나의 사건은 부산수필의 대표성을 가지고 1989년 설립된 부산수필문학협회(회장 황정환)가 낸 <부산수필문학>이란 창간호가 1990년에 나온 것이다. 부산수필문학협회의 태동은 수필계의 통합을 지향한다는 차원에서 수필계 내부에서 환영받았다.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을 주축으로 부산수필의 발전과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던 부산수필문학협회는 그동안 동인 중심으로 뻗어 나가던 부산수필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해마다 협회 기관지 성격의 <부산수필문학>발간했다. 1989년 초대 황정환 회장 이후로 <부산수필문학상>을 제정, 부산수필 발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으며, 이병수, 강영환, 권대근, 김훈, 서태수, 신영수 회장으로 이어져 나오면서 문학기행 등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젊은 수필가들을 영입, 초창기 시대의 활력을 구가하고 있다. 어쨌거나 수필수필문학협회는 지역문학의 내실을 기하고 회원간의 창작활동에 자극제가 되어 부산수필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영호남수필가의 만남으로 영호남수필문학회가 탄생되고, 회지인 <영호남수필>이 발간된 것 역시 1990년대 수필문단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다. 수필은 구호가 아닌 작품을 통한 정서 배양과 수필적 대상의 새로운 표현에 있다. <영호남수필>이 지역 화합이라는 본래의 구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상을 제정한 것은 수필의 질적 향상으로 영호남의 수필을 업그래이드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하겠다. 1991년 <석필>의 탄생 역시 부산 수필을 다양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 동인들은 시인, 대학교수, 언론인, 번역가, 미술가, 공무원, 법관 등 수필에 관심을 가진 각계 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기에는 비등단 회원들이 많으나, 회지 <석필> 19호를 발간한 현재는 김종길, 박양근, 배철웅 등의 등단 수필가들이 다수 참여하여 좋은 수필을 발표하고 있다. 93년도 해양대 교수진이 펴낸 수필집 <해조음>은 다소 투박한 표현에서 삶의 진솔성이 묻어난다. 96년에는 <수필문학> 등단 작가 출신들로 구성된 수필문학부산작가회가 발족된다. 해마다 회지 <수필문학21>을 발간하고 있으며, 월례회를 통해 회원들의 자질을 키우는 등 수필문학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동인회다. 99년에는 수필 전문지 <에세이문학> 출신 작가들이 모여 에세이부산 동인회를 설립하였다. <에세이문학> 전신인 <수필공원> 출신들도 참여하는 에세이문학회 회원들의 수필은 상당히 수준급이다. 여러 문학상, 신춘문예 출신들이 포진한 만큼 확실히 부산수필의 격을 높이는 단체다. 이 외에도 97년 부산 지역 의업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들로 구성된 부산의사문우회를 결성되기도 했다.
1990년대 <부산수필문학>지 발간과 더불어 획기적인 사건은 계간 <수필시대>가 언론인이자 수필가인 허천에 의해서 탄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부산 지역에는 변변한 수필 전문지 하나 없는 황폐한 상태였다. 이런 현상이 수필 계간지를 탄생케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하겠다. 1990년 수필 전문지 <수필시대>는 김현옥을 회장으로, 발행 겸 편집인으로 허천을, 초대 편집장은 수필가 권대근이 맡았다. 수필문학의 질적 향상에 끊임없는 소망을 담고 무크지 형태로 발간되어 나오던 <수필시대>가 허천의 타계와 함께 제 5호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은 수필 전문지 전무의 부산 수필문단 상황에서 너무나 아쉽고 슬픈 일이다.
90년 <수필공원>에 강중구, <한국시>에 정일야, <문학과 의식>에 이영애, 92년 <월간 에세이>에 안귀순, <수필공원>에 황소지, 94년 <문화일보> 신춘에 안신영, <수필문학>에 김정순, 95년 <수필문학>에 김상희, <수필공원>에 송연희, <문화일보>에 강숙련이 등단, 부산 수필을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5. 2000년대 부산수필의 르네상스
2000년대는 가히 수필의 시대다. 2000년대 들어 회원의 수가 50여 명이 넘는 수필문학 관련 단체가 나름의 특성과 성격을 유지하고 꾸준히 기관지를 발간하면서 수필의 르네상스 시대에 발맞춰 가고 있다. 부산 수필의 산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동인회인 수필부산문학회에서 <수필부산>을, 부산수필문학협회에서 <부산수필문학>을, 부산수필문인협회에서 <부산수필문예>를, 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에서 <여성수필 숲>을, 부산한국수필문학가협회에서 <부산한국수필>이란 회지를 내며, 각자 회원들의 창작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인간의 성숙도는 얼마나 차이나 다름을 인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들 단체들은 나름의 색깔을 가지면서 부산수필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회원간 친목을 도모해오고 있다. 다양성의 확보도 좋지만, 부산수필의 발전을 위해 몇 개로 나눠진 협회들은 결국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성격의 수필문학 단체가 협회나 문학회, 동인이란 이름으로 분산되어 활동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수필계가 통합해야 한다는 명분이 탄력을 받아 2004년 부산문인협회 총회에서 새로 선출된 수필분과 위원장 박홍길과 이사 김상희, 박희선 등이 중심이 되어 수필분과 회원을 주축으로 하는 또 하나의 수필 단체, 부산수필문인협회를 탄생시킨다. 명실상부 부산수필문단 내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한 부산수필문인 단체로서 위상을 키워나가며, 기관지 <부산수필문예>를 해마다 내고 있다. 부산수필인 만남의 밤 행사, 부산수필문인협회보를 발간, 부산수필문인협회상 제정, 시민을 위한 수필아카데미 개설, 부산 수필가들의 개인 동정과 문학 활동을 알려주는 등 회원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펼쳐 많은 수필인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박홍길 전 회장을 비롯 차달숙 사무국장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회원에 의한’, ‘회원을 위한’, ‘회원의’ 모임이란 슬로건 하에 주소록에 등록된 회원 수는 300여 명이 넘는다.
2001년에는 격월간 수필전문지 <수필과 비평> 출신들로 구성된 수필과비평 부산작가회의가 태동한다. 2004년도 첫 동인지를 내어 2009년에 제5호를 발간했으며, 2007년 수필과 비평전국문학축제를 부산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설립 역사가 짧지만 전국적인 지명도가 높은 <수필과비평>지로 등단하였다는 긍지와 탄탄한 문학적 역량과 열정으로 주목받고 있는 단체다. 2009년도에는 1990년에 만든 시수필 동인 <시맥>에서 송두성을 중심으로 한 수필가들이 수필가 모임을 갖고 2002년 수필 동인회를 만들고 회지 <필맥>을 내고 있다. 2003년도에는 가톨릭 계통의 수필가, 시인, 소설가 등 문인들이 모여 길 동인을 창립하고, 동인지 <길>을 내고 있다. 2004년도에는 격조 있는 수필 낭송과 창작 활동을 통해 수필문학의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부산에서는 최초로 부산수필낭송문학회가 창립된다. 박양근 수필가가 초대회장을 맡았으며, 수 차례 워크숍을 실시하였고, 격월로 정기 낭송회를 개최하고 있다.
2004년 권대근 문하생들 중심의 여성수필가들 30여 명이 모여 부산여성수필문학회를 창립하고, 동인지 <여인의 날개>를 발간하며, 탄탄한 필력을 자랑하는 동인지로 그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그해 부산 유일의 수필 전문지 <에세이문예>가 태동하여, 젊은 수필가와 수필비평가를 배출하여 부산수필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문학시대 수필가회 동인지 <더러 잊고 사는 일들>도 2004년도에 발간된다. 2005년도에는 부경수필 아카데미 출신들로 구성된 부경수필문학회가 창립총회를 열고, 매달 수필합평회 개최, 회지 <수필나무> 발간하고 있다. 박양근 문하생들로 구성된 이들은 장르를 넘는 실험성을 중시하며, 수필의 현대화를 기치를 내걸고 부산수필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05년에는 격월간지 <에세이스트> 출신 작가들이 ‘서정과 서사’란 동인회를 만들고 월례회를 통해 신작 발표 및 토론과 비평으로 수필 발전을 꾀하고 있다. 2005년 10월에는 부산문예대학 출신들이 <혜윰>이라는 동인회를 결성하고, 또 부산에세이스트 동인회에서 <서정과 서사>를 발간, 회원들의 질적 성장을 돕고 있다.
2006년 <한국수필>로 등단한 수필가들을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수필 단체가 탄생한다. 이름하여 사)부산한국수필가협회다. 한영자 회장을 중심으로 40여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 이 단체에서는 창간호 <부산한국수필>을 내고, ‘부산한국수필문학상’을 제정하여, 회원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2007년 부산 지역의 여성수필가들의 창작 활동과 우애를 다진다는 목적으로 여성 수필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가 탄생하였다. 김문숙 회장, 박희선 사무국장을 선임하고, 해마다 기관지 <여성수필 숲>을 발간하고 있으며, 월례회를 통한 친목 도모로 단결과 수필의 질적 향상을 꾀하며 여성 수필의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9년도에는 부산에서 출간되는 <에세이문예> 출신 작가들의 모임인 한국본격수필가협회가 <한국에세이>를 발간, 2015년 현재 제7집을 내고 있다.
부산의 수필동인 원조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는 수필부산문학회는 2013년 창립 50주년 및 특집『수필』 80호 출간기념식을 부산일보사에서 열었다. 수필부산문학회는 정약수 회장은 "수필부산문학회야말로 수많은 단체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나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필의 위상을 쌓기 시작한 수필부산문학회 동인들로는 김병규 김일두 박문하 이남원 오도환 정신득 장성만 등 8명의 창립 동인을 비롯해 김정한, 김소운, 김현옥, 박지홍, 문인갑 등등이 척박한 수필문학 풍토를 일궈왔고, 한국 수필문학사를 오늘까지 이어지게 한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는 수필가 50여 명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남송우는 "수필 동인지 창간이 어쩌면 공식적인 부산수필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했다. '수필' 통권 80호는 수필부산문학회의 역사를 짚어 보는 특집호로 꾸몄다.
<수필>보다 2년 늦게 1965년 출발한 <윤좌>는 2015년도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동인회의 하나인 <윤좌>동인회는 2012년에 ‘윤좌’ 제38집을 내었다. ‘제각기 가진 행로 위에서’라는 주제를 내어 건 38집은 이주호 동인 망백 축하 특집호다. 리의도, 김이상, 남송우, 류영남, 이규정, 이태길, 제갈 삼, 최해군 선생 등 부산의 중견문인과 원로학자들이 축하의 글을 실었고, 중견화가 송영명이 축하그림 ‘붉은 사랑’으로 축하의 뜻을 보탰다. <윤좌> 동인지는 유치환, 김하득, 이주홍을 비롯한 김이상, 이주호, 성병오, 최해군, 남송우 등 유명한 석학들의 모임으로 매년 좋은 글들을 동인지를 통해 발표해서 부산 수필을 살찌우고 있다. 최해군 동인회 회장이 2015년도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부산수필의 어제와 오늘’이란 특집을 마련, 지난 반세기를 새롭게 돌아보고자 하는 것은 <윤좌>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수필동인지라는 의미를 준다고 하겠다.
2000년대의 수필문학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 팽창에 질이 비례하여 따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산수필문학의 효시라는 <수필>과 <윤좌>의 명성을 업고, 1990년대 이후, 일군의 여성수필을 중심으로 작가들의 관심이 다변화되고 예술적 형상이 성과를 얻어 수필의 질이 높아지고 있다. 수필창작 공부를 마치고 문단에 나온 정여송, 심선경, 송명화, 정성화, 문경희, 김정화 등은 탄탄한 문장력과 남다른 인식력을 갖춘 수필가다. 좋은 수필가와 작품을 뽑아내어 싣는 명수필선이나 선수필에 부산 수필가 송연희, 황소지 등의 이름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2012년 부산에서 한국수필비평가협회가 태동하고 <오늘의 수필비평>을 간행함으로써, 한국수필문단에 비평전문지가 처음으로 탄생하게 된 것은 부산수필을 더욱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되리라 본다.
III. 로그아웃
지금까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부산의 수필 동인과 동인지의 전개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십 년 단위별로 각기 다른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산 수필은 1960년대 김소운을 시발점으로 해서, 1963년 <수필>, 1965년 <윤좌> 동인회가 결성된다. 이 시기의 수필은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대적 비판을 내용으로 삼는 수필은 물론이고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수필, 자의식을 내용으로 하는 수필 등이 등장하여 이와 더불어 개인 수필집의 발간이 본격화되었다. 1970년대는 한국의 수필문학이 본격 수필문학의 시대를 열어가는 시기라 하겠다. 70년대는 정신득, 허천이 이끌어 오면서, 80년대 이후로 유병근, 김병규, 황정환으로 이어졌으며, 이 시기에 와서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전국적으로 종합문예지뿐만 아니라 수필이론을 가르치는 수필문예대학이 생겨남으로써 수필가의 질적 수준이 높아진 것도 부산수필 발전에 고무적인 현상이다. 1980년 말과 1990년대 이후로는 수필의 외연 확대로 지역 수필문학 동인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부산수필가협회, 부산수필문학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 부산한국수필가협회 등 협회 이름을 단 단체만도 여러 개나 된다. 90년대로 오면서 권대근, 박양근 등이 수필창작이론 보급을 통해 부산수필의 위상 강화에 주력해왔다. 부산수필에서 특기할 점은 초기 수필의 성격이 개인 체험의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경향에서 80년대 수필의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이론적 추구와 그리하여 지성이 번득이는 사회 수필, 섬세한 여성의 감성이 돋보이는 여성수필이 양산되었다. 이와 함께 개인적 수필과 사회적 수필이라는 본격수필의 유형이 형성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들어와서 문학이 환경, 생태에 관심을 보였는데 반해 많은 수필 속에서 그런 류의 작품은 극히 빈약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0년대 수필의 평가는 아직 이르다. 아직도 전체적으로 확대하면, 우리 수필문단이 일상성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일부 의식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사회현상을 형이상학화하는 수준 높은 문학성 위주의 글이 수필전문지에 자주 발표되고 있는 것이나, 유병근, 권대근, 박양근이 수필문예교실을 통해 독자적으로 참신한 수필가들을 많이 배출, 부산수필의 위상 제고뿐만 아니라 질적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2015년 올해는 <윤좌>동인회가 50주년을 맞는다. 오랜 세월 동안 부산 수필을 지켜온 <윤좌> 동인회의 문학적 성과는 크다. 수필문학의 벼리를 이루는 것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수필의 시대이고, 역사와 전통을 지닌 <수필>, 각계 저명인사와 석학들이 필진의 중심이 된 <윤좌> 등의 동인지와 <에세이문예>와 같은 부산 지역 수필 전문지를 통해 좋은 작품들이 많이 생성되고 있는 만큼 부산수필의 전도는 밝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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