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심화 문제 ❶
[01~ 02]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단권으로 된 “강희자전”이 한 권, “단씨설문해자주(段氏說文解字注)”축쇄판이 한 갑. 그리고 이 밖에 또 무슨 책이던가 두어 가지를 합해서 끼고 나오면서, 큰 구실이나 하러 가는 것처럼 마누라더러, “내 곧 다녀올게. 잠깐만 기다리우.”하고는 쏜살같이 명동으로 향했다.
내 속 요량으로는 ‘오늘 수입에서 적어도 쌀 한 주발과 고깃근은 살 수 있으려니.’싶어서 몇 달 만에 지글지글 고깃점이나 구워 먹을 행복을 머리에 그리면서 나선 판이었는데, 의외에도 내 공상은 공상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A] [“모두 백 원 드리지요. “강희자전”만은 대접해서 오십 원을 쳤습니다. 그래도 이걸 칠십 원 받는다 쳐도 이십 원밖에 못 얻어먹는 폭입니다.”]
쌀 한 말에 팔백원 하는 세상에 “강희자전”값이 겨우 칠십 원밖에 안 된다는 것이 책을 사는 양반의 말씀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눈만 떴다 감았다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책사(冊肆)*에를 가 본댔자 대동소이한 말만 들을 것 같고, 또 그걸 가지고 상판 광고 나 시키는 것처럼 이 집 저 집 기웃거릴 맛도 없고, 더구나 그의 말이 어쨌든 ‘대접해서 오십 원 쳤다’는데 비록 천금 값어치가 된다손 치더라도 ‘여보, 당치 않은 소리요, 안 되오.’하고 빼앗아 가지고 돌아설 용기도 안 나서 그야말로 복잡미묘한 심리에서 “엣! 그러우.”하고서는 주는 대로 백 원 돈을 받아 가지고 나서면서 이를 꽉 물었다.
세상이 하도 살기가 어려워서 가다오다 말말끝에 “무어니 무어니 해도 장사가 제일이야. 그래도 서생 이 할 수 있는 장사는 책 장사밖엔 없어.”하면 “책 장사? 흥, 그보다는 고리대금이 몇 배 낫지.”하는 친구가 있어, 저 사람이 무슨 말을 저렇게 하나 했더니, 하긴 당해 놓고 보니 그 친구가 역시 경험 있는 소리를 했구나 싶었다.
그 뒤로 나는 사흘이 멀다 하고 내 “강희자전”이 팔리지나 않았나 싶어서 그 책사에를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돈만 생기는 날에는 그가 말한 대로 칠십 원을 주고 다시 회수하리라는 생각으로 부리나케 드나들어 보았으나, 요행으로 내 “강희자전”은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꽂아 둔 그 자리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꼭 한 달 만에야 겨우 돈 칠십 원을 마련해 가지고 갔다.
[B] [“여보, 이 책 나 삽니다.”하고 “강희자전”을 뽑아서 옆구리에 끼면서 돈 칠십 원을 주인 앞에 던 졌다.
주인은 안색이 별안간 창백해지면서,
“그건 파는 책이 아닙니다.”하는 것이다.
“안 파는 책이 어디 있단 말이요. 당신이 오십 원에 사서 이십 원을 붙여서 칠십 원을 받는다고 그러지 않았소?”
“아닙니다, 그러지 맙쇼. 두고 보려고 합니다.”]
주인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내 옆구리에서 곧 “강희자전”을 도로 빼앗을 것같이 굴었으나, 나는 잠자코 문을 열고 길로 나서고 말았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친구가 내가 갔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갔더라면 필시 한 오백 원쯤은 받았으렸다.’
아무튼 생산력이 왕성한 세상임에는 틀림이 없어. 오십 원이란 놈이 열흘에 백오십 원씩 마구 새끼를 치는데. 이놈이 고작 한 달 만에 아홉 배 새끼를 치는 셈이다.
문명(文明)한 나라에서는 좁은 국토에 생식이 과다할 때는 산아 제한을 국책으로 강행한다는데……. 위정자, 모름지기 일고(一考)를 촉(促)할 만한* 이야깃거리다.
지난 여름에 시골서 교장 노릇 하는 G군이 오래간만에 찾아왔다.
“자네 웬일인가?”
“나? 감투 하나 쓰러 왔네.”
“정말인가?”
“그럼 거짓말로 아나?”
정계(政界)에 매일같이 감투 쌈이 벌어지고 장안 안 여관마다 감투 사러 온 친구들이 뒷간에 구더기 끓듯 한다는 소문이 신문마다 벅적거리는데, 난생 처음으로 교장 노릇도 해 보니 그깟 놈의 것 아무것도 아닐레, 나라고 감투 못 쓰란 법 있을라구, 에라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 그는 이러한 생각 끝에 전 후불고(前後不顧)하고 서울로 튀어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올라와서 동정을 살펴보아 한즉, “그 감투란 것 좀체로 쓰기 어렵데. 하불실(下不失) 십 만 원은 있어야 겨우 술잔 값이나 될는지 모르겠데.”
허나 이 기회에 꼭 감투는 쓰고 내려가야겠는데,
“자네는 광면(廣面)한 친구이니까 혹 그럴듯한 곬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G 한 사람에 한한 것이 아니요, 이렇기 때문에 세상은 썩을 대로 썩어 가는 것이지만, 우선 아쉬운 대로 나는 G에게만이라도 충고할 의무를 느끼고서 이렇게 권고해 돌려보냈다.
“실례일지 모르나 자네는 세상을 좀 더 알아야 하네. 껍데기 세상만 보지 말고 속껍질을 벗기고 그 속 에 있는 세상을 보아야 하네. 감투란 원래 값이 비싼 것이 아닐세. 아니라기보다 한 푼어치 값도 없는 것이요, 또 값이 있을 수도 없네. 감투가 돈으로 환산되는 날 세상은 망하는 날일세. 왜 그러냐 하면 감투를 밑천 들여서 사는 날 벌써 감투 밑천을 뽑아야 할 생각이 안 나겠나? 가령 책 장사가 “강희자전”한 권을 오십 원이고 백 원이고 주고 샀다 치세. 학자 아닌 책 장사가 자기 신주덩어리가 아닐 바에야 그 책을 가보로 모셔 둘 리 없고, 팔게 될 경우에는 본전만 받고 팔겠나? 오백 원이고 육백 원이고 흠뻑 이(利)를 남겨야 팔 것 아닌가. ㉠이를테면 자네는 책장사요, 감투는 “강희자전”이란 말일세.”
- 김용준, ‘강희자전과 감투’
*책사: 서점.
*일고를 촉할 만한: 깊이 한번 생각해 봄직한.
01 [B]를 바탕으로 [A]를 이해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① 책 장사는 쉽게 구할 수 없던 “강희자전”이 들어온 것이 반가워서 칠십 원이라는 높은 금액을 부른 것이다.
② 책 장사는 “강희자전”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 싶은 마음에 이익이 이십 원밖에 남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③ 책 장사는 ‘나’가 “강희자전”을 되사러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칠십 원이라는 높은 금액에 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④ 책 장사는 ‘나’가 돈을 마련하여 “강희자전”을 되사러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되사러 오기 쉽도록 책값을 싸게 쳤던 것이다.
⑤ 책 장사는 가치를 알고 있어서 자신이 소장하고 싶었던 “강희자전”을 싸게 사고 싶은 마음에 이익이 이십 원밖에 남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02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책 장사가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강희자전”을 사는 것처럼, G도 감투를 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감투를 쓰려고 한다는 뜻이다.
② 책 장사가 돈 주고 산 “강희자전”을 이익을 남겨 팔고 싶어 하듯이, G가 감투를 돈 주고 사면 그 돈 이상의 이익을 취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뜻이다.
③ 책 장사가 자신이 산 “강희자전”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 채 팔려고 한 것처럼, G가 감투를 돈 주고 사려는 것도 감투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④ 책 장사가 기대하지 않았던 “강희자전”을 손님이 들고 찾아와 손에 넣게 되는 것처럼, G도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아도 누군가가 감투를 씌워 줄 것이라는 뜻이다.
⑤ 책 장사가 “강희자전”을 사서 큰 이익을 남기지 않고 넘기게 된 것처럼, G가 감투를 돈 주고 사더라도 본전 이상의 이익을 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도움자료
[2014 EBS 수능특강 B]
심화 문제 ❶ 01 ② 02 ②
김용준, ‘강희자전과 감투’
해제 : 이 작품은 글쓴이가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강희자전”이라는 귀한 책을 판 경험과, 돈으로 관직을 사려는 친구의 이야기를 연결하여 느낀 점을 쓴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대상의 본질적인 가치를 잊은 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쓴 글이다.
주제 : 본질적 가치를 망각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태 비판
구성
•처음: “강희자전”을 팔았다가 되사 오면서 느낀 점
•중간: 감투를 돈 주고 사려는 G군에게서 책 장사의 모습을 다 시 보게 됨.
•끝: 본질적 가치를 중시해야 함을 G군에게 충고함.
01 작품의 내용 파악 답 ②
이 문제는 주어진 글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실마리[지문] “여보, 이 책 나 삽니다.”, 칠십 원을 주인 앞에 던졌다. 주인은 안색이 별안간 창백해지면서 “그건 파는 책이 아닙니다.”
‘나’가 책 장사의 말대로 칠십 원에 “강희자전”을 사러 갔더니 팔 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책 장사가 겨우 이십 원밖에 남지 않는다며 오십 원에 “강희자전”을 산 것은 헐값에 책을 산 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많이 남기려 했기 때문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책 장사가 “강희자전”을 구하고 싶어 했으나 그동안 구하지 못 해서 아쉬워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고, 칠십 원이 높은 금액도 아니다.
③ ‘나’는 쌀 한 말에 팔백 원인데 “강희자전”값이 겨우 칠십 원이라고 탄식하고 있다. 따라서 ‘칠십 원’이 ‘나’가 책을 되사러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금액이라 볼 수 없다.
④, ⑤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다.
교육과정연계
문학Ⅰ (2) 문학 활동 (가) 문학의 수용
② 섬세한 읽기를 바탕으로 작품을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감상하며 평가 한다.
문학Ⅱ (2) 문학과 삶 (가) 문학과 자아
② 문학을 통하여 타자를 이해하고 삶의 다양성을 수용한다.
02 구절의 의미 파악 답 ②
이 문제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구절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했는지를 묻고 있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실마리[지문] 본전만 받고 팔겠나?
‘나’는 G가 감투(직책)를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강희자전”을 팔고 샀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G에게 충고를 하고 있다. ㉠은 책 장사가 책을 사고팔 때도 이익을 취하려 하는 것처럼, 돈을 주고 감투를 사면 당연히 들인 돈 이상의 이익을 취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G는 감투를 쓰는 교장 노릇을 하다가 자신도 감투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의미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③ ‘나’가 충고하는 부분을 보면 감투는 값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G가 감투를 돈 주고 사려는 것은 감투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진술은 옳지 않다.
④ ‘나’는 돈으로 감투를 사는 G의 태도에 충고를 하는 것이지 때 를 기다리라는 충고를 하는 것이 아니다.
⑤ 이 진술은 G가 돈을 주고 감투를 사는 것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 글의 ‘나’는 돈을 주고 감투를 사려는 G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으므로 적절하지 않다.
교육과정연계
문학Ⅰ (1) 문학의 성격 (나) 문학의 역할
③ 문학이 다양한 가치 추구를 통해 공동체의 역동성을 증진함을 이해한다.
문학Ⅱ (2) 문학과 삶 (나) 문학과 공동체
② 문학을 통하여 양성평등, 사회적 소수자, 생태, 미래 사회 등 공동체의 관심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소통한다.
문학Ⅱ (2) 문학과 삶 (다) 문학과 문화
② 문학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심미적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안목을 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