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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맑은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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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여행기 스크랩 아! 장가계 4
김석환 추천 0 조회 82 08.01.06 12: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더 올라가 바로 케이블카 밑에 있는 ‘천자산’ 전망대에서 사방 경치를 보고 내려오다 케이블카 팀을 만났다. 가이드를 위시한 일행을 만난 기쁨도 잠시 우리는 천란과 헤어져야만 했다. 그들은 오후에 ‘용봉호’를 가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옵션을 안 샀기 때문에 내쳐 오후에도 더운 뙤약볕을 친구 삼아 산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곳을 지나 ‘어필봉’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또 다른 봉이 김선달들을 만나고 이어서 ‘허롱공원’과 세 군데의 전망대를 더 봤다. 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은 우리 중국인 여행팀처럼 천자각에 이어 이 서 너 군데의 전망대를 보고 내려가는 것이 고작이리라.


하지만 어차피 오후의 호수 관광 옵션을 포기한 우리는 오후 시간을 더 산행을 해야 함으로 지도에 나와 있는 조그만 전망대 두 곳을 더 보기 위해 길을 약간 거슬러 올라가니 버스 정류장이 있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할 거리지만 나는 내쳐 그냥 걷자고 해서 아스팔트길을 한참 걸어가다 우리는 왕이 전장터에 나가는 장수들을 점검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장대’의 표지판 앞에 섰다.


그곳에서 전망대로 가는 길은 이상하게 한적하여 사람이 별로 없고 가끔씩 보이는 가게도 모두 쇠락해 있을 뿐 천자각 주변의 시끌벅적함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하지만 정작 점장대에 서서는 숨이 탁 막혔다. 점장대에 서서야 드디어 장가계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의 풍경들은 그저 서곡에 불과했던 것이고 여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장가게가 왜 유명한지를 알게 되었다 하겠다.


사방의 풍경을 찍으려니 어선생의 탄식이 계속 들린다. 어 선생의 카메라는 십리화랑을 지날 때 이미 밧데리가 다 된 상태라 근근히 가뭄에 콩 나듯이 사진을 겨우 한 장씩만 찍을 수가 있었다. 정작 장가계의 하이라이트에 와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으니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모든 것에 늘 앞서고 현명한 그 분이지만 기계 속까지야 어찌 다 알겠는가?


탄성을 지르며 경치를 내려보다 우리는 다시 온 길을 돌아 나오는데 길에 유일하게 혼자 쭈그리고 앉아 과일과 오이 몇 개를 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 노파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동정심이 일어 참외를 한개 사서 베물었는데 이게 무만도 못하다. 어찌나 맛이 없던지 점심시간을 놓친 우리지만 그냥 그것을 버렸다. 나이와 진실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간다.


이어서 다시 마지막 전망대 ‘신당만’에 도착을 했다. 거기에 이르러서 사방을 보니 이 곳 지형이 어느 날 갑자기 내려 앉아 이처럼 절묘한 경치를 이루었다는 눈치 챌 수가 있었다. 지질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산이 솟아서는 이처럼 아슬아슬하게 돌을 이고 있는 돌기둥들이 만들어 질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밑으로 살며시 사그러들어야만 이 뾰족한 석봉들이 무너짐이 없이 유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손으로 밀면 넘어 질 것 같다고 하니 어 선생은 콧김만 불어도 넘어 질 것 같다고 한 수 더 뜬다. 글자 그대로 신이 사는 만이라니 그 잘잘한 돌기둥들의 나열은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어찌해서 신은 별로 예쁠 것도 없는 중국인들에게 이런 기가막힌 경치를 선물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던 참에 마지막 한 컷이라도 찍어 보려고 어 선생이 카메라의 셧터를 누르는 순간 찍히기는 고사하고 아예 열린 카메라가 닫히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의 탄식에 근심거리까지 보태진 셈이다. 할 수 없이 그의 카메라를 내 카메라 집에 넣어 주고 내 카메라를 그냥 알몸으로 손에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신 어 선생의 얼굴을 열심히 내 카메라에 넣어 주었다.


사실 여기가 장가게의 장관을 이루는 전망대가 분명하지만 지금은 이처럼 길 주변이 쇠락하고 한가한 것은 언젠가 케이블카가 생기고 나서부터 일 것이다. 케이블카에서 먼 이곳까지 아무리 경치가 좋다고 한들 귀찮아서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용케 우리는 보고 가지만 여기를 못 보고 가는 다른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장가게를 봤다고 할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장가게를 본 것이 아니다. 그냥 여행을 왔다 갔을 뿐이다.


이어서 우리는 바로 길 위에 있는 전에는 여관이나 식당이었을 쇠락한 건물을 둘러 본 후에 경내버스를 타고 천자각 쪽으로 되 돌아와 길에서 ‘강사브’ 중국산 컵라면을 일 위엔을 깍아 9위엔에 두개를 사서 먹고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올라 왔던 길을 내려오다 조금 헤멘 끝에 역시 케이블카나 궤도차가 있기 전에 생겼을 ‘남천문’으로 가는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역시 그 곳도 케이블카 덕에 한적하기만 하다. 그저 도중에 네덜란드 인 남녀를 만난 것이 고작이다. ‘금구대’가 보이는 곳을 지나 커다란 구멍이 특이한 ‘남천문’에 다다르니 장사꾼이 적적하게 혼자 그 남천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 선생이 답지 않게 중국인들이나 먹음직한 이상한 작은 검은 점이 있는 묵 같은 죽을 사먹는 것이 아닌가? 나까지 권하였지만 난 죽기로 반대를 하니 그가 나중에 “하도 맛이 없어서 같이 하려고 했더니.......”하는 것이 아닌가? 참 별것을 다 가지고 동료의식을 느끼려고 한다.


한 참을 내려오다 멋있는 무지개다리가 있는 ‘은천교’에 이르러 우리는 등목을 했다. 맘 같아서는 빨개 벗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없다고 해도 그건 좀 무리라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벌금이 매겨지지만 중국에서는 워낙 산이 깊고 등산객들이 없어서 가끔씩 목욕을 하게 되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힌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나이지만 참을 때는 참아야 한다.


옆길에 원숭이 동물원인지 하는 ‘후아원’이 있었지만 보려다 포기하고 계속 내려와 경내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아직 호수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오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우리는 숙소 입구의 조그만 구멍가게에 자리를 잡고 캔 맥주 한잔씩을 했다. 어제의 악몽을 씻을 겸 주인 여자에게 안마소를 물었다. 뭐라고 하더니 좀 있으니 나이 들고 키가 작은 토착민 아줌마하고 애들 몇이 오더니 안마를 해주겠다고 난리다.


아무나보고, 아무데서나 주무르고 그냥 돈만 받으면 된다는 심보다. 그들은 행색으로 봐서 그냥 과일이나 몇 깨씩 갖고 다니며 파는 행상에 불과하거늘 아무리 종아리가 좀 ‘땡기고’ 가격이 아무리 싸기로서니 그 노천에서 그들한테 안마를 받을 상황은 아니었기에  손 사레로 거절을 했다. 숙소에 돌아와 일행을 기다리다가 같이 저녁을 먹고 우리는 다시 시내를 얼쩡거리는데 일마치고 지나가던 식당 종업원들이 우리를 보더니 ‘안마오 얼스 위엔’을 외친다.


묻지도 않은 말을 그렇게 건네 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안마를 원한다는 것이 장가게 산마을 전체에 퍼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아까 로비에서 봤던 어제의 그 안마소 여주인 같은 여자가 별 희한한 인간들이 있다고 온 동네 소문을 벌써 퍼트린 모양이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 다른 한국인에 비해 별종이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가게에 들려 산에서는 무려 20원이나 하던 밧데리 두개를 8위엔 주고 사고 숙소로 돌아와 이른 잠을 자기 시작해서 긴 잠을 잤다.

 

 

 

 

 

 점장대에서.

 점장대에서

 

 

 

 

 

 점장대 입구를 외로이 지키고 있는 할머니.

 쇠락한 길 옆의 상점가.

 신당만에서

 

 어 선생 왈 "하이고! 떨어지면 글자 그대로 뼈도 못 추리겠군!" 깊이를 알 수 없다.

 

 

 

 신당만에서 사진 한 장.

 

 

 우리의 점심 중국제 컵 라면.

 길가의 수 많은 좌판 중 한 곳을 골라 과일을 사는 어 선생.  상인 중에 그 녀만이 한 손이 불구라서 물건을 샀단다.  정말로 사진을 자세히 보니 한 손이 불구다. 하나님하고 친한 분은 다르다.

 한적한 하산 길.

 남천문. 구멍이 꼭 일부러 판 것 같다.

 우리가 등목을 한 은천교 밑 작은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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