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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 하는가 (시편 42편 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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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본문 앞에는 표제어들이 붙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 51편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고 되어 있고(5절-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90편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10절-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라고 되어 있고, 102편은 “고난당한 자가 자기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5절-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표제어만 보아도 저자를 알 수 있고, 주제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42편에는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고라’는 사람의 이름이고, 이 시편 42편의 저자가 고라 자손 중의 하나라는 뜻입니다. ‘고라’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고라는 야곱의 셋째 아들인 레위의 증손자입니다. 민수기 26장에서 고라는 다단과 온 이라는 사람들과 함께 당(무리)을 지어서 모세에게 반역을 했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갈라진 땅속으로 떨어져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기록을 보면 고라 자손 중에 성전 문지기가 있었고(대상 26;1), 다윗을 도와 싸운 용사(대상 12:6)가 있었고, 찬양대를 이끌었던 헤만(대상 25:4)이라는 인물도 있었습니다. 고라 자손이 전멸 된 것이 아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살아남은 후손 들 중에 누군가가 이 시편 42편을 썼다는 것이 됩니다. 선조가 역적이었다고 해서 후손들도 다 역적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마스길’이라는 말은 교훈적(사려 깊고, 현명하게 행동하는 측면에서)인 시라는 뜻입니다(마스길 이라고 붙여진 시는 총 13편-32, 42, 44, 45, 52, 53, 54, 55, 74, 78, 88, 89, 142-이 있음) 왜 이 시가 교훈적인 시인가는 1절만 읽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아멘.
이 구절은 성경을 사모하는 분들이 참 좋아하시는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그만큼 공감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겠습니다. 무엇에 대한 공감이냐면, 절망적이고 낙심이 찾아오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평안을 구하는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훈적인 시라는 표제어가 붙게 된 것입니다.
1절에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갈급함”입니다. 이 단어(히, 타아로그)는 “부르짖다” “헐떡이다”라는 뜻입니다. 초식동물인 사슴은 포악한 육식 동물에 잡아먹히는 연약한 동물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이 동물의 생존 수단 중 물은 필수 중의 필수입니다. 포악한 육식동물이 잠복해 있어도 어떻게 해서든 물가에 가서 물을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 연약한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 이면서 헐떡거리며 힘겹게 부르짖는 장면을 시각화해서 상상해 보십시오. 불쌍하다는 탄식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애처로운 장면이 떠오르실 겁니다.
목이 말라 갈급하게 사슴이 찾는 ‘시냇물(히, 아피케 마임)’은 보통의 물가가 아닙니다. 이 시냇물은 ‘수로’, ‘강바닥’이라는 의미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물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이 사슴은 한 번 마시고 잠깐 머물러 있으려는 물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쉼을 얻을 수 있는 마르지 않는 물의 근원을 찾아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시의 저자는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니이다” 라고 호소하면서, 사슴과 같은 연약함, 물이 없이 헤매 이는 비참함에 자기 자신을 빗대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슴은 물을 찾지만, 저자는 영혼의 갈급함을 부르짖습니다. 영혼은 한 사람의 전 인격적인 인생 전체의 삶속에서 그가 소유하고 있는 생명(목숨)을 뜻합니다. 저자는 지금 단순한 상황이 아닙니다. 매우 급박합니다. 목숨 걸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부르짖고 있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절에 나타난 저자의 상태는 매우 비참한 상황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 인생의 대부분은 매우 퍽퍽하고, 고단하고, 그리고 사람들과의 부딪치는 관계 속에서, 자녀 양육의 고민 속에서, 재정의 궁핍함을 느끼며 힘겹게 부대끼는 현실이 매일 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1절 말씀이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들에게는 무척이나 공감할 수 있는 좋아하는 구절이 되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눈에 보이면서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보니, 내 영혼이 어떤 상황인지를 돌볼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사모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으로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급박한 것은 없습니다. 내 영혼의 갈급함에 둔감하거나, 알고도 방치하는 사람은 가장 가치 없는 인생의 시간을 보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지쳐 가는 것이 체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영혼의 궁핍함, 영혼의 목마름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육신의 목마름보다 타는 듯한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갈급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명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 큰 소리로 외치는 고백이 날마다 있기를 바랍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영혼의 갈급함이 완전히 해갈되어 영혼이 잘 되어서 범사까지 잘 되어가는 복에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절에는 영혼의 갈급함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나옵니다. 2절을 읽어 드립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아멘.
2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을 갈망 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뵈려고 하는 것이 바로 영혼의 갈급함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갈망’은 문자적으로 간절하고 애타케 바란다는 뜻인데, 갈망의 대상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갈망(간절함)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하심,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그냥 묻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갈망함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얼굴(히, 파님)을 뵌다는 것은 특히나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성전에 나아가 예배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숨을 헐떡거리며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에 대한 갈급함은 끝까지 지켜 갔습니다.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뵈올까?” 하나님이 만나 주시지 않고, 보여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을 열심히 찾고, 구하고, 정성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은 시편 저자의 믿음이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진실로 소중하게 여긴다면, ‘갈망’, ‘얼굴’, 이 단어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갈급함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도 당장의 결과는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3절을 읽어 드립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아멘. 표준새번역으로 다시 읽어 드리면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3절의 상황을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지금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했습니다.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는 있지만 잘 안 됩니다. 하지만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교회 일에는 빠짐없이, 오히려 그 이전 보다 더 열심히 참여 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주변사람들이 말합니다. “교회가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거기에서 헛된 힘쓰느니 알바라도 해서 몇 푼이라도 버는 것이 훨씬 낫겠다. 네가 믿는 하나님은 있기는 하냐? 왜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사냐. 너도 이제 교회에 적당히 미치고 네 자식새끼들이나 먼저 걱정하셔” 이런 빈정거림과 비웃음으로 실직당한 사람을 공격합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살아가는 영혼의 갈급함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험악한 공격을 당하기 쉽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돈도 없고, 바보 같이 시간만 낭비하고, 쓸데없이 헌금 내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대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만 찾는 바보 같은 사람들로 보입니다. 시편 저자도 “네가 그렇게 애타게 찾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라는 조롱을 받고 마음이 크게 상했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될 정도였습니다. 신앙생활이 참 만만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믿음 생활 하면 이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나는 세상으로부터는 바보가 될 거야, 세상이 나를 아무리 비웃어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만 인정받을 거야” 라는 독한 다짐이 있어야 신앙생활 잘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시편 저자는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사람들은 비웃고, 하나님은 응답이 없으시고,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시편의 저자는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자 더욱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4절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 드립니다. “지나간 날들이 생각난다. 무리의 앞장을 서서 하나님의 집에 이르던 일, 환희와 찬송소리 드높던 그 행렬, 순례자의 축제로 법석을 떨던 그 일, 이제 이런 일들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지는구나” 아멘.
인생의 반려자를 일찍 보낸 사람들이 옛날 사진이나 유품들을 볼 때 아련한 추억에 가슴 아파 합니다. 시편 저자도 과거에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만났던 좋은 시절을 생각하니 더욱 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영혼의 참 평안을 누릴 때는 기쁨과 찬송이 흘러 넘쳤습니다.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갈급함이 있음에도 탄식과 비웃음의 소리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평안하고, 만족하고, 근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불안하고, 원망하고, 절망이 찾아옵니다. “가슴이 미어지는 구나!, 아! 옛날이여!” 저자는 탄식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신앙생활에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사탄의 마지막 전략입니다. 포기라는 것은 곧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겠다는 것이고, 내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이 기회를 노려서 우리의 영혼을 빼앗아 가려고 할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극도의 슬픔과 혼란에 빠졌지만, 독한 다짐으로, 포기의 유혹을 물리치고, 단단히 마음을 새롭게 부여잡고 정말로 간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외칩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여러분, 신앙의 회복을 다시 이루고 싶은 분은 이 구절을 붙잡고 목이 터져라 백 번쯤 외쳐 보십시오.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어찌하여 불안해 하느냐” 내 영혼에 대고 자책하며, 흐트러진 내 영혼을 위로하십시오. 묵이 터져라 부르짖으면 다시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불같이 일어나고, 하나님에 대한 갈망,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은 열정이 솟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백 번 했는데도 터져 나옴이 없다면 천 번 한다는 각오로 매달려 보십시오.
새 힘을 주시면 포기하려던 것을 다시 회복 해 나가십시오. 예배를 포기하게 만드는 유혹이 오면 한 시간쯤 더 서둘러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예배가 있는 날, 시간에는, 어떤 약속, 어떤 시간도 만들지 마십시오. 예배 안 나가면 난 죽는다는 독한 각오로 이겨 내십시오. 기도를 포기하게 만드는 유혹이 밀려오면 저에게 찾아오십시오. 저하고 밤이고 낮이고 시간 정해서 한 시간씩 목이 터져라 기도해보세요.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말씀 읽는 것과 암송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유혹이 밀려오면, 가족들과 함께 말씀 읽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성경 읽는 습관을 기르게 됩니다.
5절 후반절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갈급함으로 시냇가를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로또 같은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또한 영혼의 갈급함으로 시냇가를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장 나타나 도와주시고 해결해 주시지 않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도와주실 것을 믿고 찬양합니다. 내 일생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셔서 도움을 주시지 않을지라도 하나님만이 내 영혼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가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여전히, 여전히 찬송을 멈추지 않으며 살아갑니다. 이런 인생이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들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5절은 10월의 암송 말씀입니다. 잘 외우시는 가운데 하나님을 갈망 하시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시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새로운 믿음의 출발이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성도가 때마다 일마다 나타나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영혼의 참 평안을 회복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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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영혼이 더 이상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갈급함의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