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목(臥 木)
지난해 태풍이 지나간 등산로에
넘어져 자리를 보전하고 누운 아카시아
넘어진 참에 쉬어 보자는 심산인지
아직도 그대로 누워 있다
태어나 한번 도 누워본 일 없어
좀더 오래 눕고 싶었던 게지
무탈하게 잘 자라는 그를 쓰러트린
바람도 하늘도 원망하지 않고
슬며시 누운 채 얌전히 새순을 피워내고 있다
허전한 옆구리에 옹기종기 새순을 피워
넘어질 때 아득함을 찰나였다,
스스로 위로하는 듯 조용히 누워
기다림에 지친 세상에 초록의 연서를 쓰고 있다
버팀목
어그러지고
뒤틀린 마음속
공간을 채울 것이
흔적 없이 떠나고
홀로 남아 미로 속
헤어날 길 없는
절망 속에 몸부림
이 모든 굴레를
훌훌 벗겨줄
버팀목을 만나면
무거운 짐이
봄바람에 눈 녹듯
녹아내릴 테니까요
은행나무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면
계절에 버림받은
잎새가 불쌍하다며
노오란 눈물짓던 그녀
같이 있지 않아도
은행나무처럼
바라만 봐도 좋다던
그녀가 내게
노오란 은행잎에
“지란지교를 꿈꾸며”
글을 적어
코팅지에 담아
평생 친구로 남자고 하더니
어느 참새 울다
떠나던 날 하얀
흰 눈에 노오란
은행잎 다 덮이어 버리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초록 은행잎보다 긴
기다림에 눈물짓다
떠 나버리며 하던 말
바라만 봐도 좋았는데
긴 시간이 흘러
초록 잎 무성하던 날
노랗게 물들였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며
한 번만 꼭 한 번만
보았으면 하며 노오란
눈물 떨구던 그녀
천년 푸른 나무
천년 푸른
그의 품 안 그늘에
막걸리 한 사발
그득 따라놓고
마음 한 접시
소복이 내려놓고
시원함과 함께
마주 앉은 티끌
천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천년을
더 살아가야 할
천년 푸른 나무
그의 품에 잠시
팔베개로 누운 티끌
백수 넘어
하늘 나이 세는 날
나는 이미 먼지겠지
구백아흔아홉
고개 넘어가는 그는
언제나 늘 푸르게 서서
이파리 춤을
파랗게 출 것이다
그의 품 안에서는
삶의 꽃이 철마다
천년은 더 피고 질 것이다
티끌은 이 세상
저세상 휘날리다가
임 그늘에 들를지
말지 기약 없다
낙엽 한 잎 가슴에
나비처럼 내려앉는다
카페 게시글
김판출 시(詩)방
나무에 관한 시
김판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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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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