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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니
장코뱅 추천 4 조회 432 24.06.01 07:53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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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6.01 08:22

    첫댓글 포스팅 본문의 세부내용 및 표현과 아래에 첨부하는 주석의 내용들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풍부한 추가 이해를 위해 올립니다.

  • 24.06.01 11:07

    네, 잘 읽고 공부도 하겠습니다.

  • 24.06.01 15:43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6.01 08:09

    35절은 예수님의 위대한 '나는⋯이다' 말씀들 가운데 첫 번째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35-51절)은 그 말씀에대한 확대된 주석이다. 그 말씀은 떡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다. 이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물질적인 양식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에 대한 것이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떡'이라는 어구의 의미는 생명을 제공해 주는 떡이다. 그러나 그 떡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 얻을 수 있다. 그 조건은 당시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36절). 만일 예수님의 사명이 사람들의 믿음에 의존해있는 것이었다면, 이 사실은 그 사명의 실패를 시사하는 것인가? 37절은 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해 준다. 그 최종적인 결과는 아버지의 손에 있다. '내게 오는 자는 누구든지)'이라는 말은 개별적인 반응에 강조점이 있음을 보여 준다.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는 강한 부정은 예수님이 그들을 보존하실 것이라는 다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38-39절이 보여 주듯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어떠한 불일치의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것을 받게 될 것이다-

  • 작성자 24.06.01 08:09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39절에 있는 '모든'(all: 개역개정판에는 '내게 주신 자'로 되어 있다- 역주)은 (37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성이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모든 것을 합한 것이다. '마지막 날'에 대한 두 차례의 언급(40절)은 예수님이 모든 것이 완성될 때인 세상의 끝을 미리 생각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IVP성경주석: 복음서』, “요한복음 6장”.

  • 24.06.01 11:09

    @장코뱅 주석이 없는 초신자나 초보자에게는 더욱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o.k.

  • 작성자 24.06.01 08:19

    <요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그들이 조롱하듯이 구한 그 떡이 그들의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런 후에 그들을 책망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가르치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신다. 이 가르침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어디에서 생명을 찾아야 하고, 어떻게 해야 생명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만나"와 "일용할 양식"이라는 비유들을 사용하신 것은 그런 말들이 앞에서 거론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그러한 비유들을 사용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 것보다 더 적합하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떡"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 채로 단지 하나님께서 비밀한 능력을 베푸셔서 우리의 몸에 자양분을 공급해 주신다고 말할 때보다도 우리가 우리의 몸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위하여 "떡"을 먹는다고 말할 때에 우리 자신의 연약함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도 더 분명하게 알게 된다. 이렇게 몸에서 영혼으로 옮겨가는 유비(類比)가 사용될 때,

  • 작성자 24.06.01 08:19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혼이 먹어야 하는 "떡"이라는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보다 우리의 마음속에 더 깊이 들어와 박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떡"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경험하는 그리스도의 살리시는 능력(vis Christi vivifica)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떡은 단지 이미 존재해 있는 생명을 유지시켜 주고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일 뿐이고, 생명을 창출해 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시작되게 하기도 하는 까닭에, "떡"이라는 비유는 부분적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설교를 하시게 된 앞서의 상황에 맞춰서 거기에 적절한 표현들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비유가 불합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앞에서, 모세와 그리스도, 이 둘 중에서 누가 사람들을 더 잘 먹였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었는데, 이것도 그리스도께서 단지 "떡"이라는 비유만을 사용하신 이유였다. 왜냐하면,

  • 작성자 24.06.01 08:20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 반론을 제기할 때에 오직 "만나"만을 언급하였던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만나"와 대비되는 또 다른 종류의 "떡"을 말씀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여기에서 가르치시고자 하신 것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의 영혼은 내재적인 힘(intrinseca vimus)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의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생명(vita a Christo mutuari)으로 산다는 것이다.

    <내게 오는 자는>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이 "떡“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시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자들은 늘 공복(空)인 상태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까닭에,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가 고파서 우리를 배부르게 해주시라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면, 그는 우리의 떡이 되어 주신다.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오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동일한 의미이지만, 전자는 믿음의 결과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명을 얻으려고 그리스도에게로 피하는 것은

  • 작성자 24.06.01 08:21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아서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가 이 구절로부터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 다름 아닌 믿음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면, 그는 충분히 제대로 된 추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그리스도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먹는 것은 믿음 자체라기보다는 믿음의 결과이자 열매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단지 멀리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꼭 붙잡아서, 그가 우리의 것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의 몸에 연합되고, 그의 생명에 참여해서, 그와 "하나가 된다"(요 17:21). 그러므로 믿음이 우리를 어떤 식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지 를알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면,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것은 옳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떡"의 용도는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굶주림을 없애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여기에 덧붙이신 것은 왠지 어색해 보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떡"이라는 말을 원래의 떡이 의미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 작성자 24.06.01 08:21

    사용하고 계시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생명 가운데 유지시켜 주는 하늘에 속한 자신의 능력을 "만나"와 대비시켜야 하는 상황에 계셨기 때문에 단지 "떡"이라는 단어만을 사용하셨다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아울러,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민족의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서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모든 것을 “떡”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표현하신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은 제유법(提喩法)을 사용해서 "식사하다"라는 의미로 "떡을 먹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에게 "일용할 떡"(개역에는 "양식"으로 번역됨 - 역주)을 주시라고 기도할 때(마 6:11), "떡"이라는 단어 속에는 마실 것을 비롯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에게로 나아가는 자는 누구든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히 얻게 될 것이다.

    『칼빈주석: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 24.06.01 11:25

    @장코뱅 주석에 나온 칼빈의 말을 보면 옛날 사람이지만 보수적이지만 않고 의외로 신박합니다. 좋은 내용입니다.

  • 24.06.02 21:50

    @노베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06.01 09:13

    <6:32-36 생명의 떡> 이 부분은 27-29절의 재해석이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예수께서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추론해낼 수 있다. 즉 예수께서 생명의 양식을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27절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생명의 떡을 주신다는 32절이 그것이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셨으나 군들은 아직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6:34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이 말은 영적으로 무지했던 사마리아 여인의 요구를 상기시킨다(4:15). 그래도 그녀는 자기가 시야를 만났음을 깨닫고 마을 주민들에게 그를 증거했다. 그리하여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몰려와 예수를 믿게 되었다(4:39-42). 하지만 이 무리는 사마리아인들도 경험하지 못한 표적을 목격하고도 결국에는 예수 곁을 떠난다(66절).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이 말씀은 본서에 등장하는 ‘나는 ... 이다' 선언 중 첫 번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27절의 말씀과 비교해 볼 때 예수께서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신 것처럼 느껴진다. 예수께서 생명의 양식을 주신다고 선언하신 직후 다시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순이 아닌가?

  • 작성자 24.06.01 09:13

    그러나 사실은 27절과 본절의 말씀이 성육신의 신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태초에 계신 말씀이 하나님이시라는 것(1:1)과고 말씀이 육신을 입으셨다는 저자의 증언(1:14)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27절과 본절이 말하는 바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예수께서는 태초부터 선재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떡으로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6:36> 생명의 떡은 오직 믿음으로 먹을 수 있을 뿐이다(29,35절).

    <6:37-40 생명의 양식 되신 예수님> 여기서는 35절에 나타난 '생명의 떡‘으로 초대함 이 반복된다.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께 나아오는 자들은 박대를 받지 않을 것이다(37절). 그리고 그들은 생명의 떡을 먹음으로써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 결국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40절).

    <6:37>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택하심과 부르심 및 성도의 자발적 신앙의 결단을 모두 함축한 구절이다.

    <6:38,39>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성과 사역을 밝혀야 할 때마다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 작성자 24.06.01 09:14

    (39절;4:34;5:30;7:16,18,29;8:16,29,42;12:44,45). 여기서 '보내다‘의 헬, '펨포'는 '위임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구원사역의 모든 권세를 위임받고(13:3;마 28:18)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공언하신 셈이다.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분임을 그에게 믿는 도리의 사도' (히 3:1)주지시키며 명칭을 적용시켰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 택한 자들에 대한 완전한 구원 ② 그들의 부활 ③ 그들이 영생을 누리는 것 등이다.
    <마지막 날> 요엘서, 여호와의 날

    『톰슨3 성경주석』, “요한복음”.

  • 24.06.01 11:18

    @장코뱅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간단히 잘 요약했네요. 잘 참고합니다.

  • 24.06.01 11:26

    오늘도 이 성경묵상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댓글의 주석을 통해서 좋은 지식도 얻습니다.

  • 24.06.03 19:07

    공감합니다.

  • 24.06.01 11:58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대속을 위해 희생하신 것을 알고 믿는 것인데, 그가 구세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영접하는 것을 말하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쏟아져 내렸던 것과 같이 예수님은 성부께서 보내주신 생명의 떡이셨네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자들을 성자께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아버지께로 다 이끌겠다고 하신 것이 엄청난 복음이고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로서 "복음에 힘쓰는 자"라는 글귀를 마음에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 24.06.01 12:21

    요약, 추가설명과 풍성한 댓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 24.06.01 15:51

    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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