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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학회
 
 
 
카페 게시글
·············시창작강의 스크랩 처음 시 쓰는 사람을 위하여
김명 추천 0 조회 104 15.01.11 18: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처음 시 쓰는 사람을 위하여

 

 

1. 시 쓰는 마음

하루가 다르면 시가 보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별난 사람인가 아니면 보통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인가?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답을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별난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통 사람이기도 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이 두 가지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나는 시를 쓸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이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제가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제 등교할 때하고 오늘 등교할 때하고 뭐 다른 게 없었니?’ 어떤 학생들은 눈이 뚱그래져 가지고, 어제나 오늘이나 그게 그건데 무슨 뚱단지 같은 질문이냐고 할 것입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자기가 발견한 새로움을 말할 것입니다. 앞산이 훨씬 맑고 깨끗하게 보였다는 둥, 옆집 누나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는 둥, 교문 옆 울타리에 살구꽃이 몇 송이 피었다는 둥,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루하루 생활에서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하?사람은 시를 쓸 수 없습니다. 직장인이건, 가정주부건, 사업을 하는 사람이건 마찬가지입니다. 나날이 새로움을 찾지 못하는 생활은 아무런 발전이 없습니다. 시를 쓰는 마음은 하루하루를 새롭게 사는 마음입니다.
단순한 비유를 해 봅시다. 제가 사는 밀양은 경치가 아주 빼어난 곳입니다. 겨울날 아침에 일어나면 밀양강에서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릅니다. 그러면서 앞산의 모습이 서서히 깨어납니다. 자세히 보면 물에는 청둥오리 몇 마리 헤엄쳐 다닙니다. 이런 장면을 본 어떤 사람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에서 솟구쳐 오릅니다. 정말 말로는 할 수 없는데 뭔가가 마음 속에서 솟아오릅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 밀양에 살고 있다는 희열, 이런 뭔가가 있겠지요. 그리고 오늘 하루는 정말 좋은 날이 될 거라는 기대로 설레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이러한 경치를 보고도 그냥 무덤덤하게 넘어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러한 변화조차도 모르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예만 가지고 생각해 봅시다. 마지막 사람은 십 년을 살아도 첫 번째 사람이 일 년을 산 만큼도 느끼지 못하는 삶이 됩니다. 삶이란 얼마나 물리적으로 오랜 시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삶,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삶이 진정으로 값진 삶입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보인다면 시를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은 갖춘 게 됩니다.

밭매는 민요 같기도 하고
타령 같기도 하고
흘러간 유행가 같기도 한 나직한 노래 따라
담배연기 자욱한 화장실에 들어섰다
해탈을 한 음정 없는 노래가
낯선 사내를 부끄러워 않고
바지춤에 매달린다
수건을 두른 늙은 아줌마 쭈그려 앉아
식기 닦듯 얼싸안고 변기통을 문지르다
비누 범벅된 노래로
나를 힐끔 쳐다본다
―이도윤 <노래>

시를 쓰는 마음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다르게 보인다고 시를 쓸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춘 것은 아닙니다. 다시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이는 나날이 새로운데, 보는 것마다 만나는 이마다 돈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야, 저 땅을 어떻게 하면 큰 돈 벌겠는데. 요기다 무슨 가게를 내면 돈이 되겠는데. 저 사람하고 거래를 하면 득이 되겠는데. 매일 이런 새로움을 발견하는 사람은 장삿꾼은 될 수 있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될 수가 없습니다.
새로움을 발견하는 눈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강물에 대한 사랑, 어린 아이처럼 노니는 청둥오리에 대한 사랑, 늘 마주 대하는 산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새로 만나는 이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어야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어야 감동할 수 있고, 슬퍼할 수 있고, 괴로워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내가 남이 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내가 산이 되어 듬직하게 서 볼 수 있고, 오염되어 가는 강물이 되어 볼 수 있고, 어린 아이가 될 수 있고, 하루 종일 학교에 붙들려 있는 학생이 되어 볼 수 있고, 늘그막에 혼자 되어 외로운 노인이 되어 볼 수 있고,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아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가 되어 볼 수 있습니다.

가뭄 끝, 쌀비 온 뒤
장자실 보성할매
땅에 딱 붙은 콩밭에
듬뿍듬뿍 비료 주면서
많이 묵고 이내 크거라 와!

그 소리 듣고 이 가을
손가락만한 콩깍지를 매달고
바람 한 자락에도 주저리주저리
웃어 대는 콩밭이렷다

오매 이쁜 내 새끼들!
늬들 때문에 내 서울 못 간다
내 떠나면 늬들 누가 거두노
보성할매 칭찬 또 담뿍 받으며

하기사, 하느님은 밤마다
콩들과 운우지정을 나누어서
아침이면 그 이파리들이
이슬 가득 맺힌다는 것이다.
―고재종 <내 새끼들>

핵심을 잡아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예리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작고 사소한 일도 함부로 보아 넘기지 않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인생의 큰 의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잡한 세상과 생활 속에서 문제의 핵을 파악해 내는 통찰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리한 눈과 통찰력은 정신적 긴장에서 옵니다. 편하게 생각하고 쉽게 생각하고 무시해 버리거나 가벼이 여기는 데서는 그러한 힘을 기르지 못합니다. 저 현상의 뒷면은 무엇일까? 저 일의 기쁨은 어떠할까? 왜 저 여인은 아이를 서럽게 때리는가? 우리 삶의 여러 문제, 근본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서 예리한 눈과 통찰력이 길러진다고 생각합니다.

뜨거운 여름날이건
날 추운 겨울날이건
썩어 가는 김 뿌연
두엄더미 속에서
하얀 등줄기에
터질 듯,
한 가닥 푸른 힘줄 내지르고
굼실굼실
굼실굼실
꿈틀대는 살아 있음이여

아, 맑은 꿈이여
―정세훈 <두엄 속 굼벵이>

이러다 보면 자기 생각의 깊이를 갖게 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생각이란 나름대로 샘을 만들고 물이 고이도록 해야 합니다. 생각의 깊이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자기의 샘을 만들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겨울 하늘이 비었나니
마알간 구름장 사방에서 모이고
모인 구름 저희끼리 흰 빛 더해 갈 때
맨 나중에 나타난 구름의 흰빛은
세상에 더할 나위없이 희어서
미리 온 구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박이로 비잉빙 공중을 돌다가
맨 먼저 죽어서 땅에 떨어지니
사람들은 그를 일러 눈이라 한다
대체로 눈발이라 하는 것은
내 어린 날 길가의 아이들이
저희끼리 잘 어울려 노닐다가
그들 중의 한 아이들 따돌리었을 때
무리에서 떨어진 아이의 발끝처럼
텅 빈 마음으로 서성거리며
숨가쁘게 숨가쁘게 내닫는 것이다
―이동순 <눈발>

쉬지 않고 수련해야 합니다.
대학의 문학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문학회에 들어가면 선후배들이 만나 술도 한 잔 하고,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의 작품을 읽고 비평을 합니다. 그런데 선배들은 후배가 밤새워 써온 시를 하나하나 뜯어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뺄 것은 빼고 해서 본래 시의 반으로 줄여 버립니다. 어떤 경우는 이것도 시냐고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후배는 열받아 가지고 집에 가서 잠도 안 자고 또 씁니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 봐라. 내가 잘난 선배놈들 따라 잡고 말 것이다. 코를 납작하게 해주지. 이렇게 혼자서 벼릅니다. 그런데 다음 모임에 가면 또 시가 난도질을 당합니다. 이렇게 해서 후배는 문학의 열정을 키우고 끊임없는 습작을 합니다. 그러다 세월이 가서 선배가 되어 보면, 자기에게 혹독하게 대했던 선배들의 마음 속에 후배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우치게 됩니다. 시 몇 편 써 보았다는 걸 가지고 거만해서는 안 됩니다. 습작기에는 1년에 100편 이상 쓰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문예반이나 대학의 문학회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온 사람들입니다.

남의 비평을 잘 듣고 자기를 키우는 거름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년이 된 사람들과 시를 이야기할 때 제일 괴로운 게 하나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건 시의 문턱에도 못 간 것인데, 이건 시도 개똥도 아닌 것인데, 그렇게 말하기가 힘듭니다. 내가 하는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섭섭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별 것 아닌 녀석이 되게 잘난 척 하네. 이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문학을 하고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비평을 겸허한 마음으로 듣고 자기 세계를 키우는 거름으로 삼아야 합니다. 자기 세계에 대한 고집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고쳐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초심자의 경우 자기 시가 객관적으로 보여야 시 쓰기에 입문한 것입니다. 자기가 써 놓고 참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단계는 아직 제대로 시가 안 되는 경우입니다. 자기 시의 한계나 문제가 보여야 합니다.

2. 시의 큰 특징

시는 가슴으로 읽어야 합니다. 더 엄격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읽어야 합니다. 머리로 읽을 때 시의 감동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시 전체가 내게 확 와 닿아 내가 되어야 제대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 머리로 뜯어보는 단계입니다. 어디가 좋은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했는가를 찾는 단계입니다.

시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표현을 해도 듣는 사람에게 똑바로 이해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건 시라는 것이 산수나 과학 공부처럼 누가 보아도 확실한 모양을 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감정이나 사상이나 그런 마음의 세계에서 제각기 색다른 눈으로 보고 느끼고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고, 또 그 시를 읽는 사람도 제 마음에 따라 그것을 좋다 나쁘다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원수 <동시작법>

그렇지만 시의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철수 시인은 서정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시는 시인의 정감을 고도로 집중하여 감동을 표현합니다. 결국 시인의 마음 속(내면) 세계를 압축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둘째, 시는 풍부한 서정성에 기초합니다. 이는 다른 문학 갈래와 달리 시인의 사상 감정을 직접 토로하기 때문에 강렬할 수밖에 없는 서정성입니다.
셋째, 시는 언어가 세련되고 음악성이 강합니다.
―오철수 <시쓰기 워크숍 1> 17쪽


3. 시 창작의 과정

시는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 나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문자로 옮겨 적기 이전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고, 문자로 옮겨 적은 후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입니다.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다 글로 옮겨 적는 경우가 앞의 것이고, 글로 옮겨 적은 다음 수없이 읽고 고치고 하는 과정이 뒤의 경우입니다. 사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보면 이 두 과정을 다 거친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저의 졸작 하나를 예로 들겠습니다.

봄날-꽃 보면 눈이 시어/미친 거렁뱅이라도 좋겠네.

처음에는 이런 메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봄날 하루 꽃을 보면서 눈이 시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눈이 시다는 생각은 자주 있는 경험입니다. 여기서 나를 자극한 것은 저 눈이 시도록 황홀한 세계에 빠져 들고 싶도록 만드는 유혹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 그 세계에 빠지고 싶은 겁니다. 정말 우리가 보기도 싫어하는 거지가 되어도 좋을 정도로 나를 미치게 하는 봄빛입니다. 여기서 ‘거렁뱅이라도 좋겠네.’라는 생각이 떠 오른 것입니다.

봄날-천지 모든 숨결이/꽃으로 환생하는 날/눈이 시어버린/비렁뱅이가 되어도 좋아라.
메모를 두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미치게 한 저 꽃이야말로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천지 모든 숨결이’ 모여서 이루어졌을 거라는 데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비렁뱅이 중에서도 제일 처절한 눈이 먼 비렁뱅이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눈이 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눈이 시어버린’이라고 표현 한 것은, 첫 메모에서 나오듯 눈이 시어버릴 정도의 감동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천지 가득 숨결이
몽글몽글
꽃으로 환생하는 날

눈이 시어버린
비렁뱅이 되어 떠돌아도
좋아라.
―이응인 <봄날>

마지막 완성된 졸작의 모양입니다. 앞의 내용을 여러 번 읽고 다듬어 정리한 것입니다. 이처럼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길 가다 발길에 툭 채여
구르는 잔돌 하나
내 주머니에 떨어진다

찢겨진 신문지 조각이나
백지 위에 뿌리 내려 산다
살다가 어떤 놈은
삭은 소똥 냄새를 내기도 하고
세탁기에 들어가
얼굴을 알 수 없는
휴지 뭉치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놈은
어느날
부시럭거리며 내 손에
붙들려 나온다
나와서는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늘어진다

술 취해 돌아오면
등을 두들겨 주기도 하고
잠자리에서 불쑥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한 사날 이러다 보면
제법 얼굴이 말끔한
시가 되기도 한다
더러는 잊을 수 없는 사랑으로
가슴에 멍을 남기기도 하고.
―이응인 <시를 위한 단상>


4. 시 쓸 때 유의할 것들

남의 시를 많이 읽고, 많이 써야 된다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좋은 시는 좋은 생활에서 나옵니다. 멋을 내고 거짓을 부리는 데서 시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만큼 시가 나옵니다.

어미 되는 염낭거미 때가 되면
풀잎 돌돌 말아 돈주머니 같은 풀잎집 짓고
그 안에 스스로 갇혀 알을 낳아
새끼 나올 때까지 지성으로 지킨다네
마침내 그 어린 아귀 같은 무서운 새끼들 생겨나면
끔찍하여라
제 어미 몸 샅샅이 파먹고 자라난다네
제 어미 갈색 빈 껍데기만 남아 바스러질 때까지

애탄지탄 딸 키워 시집보내고도
직장생활하는 그 딸을 대신해
늦도록 딸네집에서 살림 도와주시는 친정어머님
해마다 다르게 허리 더욱 꼬부라지고
낙엽처럼 바싹 마른 몸 바스러질 것 같네
염낭거미 새끼보다 조금도 더 나을 것 없는
쉰 살이 되도록
다 늙은 어머님 진 파먹고 살아가는
그 딸년
―양정자 <친정 어머님>

처음 시를 쓰는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몇 가지 이야기하면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시는 형상의 언어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내뱉기만 하면 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니 고뇌니 아픔이니 하는 말을 그냥 내뱉어서는 독자들에게 절대로 감동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나 정말 괴로워, 괴로워 죽겠어.’라고 수십 번 뇌어도 다른 사람은 그 괴로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나, 5년 동안 함께 하던 그녀와 헤어졌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어의 지나친 사용이 문제이고, 긴장을 잃은 산문에 가까운 문장을 많이 쓰는 것도 문제입니다. 말을 아끼고 다듬는 과정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감동의 중심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감동의 순간이 올 때마다 메모를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그것 자체가 훌륭한 시가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래 새겨보고 생각한 다음에 종이에 옮겨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는 할 말을 다 하지 않으면서 할 말을 다 하는 문학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동양화에서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화면 가득 색칠을 하지 않지만 우리는 마음 속에서 상상력을 통해 화면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기 감정에서 벗어나 자기의 시를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써 놓은 시를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냉정한 마음으로 다시 보아야 합니다. 내가 쓰는 글은 아직 시가 되지 못한다, 어딘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또, 남의 시를 읽으면서 감동의 요소, 좋은 점, 개성을 자꾸 찾아내야 합니다. 좋은 시는 직접 공책에 옮겨 적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는 정해진 틀이 있어서 거기에 맞추어 써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시가 갖는 운율은 형식적인 틀에 맞추어 반복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닙니다. 그 시에 맞는 틀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으며, 그걸 여러 번 읽고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살아온 아무 멋도 없는 것 같은 아주머니의 그 부지런함과 절묘하게 만난 암탉의 모습을 다음 시에서 보십시오.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줄 것입니다. 부끄러운 글을 이만 맺습니다.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되똥되똥 걸어와 후다닥 헛간 볏짚 위에 오른다
그리고 아주 잠깐 사이 눈부신 새하얀 뜨거운 알을 낳는다
비 맞은 닭이 구시렁구시렁 미주알께를 오물락거리며 다시 일 나간다
―이시영 <당숙모>

 

출처http://cafe.daum.net/people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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