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과 한강은 서울의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각급 학교의 교가나 응원가의 가사에도 한강이나 남산이라는 단어는 적지 않게 포장되어 있을 것이다. 특히 서울에 자리를 잡은 학교들에서 더욱 다빈도로 접할 수 있을 게다. 동북중고교와 영희국민학교의 교가를 아득한 추억을 뒤척이며 적어본 것이다. 60여년이 흐른 지금의 교가(校歌) 가사가 어떻게 바뀐 것인지는 확인한 바가 없으니 모르겠다. 한강과 남산은 서울 시민들의 삶의 애환이 깃들여 있다. 한 걸음 더 뻗어보면 대한민국의 지난 날의 아픈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의 뒤안길의 필름을 꺼꾸로 되돌려 보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들여다 보자. 한강을 중심으로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 아닌가. 창과 방패가 맞부딪치는 팽팽한 긴장감과 뽀오얀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아직도 귓청을 때리고 있다. 아차산과 용마봉을 오르면 그 당시의 유물과 보루들을 곳곳에서 접할 수가 있다. 조선 500년은 어떠한가.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 말 못할 수모와 약탈의 각축장이 아니던가. 한강의 줄기였던 삼전도 지금의 석촌호수 근처에서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로 신하가 군주에게 조아리는 국치(國恥)를 당하기도 한다. 36년 동안이나 왜놈들의 노예로 전락한 비통함과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피비린내 나는 6.25 전쟁도 한강을 핏빛으로 물들이기도 하지 않았는가. 오늘의 남산의 모습은 어떠한가. 남산을 오르면 호란(胡亂)과 왜란(倭亂)의 후손들인 중국인과 일본의 자손들인 관광객들로 시끄럽다. 남산 푸른 숲의 정기를 뻗쳐주고 있는 안중근의사와 애국지사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96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의 30여년에 걸친 군사쿠데타의 독재정권은 어떠했는가. 서슬퍼런 총칼 앞에 국민의 모든 기본권은 말살되고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공화국이라는 단어는 휴지조각으로 사라진다. 서울 하늘은 연일 최루탄 가스로 하루하루가 숨쉬기도 버거운 세월이었다. 남산은 알고 있으리라. 한국인의 슬프고 비통한 역사를 말이다. 말이 없는 남산은 오늘도 똑똑히 보고 듣고 가슴에 품고 있는 모습이다. 한강을 유유히 흐르게 가꿔온 민족의 혼령(魂靈)들의 한 마디는 무엇일까. " 불쌍하도다, 한(恨)맺힌 한민족을 어찌하면 좋을꼬 " 아마도 할 말이 없을 것이외다. 위짜추 서류바 까토나 삼총사가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를 빠져나와 장충단공원으로 들어선다. " 여기서 축구공을 차면서 희희낙낙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60여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 동북고 동기생인 노객들의 독백은 추억의 뒤안길로 들어선다. 그 때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고 잘 갖추어진 공원이다. 까까머리 중고등학교 시절이 뇌리에 흑백 필름으로 돌아가고 있다. 월사금(月謝金)을 못 내어 출석도 안 부르고 내쫒겼던 모습이 가슴을 적시고 있다.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이 노점상으로 하루살이 인생이던 피난시절의 자화상이다. 장충단공원과 남산 중턱을 배회하다가 하교시간에 맞추어 귀가를 한다. 부모님께는 입뻥긋도 못한채 책가방에서 양은도시락을 꺼내 놓을 뿐이다. 김치 국물이 흘러 젖은 가방을 낡은 신문지로 닦는다. 돈을 지불하며 공중수도에서 물을 물지게로 사다가 먹던 시절이니 닦을 물인들 생각이나 했으랴. 지금의 초등학교인 영희국민학교에서의 생활은 거의 기억에도 없다. 오학년 1학기 때에 대전에서 전학을 왔으니 오죽했을까. 허허 벌판 같은 오장동 지금의 중부시장 자리에 서너평 판자집이 옹기종기 모여서 힘겨운 삶을 이어 간다. 이곳이 바로 어린 노객의 서울의 첫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 만고에 푸르른 저기 저 남산 유유히 흐르는 맑은 한강수 " 교가만큼은 또렷하게 부를 수 있다. 남산과 한강에 한과 설움은 한민족인 나에게도 켜켜히 쌓인 응어리가 아닌가. 남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의 전경은 어떠한가. 맞은 편 북쪽에는 북한산 백운대 인수봉 도봉산의 만장대 인왕산 안산 수락산 불암산 청와대를 감싸고 있는 북악산 서편으로는 관악산 청계산 동쪽에는 아차산 용마봉 예봉산 검단산 남으로는 남한산성 대모산 구룡산 등으로 서울을 에워싸고 있다. 강남과 강북을 가르며 흐르고 있는 강물이 바로 한강인 것이다. 시내에는 어디랄 것 없이 회색빛 높은 건물과 아파트들로 숲을 이루고 있다. 수 많은 자동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차도를 가득 메우고 있다. 뿜어내는 매연들로 서울 하늘은 언제나 희뿌연 하늘이다. 땅 속으로는 지하철로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키어 출퇴근 시간에는 발디딜 틈도 없다. 내 아들 딸도 지금의 강남 8학군이라는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다.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여 며느리 사위 그리고 꿈에 그리던 손주녀석들도 품에 안겨주었다. 이제는 자식들이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치열한 경쟁의식으로 다시 강남으로 찾아들었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희생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지 않다 하겠다. 물불도 마다 않는 것이 오늘의 한국의 교육현실이며 부모들의 당연한 욕심이 아닌가. 남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누구도 풀기 어려운 미로(迷路) 그 자체란 말인가. 시내를 배경으로 몇 컷의 폰샷을 환한 웃음으로 담아본다. 답답한 마음을 남산타워로 날려 보내고 북창동 맛집으로 향한다. 순간 순간이야말로 노객들에게는 삶의 전부이거늘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