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과학사 비교 고찰(9)
유럽의 '중세' 시기에 제지술, 인쇄술, 주철기술, 화약, 나침반 등이 동양에서 전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가 망한 5세기부터 15세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중세' 시기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압도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로서 까다로운 법과 규칙들이 경제활동을 폐쇄적으로 만들었으며, 중요한 기술을 보호하려다 보니 혁신적 기술들이 널리 전파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종이를 만드는 제지술의 경우, 동양에서 이슬람 세계를 거쳐 1150년에 에스파니아에 전래되었으며, 1180년에 프랑스 에로(Herault), 1276년에 이탈리아 몬테파노(Montefano), 1391년에 독일 뉘른베르크(Nuernberk), 1494년에 영국 등으로 전래되었는데, 제지술이 에스파니아에서 영국까지 도달하는데 물경 344년이 걸린 셈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처음 종이를 발명한 사람은 후한(後漢, 25~220년)의 채륜(蔡倫)으로 알려져 있다.
채륜이 105년경에 처음으로 종이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까지 책이란 대나무 조각에 글을 써서 엮은 죽간, 또는 비단에 글을 쓴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종이가 보급됨으로써 책의 값이 저렴해지고 지식의 보급이 활발해 질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종이의 발명은 동양의 문명이 서양보다 훨씬 활발하게 확산될 수 있었던 수단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 종이 만드는 기술이 개발된 후, 약 1,000년 후에 유럽에 전해졌으며, 이어서 인쇄술이 유럽에 전래되었는데, 종이와 인쇄술의 전래가 서양의 문명을 도약할 수 있게 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난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수리하다가 그 속에서 다라니경(陀羅尼經, 산스크리트어 dhārani)이 발견되었다. 다라니경이란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음역한 것인데, 이 다라니경이 706년 이전에 만들어진 목판본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다라니경에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년)가 만든 글자라고 하는 측천문자(則天文字) 4자가 10회에 걸쳐 기록되어 있고, 704년에 한역되었으며, 한국에는 706년 황복사탑에 이미 모셔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다라니경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라고 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 인쇄물로 밝혀졌다. 현재 국립박물관에서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세로 6.6cm, 길이 약 6.5m의 두루마리식 불경으로서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1]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그런데 현재 경상도 해인사에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이 보존되어 있다. 가로 65cm, 세로 24cm, 두께 4cm의 목판 81,258점의 경판(經板)이 현재까지 770년 이상 아무 변함없이 견디고 있으며, 해인사의 경판고(經板庫)도 통풍이 잘 되고 습기가 자동적으로 조절되는 아주 보물스러운 건축물이라고 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을 보존하고 있으며, 세계적 규모의 목판 불경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목판 인쇄술의 종주국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우기 1234년에 강화도에서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를 28부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비록 실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로 알려져 있다.
또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한 『직지심경(直指心經)』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서 우리나라에 보존되어 있다.
즉, 문명은 마치 물(지혜)과 같아서 높은 문명에서 낮은 문명으로 흘러가는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역류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서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는 지식을 널리 확장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이 뒤따르게 되며, 새로운 지식이 창출됨에 따라 그에 따라 필요한 새로운 기술이 끊임 없이 개발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문명의 원천지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 신라·발해 남북국 시대 뿐만 아니라,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에도 문명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겠는가?
즉, 본 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이 현재의 하남성 개봉시를 중심으로 동쪽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 상기한 주요 과학기술적 성과들이 고구려·백제·신라 등의 강역과 밀접하게 연계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유럽에서는 1450년경에 독일 구텐베르크에서 금속활자 인쇄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려보다 대략 216년 뒤의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금속활자를 만드는 기술은 금속기술에 해당하는데, 청동기든 철기든 모두 금속기술에 해당한다. 즉,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이 청동제기와 불상, 종 등을 끊임없이 제작해 오면서 금속기술이 발전해 온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주철기술은 1,200도 이상의 고온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신석시시대부터 옹기와 자기를 만들던 요업기술이 기반 기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