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치제의
후궁속칭
동악비
만주정백기
사람으로
내대신
동악석의
딸이다
18살에
입궁하여
순치제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순치
13년8월에
현비라는
칭호를받아
현비
동악씨라
불렸다
그해12월
황귀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동악씨가
황귀비로서
받은예우는
민혜공화원비
의정대귀비등
정실
취급받던
동서궁황비
이상이었다
본래황후를
책립할때만
조서를
천하에
반포하지만
순치제는
황귀비
동악씨의
책립조서를
천하에
반포한다
동악씨를
제외하면
황후가
아님에도
조서를
반포한예는
건륭제가
즉위13년
한귀비
나랍씨를
황귀비
섭육궁사로
책립하며
동악비의
선례를
따른
경우
밖에없다
당연히
효장태후는
황후를
무시한
순치제의
행동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동악씨의
책립
조서에는
황태후가
자애로운
명을내려
황귀비로
책한다고
나와있으나
사실은
효장태후가
병석에누운
틈을 타
순치제는
동악씨를
황귀비로
책립한
것이다
1657년아들
1657~1658
낳았는데
바로
순치제의
4황자
영친왕이다
순치제는
가장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탄생하자
크게
기뻐했고
황태자에
봉하려 했다
그러나
이아이는
약3개월만에
요절하고
말았고
이에엄청난
충격을
받은현비
동악씨는
얼마후걸린
천연두를
이기지
못하고
21살의
나이인
1660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순치제는
국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한
대신들을
물리치고
현비
동악씨를
황후로추존
효헌장화지
덕선인온혜
단경황후란
시호를
내렸다
또수천자에
달하는
동비행장
董妃行狀을
직접지어
그녀를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