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개항이 되면서 새로운 문물이 우리에게 빠른 속도로 전해졌다. 이는 전통의 모습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복합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전혀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만나게도 했다. 이곳에 있는 상점들은 전통 한옥이지만,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가계로 운영되던 포목점, 한약방, 주물전, 양태전 등을 재현한 것이다.
은하 사진관
"태양의 후예"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라고 한다.
오랫동안 썼을 것 같은 책상과 금고가 정겹다.
국밥집
약속 다방
화개 이발관
한양방
이란 깃발을 걸어 한약방임을 표시하고, 다른 한쪽에는 각종 약재를 판매하는 매장을 갖추고 있는
개항기의 한약방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한약방은 우리의 전통 병원이자 약국으로, 진료 및 치료, 약의 조제와 약재의 판매를 겸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구리개(銅峴:오늘날의 을지로)에 많이 있었다.
양태전
갓은 말총으로 만들기 때문에 재료가 풍부한 제주에서 많이 생산되었지만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곳은 서울인지라
서울의 상가에는 갓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양태전이 많이 자리잡고 있었다.
포목점
비단과 포목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조선시대 현성에서는 취급 품목에 따라 선전(線廛), 면주전(綿紬廛), 면포전(綿布廛), 저포전(苧布廛)등으로 나뉘어졌다.
전차
개항의 거리가 변화를 겪게 되는 가장 큰 계기 중 하나는 전기가 들어 온 것이다. 일반화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로 인해 도시에 나타난 전차는 모든 사람들에게 놀라운 대상이었다. 개항기에 도입
되었던 새로운 문물의 상징이라 할 수 있기에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의 중심을 운영 하던 것을 재현해
놓았다.
인쇄소
1930년대부터197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사용되었던 인쇄관련 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활판 인쇄기
제본 압축기
제본 재단기
자동활자 주조기
활자판
물레방앗간
물레방아
연자방아
연자방아는 편편한 원형의 돌 위에 다시 둥근 돌을 얹어 이것을 소나 말로 돌려 곡식을 찧는 도정기구로 '연자매'
'돌방아', '돌방애'라고도 한다.
남오성 장군묘 묘비 및 석물
1643년에 출생한 무관으로 1676년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삼도통제사 등을 역임하고 1712년에 사망했다.
상돌
상돌은 무덤 앞에 설치하는 넓은 장방형의 돌로 된 상으로 제수나, 향로를 놓는 데 사용한다.
문인석
무덤을 지키는 석물로 문관의 차림새에 홈을 잡고 있는 형태로, 문관형상으로 만든 석물이다.
회격묘
회격묘는 고려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던 석관을 대체해 조선시대 이후에 권장되었던 장묘문화다.
오촌댁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있던 집을 영양남씨(英陽南氏) 난고종파(蘭臯宗派)로부터 2010년 기증받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오촌댁(梧村宅)’이라 불리는 이 집은 해체 과정에서 “道光貳拾捌䄵戊申三月二日申時立柱上樑同日時”이라고 적힌 상량문이 나와 1848년에 지어진 것이 확인되었으며, 이 지역에 지어졌던 조선후기 중상류계층 전통한옥의 한 유행을 잘 보여주는 집이다.
가운데 마당을 가진 ㅁ자 형식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대청마루
대문을 마주 보고 대청마루가 있다.
상방
안방
사랑방
정지
수장공간으로 도장방과 고방이 있다
뒷마당에는 장독대를 두었는데, 대청마루 뒤편으로 장독대가 보인다.
오른쪽 마당에는 디딜방앗간과 우물, 뒷간을 배치하였다.
뒷뜰에 놓여 있는 장독대와 김치를 묻어 두엇을 것 같은 움집이 있다.
정무목과 정낭
정주목은 제주도에만 있는 것으로 집안에 들어가기 위한 출입로인 올레 입구 좌우에 돌이나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 설치하는데, 긴나무로 만든 정낭을 걸칠 수 있도록 세 개의 구멍을 뚫어 놓는다.
돌하르방
제주도의 특징적인 석상(石像)으로 우석목ㆍ벅수머리ㆍ돌하르방 등으로 불리고 있으나,
현재는 돌하르방으로 통칭되고 있다. 부리부리한 큰 눈, 자루병 같은 코, 단정히 다문 입
등은 위엄과 함께 익살스러운 인상까지 자아낸다. 과거에는 성문(城門)밖에 세워두고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셨으며, 주술적(呪術的)ㆍ금표적(禁標的)기능까지도 담당했던 것으로
보아 장승의 역할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수표
수표는 가뭄과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수위를 재는 측량기구로, 조선시대 세종(1418~1450)
때 처음 만들어 한강변 바위와 청계천ㆍ마전교(馬廛橋, 후에 수표교라고 함)등에 세웠다.
장승 동산
장승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또는 지역의 경계표, 이정표 역학을 하는 것으로 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대게 나무나 돌로 만들며 남녀를 상징하는 두 기가 마주보거나 나란히 서있다. 장승, 장성, 벅수, 벅시, 장신, 수살목, 돌미륵, 돌하르방 등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효자문과 효자각
나라에서 태인 허씨 허권에게 내린 효자 정려를 기념한 효자비의 보호 건물과 출입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