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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를 누리는 壽樂山(수락산)이기를
오늘 아침의 기온이 최저 6℃까지 내려가고 낮 최고 기온도 15℃ 전후를 예보한 전형적인 가을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날입니다. 2016년 10월 9일(일) 09시 46분에 7호선 수락산역 6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대합실에서 씨모우 조단스 서류바 까토나 넷이 만났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수락산(水落山)의 화강암(花崗巖)에서 뿜어내는 기(氣)를 폐포 깊숙히 흡입할 생각입니다. 수락산을 접할 때마다 내 나이 오십대 후반 십오륙년 전에 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떤 마음으로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홀로 수락산을 찾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수락산역을 빠져나오니 많은 산객들이 울굿불굿한 등산복에 등산배낭을 메고 일행들을 기다리느라 서로 인사하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습니다. 배낭은 물론이고 얄량한 물병 하나도 챙기지 않고 맨몸으로 나선 사람은 오직 나 혼자 뿐입니다. 서둘러서 수락산 들머리에 다달으니 김밥 어묵 과일 후라이드 치킨 막걸리 소주 캔맥주 생수 등산복 매장 포장마차 없는 것 빼고는 없는게 없는 시장통 그 자체입니다. 김밥을 사서 배낭에 챙겨 넣는 사람이며, 아예 어묵에다가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키고 있는 산객들, 생수나 캔맥주를 마트에서 들고 나오는 사람, 등산용품 매장에서는 삼십프로 세일이라며 목청을 돋구며 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청년, 앞서 가고 있는 친구를 쫓아가며 부르는 여인네의 쏘프라노, 벌써 부터 등산스틱을 휘저우며 걷고 있는 아저씨 등등으로 볼거리도 심심치 않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백운동 계곡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앞서가는 객들을 뒤로 하고 깔딱고개를 오릅니다. 계속 산길을 오르노라면 넙다랗고 하얀 화강암벽인 치마바위가 앞을 가로 막습니다. 45도 정도의 급경사 바위 위를 거침없이 밟고 오르는 간(肝) 큰 산객도 있습니다. 옆으로는 바위 능선을 따라서 철책과 밧줄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밧줄이나 철책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급경사를 평지처럼 걸어 오르고 있는 도사들을 부러운듯 쳐다 봅니다. 나 역시나 그들처럼 밑에서 한참 동안을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하다가 밧줄에 매달릴 수 밖에 별도리가 없습니다. 나와는 인연이 없는 까마득한 바위벽일 뿐입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는 나도 도전해 보리라 다짐을 해 보기는 합니다. 산행이래야 새벽이나 낮에 시간이 날때면 운동 삼아서 집 근처의 대모산이나 아차산을 오르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얀 화강암 바위를 마주하는 마음은 충격으로 오기(傲氣)가 발동됩니다. 지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 처녀바위는 순결과 정결을 간직하고 처녀성을 지키며 오로지 수도에만 전념하고 있는 수녀(修女)와도 같은 느낌입니다. 나도 난생 처음 바위를 접하는 심정은 동정(童貞)을 뿌려 보지 않은 독신(獨身)의 수사(修士)와 같은 설레임이 있습니다. 반드시 여기 이 수녀를 정복하고야 말것이라는 욕정(慾情)으로 가득한 숫총각의 수사(修士)처럼 말입니다. 그 이후에도 많은 나날들을 수녀 바위 앞에 서서 올려다 보기만 하다가 또 다시 철책과 밧줄에 매달려서 오르곤 합니다. 그토록 지난밤에 다짐한 동정남(童貞男)의 용기는 한낱 물거품으로 사라지곤합니다. 어설피 알면 병이 될 뿐으로 모르는 것이 약이며 모르는 자가 용감하다고 그 누가 말을 했던가요. 사뿐 사뿐 오르고 있는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네의 모습에서 남자의 자존심이 폭발하고 맙니다. 제대로 갖추어 입은 등산복에다 릿찌화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배낭에는 500ml 생수 한병과 이온음료수도 챙겨 넣었습니다. 발 뒷꿈치를 가볍게 들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나도 모르게 그녀를 추월합니다. 30m 정도나 되는 치마바위를 단숨에 오르고 보니 흥분된 마음은 심장을 요동치게 하며 가쁜 숨소리를 거칠게 토해냅니다. 한참을 주저 앉아서 안도의 심호흡으로 정신을 가다듬게 합니다. 내려다 보이는 바위는 까마득한 절벽으로 내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드디어 해내고야 말았다는 그 날의 기쁨과 흥분과 쾌감은 지금도 심장을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바위타기는 수락산에 있는 모든 바위를 섭렵하는 마니아가 되기 시작합니다. 얼어버린 피아노바위를 맨손으로 타고 오르다가 손이 마비되는 위험한 순간도 맛봅니다. 코끼리바위 뒤편에 있는 바위를 오르다가 앞선 사람이 주춤하는 바람에 그대로 미끄러지는 아찔한 순간도 당합니다. 상처는 없으나 등산복 상의 양쪽 소매가 찢겨져 나가는 수모도 맛봅니다. 치마바위 안꼬바위 틈새바위 탱크바위 여성바위 피아노바위 기차바위 도솔봉 바위 총각바위 철모바위 배낭바위 코끼리바위 웨딩바위 마당바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바위를 안마당 거닐듯이 헤매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오늘은 처다만 보고 내려다 보기만 해도 움츠러드는 마음은 역시나 세월은 비켜갈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무엇을 얻고자 무엇에 홀려서 그토록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을 했었을까를 곰곰히 생각케 합니다. 사십대 중반에는 약사회 임원을 한답시고 밤낮으로 휩쓸려 다니기도 합니다. 무엇이 그리 할일이 많은지 일주일에 삼사일은 밤늦도록 술로서 하루를 마감하곤 합니다. 심지어 통풍(痛風) 증상으로 오른손 두번째 손가락이 버얼겋게 부어오르며 말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아플 정도입니다. 언제나 마음한켠에는 아내와 아들 딸에게 별로 신경을 써주지 못하고 있음에 미안함 뿐입니다. 약국 건너편에 있는 내과에서 검진을 받습니다.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고혈압 고지혈증 부정맥이라며 내과원장이 약을 복용해야 한다며 전화가 걸려옵니다. 게단을 오르내릴 때면 무릎 통증으로 식은 땀마저 흘리 정도입니다, 방사선과에서 X-Ray도 축구선수 이상으로 연골이 손상되어 있다는 소견입니다. 한켠으로 미루어두고 한약사 문제와 의약분업의 출범이 맞물리면서 약사(藥師) 아닌 투사(鬪士)로서 설치기도 합니다. 청와대도 방문하여 한약도 의약품의 일종으로 약의 전문가인 약사들이 취급함이 당연하다는 논리도 전개합니다. 한약사라는 타이틀은 세상 어디에도 어떤 국가에서도 찾을 수 없는 직함입니다. 더더구나 약학대학 교과정에도 생약(한약)에 대한 과목이 엄연히 존재하고 충분한 교육을 이수합니다. 입에 거품을 물며 열변을 토해 보지만 " 약사님 이제 모든 사항을 충분히 알고 있으며 한약조제 시험 같은 것은 절대로 없을테니 안심하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 OO 수석이라는 높은 분의 대답입니다. 정치인들의 입에 발리는 흰소리를 그 전에도 그랬지만 믿을게 아니며 더욱 더 불신의 골만 깊어졌습니다. 약사들의 불신의 늪은 극으로 치달으며 약사면허증을 반납하는 실소를 금치 못 할 상황극도 연출합니다. 하지만 한약사가 탄생하게 되며 약사들은 한약조제자격증을 위한 자격시험을 치릅니다. 대학 졸업 후 30여년 이상이 지나서 자격시험을 치러야하는 수모도 당합니다. 그것도 그 당시의 약사면허가 있는 기존 약사들에 한하는 일과성 이벤트로 끝납니다. 결론은 藥師(약사)가 아닌 고작 弱士(약사)에 지나지 않는 약(弱)한 모습의 존재로 자존심만 짓밟힌 모양새입니다. . 2000년도 새 천년을 마지하며 마음을 새롭게 다짐합니다. 여태까지 나의 생활의 참 모습은 한 톨의 열매도 얻지 못 하는 허울 뿐입니다. 그저 확실치도 않은 신기루 같은 허상을 찾아 헤매인 껍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양가도 없는 허튼 일에 덧없는 시간만 낭비한 셈입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임상약학 대학원을 마쳐 보지만 어딘가 허전한 마음은 그리 간단하게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새벽도 아차산을 뛰어 오르고 낮에도 또 다시 아차산을 오르내리는 운동을 몇개월 지속합니다. 약사들 모임이 있어도 고기류는 멀리 하고 야채 위주로 신경을 씁니다. 체중이 8 Kg을 감량으로 정상 체중을 되찾습니다. 매일 아차산을 치료약으로 생각하고 산행을 계속합니다. 그토록 아프던 무릎의 통증도 사라지고 건강검진에서도 특이 사항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하여서도 운동으로 산행은 필수 조건이라는 신념도 갖게 됩니다. 약국을 2년 넘게 본의 아니게 휴업을 하게 됩니다. 열댓명의 고교동기생들과 산악회를 결성하여 스스로 산악대장을 자처하고 나섭니다. 정기적으로 한달에 한번 한국에 있는 400여개의 명산을 모두 오르겠노라고 다짐합니다. 인터넷에 그리 관심도 가지지 않을 시절이라 등산안내 책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일이 잘라내서 배낭에 넣고 일일이 사전 답사를 합니다. 아마도 이때 즈음에 산행에 관심을 가지고 공허한 마음으로 수락산을 만나게 됩니다. 등산에 필요한 기본 메뉴도 알지 못하고 갖추지도 못한채 달려들고 본 것입니다. 수락산은 638m 높이의 그리 높지 않은 화강암으로 뒤덮힌 산입니다. 건너편으로는 북한산(837m)과 도봉산(739.5m) 을 마주하며 관악산과 더불어 서울을 아우르는 산입니다. 서울과 경기도 의정부로 향하는 국도가 통과하는 길목에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과 더불어서 서울을 수호하는 파수병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동쪽 사면에는 금류계곡으로 금류동 옥류동 은선동의 폭포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정조 때는 300일간 기도를 드려서 순조가 태생하게 되었다는 내원암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석림사와 쌍암사가 자리를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도 출몰하여 임금이 사냥을 나서기도 하였던 곳입니다. 서북쪽에는 의정부와 서울 노원구 상계동을 이어주는 수락산 터널이 뚫려 있습니다. 지상으로 짧게 불암산과 갈리는 덕릉고개 위를 통과하여 바로 불암산 터널로 이어집니다. 경기도 호원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을 잇는 사패산 터널은 세계 최장 광폭터널이기도 합니다. 사패산 터널하면 떠오르는 환경단체와 불교계가 극심한 반대에 부닥치기도 하던 곳입니다.사패산 수락산 불암산을 관통하고 있는 세개의 터널이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로서 상당한 시간을 단축시키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 시작하고 개발하는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나 반대에 맞닥드리기도 합니다. 결과론적으로는 국민의 편의와 경제성이 감안 되어야 하지만 민의와 합일점을 찾는소통이 우선시 되어야 함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수락산은 기반암이 화강암으로 암벽을 곳곳에 이루어져 있어서 수림이 그리 울창하지도 않습니다. 오래된 몇백년의 고목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은 수락산은 중랑천의 지류의 발원지입니다. 하지만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암벽들과 아기자기한 계곡은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이며 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산 중에 명산이기도 합니다. 북한산 도봉산 오봉 수락산은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악산(嶽山)으로도 이름을 날리는 산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백년지기 씨모우 조단스 서류바와 함께 산을 오르노라면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숨소리는 가쁘게 몰아쉽니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자연의 향기가 온몸을 휘감습니다. 나무와 나무 가지 사이를 휘젓고 날아다니는 다람쥐의 민첩함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밤송이를 두 앞발로 움켜쥐고 날카로운 이빨로 껍질을 까발리는 까만 청솔모도 시선을 빼앗습니다. 까마귀의 구슬프면서도 청아한 합창소리는 산속을 메아리쳐 울리고 노객의 심금마저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피톤치드의 향기가 피부 깊숙히 파고들고 있습니다. 뇌혈류는 거침없이 순환이 되며 말초혈관의 노폐물도 깨끗하게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 팔다리에는 부하가 걸려도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고 몸 전체는 상쾌함으로 가득합니다. 어느덧 잡념은 사라지고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수락산(水落山) 이름은 금류계곡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가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졌다고도 합니다. 아울러 물이 떨어지면 암벽뿐으로 금방 흘려 버려서 없어지고 만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디에 있든지 모든 산들은 찾아드는 산객 누구든지 받아주고 포용하고 있습니다. 거부나 거절을 모르고 남녀노소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가리지 않고 전부를 끌어 안아줍니다. 이 노객처럼 질병의 치료제로서 삶의 희로애락의 안식처로서 필요불가결한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그토록 암벽을 타고 내리던 탱크바위가 가을 햇살에 반사되어 하얗게 시야에 들어 옵니다. 이제는 바라만 보아야 하는 노구(老軀)가 되었으니 세월은 역시 공평한 것 같습니다. 용원암을 스치어 지나서 당고개 방향으로 향합니다. 가파른 계곡을 조심스레 내려갑니다. 아쉬움을 곰바위가 있는 능선으로 재차 방향을 틀어 오릅니다. 분재처럼 멋들어진 소나무가 있는 평탄한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각자 준비해온 간식으로 출출해진 오장육부를 달래며 혈당도 올립니다. 오리알 모시떡 쌀빵 감 초코렛 요구르트가 오늘의 우리 지기들의 간식 메뉴입니다. 곰바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당고개역과 상계동 그리고 건너편에 마주 보이는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만장봉의 자태가 오늘 따라 더욱 선명하게 클로즈업 되어 보입니다, 미아역 1번출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흐시기와 빼코추에게로 달려가야 합니다. 오후 세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문어맛을 보려고 하던 계획은 접고 중화집으로 들어갑니다. 흐시기와 빼코추는 몇 십년만에 만난다면서 간만에 재회를 권주가로 마음껏 풀어봅니다. 만나기만 하면 이렇게 신나게 떠들어대는 이야기의 실타래는 끝이 없습니다. 자신만의 삶의 철학과 굴곡을 거침없이 토로하곤 하는 자리는 우리들 노객지기들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태양은 서산에 기울고 있지만 우리 노객들의 희로애락의 삶은 영원하리라고 하는 덧없는 소망도 가져봄도 좋겠습니다.
오늘도 물이 사라져 버리는 水落山(수락산)이 아닌 천수를 즐길 수 있는 壽樂山(수락산)으로 모두에게 기억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2016년 10월 15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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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16년10월09일09시46분7호선 수락산역 6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못가서 미안합니다. 카토나, 카토나는 감회가 새로운 곳이군요. 고혈압,고지혈증,부정맥이 있을때 감량과단련을한 의미있는 곳 이군요. 몸에 이상이있을때 하루에두번씩 죽자살자 감량을하면서 몸을만든곳은 아차산과 대모산이며 단련 체력증진한곳은 수락산이네요. 화감암에서 내품는 기를 폐포깊숙히 흡입하고 싶다고요? 한순간 사색에잠겼겠네요. 카토나! 급류계곡에서 떨어지는 폭포의줄기가 아름다워 지어준 이름인데 현재는 물이마르고 없다고, 그래서 수락산(목숨수)으로 되어서 천수를 누리자고요. 아주 좋은 생각 이네요. 카토나 즐거운하루되셔요. 2016년10월
카토나가 알려준 수락산: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 피아노바위,꼬끼리바위,치마뷔위,인꼬바위,틈새바위,탱크바위,여성바위,총각바위,기차바위,도솔봉바위,철모바위,배낭바위,웨딩바위,마당바위 등등 많은바위 군락으로 이루어진 산.이 많은바위들을 섭렵 하였으니 대단하시네요 카토나,.수락산(638미터) :건너편에 북한산(837미터)과 도봉산(739.5미터)를마주하며 관악산과더불어 서울을아우르는 산. 내원암: 정조때 300일간 기도로 순조가 태어난곳.등등 아주유익하고 우리가알아야 할 상식들을 나열에 주셨네요..2016,10,15,20시
여러분 백년지기가 바로 행복샘입니다 위짜추 씨모우 서류바 조단스 치빠흐 흐시기 퍠노우 여러분이 바로 주인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