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아 줄 때
로고스서원의 희망의 인문학 이야기 36
일시 : 2019년 1월 11일
장소 : 새빛센터
1.
난, 희망의 인문학교를 하면서 너무 행복하다. 이제, 나는 나를 소개할 한 문장을 얻었다. 내가 만약 희망의 인문학으로 강연을 하게 된다면, 예컨대,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나가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할 것이다. “책을 사랑하고, 책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김기현목사입니다.” 아니다. 하나가 빠졌다. 이렇게 해야지. “책을 사랑하고 책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행복한 목사, 김기현입니다. 반갑습니다.” 몸은 바쁘고 힘들다. 때로 아이들 때문에 맘이 쓰리다. 그래도, 그런데도 행복하다.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
2.
‘규’는 곧 있을 희망의 인문학 캠프의 주 강사인 주원규 작가의 책, <너머의 세상>을 읽고 글을 썼다.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중간중간에 자기 생각을 집어넣었다. 한 등장인물의 이름 때문에 겪는 일을 소개하면서 사람이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 때다 싶어, 물었다. 그리고 간단히 메모하고 발표하기로 했다. “너희들은 겉모습으로 판단 받은 때와 그때 감정은 어땠니? 그리고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너희를 보면 좋겠니?” 첫 번째 것은 좀 부정적인지라 빼고, 후자만 하기로 했다.
‘호’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을 친근하게 봐주고, 사고 쳤다고 너무 나쁜 쪽으로만 안 봤으면 좋겠어요.
두어 마디 덧붙였다.
1) 자기도 자기를 그렇게 봐야 남들도 내가 보는 나처럼 나를 본단다.
2)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인 C. S. 루이스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 보면 “가장합시다”는 글이 있어. ~척하자는 말인데, 그러다보면 그렇게 된다는 내용이다. 자꾸 착한 척하면 진짜로 착해진단다.
‘민’이는 김중혁 작가를 실물로 보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무’는 내가 제대로 글을 본 것 같다. 이 놈, 글 쫌 쓴다. 신경 쫌 써야겠다.
다음은 ‘우’다. 이 놈은 키도 크고 잘 생겼다. 사고를 쳐서 그렇지 글에 관해서는 썩 괜찮은 녀석이다. 이 아이는 알까? 김중혁 작가의 창의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썼는데, 너의 글쓰기 실력이 대단하단느 것을 알까?
3.
오늘 처음 만난 아이가 있다. 18살이란다. 모자를 쓰고 있는데, 머리 뒤쪽에 삐져 나온 머리카락이 특이한 질병을 앓고 있구나, 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얼굴에도 반점이 많고, 치아도 누렇다. 나중에 물어보니 내 예상대로 희귀성 질병을 갖고 있단다.
들어온 지 이틀이다. 글은 쓰지 않았다. 다른 아이 글에 대한 코멘트가 남다르다. 할 줄 안다. 어떤 맥락에서 인지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아, ‘민’이구나. ‘민’이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내가 소설이 아니라도 좋다, 어떤 종류의 책이든 쓴다면,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 메모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정’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나 사건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썼다. 오호!
4.
사실, 요즘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그런가 분위기도 처음 같지 않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너무 잘 썼던 두 녀석이 연장자인데가 글도 잘 써서 분위기가 좋았는데, 둘이 없고, 감감무소식이다. 손실장을 통해서 연락을 취하는데 대답도 없다. 참 무심한 놈들이다. 나는 보고 싶은데. 괜히 찔끔 눈물이 나는데.
제발 제발 잘 살아다고. 너희들이 글 쓴대로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것 보다는 못해도 예전보다는 잘 살아주렴.
‘규’의 문장 하나가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맘속을 맴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건과 사고를 간략히 요약하면서 이렇게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께 너무 죄송스럽고 땅을 치도록 후회가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작은 후회 되는 일들을 만들지 말고 무언가를 행동할 때 두세 번 생각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무언가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 나의 곁에 도와줄 사람이 있거나 누군가가 도와주려고 하고 손을 잡아줄 때 무조건 잡을 것입니다.”
저 마지막 문장은 박상미작가의 강연의 마지막 멘트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쓴 말이다. 단 한 번의 강연인데도 아이들 내면 깊숙이 박힌 모양이다.
그래서, 그래도 이런 한 문장에 속고, 이런 한 문장을 믿고,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내 사랑이 배신당할지라도 희망을 걸고 인문학 모임을 중단할 수 없다. 내가 힘들다고 포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지 않겠는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