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번,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①’ 편집자 주: 영국 이용국 선교사의 사역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선교사역 30년을 뒤돌아보며 제 자신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 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줄여 서 ‘예성’을 사랑하고 교단에서 파송받은 선교사입니 다. 그런데 2008년 목사 안수식 때에도, 2026년 선교 30주년을 맞은 자리에서도 그간의 사역에 대한 오해 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해외, 특히 영국에서 열리는 모임에 가보면 어 떤 목회자들은 “영국에는 더 이상 선교사가 필요 없는 게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나 라보다 복음이 바로서야 하고, 선교가 필요한 곳이 바 로 영국임을 지나간 선교사역을 돌이켜보면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달려가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제가 만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학생들이 수련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도록 돕는 것이 저에 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사역자가 필요하다 고 하면 저는 ‘No’가 아니라 ‘Yes’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삶 전부를 주님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특별히 선교사로 가라는 소명을 받았을 때도 즉시 순 종하려고 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면서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을 따라 선교사역 을 감당했습니다. 목숨을 잃을 뻔 하였던 모슬림 갱스턴들의 차량 방화(2021년) 안양성결교회 여름성경학교때 어린친구들을 전도중인 신학생 시절 저는 복음에 대한 열정을 품고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삶을 살아가며, 신유와 성령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986년 성결대 신학교에 입학하여 1990년에 졸업했 습니다. 신학교 생활 동안 여름이면 여름성경학교를 필요로 하 는 곳으로 달려가 어린이들과 함께 천국 잔치를 열었 습니다. 학생회에서 수련회를 원하면 바다로, 강으로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 습니다. 특히 경건한 삶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습 니다.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조셉 얼라인 (Joseph Alleine), E.M. 바운즈(E. M. Bounds), J.C. 라일(J. C. Ryle), 존 번연(John Bunyan), 앤드류 머 레이(Andrew Murray), 어거스틴(Augustine), 그리 고 특별히 A.W. 토저(A. W. Tozer)의 책들은 선교사 로 사역하는 동안 저의 영적인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 습니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은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성 동교회(현 거룩한씨성동교회)에서 문서 선교를 하며 『생명의 샘가』를 제작하고 보내는 일을 했던 것입니 6 다.그리고 지금까지도 두 달에 한 번씩 큐티책을 보내 주셔서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의 능력으 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사역하면서 저는 몇 가지 큰 변화를 직접 경 험했습니다. 첫 번째는 런던올림픽을 전후하여 영국 사 회를 충격에 빠뜨린 테러와 그에 따른 변화였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민권자들 가운데 테러 에 가담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저뿐 아니라 영 국 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제가 와엠에서 사 역했던 더비(Derby, East Midlands) 지역과 관련된 젊은 무슬림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도 큰 충격을 받 았습니다. 제가 영국에 선교사로 와서 처음 시작한 사역 가운데 하나는 와엠선교센터가 있던 루턴(Luton) 지역에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담긴 비 디오를 나누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더비 베이스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 번째 큰 변화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 (Brexit)였습니다. 이전에는 유럽 여러 나라를 비교적 자유롭게 오가며 사역할 수 있었지만, 브렉시트 이후 에는 여러 행정적 제약이 생기면서 유럽 선교를 이전 처럼 자유롭게 감당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헝가리 코마롬에서 마지막 날 함께 선교전도한 새꿈선 단원들 세 번째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습니다. 나라 간 이동 이 제한되고 사람과 사람이 자유롭게 만날 수 없게 되 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의 한마음복지센터와 여러 교회에서 보내주신 마스크를 차에 싣고, 도움이 필요 한 가정을 찾아가 마스크를 전달하고 상담하며 치유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버밍엄 인근 울버햄프턴(Wolverhampton)에 사 는 한 가정과 연락이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과 장애가 있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함께 살아가는 가정이었 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필요한 용품과 마스크를 가지고 찾아가 전달하고 가족들과 상담했습니다. 당시 삶을 포 기할 만큼 힘들어하던 가족에게 다시 살아갈 힘과 소망 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 아이는 이제 일곱 살이 되었 고, 감사하게도 온 가족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팬데믹 가운데에서도 복음 전도는 멈출 수 없었습니 다. 노방전도팀을 네 팀으로 구성하여 토요일 오후 늦 게까지 전도했고, 오후 6시경에는 맥도날드에서 약 10명의 전도 사역자와 함께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 와 따뜻한 커피를 나누며 교제했습니다. 노방전도를 통해 복음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신앙을 갖게 된 이들 도 있었고, 그중에는 사역자로 헌신한 사람들도 있었 습니다. 당시 영국의 많은 교회가 예배를 중단하고 교회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건물만이 교회가 아니 라 하나님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거하 시는 성전이라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버밍엄에서도 코로나로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소식도 계속 들려왔습니 다. 제가 머물던 임시숙소에서도 몇 사람이 스스로 목 숨을 끊었고, 제가 자주 이용하던 자동차정비소의 주 인과 그의 아들이 몇 달 사이에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체코에서 약 2주간 유럽 전도를 하고 있을 때 들려온 소식이었습 니다. 평소 가깝게 지냈고, 상담도 나누었던 아버지와 아들이었기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팬데믹은 사람들의 만남을 막았을 뿐 아니라 많은 사 람의 마음까지 닫히게 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 웠던 것은 바로 그때 많은 교회마저 문을 닫았다는 사 실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 앞에서 질문했습니다.“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교회를 개척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결심하고 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모 든 일을 내가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실 제로 역사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또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65명의 성도가 함께하게 되 었고, 집사들과 네 분의 장로도 세워졌습니다. 할렐루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