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로 위장한 남파 간첩, 구속기소
10여년간 중국 국경지역에서 밀거래, 대북송금 등 불법행위자에 대한 정보수집활동을 하던 공작원 김씨는 2009년 마약밀매와 인신매매죄로 8년3개월의 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결핵환자로 허위진단을 받고 1여년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이후 보위사령부 측으로부터 남파 공작원으로 활동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이를 수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조사결과 김씨는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다음 브로커의 안내를 받아 탈북자 15명 사이에 끼어 태국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위사령부 측은 신분이 탄로 날 경우에 대비해 김씨에게 구체적인 임무를 주지 않았으며 김씨가 남한에 정착한 것이 확인된 이후 또 다른 남파 공작원을 통해 임무를 주기로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남한 입국과정에서 수사당국에 발각되는 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하면서 김씨가 무사히 남한에 정착할 경우 큰 딸 역시 남한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sec=sisa2&idxno=2012010513222123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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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걸레 기사)
돈 받고 탈북 도우려다 체포 위기에…
‘탈북 위장’ 남으로 온 남파간첩
북한 양강도 대흥단군의 집단농장에서 일하던 김아무개(46)씨는 지난 2000년, 북한 최고의 정보·수사기관이라는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의 비밀 공작원으로 선발됐다. 당국의 허가 없이 몰래 북·중 국경을 넘나들거나(속칭 비법도강), 국경에서 몰래 이뤄지는 밀거래, 대북송금, 그리고 북한주민-외부인 간 통화 편의 제공(속칭 국경연선) 행위를 파악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러나 김씨는 되레 자신이 적발해야 할 ‘국경연선’ 일에 가담하며 돈벌이에 나섰다.
국경연선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던 김씨는 2008년 10월, 국경경비사령부 병사의 중국 탈영을 도운 혐의로 조선인민군 보위사령부(보위사)에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됐다. 조선인민군 최고의 정보·수사기관이라는 보위사는 김씨를 처벌하는 대신 “안기부 등 남한당국과 연계된 사람을 적발해주면 국경연선 일을 보장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김씨는 보위부에 이어 보위사의 비밀 공작원이 되었다.
그러나 ‘돈맛’을 알아차린 김씨는 마약밀매와 인신매매에까지 손을 댔다가 2010년 8월 대흥단군 보안서에 체포돼 8년3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허위진단을 받아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삶의 ‘돌파구’로 남파간첩을 자원했다. 보위사 간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을 남한에 보내놓았다. 남한에 가있는 여성 백○○를 접촉해라. 무사히 정착하면 그때 지령을 내리겠다”고 했다.
남파 준비를 하던 김씨는 한 북한주민에게서 “동반 탈북을 도와주면 중국돈 8천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는 다시 ‘무리수’를 뒀다. 이 사실이 적발돼 체포될 위기에 놓이자, 김씨는 지난해 4월, 보위사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쫓기는 몸이지만, 남한에 정착하면 보위사의 지령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김씨는 탈북 브로커의 도움으로 지난해 5월 타이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귀순’ 의사를 밝혔고, 한달 뒤 입국했다.
그러나 국정원 합동신문 과정에서 김씨의 위장탈북 사실이 들통났고,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5일 김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특수잠입·탈출)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에서 김씨의 자백을 받아냈고, 북한에서 김씨의 행적을 잘 아는 탈북자들의 진술 등 보강증거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3629.html
그러니까.....북한 공작원 김씨는 북중국경지역에서
무려 10년간이나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베테랑 공작원이었다는 말이네요.
그러다가 2009년에 마약밀매와 인신매매라는 중범죄에 걸려
무려 8년3개월이라는 중형(=교화형)에 처해졌는데.....
결핵환자라는 가짜 진단서로 간단히 풀려났다는 말이네요.
(참고: 노동교화형이란?)
(아래는 어느 수구꼴통 글을 퍼온 것임)
그렇다면, 그녀들(=미국 여성 기자들)이 구형받은 '노동교화형'이란 무얼 하는것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노동을 통한 정신교육(재교육)을 실시하는 형벌'이다.
말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징역형과 비슷하다. 물론,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노동교화형에 처해진 사람은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가서 정해진 형기동안 노동력을 제공하며 지내게 된다.
하지만, 실제 제대로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별로 없을정도로
수용소생활을 혹독! 그자체이다.
그 내막이 궁금하신분은 강제노동수용소의 실태를 다룬 포스팅을 보시길.
http://karaeff.tistory.com/979
그러니까....마약밀매나 인신매매 등 중범죄자들은
북한에서는 즉시 공개총살형을 당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네요?
그리고 그 무섭다는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되었는데도
가짜 진단서로 간단히 풀려나오기도 하는 모양이네요?
헐.....그동안 찌라시들이 말하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를 정도로
황당하네요.
그리고 무려 10년간이나 북중국경지역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해왔다면
그야말로 그 분야 베테랑일 것인데.....새삼스럽게 브로커의 안내를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더구나 간첩을 남파하면서 아무런 구체적 임무도 주지않고
일단 남파한다? 헐.....그것도 나의 상식적 판단에는 어딘지 안맞네요.
암튼, 북한 간첩기관이라는 보위부도 꽤나 엉성한 모양이군요.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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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정착하면 보위사의 지령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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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실제로 남파간첩으로 위장탈북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탈북자가 자기멋대로 개인적으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는 말인데.....그게 도대체 어떻게
정식 "남파간첩"으로 둔갑될 수 있는 것인지?
진정으로 양심에 털난 자가 아니라면, 그리고
약간이라도 생각할 능력이 있는 대가리가 있는 자들이라면.....
그런 말장난을 감히 하지는 못할 것 같군요. ㅉㅉㅉ
한국전쟁 때 묻어둔 금괴 찾으러 탈북했으나…
2008년 탈북한 ㄱ씨(40)는 지난 달부터 동화사 뒤뜰에 묻힌 40㎏짜리 금괴를 찾고 있다. 금괴 사연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 함경도에 살고 있는 ㄱ씨의 아버지 ㄴ씨(83)는 한국전쟁 당시 20대 초반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ㄴ씨는 아버지를 따라 피란길에 나섰다.
비교적 부유했던 ㄴ씨의 아버지 ㄷ씨는 피란을 가기 전 논과 밭 등 전 재산을 팔아 금 40㎏(시가 26억원)으로 바꿨다. ㄷ씨는 그 금괴를 동화사 대웅전 뒤뜰에 묻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ㄷ씨는 아들 ㄴ씨와 함께 월북을 하게 된다. 북에서 ㄷ씨는 세상을 떠났고 20대 초반에 월북했던 ㄴ씨는 어느새 여든을 넘겼다.
ㄱ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지난해말 부터 금괴를 찾아 나섰다. 그는 동화사측에 금괴가 묻힌 장소와 깊이 등을 알리고 협조도 얻어냈다. 지난 달 29일 금속탐지 전문가를 동원해 확인작업을 별인결과 ㄱ씨가 지목한 대웅전 뒤뜰에서 금이 반사하는 고유의 음파가 울렸다.
그동안 동화사측이 여러차례 대웅전 주변에서 배관을 묻기 위해 터파기 공사를 했지만 금괴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화사를 대표하는 대웅전이 보물(보물1563호)로 지정돼 있어 금괴가 묻힌 지점을 파기 위해서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ㄱ씨의 변호사는 “금괴를 주인이 있는 물건으로 볼 것인지 ㄱ씨를 유실물(금괴)의 최초 발견자로 판단할지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051152061&code=940100
그러니까.....위 얘기는......북한에서 부유했던 ㄷ씨가
북한에 있던 전재산을 팔아 금괴 40kg(=26억원)를 사두었다가
전쟁이 나자 그것을 들고 남한으로 피란와서
대구 동화사 뒷뜰에 묻어 두었다는 얘기인데......
북한에서는 1950년 이전인 1948년인가 이미 토지개혁을 시행해 버리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1950년에는 이미 개인사유의 전답을 소유하지 못했을 것인데.....
그렇다면, ㄷ씨는 1948년 전에 이미 전답을 팔아 금괴를 사두었다는 말인지?
하여튼, 더 웃기는 것은....
그 금괴를 남한의 대구 동화사 뒷뜰에 묻어두고
왜 또다시 가족을 이끌고 월북했는가.....하는 점입니다.
그렇게 엄청난 량의 금괴를 남한에 묻어 두었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그냥 끝까지 남한에 머물고자 시도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도대체 왜 다시 가족을 데리고 월북해 버렸던 것일까요?
무엇이 진짜 진실인지.....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하여튼, 적어도 나의 상식적 판단에는 매우 황당한 사건들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그걸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찌라시 보도들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든 아니든
그냥 무조건 믿으라구??? ㅉㅉ
(뱀발)
세계식량기구가 북한에 식량을 조달해주느라
아주 열심이군요. 무려 300만명에게 식량조달을 해주었다면
이제 굶는 사람들이 별로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냐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이 100만명분이라던가.....어쨌다던가 하지 않았나요?
WFP "北 10월부터 식량 배급량 증가"
WFP의 마커스 프라이어 아시아 담당 대변인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인용해 배급량이 7∼9월 200g에 머물다가 4개월 만인 10월에 355g 11월 365g, 12월에는 375g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은 이처럼 식량배급량이 증가한 배경에 대해 가을 추수를 언급했으며 2012년에는 1인당 배급량을 380g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WFP는 소개했다.
WFP는 12월 중 북한 주민 3백10만 명에게 3만5천208t의 식량을 분배했다.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2/01/05/0505000000
AKR20120105031600014.HTML?template=2089
첫댓글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민소득의 향상 및 식생활 개선에 따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추정)이 1981년에는 128㎏, 1986년 124㎏, 1991년 119㎏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 다음 백과사전 검색-
1991년 기준으로 1인당 119kg / 365일 * 3끼 = 109g 계산맞나?
참 이해하기 힘드네요. 1991년 대한민국 평균쌀소비량보다 거의 두배를 소비하고 있네요.
아무리 대체제가 부족하다해도 두배라면 너무 많다고 생각됩니다.
맞습니다.저 경향신문 기사에 의문이 있음. 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란 가려고 논밭을 팔았다?전쟁은 1950년. 그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된지도 3년 후, 그때 논밭을 팔 수 있는 개인 것이 있기나한가?거짓말같다. 아니면 탈북자가 지끼는 걸 그냥 제공한 걸 기사내용 검토없이 실은 경향도 정신없거나....탈북자가 어쨋다는 기사는 좀 믿기어렵다.
정부차원에서 비리 관심 분산 시킬려고 꼼수가 아닐까..
그러고도 남을 위인들.
남파 간첩들이 어리버리한 이유는...?
과거 유신정권때 많이 써 먹었죠 지방 형사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하여 약간 정신이 없거나 한글도 못 깨우친 무지한
사람들을 잡아다 공갈 협박 고문으로 허위진술을 유도해 간첩 만드는 일 말임니다
요즈음 공안당국은 그런짓 안하겠죠 ...? 혹시 할라나..?
결핵환자가 남파간첩? 결핵환자가 남파간첩. 참 야릇한 개아지들이 쓴 글.
요즘같은 정보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시대에... 굳이~ 간첩이 필요할까요?...
간첩타령! 은 이제그만~
온통 거짓 뿐이네요..하하 설명 감사합니다...
피난가기전에 전답을팔앗다함은..전쟁중에 팔앗단거 아닌가요? 그리고 그무거운 피난봇짐과 금40키로를 함경도에서 대구까지갖고와서... 그리고 금을두고 왜 다시 북으로갔을까요..먼가 꼼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