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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만나는 성인 이야기] 성모자를 그리는 루카 루카복음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다루지 않은 이야기들로 시작한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와 탄생, 엘리사벳을 방문한 마리아와 그때 부른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는 목동들, 잃었던 소년 예수를 3일 만에 성전에서 찾은 이야기, 그 외에도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이들 일화 중에는 묵주기도와 성무일도가 된 주제들도 있으니 루카복음이 없었더라면 참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된다. 루카는 의사이자 화가였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루카복음이 기록한 이들 일화는 화가들이 선호하는 성화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복음저자들에게 저마다의 역할을 주신 것 같다. <집필하는 복음저자 루카> - 작자 미상, 「복음저자 성 루카」, 6세기, 모자이크, 성 비탈레 성당, 라벤나. 로마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이탈리아의 오래된 도시 라벤나에는 성 비탈레라는 성당이 있다. 6세기에 지어졌으니 1500년이나 된 성당인데 보존상태가 좋아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성당은 특별히 6세기에 제작된 모자이크 그림들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그 중 4대 복음저자를 그린 장면들이 있는데 주보 표지에 소개된 그림도 그 중의 하나다. 주인공 성 루카는 백발의 노인으로 그려졌으며 “SECUNDUM LUCA”라고 쓰여진 루카복음을 들고 있다. 인물 위에 보이는 황소는 루카의 상징이다. 이 그림이 제작되었을 당시에는 성직자와 귀족 등 극히 일부 계층만이 글을 읽을 줄 알았고 백성의 대부분은 문맹이었기에 교회에 그려진 그림은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을 알리는 중요한 매체였다. 이 그림을 본 신자들은 라틴어를 모르더라도 황소를 보고 루카임을 알았을 것이다. 이 그림은 자연이나 인물 묘사가 왠지 서툴러 보인다. 중요한 것은 당시 신자들이 루카를 마태오나 마르코와 혼돈하지 않는 것이지 그림 자체를 사실적으로 그린다거나 아름답게 그리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성모자를 그리는 루카> -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 「성모자를 그리는 루카」, 1450, 137x110cm, 패널에 유채, 파인아트 뮤지엄, 보스톤. 15세기에 활동한 벨기에의 화가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은 성 루카를 화가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고급스런 저택의 거실에 앉아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성모님을 루카가 드로잉하고 있는 모습이다. 앞의 라벤나 모자이크와 달리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은 주름이 풍부하고 사실적이며, 벽을 장식하고 있는 비단천은 컬러 사진에 버금갈 정도로 정교하다. 바닥은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고, 멀리 배경에는 벨기에의 대표도시 브뤼헤의 모습이 강을 끼고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인물들의 배치는 매우 의도적이어서 화면 앞쪽에는 성모자와 루카를, 중간에는 다리에서 시가지를 바라보고 있는 남녀를, 멀리 배경에는 거리를 오가는 인물들을 개미처럼 작게 그려놓았다. 이 그림을 그린 반 데르 바이덴은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의 대표화가이다. 플랑드르는 오늘날의 벨기에를 비롯한 저지대 지방을 가리키며 이곳 화가들의 특징은 인물이나 자연을 마치 거울에 비춘 듯 정교하게 재현하는 데에 있었다. 이 같은 사실주의 회화의 탄생으로 이제 화가는 더 이상 그리지 못하는 대상이 없게 되었다.
[2019년 6월 23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대전주보 4면, 고종희 마리아(한양여대 교수,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