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산은
우리나라 6기맥 중에 하나인 진양기맥(남덕유산/시작점-진양호/끝점)의 핵심의 산인 금원산에서 뻗어나온 능선 즐기에 있는 산이다.
주변에는 백두대간 덕유산 능선 줄기와 진양기맥의 능선 줄기인 남덕유산, 월봉산,금원산,기백산이 한눈에 보이다.
또한 덕유산 갈미봉에서 뻗어내려온 능선 줄기인 시루봉, 오음산, 아홉산 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한눈에 바라 볼수 있다.
그 너머로는 수도지맥 능선길과 양각지맥 능선길도 볼 수 있다. 멀리 가야산...
낙동강/황강의 줄기인 거창 위천이 흐른다. 위천 주변에 들녁이 한 눈에 보인다.
황강의 발원지가 덕유산 삿갓재대피소 밑에 있다.
현성산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와 북상면 창선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965m이다.
현성산 명칭은 성스럽고 높음을 뜻하는 '감'을 한문으로 '검을 현(玄)'으로 표기하였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수승대는
유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네 가지 이름이 붙었다. 삼국 시대에는 떠나가는 사신을 수심으로 전송하던 곳인지라 수송대(愁送臺)로 불렸고, 조선 시대로 들어와서는 거북바위의 형상을 따서 암구대(巖龜臺)로 불렸고, 1543년 이황(李滉)이 수승대(搜勝臺)로 개명하였으며, 신권의 후손들이 차지하고 난 뒤로는 신권의 호를 따서 요수대(樂水臺)라 불렀다.
선인들의 품평에 따라 수승대의 경관이미지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의 삼동 가운데 가장 빼어난 곳이다. 둘째, 유리 세계와 같이 맑고 밝다. 셋째, 맑은 시내와 아름다운 산과 높은 바위가 잘 어우러진 곳이다. 넷째, 맑고 수려한 경관과 그윽하고 미묘한 풍치가 있는 곳이다. 다섯째, 명소가 명인을 만나 명승이 된 곳이다.
현성산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와 북상면 창선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965m이다.현성산 명칭은 성스럽고 높음을 뜻하는 '감'을 한문으로 '검을 현(玄)'으로 표기하였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곧 감뫼-검산-검무성-거무시로 되어 검다의 한문식 이름 현성산(玄城山)이 되었다고 짐작된다. 금원산의 지맥으로, 금원산에서 북동쪽으로 산맥이 이어져 있다. 현성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모여 크고 작은 소류지들을 이루고 그 물길이 동편으로 흘러 위천에 이른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금원산은 소백산맥의 서부에 속하는 산으로, 높이는 1,353m이다. 남으로 기백산(1,331m)과 남령을 거쳐 남덕유산(1,507m)과 이어진다. 옛날 이 산속에 금빛나는 원숭이가 날뛰므로 한 도사가 바위 속에 가두었다는 전설에 따라 금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산중턱에 있는 그 바위를 금원암 또는 원암(猿巖)이라고 한다. 금원산에는 성인골 유안청계곡과 지재미골이 있는데,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상천리에서 합수하여 상천(上川)이 되어 위천면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유안청계곡은 조선 중기 이 고장 선비들이 공부하던 유안청이 자리한 골짜기로 유안청폭포를 비롯한 자운폭포와 소담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산악 경관이 빼어나다
산행코스;미폭 현성산등산로입구→ 전망바위 → 현성산(959m) → 연화봉(서문가바위 967m) → 필봉갈림길 (철조망 따라) → 필봉(932m) → 데크 위 필봉정상표지목 겸 이정표봉/930m) → 깃대봉(925m/삼각점무주 315/필봉정상석) → 모리산-(878m) → 암봉 → 말목고개 → 성령산(448m) → (출렁다리) → 수승대 → 수승대관광지 주차장(산악회 허용 ;약 10.8km/6시간)
○ 구간별소요시간 : 10.3km(트랭글GPS), 5시간 45분 소요
미폭포(10:15)~전망바위(10:40)~현성산(11:25~30)~산으로의 비행(11:40~12:10)~서문가바위(12:25)~976m봉(필봉갈림길 12:35)~철조망(12:45)~필봉(12:55~13:05)~모리산(13:15)~암봉(13:20)~면동갈림길(13:35)~마항갈림길(13:45)~말목고개(14:05)~성령산(14:40~15:00)~출렁다리(15:10~15)~거북바위(15:35)~계곡욕(15:40~50)~수승대주차장(16:00)
수승대는 유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네 가지 이름이 붙었다. 삼국 시대에는 떠나가는 사신을 수심으로 전송하던 곳인지라 수송대(愁送臺)로 불렸고, 조선 시대로 들어와서는 거북바위의 형상을 따서 암구대(巖龜臺)로 불렸고, 1543년 이황(李滉)이 수승대(搜勝臺)로 개명하였으며, 신권의 후손들이 차지하고 난 뒤로는 신권의 호를 따서 요수대(樂水臺)라 불렀다.
선인들의 품평에 따라 수승대의 경관이미지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의 삼동 가운데 가장 빼어난 곳이다. 둘째, 유리 세계와 같이 맑고 밝다. 셋째, 맑은 시내와 아름다운 산과 높은 바위가 잘 어우러진 곳이다. 넷째, 맑고 수려한 경관과 그윽하고 미묘한 풍치가 있는 곳이다. 다섯째, 명소가 명인을 만나 명승이 된 곳이다.
수승대는 본래 명칭이 수송대였는데, ‘수송대’라는 명칭에도 여러 설이 전한다. 첫째는 신라·백제 시대 이곳에서 사신을 전송했는데, 사신을 떠나보내는 근심을 이기지 못하여 수송 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둘째는 수송(愁送)은 송수(送愁)처럼 ‘근심을 날려 보내는 곳’이라는 뜻인데, 이 수송대의 빼어난 경관이 근심을 잊게 하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다. 셋째는 신라 시대 중국으로 가는 사신을 여러 고을의 수령들이 이곳까지 나와 전별했기 때문에 수송 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설이다. 이 세 가지 설 가운데, 첫째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일 때 생겨난 고사고, 셋째는 통일 신라 때에 붙여진 이름이며, 둘째는 역사적 사실이 잊힌 뒤에 나아가 붙여진 이름이다.
수송대가 ‘수승대’로 불리게 된 데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이황은 1543년 1월 영승 마을에 들러 장인 권질(權礩)의 회갑연에 참석했다가 수송대로 가서 임훈·신권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조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서둘러 상경하면서 ‘수송대’를 ‘수승대’라 개명하고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그 시에 “수승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바꾸니, 봄을 맞아 그 경치가 더욱 아름답네. 먼 숲에선 꽃들이 피어나려 꿈틀대는데, 그늘진 골짜기엔 눈이 그대로 남아 있네. 명승을 보고 싶어도 가 보질 못하니, 오직 상상의 회포만 더할 뿐이라네. 훗날 한 통의 술을 가지고 다시 와서, 큰 붓으로 운무 낀 암벽에 글을 쓰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신권은 이황이 개명한 이름이 좋다고 기뻐하였지만, 임훈은 생각이 달랐다. 유구한 역사가 전하는 이름을 외지인이 와보지도 않고 이름을 바꾼 것에 대해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임훈은 「수송(愁送)의 뜻을 풀이하여 제군에게 보임」이라는 제목으로 “꽃은 강 언덕에 가득하고 술은 술통에 가득한데, 유람하는 사람들이 소매 맞대고 분주히 오가네. 봄이 장차 저물려 할 때 그대도 장차 떠나려 하면, 봄 보내기가 시름일 뿐 아니라 그대 보내기도 시름일 텐데.”라는 시를 지었다. 이 시는 ‘수송대’라는 명칭이 갖고 있는 의미를 넌지시 풀이하면서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드러낸 것인데, ‘수승대’라는 이름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문바위갈림길:
1.5(현성산)+1(수송대갈림길)+1.3+0.5(문바위갈림길)+ 3.1=7.4
1.5+1.+1.8+0.5+3.3=8.2
금원산
1.5+5.9+7.4=14.8
수승대 방향
이정표
수승대 표기가 있으면 따라가고
정온종택 표기만 따르면 되지만
정온종택과 수승대가 따로 표기된 곳이 있으면
수승대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이정표
수승대 표기가 있으면 따라가고
정온종택 표기만 따르면 되지만
정온종택과 수승대가 따로 표기된 곳이 있으면
수승대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생태통로
성령산 오름이 시작하는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