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유학중이던 막내처남이 장로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어
한국에 계신 장인 장모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동생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필리핀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는
둘째 처남과 딸 예솔이가 휴가를 내어 LA에 도착을 하였다.
한가위 다음날이라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이는 밤,
막내처남 집에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다 보니
오랜만에 추석명절을 함께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 본인들도 목회자의 삶을 살아오셨기에
막내아들이 자신들의 뒤를 따라 목회의 그 길을 들어섰으니
무엇보다도 감사한 마음이 드셨을 것이다.
목사안수 받는 자리에서 장모님의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고인 모습이 보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한편으로는 목회자의 삶이 호화로운 성공의 길이 아니기에
남이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없지 않아 있었으리라.
나 역시 선배목사로써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남에게 섬김을 받는 것 같아도
실은 남을 철저하게 섬기는 자리이기에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서도 순수한 삶을 잊지 말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한 구도자로써 진실 되게 살아가기를 기원해 주었다.
다음날 저녁식사를 한 후,
사이프러스 링컨가를 걷다가 한국 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책방 안으로 들어섰다.
걷던 중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후덥지근한 더운 열기가 얼굴에 확 느껴졌다.
연신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내며 책을 둘러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후”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언제인가 인터넷에서 이 책에 대하여 소개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던 터라,
책을 집어 작가와 머리말,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한 글들을 읽었다.
이 책을 지은이는 독일의 교육장관 및 법무장관을 역임하고
브레멘 시의 시장으로 일을 했던 헤닝 쉐르프다.
그는 2005년 11월 독일 브레멘 시의 시장직을 전격 사퇴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은퇴 후의 새로운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주거 공동체를 형성하며 노후 생활의 참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리,
새로운 노후의 삶을 보람되게 시작하기 위하여
그 자리를 박찰 수 있는 용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주거 공동체를 형성한
더불어 사는 아름다움, 얼마나 내가 꿈꾸며 살아보고 싶었던 삶인가?
모든 기득권을 던져 버리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의 용기가 멋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삶을 언제 살아 보았던가?
이제부터라도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꼭 화려하게 살아야 노후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그 안에 산다고 해도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니면,
그 삶이 외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책 한권을 통하여 다른 삶을 만난다는 기쁨이 이렇게 클 수가 없다.
다음날 가족들을 모시고 몬트레이를 들러
집으로 돌아오기로 하고 LA를 출발하였다.
베이커스를 지나 46번 국도로 하여 1번 하이웨이를 만나는
캠브리아(Cambria)에 도착한 것이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시차가 바뀌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다 잠을 설쳐서 인지,
다 잠이 들어 있었다.
아무리 멋진 자연환경일지라도 눈감은 상태에서야
무엇을 보고 즐길 수 있겠는가?
무엇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피곤한 식구들을 배려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빅서(Big Sur)에 가까이 들어서서야 잠을 깨웠다.
그러나 잔뜩 기대를 하고 찾은 빅서의 참담함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지난 번 화재로 인하여 그렇게 울창하던
"Los Padress National Forest"숲이
가까스로 골짜기 몇 군데를 지켜 냈을 뿐
거의 잿더미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인간문명이 발단 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나,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초라한 모습을
자연 앞에서 들킨 것 같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회복이 될까?
그래, 그럴 것이다. 자연은 그 스스로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될 것이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 새싹이 움틀 것이고,
생명은 또 다시 꿈틀거리며 살아올라 올 것이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한 만남들이었다.
2008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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