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살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33살 거리 예술가 JR이
즉석사진부스를 장착한 트럭을 몰고 다니며
프랑스 시골에서 만난
우연의 사진을
낡은 벽에 붙히는 프로젝트
'얼굴들과 장소들'(영화의 원제)을 따라다닌 다큐이다.
키 크고, 검은 모자 검은 선글래스를 결코 벗지 않는 청년과 키 작고, 테두리만 붉은 갈색으로 염색한 하얀 바가지를 뒤집어 쓴듯한 헤어스타일의 할머니가 함께 다니며 작품을 위한 서로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피력하는 모습이 훈훈하고 나이 차이 의식하지 않는 그들의 동행이 유쾌하다.
철거될 광산촌의 빈 집들, 양쪽으로 쭉 늘어선 똑같은 벽돌집 벽들에 여기 살았던 광부들 모습과 떠나지 않은 마지막 생존자 얼굴을 붙혔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옛일을 회상하며 추억을 나누고..
농장벽에 '뿔있는 염소' 사진을 붙혀 사람들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염소뿔을 태워버리는 짓도 한다는 걸 알리기도 하고, 버려진 유령마을의 문틀만 있는 벽에 이곳을 방문한 어른 아이들에게 트럭에서 찍은 그들의 즉석 얼굴 사진을 오려 붙히게 하며 얼굴 전시장 축제를 열기도 하고 강성노동조합자들의 투쟁이 스며 있는 고단한 항구의 하역장 7겹 높이의 컨테이너 벽면에 검은 옷을 입은 아내들의 사진을 세웠는데 남자들의 세계를 지키는 거대한 토템 같다. 그녀들은 자신을 재발견 하고 보는 이들은 놀랍네요! 예술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거군요 감탄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모퉁이 카페 외벽에 붙혀진 작은 별 무늬가 점점이 박힌 원피스를 입고 하얀 양산을 높이 들고 앉은
여자의 옆모습 사진이 참 아름답다. 카페 직원에게 아녜스가 이웃의 원피스와 양산을 빌려 입히고 들린 것을 JR이 촬영 확대하여 붙인 것이다.
그들은 벽을 무엇을 가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벽 너머를 보게 한다. 몽상의 통로가 되게 한다.
버려진 것들을 줍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에서 아녜스는 자기도 떨어지고 버려진 마음과 생각들을 주워서 주의깊게 읽고, 보고, 귀 기울여 얻은 영감으로 창작한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과 상상을 공유하고 싶고 그들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한다.
소금을 물로 녹여 위험한 염소를 생산한다는 공장의 높다랗고 둥그런 물탱크 표면에 크고 작은 물고기들을 붙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고기라니! 공기도 일렁이는 것 같다
거창 산골 이웃 마을의 창고카페(서울에서 의류업으로 큰돈 번 아들이 엄마집 조망권을 막는 농협곡물저장창고를 부숴버리려 샀다가 귀촌 후 심심해서 대강 손봐 열었단다)의 높고 넖은 바깥 벽에도 저런 걸 하면 멋질텐데..
혼자 이리저리 상상하니 즐겁다.
노르망디 인적 드문 해안 절벽에서 떨어져 묘한 모습으로 모래에 박힌 벙커를 발견한 JR 아녜스의 젊은 날의 친구를 찍은 사진을 붙였는데 썰물에 하루 만에 씻겨 나가 버렸다! 오래전 죽고 없는 사람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마술 같다.
까르띠에 브레송의 소박한 무덤을 찾은 두 사람의 대화
죽음이 두려우세요?
아니, 기다려지기까지 해..
왜요?
다 끝날테니까...
그녀는 영화가 개봉된 다음 해에 죽었다.
<여고 동기카페에서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