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곡 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자들
우리는 두 번째 구렁이 끝나고 세 번째 구렁이 시작하는
가장 자리에 도착했다. 거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가 빚어 낸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
우리가 도착한 벌판에는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뿌리 채 뽑혀 나가 있었습니다.
슬픈 피의 강이 숲을 에워싼 것처럼 고통스러운 숲은 그 구렁에 화환을 두른 듯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 가장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아, 하느님의 복수여! 눈앞에 펼쳐진
이 진실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신을 두려워할 것이로다!
어떤 무리는 땅바닥에 벌렁 누워 있었으며
어떤 무리는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또 어떤 무리는 계속 서성대도 있었다.
반듯이 누워 위를 쳐다보는 자는 하느님을 경멸하는 자이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는 고리대금업자가 이익을 계산하고 있고, 서성대고 있는 이들은 남색의 무리들입니다.
주위를 맴도는 무리가 더 많고 누워 있는 자들의 수가 더 작지만 그들에게 더 큰 고통이 따랐습니다. 하느님을 경멸한 자, 남색 그리고 고리대금업은 모두 자연스럽지 못하고 삭막한 행동입니다. 자연의 법칙과 순리를 해친 자들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은 삭막한 행동을 한 죄인들이 영원히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하느님은 진노는 사막에 불비로 벌을 내렸습니다.
이곳에서도 불꽃은 비가 되어 그칠 줄 모르고 내렸고,
부싯돌 아래의 기름처럼 모래에 불이
확 옮겨 붙어 고통이 배가되었다.
영혼들은 불꽃들을 몸에서 떼어내느라 황망했습니다.
단테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몸집 큰 저놈은 누구입니까?
불길을 깔보고 눈을 흘기며 몸을 꼰 저놈을
불비도 삶아 내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단테가 스승에게 묻자 그자는 오만하게 “나는 살았을 때와 같이 죽어서도 이렇다.”라고 외쳤습니다.
선생님은 그에게 그의 오만함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카파네우스로 테베를 공략한 일곱 왕들 중 한사람이었는데 제우스를 경멸하다 번개를 맞아 죽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걸어 숲 밖으로 흐르는 조그마한 개울에 도착했습니다. 개울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개울은 모래밭을 가르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지옥의 문으로 들어와 너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모든 불꽃을 잠재우고 있는 이 개울만큼 네가 주목해야 할 것이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승의 말에 단테는 더 많은 말씀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을 시작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 크레타라 불리던 사라진 나라가 있었다. 그 곳에 이다라는 산이 있었는데 레아는 아들 제우스를 크로노스 몰래 그곳에서 키우도록 했다. 그 산에는 거대한 노인이 우뚝 서 있는데 다미아타(이집트 항구, 이교도 세계를 상징)를 등지고 로마(그리스도 세계를 상징)를 거울 바라보듯 보고 있지.
(노인은 에덴동산의 원죄 아래로 파멸되어가는 인간을 상징, 크레타를 트로이와 로마 문명의 발상지로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는 순금이며(아담, 이브의 타락 이전의 시대)
팔과 가슴은 진짜 은이고
가랑이까지는 놋쇠로 되어 있었어.
그 아래는 온통 무쇠고 오직
오른발만 구운흙이었는데,
다른 발보다 이 발로 몸을 버티고 서 있었지.
은, 놋쇠, 무쇠 등은 세 단계로 추락해온 인간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의 인류의 역사에 기반에서 황금시대에서 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를 설명합니다.)
단테는 크레타 섬을 지옥으로 흐르는 강의 수원지로 설정했습니다. 크레타 섬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으로 둘러싸여 지중해의 중심이었습니다. 크레타를 트로이와 로마 문명의 발상지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순금으로 된 부분 외에는 온통 금이 가 있었는데 그 갈라진 틈새로 눈물이 떨어져 산을 적시고 흘러내려 고여 크레타 섬이 지옥을 흐르는 강의 수원지가 되었습니다.
크레타 섬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는 아케론, 스틱스, 플레게톤강(끓는 피의 강)을 거쳐 코키토스(지옥의 밑바닥에 있는 웅덩이)를 이루는데 네가 곧 보게 될 것이라고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단테는 플레게톤과 레테는 어디에 있는지 또 물었습니다.
끓는 피의 강인 플레게톤은 '지옥편 12곡'에서 보았고 천국에 오르게 되면 레테(연옥의 꼭대기 지상 낙원에 있는데 이 강에서 영혼들이 참회한 죄가 사라지는 망각의 강, 이 곳에서 죄의 기억을 지운 채 천국에 오릅니다.)의 강을 보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었습니다.
“내 뒤를 따라 오너라. 불에 타지 않은 강둑이 길을 터주니 그 위에서 모든 불은 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