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
📌25년 충남 홍성에 진도 3의 지진 발생 📌35년 평안북도 학생 3만여명, 구국 항일운동 전개 📌41년 임시정부, 일본에 선전포고 📌46년 국립 서울대학교 안 반대 맹휴 시작
📌57년 서울대 문리대 학보 필화 사건 '
▶ 무산 대중 체제로의 지향' 논문이 발단이 되어 글 쓴 학생 구속. 1958년 4월 1일, 서울대 문리과 대학 필화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근일군(가운데)
📌64년 한국최초의 TV일일연속극 '눈이 나리는데' 방영 |
📌68년 공비 이승복 가족 학살 - 울진, 삼척 지구에 침투한 북괴 공비들, 승복 군(9세) 살해
▶1968년 12월 9일 오늘 공비 이승복 가족 학살 - 울진, 삼척 지구에 침투한 북괴 공비들, 승복 군(9세) 살해
이승복(李承福, 1959년 12월 9일 ~ 1968년 12월 9일)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지금의 용평면) 도사리에서 태어나 1967년 3월 2일에 속사 국민학교 계방분교에 입학했다. 속사 국민학교 계방분교는 1998년 3월 2일 폐교하고 속사초등학교로 통합되었다. 속사 국민학교 계방분교는 폐교 후 지금은 이승복 기념관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
이승복은 속사 국민학교 2학년이던 1968년 12월 9일에 북괴에서 남파되어 울진과 삼척으로 침투한 무장공비에게 입이 찢어지고 돌멩이로 머리를 맞아 학살당했다. 이승복과 함께 있던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도 잔인하게 학살당하고 이승복의 형은 36군데나 칼에 찔려 거름 더미에 버려졌다가 발견되어 살아났고 이승복의 아버지는 이웃집의 이사를 도와주고 집에 왔다가 무장공비들에게 잡혀서 칼에 찔리는 중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도망쳐서 살아났다.
무장공비가 이승복과 가족을 잔인하게 학살한 이유는 무장공비들이 이승복 가족을 방에 감금하고 북한 선전을 할 때 이승복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했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승복이 북괴 무장공비들에게 학살당한 12월 9일은 생일이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왜 그렇게 동족 학살을 일삼는지 섬뜩하기만 하다. |
|
📌71년 파월국군 첫 철수 부대 6년만에 부산항 개선 📌83년 부산 다대포 해안 침투 생포 간첩의 진술로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판명 📌83년 버마 랭군지구 인민법원 8특별 재판부, 아웅산 묘소 폭발범 북한 진모와 강민철에 사형 선고 📌85년 유학생 가장 일본인 간첩 검거-국군 보안사령부 📌85년 서울시, 창작과 비평사 등록 취소 |
📌86년 이민우 신민당 총재, 김수환 추기경 방문. 시국에 관해 의견 교환
▶1986년 12월 9일 오늘 이민우 신민당 총재, 김수환 추기경 방문. 시국에 관해 의견 교환 |
|
📌87년 한국(유공.삼환.현대.유개공), 북예멘의 마리브 유전 수출 송유관 및 생산시설 건설공사 준공 📌90년 남북 90년 송년 통일전통음악회, 예술의 전당서 공연. 10일 국립극장 2차 합동공연.12일 특별공연 📌90년 바웬사-자유노조 지도자 . 폴란드대통령 결선 투표 결과 당선 |
📌91년 새 민방 서울 TV방송(SBS) 개국
▶1991년 12월 9일 오늘 새 민방 서울 TV방송(SBS) 개국
1991년 12월 9일 민간방송인 SBS-TV의 개국식이 서울 여의도 서울방송사옥에서 열렸다. 개국 당시 SBS-TV는 6번 채널로, 서울, 경기 지역 등을 가시청권으로 하여 방송했다. |
|
📌91년 한국, 국제노동기구(ILO)에 151번째 정식 가입, ILO헌장수락서한을 미셸 ILO사무총장에게 전달 📌91년 서울지검,월간지 웅진여성 12월호의 에이즈 감염 20대 여성 복수극 허위기사, 조금현 기자 구속. 📌92년 KAL기관련 국제회담, 사건의 조사를 국제 민간항공기구(ICAO)에 일임 📌92년 경남 거창군 덕유산 상공서 훈련 중이던 F4D 팬텀기 추락 📌93년 김영삼 대통령,쌀개방과 관련 특별 담화, 對국민 사과와 함께 개방에 따른 보완책을 마련 하겠다고 다짐 📌96년 김영삼 대통령, 방한중인 카블랑 뒨캉 코트디부아르 총리와 의견을 교환 📌96년 여야, 정치 관계법 및 검 경중립화 관계법, 방송 관계법 등 국회 제도개선 특위 3개 핵심쟁점 일괄타결 📌96년 북한 탈출 홍콩 경유,망명을 신청한 김경호씨 (61) 일가족17명이 김포공항에 도착 (대한항공618편) 📌97년 한ㆍ미국 국방장관, 제29차 연 안보협의회와 제19차 군사위원회 개최 📌97년 한반도 4자 회담 첫 본회담 제네바 개막 |
2000년대 |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 탄핵안 가결 후 간담회장 들어서는 朴대통령과 黃권한대행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가결됐다. 박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정지됐고 헌법에 따라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다.
그동안 "탄핵안이 통과되더라도 '즉시 퇴진'을 계속 요구하겠다"고 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황교안 대행 체제에 대해서도 "지켜보겠다" 고 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3시 본회의를 열고 재적 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기권 2표로 탄핵안을 가결했다.
야당과 무소속 의원 172명이 탄핵 찬성 의사를 밝힌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에서 최소 62명이 찬성표를 던진 셈이다. 유일하게 투표에 불참한 새누리당 친박계 최경환 의원은 본회의장에 입장했다가 투표 시작 전 퇴장했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헌법 위반 및 직권남용·뇌물죄 등이 적시됐다.
박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직후인 오후 5시 국무위원 간담회를 갖고 "저의 부덕과 불찰로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