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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5장 죽임 당하신 어린 양 ~ 인봉한 책과 어린양
26.08.06(목)
오늘은 요한계시록 5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오늘 5장 강의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어제 4장을 봤는데요.
4장 복습을 좀 해보면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이에요. 보좌에 앉으신 이 성부 하나님 그분의 통치권을 드러내는 책이다.
그래서 교회를 향한 확신의 말씀이었어요.
확신을 가져라 흔들리지 마라 보좌에 앉으신 분은 황제가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통치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두 번째는 세상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만 너의 목숨을 걸어라 라고 하는 거였죠
세 번째는 역경을 넘어서 최후 승리를 바라봐라
지금은 어려워요 지금은 말씀을 전해도 안 들어요. 지금은 교회가 핍박을 받아요. 그런데요. 마침내 최후 승리 하실 분이 오세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박해를 받아도 즐거워야 될 이유는 우리의 최후 승리가 우리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뭐가 있어요. 신실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상급이 있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하늘 보좌에는 하나님만 앉아 계신 게 아니에요. 24 보좌 신 구역의 성도들이 거기에 있는데, 그들이 뭐 하고 있어요.
금관 쓰고 있고 흰옷 입고 있어요. 즉 말씀이 다 이루어졌어요. 일곱교회 주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바로 그 보자위에서 펼쳐집니다.
그러니까 그 장면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어려워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기는 게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우리가 4장을 통해 봤습니다.
자 우리가 어제 보면서 구조를 잠깐 잡아봤잖아요. 그러면서 4장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또 5장의 오늘 볼 죽임당하신 어린 양이 왜 중요한가. 심판하시는 주체이고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을 확실히 알면 그분들을 붙잡으면 이제 내일부터 시작될 심판과 구원은 전혀 두렵지 않은 거예요.
왜 하나님이 하시는 거고 어린 양이 시작하시는 거니까 두렵지 않아요.
자 그래서 오늘 이제 1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인으로 봉하였더라 아멘
자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시죠.
그 하나님과 죽임당하신 어린 양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바로 두루마리입니다.
이 두루마리 그런데 이것이 보좌에 앉으신 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어요. 즉 그분의 능력 가운데 있는 거죠. 근데 보니까 두루마리가 어떤 두루마리냐
안팎으로 썼대요 안팎으로 썼다는 말이 뭡니까? 앞뒤로 다 썼다는 얘기예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자 이때 뭐든 기록된 것은 지금처럼 종이가 없잖아요.
양피지에 썼거나 파피루스에 썼는데 안팎으로 썼다면 어디예요. 파피루스죠 예 양피지는 한쪽밖에 못 쓰니까 파피루스 양쪽에 다 쓴 거예요.
자 그런데 왜 양쪽에 썼다는 걸 강조할까요?
그게 뭐냐하면 여백이 없이 빼곡히 썼다는 거예요.
그 말은 거기 누가 이것을 더 쓸 수가 없어요. 뺄 수도 없고 수정도 불가한 거예요.
왜 완벽하니까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말씀은 완벽해요. 이거는 사람이 더할 수도 뺄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다.
여러분 창세기 2장 3절이 어떤 말씀인지 아세요. 하나님이 엿새 만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셨다 쉬셨다는 거예요.
쉬셨다는 게 뭘 말합니까? 이 창조가 완벽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할 게 없어요. 하나님이 쉬신 거예요. 안식하셨다 이건 뭐냐하면 피곤해서 쉬신 게 아니라 이 6일간의 창조가 완벽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7일째는 쉬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글을 쓰실 때 어떻게 쓰세요.
앞뒤로 쓰신다 보면 십계명 돌판도 우리가 그림에는 앞면만 나오잖아요. 아니에요.
출애굽기 이 32장 15절에 보시면 앞뒤로 썼어요. 앞뒤로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어질 때 앞뒤로 완벽하게 주어진다 우리가 고칠 수가 없어요.
자 그런데 우리가 이 두루마리 그러면 아우 이때부터 막 심란해지기 시작합니다. 잘 모르는 얘기가 나오고 아우 무섭고 아우 힘들고 그래요.
근데 여러분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여러분 인터넷에 찾아보면 이 두루마리가 어떤가 궁금해 찾아보거든요. 이렇게 나와요.
그림이 여러분 이 그림 맞아요. 틀려요 예 틀려요 두 가지가 틀렸어요. 뭐가 틀렸어요. 첫 번째 안팎으로 쓰지 않았죠
여러분 딱 보면 글씨가 보여야 돼요.
우리가 왜 이렇게 사람들이 그림이 안 보이게 해놨을까요? 마치 신비스러운 문서인 양 이거 보면 큰일 나는 것처럼 우리를 두려움에 빠트려요 그렇지 않아요. 안팎으로 써있다는 얘기는 글씨가 보인다는 얘기예요. 근데 안 보여요.
두 번째 뭐가 뭐가 틀렸어요.
인이 틀렸어요. 여러분 7인이라고 해서 7개가 있는 게 아니에요. 일곱이란 말이 뭐예요? 상징이에요. 완전하다 그러니까 이 인은 사람은 건드릴 수 없는 인이다.
완벽한 인이기 때문에 7개가 있어서 하나씩 뗄 때마다 거기서 저주가 쫙 나오고 하나 때마다 쫙 나오고 이런 게 아니에요.
우리가 판타지 소설 너무 많이 봤어요.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요. 여러분 그런 게 아니고 이건 우리가 손대지 못하는 어떤 그런 비밀스러운 게 아니라 이미 그 내용을 알려주신 거예요. 안팎의 글이 있고 다 볼 수 있어요.
근데 그 인을 뗄 수는 없어 왜 그걸 시작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니까 그게 누군지를 오늘 볼 거예요. 자 그러면 이 두루마리가 뭐냐 안팎으로 쓰신 두루마리가 바로 에스겔에 이미 이미 나왔어요.
이미 여러분 말씀은 환상 계시가 아니에요.
모르는 얘기를 막 중얼거리는 게시가 아니고 이미 주신 말씀 속에 다 있다.
자 에스겔 2장 9절과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말의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의 글이 있는데,
자 이미 이미 우리에게 에스겔에게 이미 주신 그 두루마리예요. 안팎의 글이 있고 두루마리 책 그 손은 한 손 하나님의 손에 있어요.
똑같죠 근데 그 위에 뭐가 있어요. 예 이걸 알면 성령 계시고 모르면 환상 계시죠. 예 알아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에스엘이 알아볼 수 있는 말이에요.
왜 안팎에 있으니까 볼 수가 있잖아요. 여러분 하나님 계시는 우리 모르게 우리 뒤통수 치는 그런 계시가 아니다.
뭐 정말 뭐 이상한 종교의 밀서처럼 아무도 모르게 그냥 이거는 너만 알아야 돼 이런 게 아니라 이미 다 알려주셨어요.
다 알려주셨는데 그럼 재앙은 왜 받는 거예요.
안 믿으니까 거부하니까 여러분 이게 중요해요. 하나님이 이게 신비로운 환상이라면 우리가 모르면 어떡해요.
마지막에 모르면 다 재앙받고 심판 받는 거예요. 몰랐으니까 여러분 그런 일이 그런 제향이 아니라 다 알려주세요. 그런데 마지막에 심판을 왜 받는 거예요. 거부했으니까 받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신앙은요 우리 모두에게 열려있는 신앙이다.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허락된 신앙이에요.
자 그런데 다니엘에도 똑같은 두루마리가 나와요. 그런데 다니엘은 어떤가 보세요.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러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에 결국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자 뭘 뭘 못 깨달은 거예요.
내용을 못 깨달은 게 아니라 그럼 마지막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얼마나 큰 혼란이 벌어질지를 다니엘이 짐작이 안 되니까. 다시 여쭤봐요.
그럼 마지막 때 결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뭐라고 하시나 다니엘아 갈지어다 여기서 막 갈지어다 레크란 단어가 되게 중요한데요.
그냥 야 됐으니 가라가 아니라 너의 길을 걸어가라는 거예요. 네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 다니엘아 다 할려고 하지 말고 너의 믿음을 지켜 그게 중요해 남들 신경 쓰지 말고 너의 믿음을 지켜
자 다니엘 12장은 마지막 장이거든요.
환상을 다 들었는데 다니엘의 그 복잡한 환상을 보고 다니엘이 고민하는 거예요. 아 이거 제가 어떻게 감당하죠. 아니 니의 믿음만 지키면 돼 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중요해요. 우리가 알아야겠죠.
그러나 내 믿음을 지키는 게 중요해요. 말씀합니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합할 것이니라 왜 알려는 줬지만 시행되는 건 마지막 때 그 인을 떼는 자가 오셔야 돼요. 그래야 시작이 되니까.
뭐라고 하는가? 마지막 때 이런 징조를 말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숨기는 게 없어요. 다 알려주세요. 그래 모든 일이 결국은 이렇게 될 거야.
첫째 어떼요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서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귀할 것이다. 여러분 이게 심판의 이유예요. 심판은 믿는 자가 연단을 받아 더 정결하게 되고 희게 되는 게 이게 이유예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거부하는 자들은 어떻게 돼요.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하나님을 거부하는 거죠. 여러분 악은 나쁜 짓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게 악한 짓이에요. 하나님을 떠나는 게 악한 짓이에요.
그래서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모르는 거예요. 자 그런데 어떻게요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지혜 중에 지혜는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예수님을 만난 자들은 아 이런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고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어요.
왜 오늘도 말씀을 주시잖아요. 이 말씀은요 숨겨지지 않았어요. 이건 드러나 있어요. 모두에게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린 거예요.
자 보세요. 2절입니다.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자 그랬어요. 여러분 여기 말하는 천사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우리가 천사라고 말하면 잘못 알고 있는 게 많이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알아요. 천사는 굉장히 예쁜 여자 천사 또는 천사 그러면 아기 천사 이렇게 알아요.
그런데 여러분 과연 그럴까요? 과연 천사가 예쁜 여자 천사 아니면 아기 천사 그럴까요? 아닙니다 어떨까요? 우리는 천사를 그렇게 알고 있지만 성경 속에 나오는 천사는 어떠냐 남녀 구분이 없다.
천사는 노소의 구분이 없어요. 그러니까 천사는 남자 천사 여자 천사가 따로 없고요. 애기 천사 노인 천사가 따로 없어요. 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영물이기 때문에 그래서 대부분 뭘로 등장하냐?
건장한 군사로 등장합니다. 남녀가 없고 노소가 없는데 군사예요. 하나님의 일을 해요. 그래서 오늘도 보시면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죠 연약한 여성이나 귀여운 아기 천사는 없다.
그건 다 문학 작품에 나온 얘기 성경에는 없어요.
자 그러면 뭐라고 하는가? 누가 이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여러분 이게 합당하냐는 말이 중요해요. 합당하냐? 악시오스라는 말이 뭐냐면 이것은 본래 로마 황제가 개선 행진에 사용하던 정치적인 용어인데요.
어떤 뜻이냐 선하시다 의로우시다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로마도 양심은 있어요. 그래서 승리가 능력에서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인간의 능력은 유한해요. 여러분 능력이 승리를 가져오는 게 아니에요. 뭐예요? 선함과 의로움으로 이기는 거예요.
그래서 악시오스는 선함과 의로움인데 자 그렇게 선함과 의로움이 인간에게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황제의 숭배가 강요되던 그 시대에 진정한 선함과 의로움은 황제에게 없다는 걸 강조하는 거예요. 황제 아니라 그 누가 와도 인간은 선하지 않고 외롭지 않아요.
그래서 이 두루마리의 인을 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떡해요.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복원할 자가 없더라 어디 하늘 위에도 없고 땅 위에도 없고 땅 아래에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걸 보니까 얼마나 좌절이 됩니까?
이 두루마리가 이게 떼어져야 구원이 시작되고 심판이 시작되는데 이걸 뗄 사람이 없으니까 이 사도 요한이 울기 시작합니다. 내가 크게 울었더니,
아 합당한 자가 없구나 악시오스가 없구나 모든 인간 중에 선하고 의로운 자는 하나도 없구나 황제도 없구나 그때부터 어마어마한 울음을 터트립니다. 한참 옵니다. 한참 울어요.
자 그런데 그때 위로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장로 중에 한 사람이 그 12보좌에 있는 12장로 중에 한 사람이 즉 구약 신구약의 성도가 이미 승리한 그가 말합니다.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는 거예요.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인을 떼실 것이다.
그가 누가 유다지파 사자 다윗의 뿌리 이게 누구예요? 자 여러분 야곱의 축복문이 창세기 49장에 나오는데 그중에서 전체가 다 12아들을 축복하는데 그중에 9절과 10절이 유다 지파 유다를 축복합니다.
유다에게 뭐라고 해요. 사자라고 해요. 너는 사자 새끼다 너에게 규 통치자의 지팡이가 떠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민족이 너를 높일 것이다. 그 유다지파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시죠.
자 그런데 예수님을 보통 뭐라고 불러요 다윗의 자손이요라고 부르죠 다윗의 후손이요. 그런데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분은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의 뿌리예요.
왜 다윗보다 먼저 계셨으니까 하나님이시니까 그래서 그 예수님에 대한 진짜 정의는 뭐예요?
그분은 다윗의 뿌리다 그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는 거예요. 즉 예수님께서 그 오셔서 그분이 선하시고 의로 오셔서 그 두루마리와 일곱 인을 떼실 것이다. 자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분명히 1절에서 뭐라고 했냐면 내가 봄에 보좌에 앉으신 이외에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었잖아요. 그럼 누구 손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 손에 있죠.
자 그러면 하나님이 떼면 되잖아요. 하나님의 직접 인을 떼면 될 거 아니에요. 근데 왜 기다립니까 왜 이거 직접 인 뗄 사람을 기다리고 왜 이수님이 떼야 됩니까? 이유가 뭐예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직접 떼면 모든 사람 다 구원받고 뭐 심판 없고 다 그냥 구원으로 끝나면 될 거 아니에요.
근데 왜 예수님이 나와야 되고 왜 예수님이 이걸 떼야 됩니까? 이유가 여기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요 죄를 판단하는 분이십니다.
죄를 묵인하는 분이 아니여요. 죄를 덮어주는 분이 아니에요. 죄를 판단하시는 분이면 그럼 죄가 뭔데요. 죄 죄가 뭐냐 여러분 죄는요 정확하게 아세요. 나쁜 짓 하는 게 아닙니다. 죄는 실수하는 게 아닙니다. 실패하는 게 아닙니다.
죄가 뭐냐 바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것이 죄예요. 십자가에 죽으신 나를 위해 죽으신 저 나를 위해 죽으신 저분이 나의 구주라는 걸 믿지 않는 게 죄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야 돼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돼요. 그거 없이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없이 하나님이 그냥 인을 떼버리면 그거는 죄를 묵인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이 인을 떼지 않고 기다리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셔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믿는 자들만 구원받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래서 누가 나와요.
바로 한 어린 양에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죽임당하신 어린 양 그래야 그 죽임당하신 어린 양을 구조로 믿느냐 안 믿느냐가 죄인이냐 의인이냐를 가르기 때문에 그래야 하나님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그것을 떼야 되는 거예요.
자 근데 그분은 어떤 분이냐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어요.
여러분 아까 말씀드렸죠 일곱이라는 숫자를 숫자로 계산하면 이거 너무너무 희한한 그림이 나와요.
일곱 뿔이라는 말은 뭡니까? 일곱은 완전한 수입니다 뿔은 권세입니다. 눈은 지혜입니다. 즉 어린 양 죽임당하신 어린 양이 온전한 권세가 있고 온전한 지혜가 있다는 거예요.
자 그런데 여러분 희한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죽임당한 어린 양이 완전한 권세가 있고 완전한 지혜가 있어요. 아 우리가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님 아까 5장에 사자 좋았거든요. 사자 온 뭐 백수의 왕 어 사자가 더 나은데 왜 어린 양으로 바뀌었나요? 우리 그게 아쉬워요 .
사자가 더 좋은데 게다가 왜 하나님 방법은 꼭 죽임당한 어린 양이 돼야만 할까요? 힘센 사자 더 좋은데 왜 죽임당한 어린 양이어야 됩니까? 왜 예수님 죽으셔야 됩니까?
그럼 그 이유가 마태복음 10장 16절에 있어요. 예수님께서 이걸 보여주셨어요.
미리 언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 것 같도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자 하나님의 방법은 뭐냐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게 하나님 방법이에요. 근데 여러분 양이 이리 가운데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좀 어렵지만 살아남아요. 아니면 힘들지도 않아요. 아니면 힘들다가 죽어요.
양이 이리 가운데 들어가요 이리 때 가운데로 들어가고 어떻게 돼요. 죽어요. 여러분 하나님 뜻이 뭐냐 양이 이리 가운데 들어가 죽어야 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우리 생각 같아서는 어 그럼 뭘 줘야 돼요. 우리에게 능력을 줘야 되고 무기를 줘야 되죠. 정할 수 있게 해줘야 되죠.
근데 예수님 뭘 줘요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그러세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 양이 이리랑 막 싸우기 그러니까 뱀처럼 막 빠져나가서 지혜롭게 빠져나가 살아남으라는 얘기입니까? 아니면 비둘기 같이 막 날아올라서 막 피하고 살아남으라는 얘기예요. 그게 아니에요.
양은 이리 가운데 가면 죽어요. 죽는데 어떻게 죽나 지혜롭게 죽어라 미련하게 죽지 말고 지혜롭게 죽어라 그리고 순결하게 죽어라 네 욕심 때문에 추악하게 죽지 말고 더럽게 죽지 말고 순결하게 죽어라 하나님 뜻대로 죽는 게 이게 예수님의 방법이었어요.
근데 제자들은 못 죽었죠. 못 죽어요. 그래서 누가 죽은 거예요. 예수님 죽으신 거예요. 이 방법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분 하나님 방법은 뭐냐 사자의 강함이 아니에요.
사자의 강함으로 내가 찍어 누르고 이기는 게 아니라 어린 양의 지혜롭고 순결한 죽음이에요. 이 죽음이 나를 내어주는 죽음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거예요.
이게 유일한 방법 죽임당하신 어린 양 그분이 죽어서 그 생명을 내어 주어서 우리가 그 생명을 힘입어 살아나는 것이 유일한 우리의 구원 방법인 거예요.
그래서 그 인을 뗄 자는 강한 자가 아니고 험악한 자가 아니고 오히려 힘없어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죽임당하신 어린 양이 그 인을 뗀다는 거죠.
여러분 그 어린 양이 이제 나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십니다. 이제 어떡해요. 이제부터 내일부터 6장부터 하나씩 떼입니다.
그때마다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자 그 위대한 일이 시작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오늘 12절을 보시면 이렇게 찬양을 합니다.
모든 만물이 모든 피조물이 찬양합니다.
같이 읽을까요?
큰 음성으로 이루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호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더라 아멘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합당하시다 여러분 이게 합당하다는 말이 뭐라고요. 선하시고 의로우시다 여러분 이 선함과 의로움을 가지신 분이 누구밖에 없어요. 죽임 당하신 어린 양밖에 없어요.
이 세상 누구도 어떤 권력자도 어떤 권세자도 가질 수 없는 선함과 의로움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세상은 힘으로 눌러서 이기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여러분 이게 요한계시록의 핵심이에요.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을 공부한 사람들은 야 마지막에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거니까 우리가 힘을 기르자 이게 아니라 힘을 빼야 되는 거예요.
도리어 힘을 빼고 어떻게 죽임당하신 어린 양 그분에게 선함과 의로움이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그분을 주로 고백하고 그분을 따라 사는 사람들 그래서 그분이 나를 위해 피 흘리고 죽으셨음을 오히려 찬양하는 사람들 그래서 이제는 황제가 아니라 황제의 개선 행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달리신 십자가를 보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이제 이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가고 이 시대를 순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바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사람들인 거예요.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결론입니다.
요한계시록 어떤 책입니까? 바로 교회를 향한 희생의 말씀이에요. 희생의 말씀 야 내가 너희를 위해 희생했다.
그럼 우린 뭐 해야 돼요. 우리도 희생해야 되는 거예요. 그 희생하신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을 찬양하면서 우리도 나의 자신을 내어줘야 되는 거예요.
교회가 살아남으려고 어떻게든 우리가 버텨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내어줘 세상에 살아나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 법칙이에요.
두 번째 심판과 구원은 오직 누구에게 있어요.
그 시작은 예수님에게 있다는 거예요. 어느 누구도 그걸 시작할 수 없어요. 어느 누구도 선하지 않아요. 의롭지 않아요. 합당하지 않은 거예요. 합당하신 분은 한 분 예수님이에요.
세 번째 최후 승리를 이루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에요. 지혜롭고 순결하게 죽임당하신 어린 양이에요. 그래서 예수님만 합당하신 선하고 의로우신 구원자가 되신다라고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고난주간 성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날입니다. 왜 중요합니까? 그분의 죽음은 바로 나를 살리기에 가장 합당한 죽음이었어요.
지혜롭게 순결하게 자신을 내어주셨어요.
우리는 할 수 없는 그것을 예수님이 하셨어요. 왜 그래야만 우리가 죄를 떠날 수 있어요.
여러분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구요.
혼낸다고 되는 게 아니구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죽어야만 우리가 그 죄를 떠나서 주님 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예요.
오늘 우리를 위하여 죽임당하신 어린 양 주님을 온몸과 마음으로 찬양하는 하루를 보내기 원합니다.
그래서 오 주님 주님만을 따라 살겠습니다.
오 주님 영광과 찬양을 우리 주님께만 돌립니다.
오직 합당하신 분 오직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 그 예수님께서 이제 내일부터 인을 하나씩 떼실 거예요. 그때 일어나는 그 일들을 여러분 이제 우린 뭐 하면 돼요. 바라보면 돼요. 구경하면 돼요.
왜 그건 우리에게 벌어질 일이 아니니까 우린 이미 구원받고 이미 우린 기뻐하고 그분의 자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 내일부터는 즐겁게 어 이런 일도 벌어지네 야 기대된다라고 말씀을 여러분 두려움 없이 보시면 되겠어요.
그럴 수 있는 비결이 뭐예요? 바로 어린 양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가치 있고 그만큼 위대하고 그만큼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오늘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고난 주간 특별 새벽 기도회 다섯째 날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바로 이날 저희는 죽임당하신 어린 양을 묵상합니다.
주님 세상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말하지만 너희 힘을 보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지혜롭게 끝까지 순결하게 그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어린 양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고 이제 우리는 죄악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기는 하나님 저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가 그 두루마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인 떼시는 것을 떨림으로 바라보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마지막 때 벌어질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 보게 하시고 주여 이미 얻은 승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죽임당하신 어린 양 오직 선하시고 외로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게 하시고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우리도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의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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