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남영전의 토템시 <곰>을 보면,
우람한 산악을 끄는 그림자
엉기적
엉기적
엉기적
덩쿨풀 뒤얽힌 어두운 수풀을 지나
물풀 우거진 황량한 수렁창 건너
유구한 세월 엉기엉기 기여나와
쓸쓸한 굴속에 갇혀 살았더라
쓰고 떫은 쑥맛 볼대로 보았고
창자 끊는 마늘맛 씹고 씹었다
별을 눈으로
달을 볼로
이슬을 피로 삼아
련꽃처럼 예쁘장한 웅녀로 변하여
이 세상 정령의 시조모 되였더라
도도한 물줄기 현금 삼아 팅기고
망망한 태백산 침상으로 꾸렸나니
천궁의 천신들 모셔다
신단수아래 즐기게 하고
숲속에서 황야에서 바다가에서
아들딸 오롱조롱 자래워
사냥, 고기잡이, 길쌈도 하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즐거이 노닐었거늘
세상은 일월처럼 빛나서
천지를 쨍하게 비추었더라
더운 피와 열물 젖삼아 마셨기로
어진 성미에 너그러운 풍채 갖추고
억센 의지와 의력은 근골이 되고
발톱은 쟁쟁 소리나는 도끼와 활촉으로 되여
애탄이 무어랴
구걸이 무어랴
길 아닌 길을 헤쳐
죽음길도 뚫고 나갔더라
일월을 휘여잡은 자유의 넋이여
신단수아래서 장고 치며 춤추던
우리네 시조모, 시조모여
엉기적
엉기적
엉기적
우람한 산악을 끄는 그림자
태고의 전설속에 엉기적
백의의 넋속에 엉기적
요원한 미래속에 엉기적
ㅡ남영전 시 <곰> 전문.
여기에 보면, '쓰고 떫은 쑥맛 볼대로 보았고 / 창자 끊는 마늘맛 씹고 씹어', '련꽃처럼 예쁘장한 웅녀로 변하여 /이 세상 정령의 시조모 되였더라'라는 대목이 나온다. 또한, '일월을 휘여잡은 자유의 넋이여 / 신단수아래서 장고 치며 춤추던 / 우리네 시조모, 시조모여'라 했는데 우리 민족성을 잘 반영한 대목으로 읽힌다. 나아가서 '애탄이 무어랴 / 구걸이 무어랴 / 길 아닌 길을 헤쳐 / 죽음길도 뚫고 나갔더라'라고 했는데 우리민족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백의민족 정신사가 곰에서 비롯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단수>도 등장하는데 신단수란, 단군신화에서 환웅(桓雄)이 처음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신성한 나무인 박달나무를 의미하며 그곳에서 제사 지내는 신성시 된 곳이다.
단군신화에 하늘에서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지금의 묘향산)의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세상을 다스릴 때, 사람이 되고자 하던 곰과 호랑이에게 영애(靈艾)와 마늘을 먹였는데, 호랑이는 이 시련을 참지 못했고, 곰은 이겨내어 '웅녀(熊女)'가 되어서 환웅과 결혼(結婚)하여 낳은 아들이 '단군(檀君)'이라 칭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신화인 것이다. 남영전의 토템시의 출발은 바로 <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신단수>라는 작품을 보자.
창천을 쪼각쪼각 받쳐들고
대지를 뙈기뙈기 거머쥐고
씨비리 광풍을 옆구리에 끼고 회오리쳤네
회오리치고 회오리쳤네
거대한 사다리 하나 드리우고
아아한 기둥 하나 세워
어머니대지의 배꼽과 북극성 이어놓고
령혼의 새에게 큼직한 보금자리 지어줬네
오성을 부르는 소리
지혜를 부르는 소리
광막한 우주로 퍼져갔네
하늘의 구름 몰아오며
땅의 물 빨아들이며
북반구에 첩첩 쌓인 먼지 털어내며
회오리쳤네
회오리치고 회오리쳤네
잎새마다 드넓은 구간에
가지마다 드높은 공간에
무연한 록음 우거지게 하고
장수의 힘을 부르며
삶의 영원을 갈망하였네
모든 총명, 모든 정기를 모아
모든 굴함없는 불발의 견인을 모아
소탈하고 영특한 웅신(雄神)으로 변신하여
웅녀와 천지개벽의 연분 맺었네
이에 적막공산에 적막이 사라지고
침묵구역에 침묵이 사라졌네
무인지경에 밥짓는 연기 몰몰 피여나고
무인강산에 예쁜 노래소리 울렸네
사냥하는 군신들 태여나서
베짜는 아가씨들 자라나서
막강한 기백으로 빙산의 두개골 열어제치고
화애로운 락원 일떠세웠네
신기로운 신단수
천년 만년 세월이 흘러가도
칼바람에 끊어지랴
불벼락에 타버리랴
물사태에 밀려가랴
눈보라에 얼어죽으랴
창천을 튼튼히 받쳐들고
대지를 굳건히 거머쥐고
영세무궁 우뚝 솟아있네
ㅡ남영전 시 <신단수> 전문.
여기에서 새로운 개벽의 세계가 열림을 읊고 있음이 확인이 되는데 '잎새마다 드넓은 구간에 / 가지마다 드높은 공간에 / 무연한 록음 우거지게 하고 / 장수의 힘을 부르며 / 삶의 영원을 갈망’하며 ‘모든 총명, 모든 정기를 모아 / 모든 굴함없는 불발의 견인을 모아 / 소탈하고 영특한 웅신(雄神)으로 변신하여 / 웅녀와 천지개벽의 연분 맺'은 것이다. 그곳이 신단수가 있는 신시이다. 이렇게 '창천을 튼튼히 받쳐들고 / 대지를 굳건히 거머쥐고 / 영세무궁 우뚝 솟'은 민족으로 출발한 것이다.
미당 서정주(1915~2000)시인은 『三國遺事』의 설화를 시적으로 형상화시켜 시집『 鶴이 울고 간 날들의 詩』(1982. 소설문학사)를 펴냈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서정주 특유의 재간으로 시로 쓴 한국 오천년 정신사였다. 미당은 이 시집 속에서 삼국유사의 소재를 빌어 65편의 시로 빚어내었다. 그는 특유의 육자배기 가락과 사설조 등을 동원하여 한국 고대의 역사와 민속과 신화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냄으로써 육당 최남선(1890~1957)과 함께『三國遺事』이해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남영전의 시 <白鶴>과 서정주의 시 <鶴>을 견주어 보는 것도 아주 흥미있는 일이라 보여진다. 먼저 미당의 <鶴>을 음미해 보자.
千年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鶴이 날은다
千年을 보던 눈이
千年을 파다거리던 날개가
또 한번 天涯에 맞부딪노나
山덩어리 같어야 할 忿怒가
草木도 울려야 할 서름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보라, 옥빛, 꼭두선이,
보라, 옥빛, 꼭두선이,
누이의 수틀을 보듯
세상을 보자
누이의 어깨 넘어
누이의 繡틀속에 꽃밭을 보듯
세상은 보자
울음은 海溢
아니면 크나큰 祭祀와 같이
춤이야 어느 땐들 골라 못추랴
멍멍히 잦은 목을 제 쭉지에 묻을 바에야
춤이야 어느 술참 땐들 골라 못추랴
긴 머리 자진머리 일렁이는 구름속을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하지 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저승곁을 나른다
ㅡ서정주 시 <鶴>전문.
미당은 위의 시 <鶴>에서 '千年 맺힌 시름을 /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 고운 강물이 흐르듯 / 鶴이 날은다'라 했다. 우리 민족이 극복해 온 갖가지 애환과 역경 뒤에 평화로운 세계가 열림을 희구하는 새 날을 의미한다. 나아가서는 '긴 머리 자진머리 일렁이는 구름속을 /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하지 못한 것이 /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 저승곁을 나른다'고 했다. 여기에서 <저승>은 무얼 의미하는가. <저승>은 영원의 세계에로의 진입으로 해석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고있는 저승이라는 말을 차용했을 뿐이다. 인간세상에서 봤을 때의 저승은 죽음의 세계 즉 無의 세계이지만 불교세계관으로 봤을 때의 저승은 내세를 의미하며 일반적 개념을 뛰어넘는 세계로 인식되는 것이다.
남영전 시 <白鶴> 역시 같은 맥락의 정신사로 읊고 있음이 입증된다 하겠다.
결백한 백학의 결백한 넋은 백의혼이다
백의혼이여
천만년 깊이 묻힌 피비린 내음에 절고
천만년 검붉은 질식속에 몸부림치고
천만년 무거운 층암속을 뚫고 나오며
검은 삿갓, 검정두루마기, 검은 적삼 불살라버리고
천지간에 하얗게 다듬어진 넋
백의혼이여
신단수초리에서 회오리쳐
바다와 하늘 사이에 신비의 왕국 이어놓고
짐승이 덮쳐도
수리개 노려도
호랑이 따웅해도 겁내지 않고
큰물이 들이닥쳐도
광야가 쓸쓸해도
모든 공포를 겁내지 않고
영원히 머리 번쩍 쳐들고
영원히 날개 나풀 퍼덕이며
영원히 추호의 비굴 모르는 자유의 넋
백의혼의 흰 깃털로 옷 지어입고
백의혼의 날랜 날음처럼 춤추고
백의혼의 억센 날개처럼 뼈를 굳히고
백의혼의 밝은 눈을 해와 달로 삼았기로
천지간에 백의혼이 출렁이네
백의혼 모였다 헤여지면서
백의혼 갔다가 돌아오면서
백의혼은
눈보라의 거친 벌도 달리고
폭풍우의 푸른 호수도 건너면서
부딪치는 쇠붙인 생뚱한 불꽃 튕겼고
엇섞이는 어화는 이채론 뭇별 반짝이여
동족상잔의 치욕 가시고
수리개의 발톱 경계했더라
설사 결백속의 붉은 피방울
백두의 얼음속에 스며든대도 애탄하진 않고
더욱더 많고많은 백의혼 낳아키웠네
백의혼은
강자를 약자로 알고
약자를 강자로 알고
비바람속에 가시덤불 우거진다 해도
아아한 벼랑이 암초로 침륜된다 해도
갈구에로 메운 화살 다시 접을수 없나니
창천이 부른다
황야가 부른다
백의혼이여
백의혼이여
백의혼이여
ㅡ남영전 시 <白鶴> 전문,
앞서 밝혔듯이 동질의 대상을 두고 읊은 작품들이다. 백학이 바로 우리민족의 표상으로 남영전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이는 결백과 순수와 지조와 찬란한 비상이 말해주는 우리 민족 고유습성과도 닿아있는 혼이며 넋으로 자리매김 된다. '백의혼의 흰 깃털로 옷 지어입고 / 백의혼의 날랜 날음처럼 춤추고 / 백의혼의 억센 날개처럼 뼈를 굳히고 / 백의혼의 밝은 눈을 해와 달로 삼았기로 / 천지간에 백의혼이 출렁이네' 이게 새 지평을 열어가는 민족혼의 일체감인 <백의>의 표상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정신사의 한 장으로 또는 우리 민족 정신사의 구김없는 고고함으로 鶴은 오천년 역사 속에 나래쳐 온 것이다. 서정주는 <鶴이 울고 간 날들>이라는 말로 묶어서 총체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품격의 숭배사상이 우리 민족의 고매한 정신사로 자리잡은 것이리라.
다음으로, 남영전 시 <뻐꾹새>를 보자.
뻐꾹, 뻐꾹
마디마다 피맺힌 울음이다
피맺힌 울음은
어두컴컴한 어둠속에서
어둠이 삼켜버리는 어두운 몸속에서
흐느낌 거듭되는 흐느끼는 입술에서
저 아득하고 아득한 풍경에서 울려나온다
피맺힌 울음은
차마 더 들을수도 볼수도 없어라 ――
백설과 들풀이 서로 물어뜯는걸
백골의 외로운 그림자도
황야의 한적한 탄식도
차마 더 되새길수 없어라 ――
흔들리는 미정의 운명도
창망하고 흐릿한 꿈밭도
피맺힌 울음은
빠알간 피울음
들끓는 피울음
갈라터진 마음들을 적셔주고
말라죽은 생령들을 적셔주고
부드럽고 화창한 봄날을 불러오고
기쁨에 넘치는 색채를 입혀주고
인간의 희망을
금빛 눈부신 에덴에 올리건다
뻐꾹, 뻐꾹
원근의 신주를 향해
푸른 생명 키우는 대지를 향해
울려퍼지는
마
디
마
디
피
울
음
ㅡ남영전 시 <뻐꾹새>전문.
미당 서정주의 전편의 시속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소재 역시 뻐꾹새인데, 이 뻐꾹새는 타민족 보다 조선민족에게 더 끈끈하게 닿아있는 영물적 존재가 아닌가 생각된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흰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왕림할 때 뻐꾹새와 함께 온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게 아니라도 뻐꾹새는 가장 한국적인 토속정서로 자리매김 되어온 새인 것이다, 서정주시인이 보는 관점은 어떠한가 보자.
사월 초파일 뻐꾹새 새로 울어
물든 청보리
깎인 水晶같이 마른 네 몸에
오슬한 비취의 그리메를 드리우더니
어느 만큼 갔느냐, 굶주리어 간 아이.
오월 端午는
네 발바닥 빛깔로 보리는 익어
우리 가슴마다 그 까슬한 까시라기를 비비는데------.
빠꾹새 소리도 고추장 다 되어
창자에 배는데------.
문드러진 손톱 발톱 끝까지
얼얼히 배는데------.
ㅡ서정주 시 <보릿고개>전문.
<보릿고개>라 제목을 붙인 서정주의 이 시는 사월 초파일과 오월 단오 사이의 보릿고개라는 時空을 노래하고 있다. 고추장이 등장하는데 우리 민족의 핍박받았던 한 시대이기도 했으며 몹시 가난한 시절의 回憶이기도 하다.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폐허가 된 한반도의 실정이 어떠했겠는가. 6.25 한국전쟁의 징후가 아니라 할지라도 고추장에 보리밥이 은근과 끈기의 보릿고개의 힘이 되었음은 두 말 할 나위없다. 역시, 남영전의 '뻐꾹, 뻐꾹 / 원근의 신주를 향해 / 푸른 생명 키우는 대지를 향해 / 울려퍼지는 / 마 / 디 / 마 / 디 / 피 / 울 / 음'도 다름없는 백의민족의 삶의 속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 삼국유사 』를 근본으로 한 미당 서정주 시집『 鶴이 울고 간 날들의 詩』에 수록된 <새벽 닭소리>라는 시가 있다.
새벽에 닭소리는 반갑지 않은가?
특히나 우리 한국사람으로서
첫 새벽에 닭소리는 남 줄 수 없지?
그래서 우리 이조 인조(仁祖)대왕께서도
병자호란에 남한산성에 숨었을 때는
그 닭소리마저 끊기는 게 두려워
닭고길랑은 앗세 입에 대질 않했지.
그 닭소리를 살려 들으며
입보다는 귀치레를 더 해야만 했었지.
유니크하게 쓰여졌지만 <새벽 닭소리>는 한 나라의 왕이 들어야 했던 것인 만큼 흘려버릴 수 없는 덕목같이 소중한 소리였던 것이다.
황소는 어떤 의미로서 자리매김 되는지 눈여겨 보자.
묵묵히 걸어간다
싱그러운 송진내 풍기는 공간에서
자그마한 언덕뿐인 구간에서
밝은 눈 번쩍 뜬 순간부터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골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온갖 어둠만 커다란 위속에 집어넣으며
아득하고 아득한 먼길 시발했다
하늘은 푸르고
물길은 가없는데
황소는 죄꼬만 빙산 받들어
우리네 토지를 넓혀준 시조
한번 용쓰면 땅이 흔들리고
한번 숨쉬면 땅이 헐떡인다
그는 꿈결에도
애타게 땅을 그리워한다
물길은 아득하고
땅은 가없는데
황소는 삭막한 황야의 희망
희망이 무르익을 징조여라
그는 돌산, 눈얼음 넘음에
가시밭, 수렁창 헤침에
피땀과 눈물 흘리면서
움직이는 골짝 등에 지고
황금의 빛발 등에 지고 간다
밤낮없이 걷고 걷는다
가시밭도 벼랑길도 두렴없이
사나운 운명도 탓하지 않으며
풋풋한 풀 몇포기 씹으면
그것으로 최대의 만끽이다
하지만 제 족속 피살된 고장 보면
설사 피방울이 들풀속에 스몄다 해도
대뜸 눈에 피발 세우고
분노에 울부짖고 울부짖는다
서러운 혼을 불러
불쌍한 혼을 불러
다시금 잠을 깨운다
묵묵히 걸어간다
쓰러지지 않는 한
숨이 붙어있는 한
또다시 아득히 먼길을 내처 걷는다
ㅡ남영전 시 <황소> 전문.
남영전시인은 ‘묵묵히 걸어간다 / 쓰러지지 않는 한 / 숨이 붙어있는 한 / 또다시 아득히 먼길을 내처 걷는다’고 했다. 황소 역시 우리 민족에게는 ‘물길은 아득하고 / 땅은 가없는데 / 황소는 삭막한 황야의 희망 / 희망이 무르익을 징조여라 / 그는 돌산, 눈얼음 넘음에 / 가시밭, 수렁창 헤침에 / 피땀과 눈물 흘리면서 / 움직이는 골짝 등에 지고 /’ 황금의 빛발 등에 지고 간다‘는 것이다. 황소가 <땅>과 함께 펼쳐온 삶이 잘 그려져 있다. 인간의 삶이 어제오늘에 머무는게 아니라 미래를 향해 펼쳐나가듯이 가장 낮은 자세로 읽힌다.
서정주시인이 읊고 있는 <소>를 보면, ‘구름은 동으로, / 물은 서으로, / 여러 새 우는 여러 山 옆을 / 고삐에 풍경을 단 소처럼 지내 와서 / 나는 발 아래 못물을 본다. / 발 아래 고인 못물을 본다.’(서정주 시 <단상(斷想) > 전문) 이렇게 은근과 끈기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소>에 자신을 비유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소인 <황소>인 것이다. <황소>의 의미가 안겨주는 세계관이 그것인데 인간의 삶에서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하는 <소> 역시 남영전의 토템사상에서 그 비중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영전시인의 시<수탉>을 보자.
톡, 톡, 톡 쪼아낸다
어미 날개의 소망으로
스스로의 삶의 갈망으로
꼭 싸인 포대기를 쫏는다
숨막히는 질식을 쫏는다
딴딴한 우리를 쫏는다
자유로운 꿈나라를 쪼아낸다
이글이글 타는 해님을 떠올리며
다채롭고 어여쁜 세계를 깨우며
꼬끼오, 홰를 친다
도깨비를 쫓아내는무렵에
검은 장막 열어놓는무렵에
가벼운 꼬리로 포악을 비웃으며
아롱진 두 날개로 몽매를 날려보내며
수컷의 성깔미로 취약을 채질하며
볏의 불길로 얼음장 녹이여
볏의 빛발로 어둠을 밝히여
우중충한 하늘 깨여난다
발랄한 생명 태여난다
꼬끼요, 홰를 친다
목을 길게 빼들고
들끓는 피로
우렁찬 목소리로
날마다 달마다 홰친다
대대손손 홰를 친다
까마득히 먼먼 천애지각에서
울울창창 우거진 수림속에서
그지없이 편벽한 두메산골에서
생령이 사는 모든 크고작은 고장에서
어둠이 사라지지 않는 한
혼돈이 가셔지지 않는 한
머리우에 지지 않는 태양을 이고
목을 빼들고 길게 길게 홰친다
톡, 톡, 톡 쫏는다
꼬끼오, 꼬끼오 홰친다
ㅡ남영전 시 <수탉>전문,
여기서 주목해야 될 대목이 '꼬끼요, 홰를 친다 /목을 길게 빼들고 / 들끓는 피로 / 우렁찬 목소리로 / 날마다 달마다 홰친다 / 대대손손 홰를 친다'에서 '대대손손 홰를 친다'는 것이다. 자손의 번성이 곧 그 민족의 번영 다름 아닌 것이다. <수탉>이 오천년 역사를 뻗어오게 한 장본인인 조선민족의 남아(男兒)로 해석된다.
남영전시인의 시 <봉황새>를 보자.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어여쁜 채색으로
높은 하늘 꽃구름을 물들이고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자신의 유연한 음색으로
대지의 뭇새들을 우짖게 이끈다
신비로운 봉황새
해빛처럼 눈부신 닭의 머리
청고하고 성결한 제비의 목
위풍 름름한 기린의 등
청천을 나래치는 룡의 무늬
유연히 하늘대는 물고기의 꼬리
이 모든걸 한몸에 지녀
구만리 산악 넘나들고
구만리 창공 나래치다가
오동나무에 깃드는 새
길상스러운 봉황새
그지없이 예쁘게 신기한 춤을 추는
그의 춤은 우아
머리는 덕(德)
날개는 의(義)
등은 례(禮)
가슴은 인(仁)
배는 신(信)
세상의 모든 덕 한몸에 지녔기에
그가 춤추면
날짐승, 길짐승 덩달아 춤추고
산천초목들 어깨를 으쓱으쓱
인간세상은 따사로와진다
봉황새야, 봉황새
세인이 우러르는 봉황새
죽실 아니면 먹지 않는
샘물 아니면 마시지 않는
태평성세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지 않는
봉황새야, 봉황새
ㅡ남영전시인의 시 <봉황새> 전문.
봉황은 어떤 새인가. 수컷과 암컷이 사이좋게 오동나무에 살면서 감천(甘泉, 태평시대에 단물이 솟는다고 하는 샘)의 물을 마시고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고 전해지는 새로서 앞부분은 기린, 뒷부분은 사슴,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등은 거북, 턱은 제비, 부리는 닭을 닮았다고 한다. 오색의 깃털을 지니고, 울음소리는 5음으로 된 묘한 음색을 내며, 뭇새의 으뜸으로서 귀하게 여기는 환상적인 영조(靈鳥)로 통한다. 평화로운 세상을 상징하여 봉황내의(鳳凰來儀:봉황이 와서 춤을 춘다는 뜻)라는 말도 있는데 한국에서도 불교와 함께 전래 되어 예로부터 상서로운 상징으로서 장식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 시인이 읊은 것처럼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 자신의 어여쁜 채색으로 / 높은 하늘 꽃구름을 물들이고 /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 자신의 유연한 음색으로 / 대지의 뭇새들을 우짖게’ 이끄는 새인 것이다. 그러기에 ‘머리는 덕(德) / 날개는 의(義) / 등은 례(禮) / 가슴은 인(仁) / 배는 신(信) / 세상의 모든 덕 한몸에 지녔기에 / 그가 춤추면 / 날짐승, 길짐승 덩달아 춤추고 / 산천초목들 어깨를 으쓱으쓱 / 인간세상은 따사로와‘진다고 시인은 인식한 것이다
역시, 『 鶴이 울고간 날들의 詩』에 수록된 <檀君의 藥밥>에서도 서정주의 국선사상이 현저히 드러나고 있는 게 확인 된다.
밥 겸 약으로서
밥도 지어 먹어얘지.
차지게는 살게시리
밥쌀일랑 찹쌀로서
호환(虎患)을 면케시리
단 곶감도 달게 섞어,
가난도 좀 참게시리
좁쌀도 좀 끼워서
대추는 보양(補陽)으로,
부황(浮黃) 막이는 고사리로,
석용(石茸) 버섯으로,
또 신선으로 진급용으론
신선용(神仙用)의 잣과 호도,
모두 섞어, 두루 얹어,
밥이요 또 약으로설랑
지어 지어 지어서 먹어얘지.
까마귀야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고로코롬 까욱까욱 울고만 있늬?
늬들한테도 좀 노나 줄 테니
시장끼를 가라앉혀
점잖게 놀자.
송백수(松柏樹)라 늘어진 가지 밑에는
바둑판도 한 판 벌이고 말이야.
ㅡ서정주 시 <檀君의 藥밥 >전문
찹쌀, 곶감, 좁쌀, 대추, 고사리, 버섯, 잣과 호도 이 모두가 우리 민족이 즐겨 먹어온 것들이다. 그래서 장수와 복을 빌어왔으며 까마귀를 등장시켜 함께 나누어 먹는 미덕, 이런 게 신선사상이며 엄밀히 말하면 국선사상의 매개로 존재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표현으로는 '송백수(松柏樹)라 늘어진 가지 밑에는 / 바둑판도 한 판 벌이고 말이야' 이런 풍류정신 또한 한 몫 더하니 말이다. 그렇게 융화되고 재구성된 게 <檀君의 藥밥>인 것이다. 단군이 먹는 약밥이 진수성찬처럼 따로 차려진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우리의 국선사상은 단군사상에서 비롯됨을 잘 보여주는 예시(豫詩)라 하겠다.
미당이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시집 『 80소년 떠돌이의 詩 』(1997. 시와 시학사)라 제목을 단 시집 속에 필자를 등장인물로 한 시가 한 편, <당명황과 양귀비와 모란꽃이>라는 시와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주의 깊게 보자.
大邱의 詩人 徐芝月이가
"자셔보이소" 하며
저희집에서 딴 紅柿들을 가져왔기에
보니 거기엔
山까치가
그 부리로 쪼아먹은
흔적이 있는 것도 보여서
나는 그걸 골라 먹으며
이런 논아먹음이
너무나 좋아
웃어자치고 있었다
ㅡ徐廷柱 詩 <徐芝月이의 紅柿> 전문.
한국일보의 「한국일보 시단」에 발표되었을 때는 제목이 <紅柿>였는데, 시집에는 <徐芝月이의 紅柿>라 했다. 중앙일보 이경철 문학전문 대기자는 중앙일보 1997년 11월일 4일자에서, ‘大邱의 詩人 徐芝月이가/ “자셔보이소” 하며/저희집에서 딴 홍시들을 가져왔기에/보니 거기엔/山까치가/그 부리로 쪼아먹은/흔적이 있는 것도 보여서/나는 그걸 골라 먹으며/이런 논아먹음이/너무나 좋아/웃어자치고 있었다” (시 <徐芝月이의 紅柿>)를 보면, 제자 시인 서지윌씨가 보낸 홍시를 고맙고 맛있게 먹는 풍경이 우선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나 그대로 읽어버리면 안될 그 어느 종교. 사상도 풀 수 없는 우주관이 들어있다. 산까치와 내가 함께 `논아먹음`.이 나누어 먹음으로써 까치는 내가 되고 나는 다시 홍시가 되어 `웃어자칠 수`있는 삼라만상의 조응. 그 세계에는 나와 대상 순간과 영원 삶과 죽음의 구분이 없다.’고 피력했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스스로를 학생, 또는 소년으로 칭하며 시 <徐芝月이의 紅柿>에서 보여주듯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쓰여졌다 할 수도 있는데, 자연의 산물인 ‘홍시’와 그 대상인 ‘산까치’와 인간인 ‘자아’와의 융화된 세계를 말함이다.
조상이 남겨놓은 고훈
날마다 경건히 읊조린다
들불이 덮쳐들 때 날려온
칼과 창과 화살, 그리고 방울방울의 피를
언제나 잊어버리려 했건만
온역을 쫓아낼 때 들려온
납함과 저주와 타매, 그리고 석쉼한 목소릴
언제나 잊어버리려 했건만
종시 잊을수 없고 지워버릴수 없는
유전자인가
그날에 연소한 몸
지독한 불길에 거멓게 그을은 몸은
영영 지울수 없는
흑백 분명한 색갈로 변하고
그날에 쉬여버린 목청은
더는 나아질수 없어
더는 회복될수 없어
인간세상 마주서서 깍깍
거듭되는 절절한 충고뿐
근심 털고 기뻐하라는 기원뿐이다
들불은 무시로 타오르고
온역은 무시로 퍼지기에
화상입은 까치는
이제금 가지우에 깍깍 운다
이제금 쉬여버린 목청이다
ㅡ남영전 시 <까치>전문.
까치를 두고 ‘조상이 남겨놓은 고훈 / 날마다 경건히 읊조린다’라고 했다. 거기다가 그 까치는 ‘언제나 잊어버리려 했건만 / 종시 잊을수 없고 지워버릴수 없는 유전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까치로 말할 것 같으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영물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친근감 가는 정신적 풍요를 느끼며 살아온 우리 민족이 아니던가. ‘조상이 남겨놓은 고훈’이 의미하는 바도 이런 혈통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정주시인이 <홍시>와 <까치>, <자아>의 상관성을 통한 자연과 짐승 인관과의 화해정신을 읊었듯이 남영전 시인 역시 우리 민족이 고래로부터 함께 해 온 정신문화의 한 단면 을 보여준 예라 할 것이다. 지금은 ‘ 화상입은 까치’이며 ‘쉬여버린 목청’이지만 원상태에로의 복귀를 희구하는 시인의 개탄도 한몫하고 있다. 남영전의 토템시상의 근간이 되며 확대되어 나가야 할 인류의 화합, 공존, 영원주의 다름 아닌 것이다. 우주 만물과 뭇 생명체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존엄성이 중시됨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서정주의 시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의 사주팔자>에서도 현저히 드러난다.
대왕(大王)이나 성왕(聖王)이나 왕중왕(王中王) 짜리가 적어도 될랴면은
되도록이면
처녀가 시집가기 전에 되게 야합해서 낳은 게 좋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하느님이라든가 해님의 넋을 붙어 그랬노라고
그 핑계가 아주 썩 잘 풍류로 된 아이가 좋나니,
그러구선 또
이걸 자알 이해해 맡아 길러 주는
성이(聖人) 같은 의붓아비가 있어야 하나니,
이 사납기만 한 八字로 태어난 고주몽이여.
그대는 무엇보다도, 무기를 일등으로 잘 다루고,
참말보다 나은 거짓말을 골라서 자알 해대고,
죽게 되는 마당에는
비호같이 아주 잘 뺑소니를 칠 줄도 안다면,
그대 어느 구석땅에 몰릴지라도
아무렴, 대왕이나 성왕 하나는 너끈히 될 것이오,
또 어쩌면
한 나라의 시조왕까지도 될랴면 될 것이니라.
ㅡ서정주 시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의 사주팔자>전문
『 鶴이 울고간 날들의 詩』에 속해 있는 작품인데 '처녀가 시집가기 전에 되게 야합해서 낳은 게 좋은데, / 그 중에서도 특히 / 하느님이라든가 해님의 넋을 붙어 그랬노라고 /그 핑계가 아주 썩 잘 풍류로 된 아이가 좋나니,'라 했듯이 ‘하느님’ 또는 ‘해님’의 넋 즉 정기가 깃든 생명으로서 구실이 우리 민족 정신사 구실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 제왕 고주몽이었던 것이다. 예사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조화로 위대한 인간이 탄생되는 탄생설화 속에도 국선사상이 배어있는 것이다.
서정주의 <玉色과 紅色>이라는 시를 또 보자.
시인 정지상(鄭知常)이는 무슨 빛보다도 만물의 본고향 빛 ― 하늘의 옥빛을 가장 숭상하는 신선 마음으로 살다가, 인륜의 붉은 핏빛을 얼굴에 자주 나타내는 시비(是非)유생(儒生) 김부식(金富軾)이한테 몰려서 잡혀 죽어 귀신이 되었것다.
그래 그 뒤 어느 날 김부식이가 뒷간에 들어갔을 때 또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을 뒤따라 들어간 정지상이 귀신이 보고 “네 낯빛이 또 왜 그리 붉으냐?”고 물으니, 김부식이는 본심은 숨기고 시(詩)쪼(調)의 거짓말로 “저 언덕의 단풍 빛이 비쳐 와서 그렀나 뵈.” 한마디로 그냥 얼버무려 넘겨 버리려고 했었지.
그러니까 정지상이 귀신은 이번엔 김부식의 불알을 매우 되게 잡아 쥐고 “이래도 거짓말 할 테냐? 이래도 거짓말 할 테여?” 거듭 거듭 그 불알을 죄고만 있었지.
“지상아, 불알을 쥐이고도 너는 낯도 안 붉힐 수도 있니? 그렇다면 네 애비 불알부터 그건 무쇠로나 만들었나 부다.”
부식이는 그래도 안 지겠다고 이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뇌까리고 강그라져 죽어 버리고 말았는데, 이 유생(儒生)과 이 선도(仙徒)의 색채의 대조는 아쉰 대로 꽤나 볼 만하여서 여기 불가불 몇 글자로 적어 놓아 두노라.
ㅡ서정주 시 <玉色과 紅色>
이규보의 『백운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시로 재구성한 대목인데 ‘시인 정지상(鄭知常)’과 ‘만물의 본고향 빛 ― 하늘의 옥빛’이 서정주가 말하는 ‘가장 숭상하는 신선 마음’이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마음의 풍류정신으로 살았던 것이다.
남영전의 <달>을 보자.
박쥐의 날개에서 살근히 새여나와
산을 넘고 바다 건너 발볌발볌 걸어온다
고운 얼굴에 얄포름한 안개 가린듯한 너울
어깨에 드리우고 머리우에 너울너울
상긋 웃으며 정겨웁게
나무초리의 아련한 마음의 요람 일렁인다
삼라만상은 무게를 잃고
산그림자는 햇솜마냥 소롯이 부풀고
바다물결은 실오리마냥 가녀리게 꼬여진다
돌멩이는 오톨도톨한 살색으로
걸탐스레 달콤한 젖향기 빨아들이고
달빛은 보드랍게, 따사롭게
상상의 파란 날개 펼친다
살근살근 내리는 달의 이슬
몰몰 날리는 달의 향연
보이지 않는 이슬
만질수 없는 연기
유곡의 신성한 점괘이고 암시여서
이승의 아득한 조짐이고 계시여서
아리아리하게, 가물가물하게
심령 끄당기는 성결한 전당 쌓아올린다
마음의 요람과 날개와 신전문에 걸린 달
달은 이지러졌다 둥그러지고
둥그러졌다 이지러진다
둥그러짐은 이지러지기 위함이요
이지러짐은 둥그러지기 위함이다
둥그러지고 이지러짐은 영생으로 통하는 산길
그래서 교교한 달밤――
생남 바라는 아낙네들 수줍게 우물가에 나와
달빛 어린 맑은 물 한바가지 퍼마신다
그래서 야드러운 풀밭에선―
흰옷 입은 숙녀들 나리꽃으로 만발해 원무 춘다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돌아가는 원은 하늘에서 내린 달이요
팔랑이는 아가씬 천상 선경의 선녀들이라
――풍요의 원리는 이에 따라 밀물이 되고
모성의 원리는 이에 따라 회전이 되고
생명의 원리는 이에 따라 연장이 된다
경건한 신앙, 집착한 갈구로
천지간에 아렴풋한 환영 빛난다
달마당 나리꽃은 억천만번 피여나고
달이 비낀 우물은 억천만번 푸고 퍼서
유구한 세월 빨아먹고
유구한 세월 맛보았거늘
면면한 넝쿨은 이제금 시나브로 자라나
월궁 닿는 사다리 자라나고
생명의 문엔 흐린 비방울 무수히
흩날리며 떨어진다
떨어지며 흩날린다
달아, 달아, 영겁의 달
심금의 신비와 몽롱 연주한다
ㅡ남영전 시<달>전문.
남영전시인이 '달아, 달아, 영겁의 달'이라 했듯이 미당 서정주는 <추석>이라는 시에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秋夕이라 / 밝은 달아 / 너 어느 골방에서 / 한잠도 안자고 앉었다가 / 그 눈썹 꺼내 들고 / 기왓장 넘어 오는고.'라 했으니 그 맥락은 동일하다고 보는 견해다. 남영전시인이 말하는 달의 이미지는 '달은 이지러졌다 둥그러지고 /둥그러졌다 이지러진다 / 둥그러짐은 이지러지기 위함이요 / 이지러짐은 둥그러지기 위함이다 / 둥그러지고 이지러짐은 영생으로 통하는 산길'로 신비의 세계에로의 끝없는 항행이다. 만물의 법칙 그 근원으로 존재하는 달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 돌아가는 원은 하늘에서 내린 달'라 했으니 신령스러울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표상으로 달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늘에 내린 만물의 조화 속에 인간도 존재하는 것이리라.
대추 물 들이는 햇볕에
눈 맞추어
두었던 눈썹.
고향 떠나올 때
가슴에 꾸리고 왔던 눈썹.
열두 자루 匕首 밑에
숨기어서
살던 눈썹.
匕首들 다 녹 슬어
시궁창에
버리던 날,
三時 세 끼 굶은 날에
역력하던
너의 눈썹,
안심찮아
먼 山 바위
박아 넣어 두었더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秋夕이라
밝은 달아
너 어느 골房에서
한잠도 안자고 앉았다가
그 눈썹 꺼내 들고
기왓장 넘어 오는고.
ㅡ서정주 시 <秋夕>전문
서정주에 있어서 <달>은 아득한 기억 속에서 현실로 재현되는 달인 것이다. 수많은 회귀와 질곡을 통해서 비로소 둥글어지는 만월이 추석날 밤의 보름달이다. 서정주의 달이 우리들에게 감화를 주는 이유는 우리 민족 역사의 수난과 질곡이 말해주듯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읊고 있다. 그 눈썹이 수많은 변신을 거듭해 천지를 환히 비추이는 때가 추석인 것이다. 눈썹이 상징하는 의미는 초승달 즉 눈썹달의 이미지이며 눈썹은 사람이 죽어서 육신은 썩어 문드러져도 눈썹은 썩지 않듯이 그 명맥을 이어온 굴함없는 긍지이며 우리 민족 최대 환희의 날이 바로 추석명절로 민족이 화합하는 명절로 꼽히는 것이다.
한국 현대시인들은 이런 시는 잘 쓰지 않는데 역시 서정주의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를 보자.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 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어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ㅡ서정주 시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전문.
한국에서는 서정주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구절들이 많은데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라는 대목이다. 물론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 마디’한 걸로 인용하는 투로 읊고 있지만 풍자적인 이쁨까지를 두루 갖춘 표현들이 군데군데 눈에 뜨인다. 말하자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어 웃고 /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에서 보듯 그냥 쉽게 흘려버릴 문장이 아니다. '대수풀의 올빼미'와 '달님'마저도 감회를 받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제1연에서는 '휘영청 달빛'과 '뒷산에서 노루'의 조화 역시 서정주만이 노래할 수 있는 신비의 세계, 신선사상에서 바라본 관점으로 해석 된다. 이와 같이 <달> 역시 거역할 수 없는 우리의 정신사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영물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남영전 역시 ‘풍요의 원리는 그래서 밀물이요 / 모성의 원리는 그래서 륜회하고 / 생명의 원리는 그래서 연장하네'라고 <달>에서 읊고 있다. 모성이란 '달 보시고 한 마디' 하는 '어머니'가 동질의 것으로 해석이 된다.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가 아니라 생명을 잉태하기도 하면서 원형을 추구하며 신비로운 존재로 우주와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역할을 하는 존재인 것이다. 천(天), 지(地), 인(人)을 하나로 융화시키는 신령스런 달로 자리매김 되어온 것이다. 여기서 천(天)은 ’달‘이며 지(地)는 ’꽃‘이며 인(人)은 ’인간‘인 것이다. 남영전시인의 천(天), 지(地), 인(人)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 ◇ ◇ ◇ ◇
일별하면, 이러한 소재와 테마가 어우러진 세계는 우리 민족 고유한 정서에서 비롯된 것들로 읽힌다. 일찍이 고은은 미당의 시를 두고 <詩의 政府>라 칭했듯이 갖가지 빛깔의 정서와 사상체계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뜻과도 상통하는데 그만큼 우리 민족의 혼과 얼, 정서를 남달리 유현한 세계로 끌어올린 서정주의 치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남영전시인 역시 조선족문단을 넘어서서 중국문단에서 토템시를 통해 제시하고자 했던 기본 정서가 조선민족의 정신사를 근간으로 해 이루어졌으며, 토템이라 명명한 그 자체도 백의의 조선민족 얼을 넘어서 전세계 토템사상과도 연관성을 지니며 나아가는 도약으로 읽힌다. 토템사상이 비록 씨족, 부족에서 비롯된 고유신앙이라 하지만 그 정신사가 문학에 있어서의 개연성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남영전의 토템시는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전인류에게 주는 중요계시로 보여진다.
서정주의 시가 부활적 세계나 영원의 세계에 닿아있듯이 그래서 영생을 희구하듯이 민족이나 국가, 또는 개인의 사상성이나 정신사가 열려있는 세계와의 만남이 형성될 때 울림이 클 뿐만 아니라 전인류가 공유하는 예술장르로 거듭 태어난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문헌 이전에 토템은 생성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문헌이나 학술적 근거를 넘어서서 토템사상을 한정짓지 말고 새로운 토템 생성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리라 본다.
옛 서낭당 돌무지가 아직도 남아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그게 처음부터 어데 신앙의 근거지였겠는가. 하도 삶에 찌들리고 인생사가 잘 풀리지 않고 근심걱정 등 고민이 많다 보니 돌을 쌓고 쌓다 보니 정성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적 신앙이 되어 오늘날까지 뻗어내려왔던 것이다. 기독교에서의 십자가나 가톨릭에서 성호를 긋듯이 어린 참새가 죽었는데도 부드러운 흙속에 묻어주며 나무꼬챙이를 세워주며 기도를 하는 것도 하잘 것 없어 보이는 나무꼬챙이가 하나의 영물처럼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하는 것도 그러하리라 본다. 모든 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마음 안에 떠나있는 게 아니고 보면 상통하는 모든 대상도 그 성격이나 습성에 따라 공존하며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거기 혼이 깃들어 집단의 영매작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 편의 시에서도 영매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즉 접신이 되지 않으면 영통의 세계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추구해 온 신선사상인 국선사상이 민족의 정신사로서 명맥을 이어온 것도 영통과 같은 내림 다름 아니리라. 먼 조상으로부터 피를 이어받아 그 피 속에 흐르는 뜨거운 순환반복의 유전인자가 바로 혼과 얼이 되어 문화를 형성해 왔듯이. 남영전의 토템사상의 근원이 한민족의 신단수에서 비롯되어 전중국으로 확대되고 전세계 토템과 맥락이 닿는 광의적 개념의 토템으로서 전인류가 공감하며 공유하는 터전으로서 자리매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단군사상의 다른 이름은 풍류(風流)정신이다. 풍류의 핵심은 접화군생(接化群生)에 있다. 접화군생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 무기물 등 우주만물을 사랑하고 가깝게 사귀고 소통하여 감화, 변화, 진화시켜서 완성되는 일종의 화해정신이다. 이런 화해정신이 바로 '두루 유익하다'는 홍익사상인 것이다. 예술과 아름다움의 극치는 뭇 인간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곳에 있기에 그 극치가 성스러운 최고의 미적 영역에까지 도달하면 동식물이나 무기물, 물방울이나 흙 한줌마저 감동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익인간 정신인 단군사상은 고대의 풍류정신에서 비롯되어 작금에 와서 국선사상으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남영전시인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런 홍익인간 정신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앞으로 한국문단에서 지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리라 본다. 단군의 국선사상 그 원류가 母國 한국이기에 필연코 다루어져야 하는 몫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시 뿐만 아니라 이론마저도 모조리 서구지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실정이다, 시의 표현적 기법에서나 대상이나 사물인식에 이르기까지 서구이론에 근거한 방식으로 깊이 몰입되어 있어 민족의 정체성마저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김소월 서정주 박목월 조지훈 박재삼 송수권 나태주 필자 등 전통서정 계열의 시인계보가 미약하나마 국선사상에 입각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우수한 좋은 시인을 꼽는 데는 시 한 편 한 편마다의 완성도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시인이 써내놓은 여러 시편들의 궤적을 찾아 시적 정신사와 내면의 사상성을 연결 짓는 것이다. 한국의 미당 서정주시인의 시의 궤적을 보면 땅위에서의 생명 있는 것들의 몸부림이 ‘新羅’라는 신비의 숲을 지나 우주세계까지 닿아있으며 윤회로 이뤄지고 있다는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시단에서도 남영전시인이 한 편 한 편의 단순한 시읽기를 제공해 주는게 아니라 시작품 속에 내재된 토템이라는 궤적을 형성하고 있다는데 이는 가이 놀랄만한 일이다. 조선민족의 뿌리로 읊은 시, 예를 들면 시 <봇나무> 등이 보여주는 정신사가 그것인데 조선민족의 끈질긴 삶을 발판으로 하여 한민족의 태동인 단군모와 신단수로 비롯된 42편이 이제는 전인류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 문화의식 속에 영원히 살아있기를 바란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인데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너와 나가 따로 존재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선상에 놓여져 공유해 나가는 정신인 것이다. 이로 볼 때 남영전시인의 토템사상은 이제는 전세계인을 하나로 묶는 地上主義 생명사상으로 통하는 것이다. <끝>
▶한국 서지월시인의 중국문단 본격진출의 계기가 되는,
중국 장춘에서의 <남영전 토템세미나> 발표 논문(평문)
(200자 원고지 80장, 16,000자)
**[서지월시인 약력]
• 1955년, 고주몽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 대구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371번지에서 태어남. 본명 서석행(徐錫幸), 아명 건식(巾湜).
• 가창초등학교, 대륜중고등학교를 거쳐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 1985년 10월, 제2회「전국교원학예술상」문예부문에 시 <꽃잎이여>로 大賞에 당선, 문교부장관상 수상.
• 1985년 12월,『심상』신인상에 시 <겨울 信號燈>외 3편 당선.
• 1986년 6월,『아동문예』신인문학상 동시 <바람에 귀대이면> 외 4편 당선.
• 1986년 8월,『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시 <朝鮮의 눈발> 당선.
•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 1998년, 제1회「한하운문학상」본상 수상.
• 1999년, 전업작가 정부특별문예창작지원금 1천만원 수혜시인에 선정됨.
• 2000년,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주관「正文文學賞」수상.
• 2002년, 한국시인협회 주관 중국 서안-돈황 '실크로드 아시아시인대회' 참가.
• 2002년, 중국「長白山文學賞」(세계문학상) 수상.
• 2003년, 중국 연길 한국정지용시인 국제세미나 참가 등 일곱 차례에 걸쳐 만주땅 전역을 답사함 .
• 2005년, 일본 최대 詩잡지「지구」詩 초청으로 도쿄 아시아환태평양시인대회 참가.
• 2006년, 시 <건들바위>, <울릉도 섬말나리꽃>, <영양고추> 등이 창작 예술가곡으로 작곡 되어 불리워짐.
• 2006년, 대구 MBC 문화방송 노래 <달구벌의 빛과 소리>가 가곡으로 작곡됨.
• 2006년,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 200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50주년기념 향토적인 삶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인으로 선정됨.
• 2007년,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MBC KBS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 2008년, 서울특별시「시가 흐르는 서울」에 시 <내 사랑>, <인생을 묻는 그대에게>가 선정됨.
• 중앙일보「한국을 움직인 인물들」,조선일보「국내 주요인사 인물정보 BD」,문화일보「문화예술인 BD」,연합뉴스「한국 주요인물」에 선정됨. 불교TV방송국『불교인명대사전』에 수록됨.『韓國詩大事典』에 수록됨.
•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중앙위원)·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한국동시문학회 · 아동문예작가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및 대구시인협회 회원. <낭만시> 동인으로 활동.
• 현재, 만해실천사상선양회 자문위원. 영남오페라단 이사. 한중공동 시전문지『해란강』한국측 편집 주필. 동아문화센터, MBC문화센터, 경주대사회교육원, 달성시인대학 등을 거쳐 현재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 나남출판사)
¤『江물과 빨랫줄』(1989, 문학사상사)
¤『가난한 꽃』(1993, 도서출판 전망).대구시인협회상 수상시집.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1994, 시와 시학사)
¤『팔조령에서의 별보기』(1996, 도서출판 중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우수시집으로 선정됨).
¤『백도라지꽃의 노래』(2002, 중국 요녕민족출판사),(중국 '장백산문학상' 수상시집)
¤CD롬시집『가난한 꽃』(1998, 한국문연, 정선시 188편 수록)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2003,천년의 시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시집으로 선정됨).
¤동시집『휘파람나무』(1987, 아동문예사. 공저).
¤『한국아동문학선집.권42』에 동시가 수록됨(계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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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78, 시산방 徐芝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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